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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38화 (238/600)

#238화. 第四十八章 목전(目前) (3)

“장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탁호가 활짝 웃으면서 밀서를 내밀었다.

아걸은 완벽하게 잠적할 모양이다. 별다른 요구도 없다. 장군가의 도움을 기꺼이 받는 선에서 만족한 듯하다. 하기는 그게 보통 큰 제안이었어야 말이지.

“후후!”

조 장군은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리면서 밀서를 개봉했다.

“그렇군. 호의를 감사히 받겠다는군. 취화원에서 물품을 살펴보겠다니 길을 열어 주도록 해.”

“정말 모든 걸 다 줄 생각이십니까? 정말 귀한 것 몇 개라도 추려 놓으시는 것이…….”

“후후! 그럴 것 같았으면 내놓지도 않았네. 내게는 쓸모없는 것들이니 아깝지도 않아. 그것들이 제 임자를 찾아가서 빛을 발한다면 바랄 게 없지.”

장군이 다시 밀서를 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표정이 편하지 못했다. 밀서를 읽어가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안 좋은 이야기라도 적혀 있습니까?”

탁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 장군이 아걸의 편지를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일이 아니다.

“어허!”

서신을 다 읽은 조 장군이 한숨을 토해 냈다.

“안 좋은 내용입니까?”

탁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 장군은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는 듯 밀서를 내밀었다.

“읽어 보게.”

탁호는 사양하지 않고 밀서를 받아들었다.

“아!”

탁호는 밀서를 읽으면서 탄식을 토해 냈다.

“이놈, 정상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무모한 것 아닙니까?”

탁호가 서신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장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생각을 하고 있다.

장군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걸이 쉬는 동안 군대를 모을 것이다. 허도기의 손발을 완전히 잘라 내고 최종적으로 진공부를 들이칠 것이다.

물론 진공부를 치기 전에 황상의 윤허부터 받아야 한다.

황상은 허도기를 무척 아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무인 중에서 허도기만큼 진짜 무인은 없다고 말한다. 혈육만큼 스스럼없이 지낼 때도 있다.

황상에게 허도기는 지상 최강 검사다.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 나라의 보물이다.

더욱이 허도기는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했다. 백만 대군을 한층 더 강한 군대로 발전시켰다. 성검문의 절기를 기꺼이 내놓은 충신이지 않나.

허도기에게 작위까지 직접 내렸는데, 그런 사람을 말도 없이 칠 수는 없다.

군대에 박혀 있는 손발을 잘라 내고, 대궐에 있는 역도까지 잘라 낸 후에 진공부를 친다.

여기까지 두 달을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아걸이 허도기를 이길 만한 무궁을 터득해 주어야 하는데, 사실 거의 불가능한 요구다. 어떻게 무공이 두 달 만에 급신장할 수 있나.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라고 비고를 열어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 아걸이나 허도기 같은 초강 고수에게는 일이십 년 정도의 내공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미묘한 강함이 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함이다.

아걸에게 비급과 영약을 준다고 해도 허도기를 상대하는 데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 장군 자신이 직접 싸울 생각이다.

허도기를 이길 자신은 없다. 장군가의 창법이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허도기는 무적이다. 굳이 승산을 예측하자면 칠 대 삼이나 육 대 사 정도로 낮다.

그래도 싸운다. 자신이 목숨을 던져서 허도기를 함정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매복 공격으로 죽인다.

허도기를 죽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살도 할 수 있으면 한다. 다만 가능성이 없어서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허도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함정.

그 함정을 백 번도 넘게 연구하고 점검했다.

‘이 정도면 완벽해.’

조 장군은 자신이 만든 함정이라면 검신에 이른 허도기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를 실행하려던 참이다

그런데 아걸이 밀서를 전해왔다. 지금부터 자신이 직접 진 공부를 친다고 한다. 허도기의 손발을 잘라 낸다고 한다. 그래서 관직을 버리고 무림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생각이다.

허도기가 관직을 버리고 무림으로 돌아간다.

이게 가능한 말일까? 무림을 버리고 황상을 노리는 자에게 그 반대 행동을 하게 만든다?

가능성 있다!

아걸이 계속해서 발목을 붙잡는다면 허도기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일단은 수하나 제자를 시켜서 아걸을 공격하게 할 것이다. 조 장군이 허도기를 함정이나 독을 쓸 수도 있다. 오로지 아걸을 죽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무슨 짓이든 가능하다.

그래도 아걸이 계속 버티면서 골치를 썩이면 허도기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분명히 가능성 있다.

문제는 아걸이 허도기를 상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아직은 허도기를 상대할 준비가 안 됐는데, 그런데도 이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아걸의 밀서를 읽은 두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조 장군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아걸이 허공부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어림도 없습니다.”

당연한 대답이다. 대답하기 위해서 깊게 생각해 볼 필요조차도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생각이지?”

“말씀드려도 될지.”

탁호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말해 보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 행동은 이해할 수 없어. 자멸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아.”

“제가 취화원과 손을 잡고 일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일홀도에 대해서도 조사해 왔지 않습니까.”

“그랬지.”

“자신할 수는 없는데, 이게 일홀도인 것 같습니다.”

탁호가 자신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게 일홀도라니? 무슨 소린가?”

“일홀도는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일홀도입니다. 상대가 있으면 죽을 게 뻔해도 달려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 말은 내가 만류를 해도 아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이 말이군.”

“네.”

“하하하! 하하하!”

조위 장군이 웃었다.

아걸은 밀서에 자신이 저지른 일의 뒤처리를 해달라고 역으로 부탁했다.

관군을 죽일 수도 있다. 진공부의 손발을 자르는 일이니 틀림없이 관군도 건드리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뒤를 막아달라.

“내가 아걸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아걸에게 더 깊은 꿍꿍이가 있었군. 어쩐지 내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주더라니. 하긴 나만 한 뒷배도 구하기 힘들지.”

“그렇습니다. 구하기 힘들죠.”

탁호가 말했다.

“그럼 답을 해 줘야지. 후후!”

조위 장군은 붓을 들었다. 그리고 일필휘지로 한달음에 글을 써 내려갔다.

“장군님께서도 말려 드셨군요.”

탁호가 장군이 써 나가는 글을 보면서 말했다.

조 장군은 아걸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글을 썼다. 또 자신의 계획도 적었다.

일단 모든 계획을 접고 아걸을 주시한다.

허도기가 거센 힘으로 아걸을 치겠지만, 모진 풍파를 무사히 견뎌내 준다면 허도기가 무림으로 돌아가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앞으로 아걸과 연계한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도움을 청하라.

조 장군은 아걸을 단지 허도기에 필적할 만한 고수로 생각하고 이용했다. 부탁이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자신의 계획에 아걸을 이용한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걸을 동맹군으로 여긴다. 아걸에게 그만한 지위를 주고 합당하게 대접한다.

마음껏 일을 벌여라. 뒤는 다 막아 주겠다.

조 장군은 서신을 다 작성했다. 그리고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게 있습니다.”

탁호가 말했다.

“뭔가?”

조 장군이 자신의 서신을 읽어가며 물었다.

“허도기의 힘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 이 정도로 황상을 넘볼 수는 없을 테니…… 제 생각에는 드러난 힘보다 숨겨진 힘이 훨씬 많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많겠지. 내가 모르는 것들이 더 많이 있겠지. 그래서 전격적으로 진공부를 치려고 했는데.”

조위 장군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군대에 있는 수족을 친다. 그러면 허도기는 군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전격적으로 황상을 윤허를 얻어 낸 후, 진공부를 들이친다.

승산은 반반이다.

어차피 전쟁은 모든 게 불확실하다. 이길지 질지 싸워 보기 전에는 모른다. 내 수가 완벽하다고 해도 상대방 역시 바보가 아니니 반격을 취해 올 것이다.

누구 수가 더 위에 있느냐에 따서 승패가 좌우된다.

조위 장군은 허도기의 실세를 파악하지 못했다. 대충 윤곽은 잡았지만, 깊은 내막까지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런 마당에 허도기가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그중에 최강의 수를 사용한다.

지금까지는 성공해 왔다. 앞으로도 성공할 자신이 있다. 황상의 윤허만 비밀리에, 그리고 재빨리 얻어 낸다면 단숨에 진공부를 들이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방법보다도 아걸이 제시한 방법이 훨씬 효과가 좋다.

아걸이 싸우는 동안, 허도기는 실세를 드러낼 것이다. 진짜로 숨은 힘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힘이 아니고서는 아걸을 공격할 수 없을 테니까.

탁호가 말했다.

“아걸이 정말 힘든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장군께서 부탁했던 토족 싸움 정도는 오히려 우스울 정도로.”

“모르겠는가?”

“네?”

“아걸, 이 친구. 지금 목숨을 던졌어.”

“그건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이 서신을 작성했고.”

“네.”

“우리도 이 친구처럼 목숨을 던져 보자는 서신인데, 아직도 모르겠다는 건가?”

“아!”

탁호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하하하!”

조 장군이 웃었다.

조위 장군은 조경 장군의 복수심을 뛰어넘었다. 황상을 위해서 허도기를 막아야지 된다는 생각도 버렸다. 아니, 그 생각들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서 아걸에게 진심으로 흥미를 느끼고 있다.

조위 장군이 먹물 마른 서신을 밀봉하며 말했다.

“내 창고에 가져가는 것들, 취화원에서 쓰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내가 살수를 양성하는 건가? 결과적으로?”

“취화원주 몽설이라는 여자를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 제가 먼저 배신하면 몰라도 몽설이 먼저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말은 전에도 몇 번 들었지.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몽설을 아주 좋게 본 것 같아.”

“살수 문파라고 걱정하시는 것 같으시기에 말씀드린 겁니다.”

“살수 문파는 원래 나라의 해악이야. 그런 문파가 존재해서 좋은 게 있던가?”

“저희도 살수를 양성합니다. 부르는 호칭만 다를 뿐.”

“그런가? 그렇군. 하하하! 나쁘기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더할 거야. 우린 ‘황상의 명’이라고 핑계까지 마련하잖아. 물자도 아주 풍부하게 쓰고. 적어도 움직일 자금이 없어서 살수를 운용하지 못하지는 않으니까. 하하하!”

장군이 웃었다.

전보영에서도 살수를 양성한다.

첩보를 수집하는 기관치고 살수나 무인 없는 기관이 없다. 그리고 굳이 살수 대상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정적(政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쁜 말로 하면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살수를 키운다.

만약 허도기를 전보영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면 진작 움직였을 것이다.

“언젠가는 취화원 해체를 명해야 할 텐데, 할 수 있겠나?”

“……”

탁호가 일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가 되면 자네나 나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만약 서로 생각이 달라서 가는 길이 달라진다면 자네와 나는…… 하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지 않겠어?”

“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겠지만, 장군께서는 적어도 ‘찍!’ 소리는 내시지 않겠습니까?”

“뭐? 하하하! 찍소리라. 하하하!”

장군이 통쾌한 듯 웃었다.

조위 장군은 아걸이나 취화원주를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뜻을 같이한다. 아주 위험천만한 일을 진행하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조위 장군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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