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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37화 (237/600)

#237화. 第四十八章 목전(目前) (2)

몽설은 아걸에게 서신을 건네며 말했다.

“전보영에서 보내왔어. 봉인 상태로 온 건데, 무슨 내용인가 내가 먼저 봤어. 괜찮지?”

“왜?”

아걸이 되물었다.

아무리 봉인 상태로 왔다고 해도 몽설이 뜯어보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몽설에게는 비밀이 없다.

천하에 다시 없는 나쁜 짓을 했다고 해도 몽설에게 만큼은 사실대로 말할 수 있다.

내가 자신에게 감추지 못하듯이, 몽설에게도 감추는 것이 없다.

한데 먼저 뜯어봤다고 말하는 몽설의 말투나 표정이 매우 차갑다. 그래서 되물어 봤다.

“내가 다 말해 주는데 뭘.”

“아니. 이제는 오빠도 못 믿겠어.”

“날 못 믿는다고?”

“토족과 싸운다고 말했어?”

“아니. 그건…….”

“이 편지 뭔지 알아? 오빠를 잡으라고 전국에 체포령을 내린다는 거야. 이런 건 내게 미리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언제 말해 주려고 했어? 지금?”

“몽설.”

아걸은 피식 웃으면서 몽설을 불렀다.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마. 나 지금 아주 많이 화났어.”

“끄응!”

아걸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읽어 봐. 읽고 나서 말해.”

몽설이 고개를 홱 돌려 먼 곳을 쳐다봤다.

밀서를 읽었다.

아걸은 전보영 관원을 죽였다.

전보영은 당장 아걸을 체포하고 심문해야 한다. 하지만 아걸은 이미 사라져서 찾을 수 없다. 그러니 부득이 전국에 체포령을 발부할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적혀 있다.

장군가는 무가(武家)다. 당연히 몇 대에 걸쳐서 무공 비급을 상당량 모아 두었다. 거의 오백여 종에 이를 것 같은데,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주겠다.

내공을 증진할 수 있는 영약도 많다.

삼백 년 넘은 산삼이 열 뿌리 정도 있다. 피부를 벗기고 털을 가는 박피벌모(剝皮伐毛)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혈황사(血黃蛇) 쓸개도 있다. 복용하면 단숨에 뼈를 바꾸고 골수를 씻어 주어 반골세수(返骨洗髓)를 이룬다고 하니, 최소한 내공이 십여 년 정도는 증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장군가의 비고를 열어서 비급과 영약을 내준다는 내용이다.

더불어서 허도기와 승부를 겨를 수 있을 때까지 은인자중할 것이며, 꿋꿋하게 버티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조위 장군이 왜 체포령을 내리는지, 비급과 영약은 왜 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허도기는 조위 장군의 적이자 아걸의 적이다.

허도기가 만들어 놓은 세력은 조위 장군이 부숴 나가겠지만, 허도기 당사자만큼은 아걸이 상대해야 한다.

아걸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대충 예상했던 내용이야. 별로 새롭지…….”

아걸은 말을 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하다 보니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지만 몽설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흥!”

몽설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토족하고의 싸움은 이길 수 있으니까 말하지 않은 거고. 장군이 내게 다섯 가지 부탁을 한 건 알고 있잖아. 그건 분명히 말해 줬어.”

“다섯 가지 부탁이 뭔지 세부 사항은 말하지 않았잖아! 난 중요한 내용은 들을 자격이 없구나?”

“그게 아니라, 말해 봤자 걱정만 할 것 같아서.”

“오호! 그러세요?”

“아! 미안, 미안.”

아걸은 몽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 놔.”

아걸은 즉시 손을 놓았다.

“또 말하지 않은 거 있어?”

“없어. 정말로. 맹세.”

“왜살은 왜 맡긴 건데?”

“후후! 취화원에 허굉우가 온 것과 같은 이유.”

“정말이지? 딴 수작 없는 거지?”

“장군은 내가 차분히 쉬면서 무공수련이나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그러니 비고도 열어 준다는 거고. 그러다가 만일 체포령에 관해서 탈이 생기면 왜살이 막아 줄 거야.”

“정말 그 이유뿐이야?”

“그렇다니까.”

“그럼 왜 죽은 척한 건데?”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흥!”

몽설이 코웃음을 쳤다.

왜살은 죽어야만 모습을 감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허도기가 왜살 같은 강자를 주시하지 않을 리 없다.

몽설은 이미 왜살이 따라붙은 이유를 안다. 전보영 호위청사 허굉우가 취화원을 기웃거리는 이유도 안다. 도움을 주려는 선의의 행동이다.

왜살은 관군 중 누군가가 정말로 아걸을 잡으려고 할 때, 어떤 식으로든 막아 줄 것이다.

장군가의 이름을 빌려서 물러나게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살인마로 둔갑해서 아걸을 대신해 싸울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아걸에게는 손대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두 사람이 곁에 붙어 있는 것은 결코 사양할 일이 아니다.

“왜살이 옆에 있다는 사실도 말해 준 적이 없잖아. 그래서 묻는 거야!”

“알았어. 다음부터는 다 말해 줄게.”

“한 번만 더 속였다가는 두고 봐!”

“후후! 그건 그렇고 이거 좋은 약과 비급을 많이 내준다니 받아야겠지?”

“받으려고? 이런 게 필요해?”

몽설이 놀란 눈으로 아걸을 쳐다봤다.

중원 무인들에게 비급과 영약은 대단한 유혹이다.

솔직히 말하면 몽설에게도 유혹이다. 비급과 영약을 조건으로 청부를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장군가의 제안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

비고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전설상의 영약으로 내공을 십 년, 이십 년 증진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 십 년 동안 운공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을 영약 하나 먹어서 성취할 수 있다면 먹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확실히 모든 사람에게 다 통용되는 혜택이다.

몽설도 이제는 혈검경을 상당 수준까지 수련했다. 상승 고수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래서 비급은 욕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약만은 탐이 난다.

내공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중원제일인이라는 허도기조차도 내공을 증진해 주는 영약이 있다고 하면 당장 복용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장군가의 제안은 파격적이다.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오직 아걸을 강하게 키우겠다는 거다. 허도기만 잡아 달라는 뜻이다.

일홀도에 영약이나 비급이 필요한가?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판단은 전적으로 일홀 무인이 한다.

그러니 일홀도를 수련하는 사람이 영약을 복용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면 당연히 옳은 판단이다. 또 영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어도 당연히 옳다.

일홀도는 도법이 중심이 아니다. 도객이 중심이다.

일홀도는 무림 최강 도법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림 최강 도객은 말한다.

강자(强者)!

강자가 되는 길은 많다.

몽설이 수련한 혈검도 무림 최고 절학이 될 수 있다. 허도기가 수련한 조명십해도 무림 최고 검학이다.

허도기가 강한가, 서리가헌이 강한가?

허도기가 강하다. 그러면 서리가헌의 일홀도는 완성된 것인가, 미완성인가? 미완성이다. 그런데 왜 일홀문주는 서리가헌의 일홀도가 완성되었다고 ‘서리’ 성씨를 하사했나.

어느 순간, 서리가헌의 일홀도는 완성되었다.

아걸도 일홀도를 완성했다. 사부가 아직 살아계셨다면 틀림없이 아걸에게도 ‘서리’ 성을 하사했을 것이다.

일홀도를 완성한 순간, 진짜 일홀도가 시작된다.

‘서리’ 성씨를 받은 것은 일홀도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면 끝은 어디일까? 어느 순간이 되어야 일홀도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 허도기처럼 천하제일인이 되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

일홀도는 죽는 순간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제 명이 다해서 숨을 끊어지는 순간까지 패하지 않았다면 일홀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절대로 ‘완성’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칼의 끝은 완성이 없다.

하물며 허도기처럼 일홀도로 꺾지 못하는 무인이 존재하는 한, 일홀문 누구도 일홀도라고 부를 만한 도법을 가진 게 아니다. 우선 당장은 허도기를 꺾은 후에야 일홀도를 운운할 수 있다.

몽설은 일홀도를 너무 잘 안다.

죽는 순간까지 도객의 길을 걸어야 하니, 항시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분명한 것은 일홀도를 성취하는 데는 지름길이 없다는 점이다.

일홀도를 깨우치는 데 필요한 것은 자질과 노력이다. 이 두 개가 마차 바퀴가 되어서 함께 굴러가야 한다. 자질이 없어도 안 되고, 노력이 없어도 안 된다.

자질이 워낙 뛰어나면 삼류 무공으로도 최강 무인이 될 수 있다. 그가 일홀 무인이고 칼을 들었다면 일홀도를 깨우쳤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자질이 부족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초상승 절공을 수련하고도 일홀도를 갖지 못할 수가 있다.

비급? 영약?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아걸에게는 이런 제안이 해당하지 않는다.

아걸은 내공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 초식을 구사할 때도 내공을 싣지 않는다. 도객이 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칼을 잘 아는 젊은이가 칼을 쓰는 것 같다.

아걸이 추구하는 것은 초감각으로 끌어낸 칼의 흐름이다.

몽설은 아걸의 일홀도를 비교적 명확하게 알고 있다.

특히, 이번에 아걸을 보고는 더욱 확실하게 확신했다.

아걸은 진기 없는 검을 쓴다.

사실 진기 없는 검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아걸은 진기를 사용한다. 다만 쓸 때 쓰고. 풀 때 푼다. 필요 없을 때는 쓰지 않고 필요할 때는 끌어낸다.

싸우기 시작하면 무조건 진기부터 끌어내는 중원 무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진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잠력까지 끌어내는 판국이다.

가장 대표적인 무공이 성검문의 조명십해 잠기일력타다. 오죽 죽을힘을 다했으면 검을 쓴 후에 진기가 모두 빠져나가서 운신하지 못할 지경이 될까.

아걸도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를 사용할 때는 전신 진기를 모두 끌어냈다.

온 힘을 다해서 칼을 쳐 냈다.

그런데 이제는 진기를 쓰지 않고도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런 칼이 예전보다 더 강력하다.

이상한 일이다.

도법 자체는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가 월등히 강하다. 빠르고, 정교하다. 그런데 싸움을 벌이면 아걸의 일홀도가 훨씬 유용하다. 강하다거나 빠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실전 효과가 매우 크다고는 말할 수 있다.

중원 무공은 맹수다. 맹렬하게 돌진해서 와락 깨물어 버린다.

아걸의 칼은 산들바람처럼 미약하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지극히 짧은 순간에 툭 치고 지나간다.

분명한 것은 이런 칼로도 허도기에게 졌다는 점이다.

아걸을 확실히 더 강해져야 한다.

아걸이 말했다.

“받을 수 있는 데까지 받아. 줄 때 받아야지. 받아서 취화원을 키워.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조위 장군의 제안은 취화원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뜻이었어? 오빠가 쓴다는 게 아니고?”

“필요하면 구해 달라고 하지. 아직은 필요하지 않아.”

“말 나온 김에 내공 좀 높여 보지? 내공 높아서 나쁜 예는 없잖아. 내공이 약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을 살필 수도 있고. 칼을 쓰기도 편하고.”

아걸은 고개를 내둘렀다.

토족들과 싸우면서 일홀도가 한 단계 더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칼로도 허도기와 승부를 결행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허도기의 무공을 높이 판단한 게 아니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내린 결론이다.

“나는 당분간 내 칼에 집중하려고 해.”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조용한 곳에 숨어 있어야겠네? 대별산은 어때? 산이 깊어서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이 많아. 꼭꼭 숨어 있으면 귀신도 못 찾을 거야. 호호!”

몽설이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아걸과 함께 있을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아니, 나는 금릉(金陵)으로 가.”

“금릉? 거긴 왜!”

몽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금릉에는 진 공부가 있다. 그러니 금릉으로 간다는 말이 곱게 들릴 리 없다.

“지금까지는 내가 조 장군의 부탁을 들어줬잖아. 이제는 조 장군이 내 부탁을 들어줄 차례야.”

“뭘 하려고!”

아걸은 미리 생각해 놓은 듯 밀봉된 서신을 꺼내 몽설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조 장군에게 전달해 줬으면 해. 이건 내 부탁.”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그러는 거야!”

아걸은 빙긋이 웃으며 몽설을 쳐다봤다.

“그렇게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냥 숨만 쉬고 살란 말이야! 무공수련만 하면서 살아. 지금 허도기와 싸워 봤자 죽기밖에 더해?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몽설이 빽 소리쳤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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