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第四十八章 목전(目前) (5)
만호(萬戶) 도득영(都得英)은 종이 두 장을 나란히 펼쳤다.
하나는 전보영에서 보내온 아걸 추포 공문이다. 세상에는 은자 이천 냥을 걸었지만, 관원에게는 특진(特進)이라는 영광을 덧붙여 놓았다.
다른 한 장은 허도기가 보내온 명령서다.
아걸이 대별산에 숨어들었으니, 만호가 즉시 군병을 이끌고 가서 추포하라는 것이다.
허도기가 보내온 명령서는 고변(告變) 형태를 띠고 있다.
익명은 아니다. 서신을 보내온 자는 대별산 은수암(隱水庵)에 기거하고 있는 승려라고 자신의 신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보고 들은 바를 소상히 기재해 놓았다.
“미치겠네.”
도득영이 중얼거렸다.
“아걸이 뭐 하는 놈이야?”
“무인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무공이 공부와 버금갈 정도로 강하다고 합니다.”
“뭐? 그 정도야?”
“공부와 두 번 싸워서 두 번 다 패했다고는 하는데, 패했으면서도 살아있다면 강자인 것은 분명하죠.”
부만호가 말했다.
그들은 아걸에 대해서 조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조사했다.
아걸에 대한 자료는 많았다. 아무나 붙잡고 이름만 대도 줄줄 흘러나올 정도로 내력이 무시무시했다. 특히, 성검문과 싸운 두 번의 비무는 백미로 꼽힌다.
“그런데 조사하다 보니 묘한 게 있어요.”
“뭐가?”
“아걸을 뒤지다 보니까 그놈, 역할이 두 개예요. 혈도비자 역할이 있고, 명부판관 역할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명부판관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없네요.”
“후후! 혈도비자면 충분하다는 말이겠지.”
만호는 부만호의 말을 심드렁하게 받아넘겼다.
허도기도 전보영도 명부판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아걸은 혈도비자면 충분하다.
“그럼 이놈을 잡으려고 대별산을 들이치면 피해가 크다는 말이잖아. 아걸의 무공이 공부와 버금간다면 잡지도 못해. 사람만 다치고 꼴만 사나워져.”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잖아요.”
부만호가 허도기의 명령서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은수암 승려는 고변을 만호에게만 한 것이 아니다. 전보영과 의금부에도 보냈다.
세 곳에 동시에 발송한 것이다.
그러면 전보영과 의금부는 사람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추포령을 내렸고, 근거가 확실한 고변이 들어온 이상 군졸을 내보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싸움이 벌어진다.
문제는 허도기가 만호에게도 고변서를 보냈다는 점이다.
의금부와 전보영에만 보내도 충분한데, 왜 만호에게까지 보내서 골치를 아프게 만드나.
“음!”
만호 도득영은 침음했다.
허도기는 의금부와 전보영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만호에게도 전서를 보냈다.
대별산을 둘러싸서 아걸이 빠져나갈 기회를 주지 말라는 뜻이다.
‘이 고변을 무시하면 내가 당한다!’
만호는 허도기의 섬뜩한 눈빛을 떠올렸다.
아걸을 잡으면 특진시켜 준다는 전보영 공문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말에 현혹되면 제명에 못 죽는다.
“만호를 전부 다 움직여.”
“움직이실 겁니까?”
“움직여야지. 방법이 없잖아. 움직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안 움직여.”
만호는 만 명이다. 천호가 열 명이고, 백호가 백 명이다.
만호 도득영이 말했다.
“움직이되 포위만 해, 절대로 충돌은 일으키지 마. 아! 취화원 살수들까지 꺼릴 필요는 없어. 그것들은 눈에 띄는 즉시 죽여. 우리도 할 건 했다고 말해야 하잖아.”
“취화원이 조 장군 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음! 그게 고민이야.”
만호는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공부와 조 장군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런 싸움은 맹수들의 싸움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처절하다. 패배한 쪽은 뿌리도 남지 않고 소멸한다. 패배자를 따른 자들도 마찬가지다.
‘조 장군이 워낙 여우라서…… 하지만 결국 허도기를 어쩌지 못할 거야.’
허도기는 공부다.
당금 황상이 ‘형제의 의(義)’로 대하는 자다.
특히 허도기의 검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 검은 당적 할 사람이 없다.
만호가 말했다.
“취화원 살수들은 모조리 잡아 족쳐. 죽여도 좋고. 아걸만 건드리지 마.”
* * *
“관군들 동향이 이상해요.”
취운이 말했다.
“관군이?”
그러잖아도 아걸 추포령이 내려져서 상당히 민감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터이다.
“만호가 전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목적지는 여기, 대별산 같아요.”
“지금 즉시 한성으로 빠져나가.”
몽설이 즉시 말했다.
“한성이면…… 완전 잠적이죠?”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도기가 무인을 보내온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취화원도 약하지 않다. 적위군이 들이닥쳤을 때처럼 얼마든지 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관군이다.
눈에 보이는 관군은 만 명이지만, 저들 뒤에는 백만 명 혹은 이백만 명이 있다.
만호는 물리칠 수 있다.
불가피하게 싸움이 벌어지면 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 이겨야 한다. 관군을 죽여야 한다면 이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관군과 부딪쳤다면 재빨리 관외로 도주하는 것이 낫다. 문물이 낯설지만 두 발 뻗고 잠들려면 대막이나, 남만, 천축, 북해 등 세외로 가야 한다.
“만호가 움직였다면 벌써 포위망이 시작된 거야. 관군이 눈에 보일 때는 이미 늦어.”
“그러잖아도 급히 준비시켰어요.”
“한성으로 움직여서 완전히 잠적해. 퇴빙이 안 되면 안에 숨기고, 퇴빙이 가능한 사람만 움직여. 이 분류는 아주 냉정하게…… 아니, 언니가 직접 추려 줘요.”
“네. 그럴게요.”
취운이 즉시 대답했다.
살수가 말하는 퇴빙은 평범함을 넘어선다.
일반인 속에 섞여 있어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해지는 것을 퇴빙이라고 한다. 얼음이 녹듯이 스르륵 녹아든다는 뜻으로, 살수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경지다.
흉포한 자가 칼을 들고 설치다가 달려들면 냅다 피한다. 일단 피하려고 준비는 한다. 하지만 전혀 경계하지 않았던 옆집 아줌마가 등 뒤에서 느닷없이 칼로 찌르면 막기 어렵다. 열에 아홉은 거의 칼에 찔려서 절명한다.
퇴빙을 이루면 절공이 필요 없다.
힘들여서 죽을힘을 다해 살검을 쓸 필요가 없다. 경계 대상이 아니지 않나. 같이 앉아서 농담이나 주고받다가 슬쩍 칼을 들이밀면 끝난다.
평범함을 훨씬 넘어서 세상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취화원 살수 중에서 완벽하게 퇴빙을 구사하는 사람은 없다. 몽설조차도 퇴빙을 구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퇴빙에 근접한 사람은 꽤 있다.
팔장로도 평범하다. 구곡주도 평범해질 수 있다. 그 외에도 십여 명 정도? 대략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성 땅을 누비면서 정찰할 수 있다.
“아걸은 괜찮겠죠?”
취운이 말했다.
만호가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 중심이 대별산이다.
대별산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포위한다는 것은 아걸의 위치가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취화원은 아걸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한다.
아걸이 숨은 곳을 말해 주지 않았다.
대별산 깊이 들어간 것은 알겠는데, 어디로 숨었는지는 취화원도 모른다.
“오빠한테는 내가 갈게요.”
“아! 그럴래요?”
“내가 올 때까지, 절대 잠적! 알았죠?”
취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성으로 들어가서 절대 잠적을 취한다면 여타 모든 활동도 중지된다.
살수들만 숨는 게 아니다. 간자들도 숨는다. 모든 첩보 수집 활동이 중지된다.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계속 진행되겠지만, 어떤 첩보가 수집되어도 연락하지 않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활동이 완전히 동결된다.
“조심해요. 항상.”
취운이 몽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몽설은 활짝 웃었다.
아걸은 금릉으로 움직였다.
원래는 아걸을 혼자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만호가 대별산을 포위했으니 사정이 달라졌다.
‘혼자 보내지 않아도 돼!’
요즘 들어서 아걸이 계속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있다.
자기 싸움을 해야 하는데,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권력 다툼에 휘말린 듯한 인상이 든다.
취화원이 완전히 잠적한다면 문주도 딱히 할 일이 없다.
몽설은 아걸을 쫓아갔다.
‘불안해서 혼자 보내지 못하겠어.’
* * *
만호 도득영은 취화원을 들이쳤다.
투서에 취화원의 위치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어서 공격 지점을 잡는 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스스스스! 스스스!
관군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살수들은 어디에 숨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무 속, 땅속은 기본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대처하기도 편해진다.
“아무도 없는데?”
관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별산에서도 적평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는 험준한 곳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취화원이 적평골에 자리를 잡기 전부터 일반인들의 출입은 거의 없었고, 맹수가 많아서 심마니나 엽사도 출입을 자제하는 악지(惡地) 중의 악지다.
적평골에는 사람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나무로 지은 집도 곳곳에 보였다. 떠나면서 모두 흩어 놓아서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집터라고 생각될 만한 곳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이건 검 자국인데?”
관군이 생나무에서 검흔을 찾아냈다.
“찍힌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직도 껍질이 아물지 않았잖아. 떠난 지 얼마 안 돼.”
“우리가 오는 걸 알았다는 거네?”
“알았겠지. 걔들도 눈이 있잖아.”
관군들은 수군거리면서 적평골을 수색했다.
“이미 떠난 거 같습니다.”
부만호가 보고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움직였는데, 모를 리 없지. 알고 피한 거야. 짐작했던 일이고.”
“도주할 것을 아셨다고요?”
“우리 동정을 염탐하고 있었을 텐데, 모를 리 없지. 떠난 것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디로 갔는지나 찾아내.”
“저 그게……”
부만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관군은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사람이 살다가 떠난 것은 확실히 알겠는데,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리 뒤져도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만호 도득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취화원이잖아. 공부를 적으로 돌린 자들이라면 이런 움직임쯤은 당연한 거지.”
“포위를 풀까요?”
“아니, 유지해.”
만호가 말했다.
이 싸움의 주체는 금의위와 전보영이다. 두 군데 중 한 곳에서 관군을 보내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만호가 대별산을 에워싸고 있어야 한다.
대별산에는 아무도 없다.
취화원이 떠났으니 아걸도 떠났다고 보는 편이 맞다. 넓고 큰 대별산을 샅샅이 뒤져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빈 땅을 포위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그래도 포위를 풀면 안 된다. 허도기의 명을 쫓아서 계속 포위망을 유지한 채 수색을 진행해야 한다.
허도기는 만호가 이럴 경우, 전보영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도득영이 말했다.
“천호 하나를 떼어 내서 대별산을 수색해. 아걸을 찾으라고 해.”
“정말 찾을 수도 있는데……”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정말 찾게 되면 즉시 물러서라고 해. 아걸과 부딪치면 몰살당해. 괜히 달려들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 이건 단단히 일러둬.”
“네.”
“찾는 시늉만 하자. 시늉만.”
“특진은 생각 안 하세요?”
“특진 노리다가 죽은 귀신 여럿 봤다.”
도득영은 고개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