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第四十九章 착마봉와(戳馬蜂窩 : 벌집을 건드린다) (5)
“아걸이 왔었습니다.”
하원랑이 보고했다.
“네 말투에 패색이 짙군. 고조시가 당했나?”
“네. 당했습니다.”
“음!”
허도기는 침음했다.
그는 제이처(第二處)에 와 있었다. 아걸이 오기 전에 일만 벌이지 않았어도 진공부가 피습당하도록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아마 지금쯤 아걸의 목을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을 벌여 놓았다.
이 일은 진공부가 피습당한 사실만큼이나 중요해서 자신이 직접 통제해야 한다.
“역시 힘들었나.”
허도기가 침중하게 말했다.
궁여지책으로 고조시에게 맡겼는데 역시 당했구나. 미완성의 무공으로는 당할 수 없는 상대였어.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맥없이 무너지다니.
“네가 본 그놈 칼은 어떻더냐?”
“글쎄요. 그게 참 묘했습니다. 몸이 빠른 것도 아니고, 칼이 빠른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모든 검을 다 막아 내고, 자기는 찌르고 싶은 대로 찌르고.”
하원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마디만 하라면 기가 막힌 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너는 안대를 벗어야겠다.”
“……?”
하원랑이 의아한 눈으로 허도기를 쳐다봤다.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헛것을 보고 있어.”
“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네가 안대를 쓰고 있는 한, 네 눈에는 아걸의 칼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안대를 벗겨야 하는데…… 네 놈 안대를 어떻게 벗겨 줄지 고민이다.”
“진개나 고조시 같은 방식이라면 사양합니다.”
하원랑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사부가 무공을 진일보시켜 주겠다는데 감히 거절한다. 그것도 딱 부러지게 잘라서 말한다.
원래부터 사제지연을 맺은 관계가 아니라서 이럴 수 있는 것이다.
소축십검 같으면 끓는 기름 속으로 뛰어들라는 명령도 받드는데, 군에서 거둔 수하는 감히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
하원랑은 고조시 같은 놈이다.
허도기는 고조시에게 실망한 적이 있다. 고조시 검이 너무 정검(正劍)으로만 흘러서 매우 실망했다. 손에 피를 묻히려고 하지 않는 점도 못마땅했다.
싸우라면 싸운다. 하지만 치사한 짓은 못하겠다.
이것이 정검이다.
진짜 강한 검이 되려면 정검 속에 사검(邪劍)도 섞어야 한다. 그래서 정검과 사검의 구분이 없어질 때 진짜 검을 갖게 된다. 얽매이거나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검이다.
허도기는 그 수련의 하나로 고조시에게 마공 무감진록안공을 전수했다.
물론 임시방편이다.
소축십검 중 한 명이자 백만대군의 교두인 고조시를 마인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임시로 마검의 맛을 보게 만든다.
정검 속에 마검을 섞고, 혼란의 과정을 거친 후에 완성될 진짜 강검을 기대한다.
고조시는 강검을 완성하지 못했다.
아직 무감진록안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현 상태에서는 누구와 싸우든 살검만 쓰게 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악한 검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 소축십검이 왜 이렇게 변했지?
- 성검문 검이 원래 이렇게 잔인했나?
- 이거 더럽게 비겁한 수법이잖아. 이런 초식을 써도 되는 거야?
미완성 검은 많은 질책을 듣는다.
사실, 허도기는 이런 극악한 처방을 내리지 않으려고 했다. 조명십해만 수련해도 천하를 오시하기에 충분하다. 제대로 수련하지 않았으니 병신 같이 당하는 거다.
자신을 비롯하여 전대 문주인 허도강과 허도강의 세 자식인 허문승, 허문학, 허문기가 조명십해만 수련하고도 천하를 오시했다.
모두 그렇게 될 수 있다.
조명십해는 천하에 다시없는 검학이다.
다만…… 제자들은 용골이 아니다.
천하를 뒤져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무재인 것은 맞지만, 성검문이 원하는 용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차이가 허도기와 소축십검의 차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조명십해를 죽도록 수련하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마공, 사공의 유혹은 매우 강렬하다.
정검에 사검을 섞었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다행히 원하는 대로 돌아오면 사부와도 일전을 겨룰 수 있는 강검이 된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면 잔악한 마검에 그치고 만다. 오히려 타락하는 것이다.
소축십검이 일홀도를 맞이해서 싸울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굳이 이런 수련까지 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펑펑 나가떨어진다.
첫째 제자인 독안혈검 전가성이 무너진 일이 사검을 수련시키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다.
그래서 사검을 던져 넣었다.
제일 차로 마단을 복용시켰다. 마공을 매우 깊이 받아들이게끔 강하게 자극했다.
그 과정에서 호금연이 탈락했다.
구군 호금연은 무공을 완성해서 나간 것이 아니다. 실패했기에 내보낸 것이다.
결국, 호금연은 사검을 휘두르다가 죽었다.
진개도 마찬가지고 오진복도 그렇다. 정검이 완성되기 전에 검을 쓴 결과는 비참하다. 팔이 잘렸다.
두 번째로 적응도에 따라서 무감진록안공이나 분뢰절맥 둘 중 하나는 주었다.
그들은 지금 수련 중이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소축십검 중 가장 빠른 검을 구사하던 검속제일 초가평이다.
초가평은 무감진록안공을 넘어섰다. 분뢰절맥도 받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적으로 수련하고 있다. 아마도 최강 검이 되어서 나타날 것이다.
고조시는 불가피하게 꺼냈다.
그래도 혹시 이 정도면 가능하겠지 하고 꺼냈는데, 역시 안 되는 모양이다.
허도기가 말했다.
“하원랑.”
“네.”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게 좋아.”
“제 색깔은 분명합니다.”
“그래? 무슨 색이지?”
“글쎄요? 무슨 색인지 모르겠지만, 공부님과 같은 색인 것은 확실합니다.”
“후후후!”
허도기는 웃었다.
하원랑은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 아니 통제를 벗어나려고 한다.
하원랑이 허도기 곁에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명령도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언제든지 ‘난 이만하겠습니다’하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자다.
하원랑의 약점 중에 가장 큰 약점은 더 강해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공이면 어떻고, 마공이면 어떤가.
내 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접목을 시켜야지 되는데, 구분을 철저하게 한다.
하원랑의 검은 진정으로 다시 강해지기 힘들다.
이것이 허도기의 판단이다.
허도기가 말했다.
“가서 진공부를 지켜라. 고조시가 목숨으로 지켰으니, 이번에는 네가 지켜.”
“아걸이 또 올 텐데, 괜히……”
“네가 막아라. 질 것이 뻔한 싸움이라고 포기하면 되나. 이기려고 수를 연구해야지.”
“알겠습니다. 진공부를 지키겠습니다.”
하원랑이 일어섰다.
허도기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아걸이 찝쩍거린 이상, 그리고 주변에 아걸을 막을 자가 없는 이상 자신이 막아야 한다.
‘방법이 있긴 한데.’
허도기는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황궁을 둘러싼 갑옷을 벗겨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눈을 돌리기 싫다. 무림같이 먹을 것 없는 곳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걸이 신경을 쓰게끔 만든다.
자신은 계속 황궁을 지켜보고, 그러면서도 아걸을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그에게는 보물이 네 개나 있다. 그중 하나만 열어도 아걸을 죽일 수 있다.
‘아냐. 그건 사용하지 못해. 그건 날 이 나라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보물이야.’
그들이 존재를 드러내면 당장 호황위가 나타난다.
자신의 패는 까 보였는데, 상대방의 패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싸우게 된다.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자신이 보물들을 꺼내 놓을 때는 호황위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난 후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있다.
자신은 호황위를 모르고, 호황위는 숨겨진 보물들을 모른다.
서로가 상대방을 모르기 때문에 전면전을 벌이지 못한다. 아직은 자중하고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존재가 드러나면 당장 큰 싸움이 벌어진다.
조위가 끊임없이 자극해오는 것도 보물들을 풀어놓으라는 뜻이다. 어떤 것인지 보게.
그 일을 어처구니없게도 아걸이 하고 있다.
허도기는 감았던 눈을 떴다.
“할 수 없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걸은 끊임없이 공격해 올 것이다. 그러니 계속 희생당하면서 무시할 수는 없다.
아걸을 막을 칼, 바로 자신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초가평이나 진개, 오진복을 내세울 수가 없다. 하원랑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이 막아야 한다.
“후후! 네놈 뜻대로 무림으로 가 준다. 여기는…… 무림을 정리한 후에 다시 돌아와야겠군.”
허도기는 제이처를 살펴봤다.
진공부는 위세를 떨치면서 거처하는 곳이다. 제이처는 비밀 지령을 내릴 때 사용한다. 실질적으로 허도기의 모든 명령은 제이처에서 발동된다.
당분간은 제이처를 떠나서 무림으로 간다. 잠시 황궁에서 눈을 돌린다. 하지만 무림에서 다시 황공으로 돌아올 때는 지금과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갈 때는 가더라도 호황위는 끌어내 놓고 간다.
스읏!
허도기는 의자에서 일어나 서가로 갔다.
서가는 앞뒤가 뻥 뚫려 있다. 앞은 허도기의 집무실을 향하고, 뒤는 오가면서 서신을 꽂아 넣게 되어있다.
일(一)부터 구(九)까지 아홉 칸에 서신이 꽂혀 있다.
허도기가 주시하는 칸은 모두 열한 개다. 그중 아홉 개가 자리를 차지했다. 서른한 명 중 스물여섯 명이 위치를 확보했다. 이 개조 다섯 명만 아직 서성인다.
“꼬박 이틀이 지났어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니. 전보영이 강하긴 강한 모양이군. 후후!”
허도기는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다.
착! 착!
나머지 빈칸이 거의 동시에 채워졌다.
정동 무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됐군.”
허도기는 비로소 붓을 들었다.
이제 몇 글자만 적고 제이처를 떠나면 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슷!
허도기는 ‘공(攻)’ 자를 적었다. 하지만 뒷글자는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든다.
이번에 내리는 명령은 절대로 수정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고치지 못한다.
일이 틀어진다고 해도 정동 무인들이 행한 일일 뿐이니 허도기에게까지 책임이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호황위를 드러내지 못하고 무림으로 가는 것이 찜찜해진다.
허도기는 붓을 놓고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적명록(敵名錄)을 펼쳤다.
‘조위.’
조위는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조 장군은 장군가에 있다. 조경이 죽은 후부터 장군가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친위대는 언제든 출동할 수 있게끔 준비시켜 놓은 상태다.
조 장군이 거느리는 친위대의 현재 위치, 현재의 동정도 상세히 살펴봤다.
이상 없다. 움직일 기미가 전혀 없다.
허도기는 정적뿐만이 아니라 황궁 인물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봤다.
호황위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주시해야 한다. 과연 호황위는 전설일 뿐인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무인인가.
사실, 허도기는 호황위를 충분히 조심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호황위 같은 존재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존재했다면 일홀도와 부딪쳤지 않겠나.
일홀도가 호황위 같은 고수를 알고도 놓아주었을 리 없다.
“됐어!”
마지막까지 모두 점검해 본 후, 적명록을 덮었다.
그리고 이제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갔다.
- 공격(攻擊)!
서신 첫머리에 적힌 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