#236화. 第四十八章 목전(目前) (1)
“으흠!”
조위 장군은 침음했다.
아걸이 어떻게 싸웠는지는 전보영 전탐조가 보내온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아걸은 무인으로 싸운 게 아니라 군인으로 싸웠다.
“이건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군. 전투야.”
장군은 그림을 유심히 쳐다봤다.
전장을 떠돈 사람이라면 처참한 광경을 많이 보기 마련이다. 웬만큼 참혹한 장면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 눈에 단곡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아걸이 네 번째 부탁까지 들어줬으니 다섯 번째를 진행해야지.”
“다섯 번째라고 하심은?”
탁호가 물었다.
조 장군은 아걸에게 준 밀서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개략적인 내용은 말해 주었지만,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장군은 아걸에게 부탁 다섯 가지를 했다.
이제 다섯 가지 중 네 번째까지 패가 드러났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다섯 번째를 언급한다.
조 장군이 말했다.
“토족 전사들을 전보영 삼부 휘하 무인들로 둔갑시키게.”
“네?”
탁호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진행 순서는 조금 바꿔. 삼부 무인들이 전보영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먼 곳으로 임무를 떠났던 것으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아걸과 부딪친 거지.”
“장군가와 전보영을 이 싸움에서 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조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면 조위 장군은 물론이고 허도기도 이 싸움에서 완전히 빠진다.
전보영은 휘하 무인이 죽었으니 조사에 나서겠지만, 전보영 역시 이 싸움과는 무관하다.
관원이 죽었다고 해서 전부 공무는 아니다.
퇴근한 후에 친구와 만나서 술 한잔하다가 시비 끝에 칼부림을 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사건이 되는 셈이다.
한데 그렇게 되면 가장 곤란해지는 사람은 아걸이다.
싸움이 벌어졌다고 해도 아걸은 상대방을 무려 이백 명이나 죽인다. 저들이 전보영 무인이라고 소속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도 엄청난 살육을 한 손가락질은 받아야 한다.
죽은 사람이 관원일 경우에는 더 골치 아프다.
관원을 대량으로 죽인 사건인 만큼 무인들끼리의 다툼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다.
아걸을 포박해서 압송해야 한다. 투옥한 후에 심문해야 하며, 죄에 합당한 벌도 내려야 한다.
이런 압박까지 거부하면 아걸 대 나라의 싸움이 된다.
공권력을 무시한 만큼 전군, 전 관원, 전 무인이 아걸을 추격할 것이다.
“그건 아걸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지 않습니까?”
“…….”
장군은 입을 다물었다.
“허도기도 지금쯤은 죽은 자들이 토족 전사라는 것을 알 텐데요.”
“알겠지.”
“그냥 토족 전사들이 고명산에서 탈출했다고 하면 허도기에게 타격이 가지 않겠습니까? 장군님의 지금 말씀은 허도기에게 갈 화살을 아걸에게 돌리라는 말씀이신데,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후후후! 고명산에서 포로가 탈출했다 한들 허 공부한테 얼마나 타격이 갈까?”
“큰 타격은 주지 못할 겁니다.”
탁호도 말을 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토족을 고명산에 가둬 둔 게 십오 년이다. 그럼 벌써 탈이 나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저들을 꾹 눌러놓고 있었던 것만 해도 허도기 공이 크다.
인제 와서 포로가 탈출했다고 한들 타격 갈 것도 없다. 또 토족이 탈출한 후에 뭘 한 것도 없다. 기껏해야 탈출하다가 무인을 만나서 죽은 것밖에 없다.
고명산을 지키던 산주와 산귀가 처벌을 받을망정, 허도기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탁호가 다시 말했다.
“저들은 전보영 휘하로 둔갑시킨다면 아걸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전국에 체포령을 발부해야 하는데,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휴우!”
조 장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걸에게 한 다섯 번째 부탁이 바로 이거네. 체포령을 내릴 테니 도망가라고.”
“그런 부탁이었습니까?”
탁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는 아직도 장군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아걸이 관군에게 쫓겨서 좋은 게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엇!”
탁호는 불현듯 한 생각이 치밀어서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전보영이 체포령을 내리면 그 순간부터 아걸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관부로부터 쫓긴다. 무림으로부터 쫓긴다.
아걸은 무림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체포령이 떨어진 순간부터 어떤 문파도 아걸을 숨기거나 도와주지 못한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걸을 추살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아걸은 천하게 다시 없는 외톨이가 된다.
체포령 속에는 현상금도 붙는다. 그러니 누가 죽여도 상관하지 않는다. 현상금 사냥꾼들이 일제히 달려들 것이다. 그러니 농가에서 물 한 모금 얻어먹지 못한다.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너무한 처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누가 아걸을 벨 수 있나?
아걸을 잡아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체포령은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겨우 아걸을 도와준 사람이나 그를 받아들인 문파에 징계를 가하는 정도다.
그런데 아걸은 무림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기껏해야 적랑대와 취화원 정도인데, 그들은 알다시피 살수 문파다. 평상시에도 숨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과 같이 있다고 해서 꼬투리를 잡을 수도 없다.
모든 소식은 전보영에서 취합되고, 전보영은 아걸과 연관된 모든 정보를 지워 버릴 것이다.
실질적으로 아걸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체포령이 굉장한 일이 되겠지만 아걸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니다.
“속하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여쭙니다. 이건 토족 무인이 탈출했다고 고변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고, 허도기를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왜 굳이 이런 일을 하시는지……?”
“두 개를 노리는 거지. 하나는 아걸을 숨기는 것. 체포령이 떨어지면 아걸은 철저히 숨을 거야. 아무도 찾지 못하겠지.”
“그럴 겁니다. 전보영까지 아걸을 숨겨 두면 더 찾지 못하겠죠.”
“두 번째, 체포령이 떨어지면 허도기가 당황할 거야. ‘이게 뭐지? 무슨 수작이지?’하고. 그러면 곧바로 아걸을 손보지 않고 일단을 지켜볼 거야. 휴우! 지금 아걸이 허도기와 부딪치면 안 돼. 허도기를 이길 사람은 아걸뿐이니, 아걸이 무공을 갈고 닦을 시간을 주어야지. 이게 내 생각이네.”
“그런 왜살을 아걸에게 보낸 것은……?”
“아걸에게는 왜살을, 취화원에는 호위청사 허굉우를 보냈어. 그 사람들, 아걸과 몽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거야. 허도기가 급작스럽게 공격해도 한 번은 목숨을 건지겠지. 후후! 다른 수는 없어. 아걸과 몽설은 이게 끝이야. 우리 싸움은 우리가 해야지, 누구에게 맡기나. 하하!”
조 장군이 웃었다.
* * *
진공부에 거칠게 생긴 사내 이십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마치 깊은 산에서 막 튀어나온 듯 피부가 수세미처럼 거칠었고, 몰골도 형편없었다.
“고명산에서 왔다고 전해 주시게.”
산주가 산귀들이다.
고명산에서 토족 전사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텅 빈 산에 있을 수 없어서 다시 귀환한 것이다.
잠시 후,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공부님께 모시겠습니다.”
옷을 깔끔하게 입은 소동이 산주와 산귀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들은 진공부 대청이 아닌 넓은 연무장으로 안내되었다.
연무장에는 허도기가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수련 중이었는지 웃통을 벗고, 검을 잡은 채 조용히 목인형을 노려보았다.
쉬잇!
허도기가 검을 썼다.
파란 검광이 번쩍 빛났다.
목인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이미 목인형이 가로로 베였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아! 굉장한 검입니다!”
산주가 탄복했다.
사실, 공부의 무공을 십 장 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공부가 산주를 힐끔 쳐다봤다.
“토족이 모두 움직였다고.”
“네.”
“게네들, 전멸당한 거 알아?”
“네? 전…… 멸요? 무슨 말씀이신지?”
산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몰라? 오는 동안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나? 너희는 뭐한 거야? 소식이라도 전해 주지.”
연무장에 늘어선 무인들은 침묵했다.
“산주.”
“네.”
산주는 무엇인가 일이 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 자리는 결코 환영받는 자리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질책, 추궁을 받는 자리다.
“난 산주에게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그들을 왜 놓아줬지?”
“네? 그럴 리가! 분명히 밀마도 알고 있었고, 전서구도 순차적으로 여섯 마리 모두 확인했습니다.”
산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느낌이 매우 안 좋다.
사실, 토족이 몰살당했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어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산주 무공 좀 볼까? 산주, 십오 년 동안 고명산에서 어떤 무공을 닦았는지, 아니면 술이나 먹고 빈둥거렸는지 확인시켜 줘야겠어. 할 수 있겠지?”
산주는 즉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더 확인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밀마를 확인했고 전서구를 통해서…….”
쒜에엑!
순간,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허도기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미미한 소리만 날카롭게 퍼져 나왔다.
“컥!”
말을 잇던 산주가 풀썩 꼬꾸라졌다.
허도기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하다. 여전히 검을 잡은 채 묵묵히 앞만 쳐다보고 있다.
“산주는 증명하지 못했고. 산귀, 너희들 검을 보자. 일제히 합공하는 것을 허락한다.”
산귀들이 주위를 둘러 왔다.
무인들이 사방을 빼곡히 둘러서 있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렇구나! 공부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토족 전사들이 몰살당했다면 이럴 수 있지. 그들에게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당연한 거지.
그놈! 그 샌님같이 생긴 놈에게 당한 거야.
그런데 누가 토족 전사를 몰살시켰나. 아니, ‘누가’라는 말은 잘못됐다. 어떤 문파, 어떤 집단, 혹은 어떤 군대……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 개인을 지칭하는 말은 잘못되었다.
스릉! 스릉!
산귀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들은 토족 전사들에게 은신술을 배웠다. 고명산을 치달리면서 건각을 단련했다. 십오 년 동안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무공수련뿐이었다.
고명산을 가 보라. 나무들이 온통 검에 찍힌 자국 투성이다.
검이라면 자신 있다. 물론 공부에게는 어림도 없는 검이지만, 한 수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용서를!”
산귀가 일갈을 토하면서 허도기를 향해 후다닥 달려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라는 말을 입에 올린 것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하는 호소다.
산주가 일 초에 척살 당했는데, 산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일대일 승부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당연히 전체 합공으로 승부를 결행하는 수밖에 없다.
열 명이 사방에서 둥글게 포위했다. 그리고 일제히 손발을 맞춰서 검을 찔러 왔다.
쒜에에엑!
검풍이 돌풍처럼 일어났다.
산속에서 밥 먹고 하는 일이 무공수련이었던 탓에 산귀들의 검에는 태산도 가를 힘이 실려 있었다.
타타타탁!
또 다른 십여 명이 앞선 자들을 쫓아서 내달렸다.
탁! 타아악!
그들은 앞선 산귀가 검을 뻗어 낼 때 그들의 등을 밟고 하늘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허도기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검 열 자루가 허공에서 내리찍는다.
열 자루는 사방에서 몸을 꿰어 온다.
허도기는 피할 곳이 없다. 허도기가 아무리 검신이라고 해도 검 한두 개는 맞을 것이다. 순간,
꽝! 꽝! 꽈앙! 와지지지직! 우직끈!
하늘에서 땅에서 굉렬한 소리가 울렸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던 검들이 일제히 부러져 나갔다. 사방에서 찔러 오던 검도 마찬가지다. 검이 마치 수수깡처럼 떨어져 나갔다. 요란한 소리를 남기고.
퍽퍽퍽퍽! 퍼어억! 퍽!
살점 파이는 소리가 뒤이어서 터졌다.
모든 소리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일어났는데,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한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들렸다.
“크으으윽!”
“아악!”
산귀들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연무장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입만 쩍 벌린 채 말을 잊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대체 어떤 검이 펼쳐진 것인가? 이들 산귀가 어떻게 죽은 것인가? 이것이 공부의 진신 검초구나. 공부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공부 허도기가 일초단검을 펼쳤다.
옛날 성검문 문주 시절처럼 거침없이, 진심으로 검초를 펼쳐 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허도기가 산귀들을 이겼다거나, 죽였다고 해서 놀란 것이 아니다. 공부의 무공을 직접 보니 가히 입을 열 수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
뒤늦게야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