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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41화 (241/600)

#241화. 第四十九章 착마봉와(戳馬蜂窩 : 벌집을 건드린다) (1)

금릉의 옛 이름은 건업(建業)이며 건강(建康)으로 개칭되었다가 금릉이 되었다.

금릉은 송(宋), 제(齊), 양(梁), 진(陳) 그리고 오(吳)와 동진(東陳眞)까지 육조(六朝)의 수도다.

거주 민족 대부분이 한족(漢族)이며, 중원에서는 가장 발달한 도읍으로 경제의 중심지다. 문화와 불교가 융성해서 귀족 중심의 육조 문화가 발달했다.

아걸은 금릉 땅을 밟자마자 숙소도 정하지 않고 제일 먼저 진공부부터 찾았다.

아직은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어차피 곧 누군지 알게 되겠지만, 최대한 정체를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길 생각이다. 그래야 더 자극적이다.

그래서 일부러 진공부 가까이는 다가가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위치만 살폈다.

“저기가 진공부네.”

지당검 고사가 왕궁과 다름없는 큰 저택을 가리켰다.

“어마어마하군.”

“무인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이 정도를 이루고도 성이 차지 않아서 더 높은 곳을 쳐다본다는 거잖아?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은 들었지만.”

손승이 혀를 내둘렀다.

“저게 저렇게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용담호혈(龍潭虎穴)이지. 곳곳에 기관 매복이 설치되어 있어서 함부로 침입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해.”

“당연히 그렇겠지.”

모두 차분히 진공부를 쳐다봤다.

“정말로 할 건가?”

손승이 물었다.

“해야죠.”

아걸은 매우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옆집에 잠시 다녀온다는 말투다.

“허도기를 상대할 수 있나?”

“글쎄요.”

“그를 만나면 어떻게 할 건데?”

“싸워야죠.”

아걸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묻는 말에 쉽게 쉽게 대답했다.

“상대가 안 되잖아?”

“그래도 싸워야지 별수 없잖아요.”

“어휴!”

손승은 기가 막힌지 탄식을 토해 냈다.

이미 두 번 싸워서 두 번 다 졌다. 또 싸워도 질 게 뻔한데 그래도 싸우겠단다.

조 장군이 조금 더 무공을 갈고닦으라고 특별히 비급과 영역까지 데려 주었는데 모든 걸 사양하고 지금 당장 싸우겠단다.

지금 급히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복수라는 것은 십 년에 걸쳐서 해도 늦지 않다. 괜히 나서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서지 않는 쪽이 낫다.

모두 그런 점을 말했는데, 아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쉬죠?”

“오늘 하루?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는 푹 쉬는 건가? 아니면 밤이 될 때까지만 쉬자는 거야?”

“일단 쉬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죠?”

“내 이럴 줄 알았어. 보아하니 오늘 저녁에 당장 움직이겠네. 좀 천천히 해도 되잖아?”

“천천히 하는 거예요. 그러니 쉬자는 거죠.”

아걸이 빙긋 웃었다.

* * *

“애정취시직진(愛情就是直進)~.”

꼬마 사내가 작대기를 두들겨 대며 노래를 불렀다.

‘사랑은 직진?’

몽설은 꼬마를 쳐다봤다.

어린애가 부르기에는 어색한 노래다.

가사가 생소해서 이런 노래가 있었나 싶은데, 음률이 딱 맞아떨어진다.

‘직진!’

몽설은 퍼뜩 진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방향 지시다. 곧장 앞으로 가라고 길을 일러준다. 그러잖아도 금릉이 너무 넓고 복잡해서 어떻게 아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몽설은 취화원 정보망을 사용하지 못했다.

완전 잠적 명령은 금릉 간자들에게도 통용된다. 그들은 금릉에 원주가 온 것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다가서지 않는다. 정보 일체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저 꼬마는 어디 소속일까?

‘적랑대야. 할아버지!’

몽설은 아삼을 떠올렸다.

아삼은 성검문 비무가 열리는 날부터 계속 아걸 뒤를 쫓고 있다.

아걸이 단곡에 있을 때는 아삼도 단곡에 있었다. 아걸이 대별산으로 움직일 때도 같이 뒤따랐다. 이번에도 금릉에 한발 먼저 와서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적랑대 소식망은 아니다. 할배는 적랑대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전임 문주라고는 하지만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 꼬마가 전한 소식은 아삼 할배가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돈을 주면서 시킨 것이다.

‘곧장 가라고? 그럼 이 길로 가면 되겠네.’

몽설은 어딘지 모를 길을 무작정 걸었다.

한 사람이 왼쪽 어깨를 툭툭 치고 있다.

무심히 지나쳤다. 어깨가 아파서 팔로 주무르고 있는 줄 알았다.

조금 지나자 다른 사람이 왼쪽 다리를 탁! 탁!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왼쪽 어깨? 왼쪽 다리?’

이번에도 다리가 아파서 두들기고 있는 것일 거다. 하지만 이게 만약 어떤 소식이라면?

서너 걸음쯤 걸었을 때, 왼쪽에 작은 길이 나타났다. 매우 좁아서 어린애 한 명이 들어가기도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 길로 서민들이 오가고 있다.

‘맞아. 여기로 가라는 거야!’

몽설은 왼쪽에 있는 지극히 좁은 길로 들어섰다.

몽설이 좁은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벽에 나 있던 나무문이 덜컹 열렸다.

몽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열린 문을 쳐다봤다.

안에 사람이 있다.

문을 연 사람은 뚱뚱한 아낙이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 한 사람이 앉아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

몽설은 활짝 웃으면서 아삼을 불렀다.

역시 아삼은 아걸을 쫓아다녔다.

“그놈, 토산(土山)에 있어. 여기 사람들은 흙산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애들 놀기 딱 좋은 곳이야.”

아삼이 차를 내주며 말했다.

“공격은 아직 하지 않았고요?”

“쯧! 요즘 들어서 내가 괜히 그놈을 떠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 억지로 취화원에 청부만 넣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오빠가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거 알아요?”

“알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지. 아, 그때 동박 그놈 하나 처리하지 못해서 쩔쩔맸잖아. 난 죽다 살아났고, 그놈도 천우신조로 이겼고.”

“지금은 풍도곡을 없앴어요.”

“그랬지.”

아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걸이 서리가헌과 서리형개를 놓아준 것이 못내 못마땅한 듯했다.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잘하신 거예요. 그렇게 등 떠밀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그런가?”

“네.”

“그런데 넌 왜 쫓아가누?”

“네?”

“아걸이 지금 신나게 싸우려고 하는데, 왜 쫓아가냐고? 싸우는 걸 그냥 지켜보려고? 아니면 훈수?”

“그냥 도움이 될까 해서요.”

“에이. 그런 거라면 나도 마찬가지지. 비록 늙고 볼품없지만 그래도 칼 한 자루는 쓸만하잖아. 큰 힘이야 안 되겠지만 자잘한 심부름은 할 수 있지.”

아삼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걸 곁에 있을 수 있는데도 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아걸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때로는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아!”

몽설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삼이 호로병을 들어서 술을 마시며 말했다.

“어떻누? 며칠, 이 늙은이와 지내는 게. 여기가 좁고 냄새도 나지만. 아걸을 매일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마음껏 놀아보라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 * *

진공부 담장은 높이가 십 척에 이른다. 키 큰 장정이 밑에서 받쳐 줘도 쉽게 올라설 수 없다. 더욱이 담장 위에는 가시 철망이 촘촘히 박혀 있다.

담장이 아니라 성벽이다.

쉬이이잇!

쌍겸은 높은 담장을 넘었다.

진공부 담장이 넘기 힘든 것은 맞다. 하지만 누구도 넘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스읏!

쌍겸은 담장을 넘자마자 으슥한 곳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담장을 너무 믿고 있나? 경계를 서는 무인이 거의 없다. 간혹 한두 명이 지나가기는 하는데, 그들마저도 주위를 경계하는 마음은 엿보이지 않는다.

아걸은 아무나 죽여도 좋다고 했다. 반드시 고수가 아니라도 좋으니 가장 편한 먹잇감을 골라서 즉각 해치운 후, 재빨리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귀신처럼 죽이고 빠져나간다.

- 누구든 건드리면 흔들리죠. 찝쩍거려서 귀찮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계속 건드려 보는 거예요. 어디까지 견디나.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입질할 겁니다.

찝쩍거리는 행동이 살인이다.

진공부가 아니라 더한 곳이라고 해도 암살이 일어나면 당장 뒤집어진다.

진공부는 어떻게 난리를 피울까. 어디 두고 보자.

아걸 말대로 고수를 찾을 필요가 없다. 지금은 단지 건드리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건드릴까?

호랑이를 건드는 방법은 많다. 위험천만하게 가까이 달라붙어서 굳이 코털을 뽑을 필요가 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돌멩이만 던져도 충분하다.

‘미안하지만 네가 가야겠다.’

쌍겸은 이제 막 전각 모퉁이를 돌아서는 무인을 주시했다.

무인은 경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다. 볼일이 있어서 늦은 밤에 움직이고 있다. 태연히 횃불을 들고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저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중이다.

스스스슷!

쌍겸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무인이 그의 움직임을 알아챌 리 없다.

쌍겸은 원래 좋은 의미로 은거를 한 사람이 아니다. 손승이나 황열, 장태전 등등과는 달리 무림을 피해서 숨은 마인이다. 손속이 잔인하고 매섭다.

쒜에엑!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낫 두 자루가 터졌다.

퍼억!

낫 한 자루가 무인의 명치를 가격했다. 또 한 자루는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끔 목을 꿰뚫었다.

두 자루 중 한 자루만 제대로 꽂혀도 즉사한다. 하물며 두 자루가 모두 제 자리에 틀어박혔다. 진공부를 지키는 무인치고는 상당히 하급 무인이다.

쌍겸은 손목에 전해지는 감촉으로 무인의 즉사를 직감했다.

스읏!

낫 두 자루를 뽑았다.

푸아아악!

피가 터져 나왔다.

쌍겸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미 신형을 띄웠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쌍겸은 담을 넘기 전에 죽은 자를 다시금 쳐다봤다.

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온다. 돌바닥에 검붉은 핏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주위는 조용하다.

한 사람이 죽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쌍겸은 낫을 쓴 이후에는 상대방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타격이다. 그러니 살 수가 없다. 확신한다.

그가 어둠 속에서 지체한 것은 무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순간, 북쪽에서는 쾌검을 잘 쓰는 나통이 움직이고 있다.

오늘 진공부에서 죽을 사람은 두 명이다. 나통도 자신처럼 병기를 소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이 공격할 것이다.

나통은 어떤 죽음을 선물할까?

- 한 사람은 은밀히, 한 사람은 처절하게.

아걸은 각기 다른 죽음을 원했다.

같은 방식으로 죽이지 않는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인다. 그러니 나통은 될 수 있는 한 처절한 비명을 유도하면서 죽여야 한다. 정말 그럴까?

아아아아악!

북쪽에서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한 비명이 터졌다.

‘훗!’

쌍겸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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