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第四十九章 착마봉와(戳馬蜂窩 : 벌집을 건드린다) (3)
아걸과 은거 무인들은 이틀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걸이 말했다.
“오늘은 움직일까요?”
“좋지.”
사방에 흩어져 있던 은거 무인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걸이 말했다.
“아직 에서는 전혀 움직임이 없긴 한데, 분명히 대기하고 있는 자가 있을 거예요. 오늘은 정말 위험해요. 단단히 각오하고 가셔야 하는데.”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몇 명이나 칠 건데?”
“다섯 명?”
“다섯? 이번에도 시차를 둘 거야?”
“아뇨. 그건 너무 위험해요.”
아걸이 고개를 내둘렀다.
오늘 상황은 저번 상황과는 상당히 다르다. 오늘은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무대응으로 경계를 선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다.
“네 명이 동시에 칩니다. 저는 안으로 파고들어서 중심을 타격할 거예요.”
“오늘은 직접 가려고?”
“가야죠.”
아걸이 씩 웃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웃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네 군데서 공격을 감행하면 는 완전히 문을 틀어 잠근다. 경계를 최고 수위로 올린다.
아걸이 안으로 파고든다면 포위망에 갇히는 셈이 된다.
더욱이 오늘은 진공부에서도 고수가 기다리고 있다. 비명이 터지면 즉각 움직인다. 그런 마당에 아걸까지 살수를 감행하면 당연히 모든 이목이 쏠린다.
그런 식으로 집중된 칼을 아걸이 막아 낼 수 있을까?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이 허도기라면 오늘이 바로 아걸 제삿날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굳이 진공부 중심처를 공격해야 한다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걸뿐이다.
아걸만이 집중된 검들을 막아 낼 수 있다.
“큭큭! 꼭 들어가야 하나?”
쌍겸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겉만 쳤으니까, 안쪽도 한 번은 쳐 줘야죠. 그래야…….”
“불확실성을 만들어 준다 이거지? 우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해도 공격할 수 있다. 흠! 그러다가 죽어.”
“자, 가죠. 네 분만 같이 가주세요.”
아걸이 일어섰다.
아걸은 충분히 주위를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경계가 촘촘하다. 신법이 뛰어나도 상당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쉬이잇!
아걸은 가볍게 담장을 넘어섰다.
빠르게, 하지만 조심해서 움직이지는 않았다.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세차게 일어났다.
스읏!
담장을 넘어 안쪽 마당에 착지했다.
달려드는 사람이 전혀 없다. 얼핏 봐서는 경계병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군데군데 화톳불이 밝혀져 있지만,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무척 기분 나쁜 고요함이 어둠과 함께 흐른다.
경계병은 물론 있다.
그들은 아걸이 담장을 넘어서 날아드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서 지켜보기만 한다. 일절 대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스읏! 툭!
아걸은 옆으로 걷다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았다.
마른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다. 나무 부서지는 소리가 적막을 일깨웠다.
그래도 저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아아악!
다른 쪽에서 비명이 크게 울려왔다.
동남쪽, 지당검 고사가 제일 먼저 검을 썼다.
하지만 아걸을 지켜보는 자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걸 앞에 나서지도 않지만, 눈길을 돌리지도 않는다. 감시만은 제대로 하겠다는 듯이 뚫어지게 쏘아본다. 순간,
스읏! 스스스스슷!
아걸은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다. 옆으로 두어 걸음 움직인다 싶더니 이내 모습을 감춰 버렸다.
어둠 속에 묻혔다.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숨소리조차 흘리지 않는다.
경계병은 눈을 부릅뜨고 아걸이 사라진 곳을 쏘아봤다.
스으으으읏!
아걸은 모든 소리를 죽이고 은밀히 이동했다.
아걸 주위에는 은신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적랑대, 취화원…… 하지만 아걸이 감탄한 자들은 따로 있다. 토족 전사들의 위장술은 가히 일절이다.
좋은 것은 배워야 한다.
아걸은 토족이 사용하던 위장포를 몽설에게 넘겨주었다.
사용법에서 약간 차이가 나겠지만, 취화원 절기 속에 녹아들 게 분명하다.
아걸도 위장포 몇 개를 지녔다.
어둠 속에서, 숲에서, 논밭에서…… 은신술을 펼치는 공간은 한정되어있다.
이번에는 검은색 위장포를 사용했다.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순식간에 어둠과 동화된다. 어둠 속에서 편안하게 움직이지만, 상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코앞을 스쳐 지나가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걸은 가장 은밀하게, 가장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비명이 또 울렸다.
모두 네 곳에서 비명이 터져야 한다. 이제 두 곳에서 울렸다.
비명 외에 병장기 소리나, 싸우는 듯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암살만 성공했다.
‘바깥 경계는 아직도 허술해.’
스으으읏!
아걸은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은밀히 이동하지만, 살수를 펼칠 때는 가장 잔혹한 손속을 떨칠 생각이다.
진공부의 시선을 한꺼번에 확 끌어모은다.
그러다가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허도기만 만나지 않는다면 어디든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쌍겸 우려대로 허도기를 만난다고 해도 무방하다. 최선을 다해서 싸우면 된다. 승패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도 염려하지 않는다. 일홀도는 누구든 넘어서야 한다.
쉬이이잇!
중문을 두 개쯤 지나쳤다.
얼핏 봐도 외원(外苑)은 빠져나왔다. 얕은 담장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원(內苑)이다.
‘흐음!’
아걸은 눈살을 미미하게 찡그렸다.
숨어 있는 자들이 느껴진다. 기와 밑에, 마루 밑에, 나무 뒤에…… 몸을 숨길 수 있다 생각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저들은 아직 자신을 파악하지 못했다.
밖에서 들린 비명에 귀를 쫑긋거릴 뿐, 지척에 적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스읏!
아걸을 위장포를 걷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걸은 진공부를 처음 들어섰다. 당연히 지리를 모른다. 전각 사이를 걷고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사전에 답사조차 하지 않아서 완전히 까막눈이다.
저벅! 저벅!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시선은 충분히 끌었다. 숨어서 지켜보는 자들이 거의 백여 명이다.
저들 중 한 명을 공격한 후 빠져나가면 된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이 살수를 떨쳐 낼 시간이다.
한데, 침입 사실을 알고도 진공부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눈이 지켜보는데, 마치 텅 빈 집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절대로 공격하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
그러면 아걸이 살수를 떨쳐 내도 움직이지 않을까? 가만히 당하고 있을까? 그때!
팟!
시커먼 어둠 속에서 불똥이 튀었다.
진짜 불똥은 아니다. 사람이 일으키는 불똥, 진기의 부딪침, 검기를 토해 내는 현상이다.
아걸은 무심히 전각을 쳐다봤다.
불똥은 다시 튀기지 않았다. 단 한 번 토해진 예기라서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눈앞에 있는 전각 두 개 중 왼쪽에서 예기가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주위에서 지켜보는 눈들은 자신의 발걸음이 예정된 장소로 걷고 있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으로 움직이면 당장 반응한다.
‘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네.’
아걸은 살검을 단숨에 느꼈다.
상대방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수많은 기척이 왼쪽 전각을 향해 집중되었다. 예상대로 진공부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내원에 배치된 관군은 외원 경계병보다 훨씬 강하다. 진공부에서 특별히 선발한 자들 같다. 아니면 허도기에게 특별히 사사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아걸은 즉각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저들은 이미 누가 진공부를 건드리고 있는지 안다.
진공부 경계병들이 일절 나서지 않고 있다. 무리 지어 달려들어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차라리 보내 줄 망정 나서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렇다. 아걸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 사라져도 저들은 달려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 멀리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은거 무인도 쫓지 않는다. 이미 두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죽었는데,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죽일 테면 얼마든지 죽여도 괜찮다는 식이다.
둘째, 허도기가 없다.
허도기가 기다린다면 싸움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리 없다.
허도기가 벌써 나왔을 것이다. 은거 무인 중 몇 명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을 노리고 나타났거나. 그렇다고 해도 벌써 나왔어야 한다.
셋째, 그렇다고 곱게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
전각에서 기다리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일홀도와 맞서 싸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비명을 듣고 달려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나서지 않았다. 아걸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도 지켜보고 있는 경계병들을 통해서 자신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쩌엉!
전각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걸이 머뭇거리는 듯하자 다시 예기를 토해 낸다.
와라!
“음!”
아걸은 미간을 찡그렸다.
확실히 오늘 일은 예상에서 벗어났다.
원래는 중심처에서 한 명만 척살하고 물러설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초고수와 싸워야 한다.
분명한 것은 허도기가 이 자를 믿고 자리를 비웠다는 거다. 그때,
스읏!
전각 한쪽에서 어둠을 밀치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너군.”
아걸이 경계심을 풀었다.
나타난 자는 하원랑이다. 초고수가 하원랑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싸울 수 있다.
“역시 너였네. 누가 감히 진공부를 찝쩍거리나 했더니. 너라면 이유가 있지.”
하원랑이 다가오며 말했다.
순간, 아걸은 전각에서 다시 한번 진한 예기를 느꼈다. 마치 빨리 오지 않고 뭐하냐고 재촉하는 듯하다.
‘이자가 아니다!’
쩌엉! 쩌엉! 쩌엉!
검기가 마구 일어난다. 검기에 살기까지 섞여서 섬뜩한 공포심을 안긴다.
“네가 아니군.”
“나? 난 승산 있는 싸움만 하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자는 미련한 거야.”
“그런가?”
“뭐라고 할까? 다 이긴 싸움만 한다고 할까? 야비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난 승자의 검을 좋아해. 이길지 질지 모르는 싸움은 딱 질색이지. 후후!”
“그럼 내 앞을 막은 이유는 뭐냐?”
“네가 토족을 멸살했다기에 한 번 얼굴이나 보려고. 후후! 멸살시킬 만하군. 가 봐.”
하원랑이 옆으로 길을 비켰다.
하원랑 같은 고수는 몸에서 풍기는 기도만 읽고도 무공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무공을 사용해서 토족을 멸살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토족을 멸살시킬 수 있는 자인지, 아닌지 정도만 구분한다.
하원랑은 아걸의 기운을 바로 곁에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전각 안에 있는 자는 누구지?”
“들어가 보면 알걸 뭐하러 묻나. 방금 그 말은 아걸답지 않은 말이었어.”
아걸은 하원랑을 쳐다봤다.
하원랑은 진공부 경계병들을 움직일 생각이 없다. 경계병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인 것처럼 행동한다.
은거 무인들은 무사하다.
아아아아악!
북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세 번째 비명이다.
원래는 네 번째 비명까지 터진 후에 아걸이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두 의미 없게 되었다. 이미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누구냐?’
아걸은 하원랑을 스치면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