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第四十九章 착마봉와(戳馬蜂窩 : 벌집을 건드린다) (4)
삐걱!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로 싸움은 넓은 곳, 사방이 확 트인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굳이 이렇게 전각 안으로 유인하는 것은 함정이 설치되어 있거나, 좁은 공간에 특화된 무공을 수련한 경우다.
전각은 텅 비었다.
집기가 전혀 없다. 돌기둥과 건축 뼈대만 존재한다.
전각 가장 안쪽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불을 밝히지 않아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전신에서 풍기는 예기가 예사롭지 않다.
파팟!
검기가 불똥을 튀기며 일어났다.
이 자가 아걸을 유인했다. 전각 밖에 있는 아걸을 건드려서 안으로 걸어 들어오게끔 했다. 또 이 자는 하원랑이 스스로 길을 비켜 줄 만큼 강자다.
“누구지?”
아걸이 반철도를 꾹 눌러 잡으며 물었다.
“후후후!”
사내가 힘없이 웃었다.
살기가 가득 담긴 예기, 검기를 줄줄이 뿜어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웃음이다.
“누군지 알 필요가 있나. 검을 섞으면 그만이지.”
철컹!
사내가 검을 잡고 일어섰다.
사내는 검을 검집에 꽂아 놓지 않았다. 검집에서 빼놓은 상태로 전각 바닥에 놓아두고 있었다.
“고조시?”
아걸은 사내가 취한 기수식을 보고 상대방이 누군지 짐작해 냈다.
고조시의 기수식은 매우 특이하다. 검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후려칠 듯한 자세를 취한다.
소축십검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기수식으로 알려져 있다.
“당신이 황궁에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내가 뭘 하고 있는데?”
“글쎄?”
아걸은 바로 말하지 못했다.
고조시는 진공부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잘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탁자 하나 없는 빈 대청에서 홀로 어둠에 잠겨 있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성검문에서 소축십검이 손을 뗐다고 하던데? 매월 번갈아 맡던 월직도 없어지고. 성검문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내 비무가 있고 난 뒤부터 아예 문을 닫아걸었다는 말도 들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아직도 봉공들이 있고 문하가 있지만, 허도기가 빠지고 소축십검마저 물러난 성검문은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지. 그저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고 할까? 이런 사정을 모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성검문에 대한 애착은 없나?”
“후후후!”
고조시가 웃었다.
순간. 아걸은 고조시의 두 눈에서 번뜩이는 녹색 안광을 봤다.
“무감진록(無感眞綠)!”
아걸은 자신도 모르게 무감진록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걸은 뛰어난 안공을 가지고 있다. 몰안은 전신 감각을 두 눈에 집중시켜 준다.
하지만 처음부터 몰안을 얻은 것은 아니다. 몰안이라는 공부를 특별히 수련한 적도 없다. 몰안은 도신일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다.
어떻게 보면 부산물을 얻은 셈이다.
하지만 몰안은 그 자체로 절공이다. 후인에게 물려줄 때는 비급으로 남겨도 될 정도로 뛰어나다.
몰안을 얻는 과정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안공을 섭렵했다.
그중 하나가 무감진록안공이다.
무감진록안공은 몰안처럼 전신 감각을 일시에 잠재운다. 모든 감각을 떨쳐 내는 것이 선결 작업이다.
그 후, 몰안은 안공만 일으킨다. 오직 보는 데 집중한다.
무감진록안공은 어떤 감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감각을 죽인 상태에서 눈만 살아 있게 만든다.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본 것을 판단하지는 못하게 만든다.
무감진록을 일으킨 자는 보이는 것에는 상관없이 무감진록을 일으키기 전에 일으켰던 의식을 쫓아서 행동한다. 무인의 경우에는 공격이다.
상대가 어느 정도나 강한지 판단하지 않는다. 허점을 봤으니 공격한다. 자신의 안위는 일절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죽이는 데만 집중한다.
무감잔록은 마공 중 마공이다.
지금 고조시 눈빛이 녹광이다. 흰자위가 사라지고, 섬뜩한 녹색 광채가 일렁거린다.
고조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 칼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공포나 두려움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상대방의 허점만 보고 있다. 허점 뒤에 따라붙을 반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숨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지금 본 허점을 쫓는다.
무감진록은 굉장히 난폭한 무공이다. 인정은 사라지고 오직 죽고 죽이는 검만 남는다.
“큭큭!”
고조시가 웃었다.
순간, 고조시의 눈이 진한 녹색에서 옅은 녹색으로 변화했다.
‘공격!’
아걸이 위험을 감지했을 때, 고조시가 쏜살같이 달려들며 십칠연검을 펼쳤다.
쒜에에엑! 쒝쒝쒝!
순간 아걸의 몸 주위로 환상처럼 꽃 그림자가 그려졌다.
모든 검이 실초다. 굉장히 빠르고 날렵한 검이 피할 곳을 주지 않고 덮쳐 온다.
아걸은 반철도를 휘둘렸다.
현란하게 그려지는 십칠연검을 가장 간단한 칼, 그저 후려치는 간단한 일식으로 막아 냈다.
까앙! 깡!
반철도와 검이 부딪히면서 불통을 튀겼다.
무감진록을 일으켜서 십칠연검을 펼치면 잠력(潛力)을 끌어올린 것보다 훨씬 강하고 빨라진다. 젖 먹던 힘을 다해서 펼친 것보다도 강한 검이 된다.
무감진록은 전신의 모든 진기를 검에 집중시켜 준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전신 진기를 검에 모으면 잠기일력타가 된다. 한 줌 남은 의식, 살고자 하는 생명 욕구마저도 모두 검에 집중시키면 무감진록이 된다.
고조시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수련해도 이처럼 빠른 검은 펼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걸은 십칠연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 냈다.
검의 흐름이 명확하게 보였다. 그러니 반철도로 정확히 검을 가격할 수 있다.
까아앙! 깡깡! 까아앙!
칼과 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부딪쳤다.
고조시는 반철도가 검을 막자, 검을 위로 쳐들어서 냅다 십여 차례나 내리찍었다.
땅땅땅! 땅땅!
아걸은 반철도를 들어 올려서 내리치는 검을 막았다. 그러자 검신이 반철도를 빙글 휘감더니 쑤웃! 위로 쳐들어 올렸다.
칼을 위로 튕겨 내려는 초식이다.
아걸이 즉시 반철도를 빼내서 검과 엮인 것을 풀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머리를 노리고 내리쳐 온다. 아걸은 내리치는 검을 무시했다. 오히려 몸을 더 낮게 숙이며 두 다리를 후려쳤다.
고조시는 왼발을 들어 올려서 후려치는 칼을 피했다. 동시에 검을 쭉 찔러 넣어서 복부를 찔러 왔다.
아걸은 허리를 옆으로 비틀어서 검초를 피해 냈다.
검이 변한다. 흘러가던 검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가슴을 찌른다.
아걸은 반철도를 들어서 검을 막았다.
까앙!
검이 다시 휘리릭 방향을 틀더니 위로 솟구쳤다. 목을 친다.
아걸은 이번에도 반철도를 들어서 검초의 길목을 막았다. 그러자 검이 휘리릭 방향을 바꾸어서 옆머리를 후려쳤다.
아걸은 후려쳐오는 검을 무시하고 고조시의 앞가슴을 발로 찼다. 그러자 상반신이 뒤로 눕혀지면서 고조시의 검이 코끝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고조시가 왼손으로 아걸의 발을 막아 냈다. 동시에 검을 휘둘러서 허벅지를 갈랐다.
아걸은 퇴법(腿法)을 거두고 뒤로 쭉 물러섰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뤘다. 상대방의 공격을 보고, 판단하고, 대응하면 늦는다. 느끼고 반사적으로 움직여야 실낱같은 차이로 피할 수 있다.
“크크크!”
고조시가 웃었다.
정상적인 웃음이 아니다. 무감진록을 펼치면 무신경, 무감각이 유지된다. 한데 이런 무감각 유지가 격렬한 흥분으로 이어진다. 마약에 중독된 것만큼 상쾌함을 느낀다.
“후우우!”
아걸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조시의 검이 환히 보인다. 몸의 움직임이 읽힌다. 검을 쓰기도 전에 어디를 공격해 올지 느낌이 일어난다. 만약 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움직임에 대해서 조언도 해 줬을 것이다.
검이 빠름에 치우치다 보니 허점이 드러난다.
검을 극한으로 쳐 내다 보니 검초를 전개한 후에 겨드랑이가 환히 보인다.
세기가 약하다. 손에 힘을 더 줘라. 보법이 따라붙지 못한다.
이제 검을 막 든 입문자에게나 해줄 말이 입가에 뱅뱅 돈다.
고조시 같은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존심 상할 일이다. 하지만 당장 고쳐야 할 부분으로 그런 점들이 보인다.
소축십검은 허도기와 퐁도곡 도객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검수다. 기본이 잘못될 리 없다. 눈감고도 검초를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점들이 눈에 띌까?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이 칼이 마지막이야.”
고조시도 결전을 생각했다.
지금처럼 싸우면 백 초, 이백 초도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부상을 고려하지 않고 살검을 전개하면 그 순간 부로 싸움이 끝난다.
고조시는 아걸이 먼저 말하지 않았어도 살검을 쓸 생각이었다.
“크크크! 크크!”
고조시가 웃었다. 그리고 즉시 진기를 끌어모았다.
고조시는 조명십해 중 축검 삼륜축첩공을 일으켰다. 손에 들고 있는 검이 검기에 흔들려 파르르륵 떨렸다. 입고 있는 옷도 푸듯 푸듯 휘날렸다.
아걸은 독안혈검 전가성을 떠올렸다.
그는 마지막 결전에서 삼륜축첩공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걸에게 일검을 꽂아 넣었다.
고조시의 모습에서 전가성의 그림자가 맴돈다.
‘잠기일력타를 연속으로 세 번. 더욱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으니 동귀어진 수법.’
타타탓! 쒜에엑!
고조시가 신형을 퉁겨 냈다.
고조시와 아걸의 거리는 십 척에 불과했다.
멀다면 먼 거리지만 서로 호흡을 느낄 수 있으니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십 척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슈우우웃!
검이 가슴에 닿았다.
이 순간, 아걸은 왼쪽 어깨를 밑으로 툭! 떨궜다. 왼쪽 어깨를 떨구면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반철도가 위로 퉁겨진다.
타앙!
아주 간단한 움직임에 삼륜축첩공 중 하나가 막혔다.
아걸은 자신의 움직임에 초식명을 붙이지 않았다. 초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움직임이다.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다.
가장 단순한 기본이 가장 빠른 도초가 된다.
타앙! 탕! 슈웃!
아걸은 삼륜축첩공을 경험한 적이 있다. 공격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반철도로 검을 밀어냈다. 동시에 검신을 쭉 따라가서 고조시의 가슴을 쳤다.
퍼억!
반철도가 살을 찢고 틀어박혔다.
“훅!”
고조시가 격한 신음을 쏟아 냈다.
순간, 아걸은 재빨리 신형을 퉁겨 냈다. 뒤로 두어 걸음…… 아니, 물러선다 싶은 순간 전력을 다해서 전각을 벗어났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훅!”
고조시가 뒤늦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검으로 대청 바닥을 꾹 찌른 채 굳건히 버텼다. 하지만 쩍 갈라진 가슴에서는 붉은 핏물이 걷잡을 수 없이 꾸역꾸역 솟구쳐 나왔다.
고조시가 고개를 툭 떨궜다.
숨이 끊어졌다.
아걸은 어둠 속에서 고조시의 죽음을 지켜봤다.
경계병들의 동태도 살폈다. 확실히 내원에 배치된 경계병들은 무공이 높다. 그들은 재빨리 움직여서 내원을 포위했을 뿐만 아니라 싸울 준비까지 마쳤다.
아걸이 보이면 이제는 공격할 것이다.
제일전은 고조시에게 양보했지만, 그가 무너졌으니 경계병들이 나선다.
아걸은 하원랑을 주시했다.
경계병들이 달려드는 것은 염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원랑이 달려들면 일시 발목이 잡힌다.
진공부에 대한 공격은 허도기를 노린 것이다.
진공부에 적을 둔 모든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뽑아 든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애꿎은 죽음은 만들 필요가 없다. 허도기를 유인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죽음만 얻어 낸다.
하원랑은 전각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고조시의 목동맥에 손가락을 댔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걸과 싸울 생각이 없다.
쉬이잇! 탁!
아걸은 지붕 위로 신형을 솟구쳤다. 그리고 위장포를 뒤집어쓴 채 어둠 속으로 치달렸다.
마음이 무겁다.
고조시는 왜 마공에 손을 댔을까? 무감진록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무모한 공격을 펼치지는 않았을 텐데. 소위 명문정파 성검문의 수제자가 왜 사도를 택했을까.
사도는 일시적으로 검공이 높아지긴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또 사공을 수련해도 허도기 정도의 절정검은 얻지 못한다. 절정에 비슷한 검은 얻겠지만, 결국은 사이비일 뿐이다. 절대검에 이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겨우 일 푼의 무공을 높이자고 사도를 택했나.
쉬이이잇!
아걸은 진공부에서 멀어졌다.
쫓아오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