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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47화 (247/600)

#247화. 第五十章 반충격(反沖擊) (2)

바람도 없는데 촛불이 일렁거렸다.

실제로 촛불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를 태우는 정도에 불과한 흔들거림이었다. 하지만 탁호 눈에는 매우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야 원 집중을 할 수가 있나.”

탁호가 중얼거렸다.

허도기가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파악하지 못하니 불안한 마음만 깊어진다.

“분명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데.”

전보영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이 말을 뒤집으면 공격 대상이 전보영이라는 말로 풀이된다. 또는 조 장군을 직접 노릴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할 수 있는 행에는 한계가 있어. 아직은 전격적으로 움직일 때가 아냐. 그렇다면 소소하게 공격해 올 텐데. 이거야 원, 영 감이 안 잡혀서.”

작으면서도 치명적인 공격이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허도기의 행방을 빨리 찾아야 한다. 그래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다.

금릉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는다.

진공부가 낯선 자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방치하면서까지 어디로 간 것인가?

그때다. 바깥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타타타탁! 타타타탁!

전보영 관원들은 여간해서는 뛰지 않는다. 늘 행동을 조심하면서 오간다.

탁호가 일부러 이런 행동을 요구했다.

급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차분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더 위압감을 준다. 전보영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끌려온 사람들 모두가 진중히 생각하게 만든다.

전보영은 언제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어떤 사건이 생겨도 조용하다. 설혹 전보영이 폭삭 망할 정도로 큰일이 벌어져도 뛰지 않을 것이다.

급하게 뛰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진중한 움직임을 요구했다고 해도 정말 급한 일이면 뛰기도 한다.

하지만 뛰는 사람과 관계없는 사람이면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것도 탁호가 요구한 행동이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도 간섭하지 마라. 수하가 달려가고 있어도 제지하지 마라. 보고할 사람이면 보고하고, 관계없는 사람이면 지나칠 것이다.

탁호는 수하들에게 그만한 권리를 내주었다.

수하들을 믿는다. 그들이 독자적인 판단하에 자유롭게 일을 하게 만들어 준다.

한데 지금 들리는 발소리는 신경을 마구 잡아당긴다.

더욱이 지금은 늦은 밤이다. 아니, 한두 시진만 있으면 새벽이 밝아 온다.

타타타탁!

탁호는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마치 심장을 쑤시는 창날 소리처럼 들렸다.

불길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밖에서 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 축시로 들어섰는데 보고라. 후후!’

“들어와라.”

탁호가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덜컹!

문이 급하게 열리면서 화산쌍검이 들어섰다.

‘제삼부장?’

탁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제삼부 부장에게 탈이 생겼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저희는 제삼부 부장님은 모시는 화산쌍검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다.”

탁호가 무심히 말했다.

말은 무심했지만, 그의 음성은 살짝 떨렸다.

“부장님이 암살당하셨습니다.”

탁호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싶었다. 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예상했다. 그래, 예상했던 일이다.

“서둘지 말고 차분히 말해라. 암살이라니!”

화산쌍검이 숨을 고른 후, 암살에 대해서 소상히 말했다. 특히 암살이 어떤 식으로 벌어졌는지는 그림으로 그려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세세하게 말했다.

“독이란 말이냐?”

“네.”

“어떤 독인지는 모르고?”

“미처 거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전보영은 살수에 대해서 비교적 많이 아는 편이다.

정보영이 자체적으로 암살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해서 많은 공부가 되어 있다.

화산쌍검도 전보영이 알고 있는 암살 수법에 대해서는 모두 습득한 상태다. 부장을 호위하려면 상대방이 펼쳐올 수법도 예측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암살 수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은 많이 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순간에 얼어붙도록 만드는 독은 흔치 않다. 또 그런 독이라면 전보영이 모를 수 없다.

그런데도 모른다.

암살한 자도 모르고, 암살 수법도 생소하고, 암살에 사용된 독도 처음 봤다.

제삼부 부장이 암살당한 일은 매우 큰 사건이다.

하지만 탁호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허도기가 가해 온 공격이다.

부장 한 명이 죽는 선에서 그쳤으면 천만다행이다.

‘아냐. 허도기야.’

탁호는 이내 고개를 내둘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허도기가 암살을 감행한 이상, 전보영을 노린 이상 결코 부장 한 명 죽이는 선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이 전보영이 망하는 날일 수도 있다.

흔히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불길한 느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불길한 일이 계속 일어난다.

타타타탁! 타타탁!

화산쌍검이 보고를 막 마친 참인데, 급하게 마당을 가로질러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달려온 자는 제이부 부장 호위 무인이다.

제이부는 지극히 은밀한 임무만 수행한다. 그런 연유로 제이부 부장의 신분 또한 비밀이다. 제이부장이 누군지 전보영 수장들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런데 호위 무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달려왔다.

탁호는 달려오는 호위 무인을 안다. 제이부장을 아주 가까이서 보필하던 청호(靑蒿)라는 자다. 말이 없고, 언제나 무엇을 하고 있지만, 제이부장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청호가 어금니를 잘끈 깨물며 말했다.

탁호는 일어서서 청호에게 다가갔다.

“제이부장께서 암살당하셨습니다.”

탁호는 청호의 두 손을 잡았다.

청호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상처를 보면 벌써 죽어야 했는데, 악착같이 달려왔다.

“알고 있다. 인제 그만…….”

‘그만 쉬어라!’

탁호가 하려던 말이다. 하지만 청호는 쉬지 않고 말했다. 자신의 말을 막지 말라는 듯, 탁호의 말을 중도에서 끊고 거칠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암습자는 독을 사용하는데, 제 판단에는 사공! 탄명저주공을 수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탄명저주공?”

“탄명저주공!”

탁호와 화산쌍검의 반응은 너무 달랐다.

탁호는 탄명저주공을 알아듣지 못했고, 화산쌍검은 단박에 알아듣고 경악했다.

탁호가 화산쌍검을 쳐다봤다. 하지만 탄명저주공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청호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숨을 거둘 수도 있다.

“독무 속에서 검을 쓸 때, 관절이 비틀렸습니다. 틀림없이 탄명저주공의 흔적입니다. 쿨럭!”

급기야 청호가 검붉은 핏물을 토해 냈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탁호가 청호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복수를…….”

“당연히 해야지.”

“후후! 그럼 저는 영주님만 믿고…… 피곤해서 이만.”

청호가 고개를 툭 떨궜다.

저들이 펼친 게 탄명저주공이라면 화산쌍검 역시 무사하지 못한다. 이미 체내에 독기가 스며들었다. 지금은 내력을 뚫고 나오지 못하지만, 곧 발작할 것이다.

“어쩐지. 우릴 끝장내지 않고 빠져나가더라니.”

화산이검이 중얼거렸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죽일 수 있으니까. 어떤 독일까? 어쨌든 발작하면 끝이야.”

화산쌍검은 자신들의 목숨도 오래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금은 아무런 탈이 없지만, 곧 어떤 이상 증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자각 증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백약이 무효인 단계로 들어선다.

탄명저주공에 사용된 독은 해약이 없다.

“음!”

탁호는 신음했다.

탄명저주공에 대해서 들었다.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악독한 수법이다.

탄명저주공은 공격하는 자에게나 당하는 자에게나 모두 치명적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독무를 들이켠 자나 해약을 복용하고 들어선 자나 신체에 극심한 타격을 받는 것은 매일반이다. 즉시 죽느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역시 허도기야.’

탁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허도기가 전보영을 일시에 들이쳤다. 지금 당장 죽은 사람은 두 명이지만, 난을 피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는 아침이 되어 봐야만 알 수 있다.

보아하니 이번 공격은 한두 명을 노린 게 아니다. 전보영 수장들을 전부 노렸다.

삼부장과 칠청사가 암살 대상이다.

늦은 시각에 퇴청한 수장은 길에서 죽었다.

일찍 퇴근한 사람도 횡액을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밥을 먹다가, 혹은 잠을 청하다가 변을 당했을 것이다. 호위무사도 없이 당했다면 굳이 탄명저주공을 펼칠 이유도 없다.

전보영이 아주 쉬운 죽음을 내주었다.

허도기가 자신을 노릴 것은 예상했다. 전보영 조직 중 일각을 무너트리거나 아니면 전면적으로 암살단을 보내서 대거 살인할 것도 고려했다.

하지만 삼부장 칠청사만 쏙 골라서 암살할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암살을 계획하려면 삼부장 칠청사의 동태를 자세히 살펴야만 한다.

그들이 누군지 알아야 하며, 사는 곳과 먹는 것, 입는 것 등등 일상생활에 대해서 소상히 파악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날한시에 모두 들이칠 수 있다.

전보영에 허도기 간자가 너무 깊이 들어와 있다.

삼부칠청 수장들의 면면이 이 정도까지 보고될 정도라면 아예 비밀이 없는 편이다.

탁호가 말했다.

“자네들 검은 믿을 수 있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믿으십시오’하고 말씀드렸겠지만, 지금은 자신 없습니다.”

화산쌍검이 대답했다.

독무는 견뎌 낼 자신이 있다. 어차피 독에 노출되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하지만 체내로 스며든 독이 발작하면 당장 검초를 전개하지 못한다.

믿을 수 없는 검이 되어 버렸다.

“자네들, 지금부터 내 호위를 맡아.”

“안됩니다. 저희는 이미…….”

“난 평소 호위를 두지 않았지.”

“아!”

화산쌍검이 탄식했다.

전보영주가 호위 없이 다녔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보호해야 할 상관이 있으니 다른 곳 수장까지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관심도 두지 않는다.

“지금 전보영 수장들이 암살당하는 것을 보면 내 주위에도 독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럴 겁니다.”

“지켜 주겠나?”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주위에 아무도…….”

“없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화산쌍검이 일제히 부복했다.

삼부장 칠청사가 당하는 상황이라면 전보영주의 안위 또한 장담하지 못한다.

전보영주에게는 더 강한 자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그렇다고 허도기가 직접 달려들지는 않는다. 그건 허도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자객을 보낼 것이다.

“내 호위를 서되,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날 호위할 생각을 하지 마라. 자객을 죽여. 한 명이라도 좋으니 죽여라. 그리고 그 시신을 장군께 가져가거라.”

“자객은 죽이겠습니다. 하지만 시신은 영주님께서 직접 가져가셔야 할 겁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저희도 오래 버틸 수 없는 처지라서. 그러니 반드시 사십시오.”

“후후! 내가 살아 있다면 당연히 내가 해야겠지. 하지만…… 후후! 어쩐지 이번 일은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지.”

탁호는 말을 이으면서 허도기를 떠올렸다.

허도기가 자신을 놓아줄 것 같지 않다. 삼부장 칠청사를 노렸는데 영주를 놓칠까.

다른 사람은 놓쳐도 영주만은 잡는다.

“그래. 그럼 나도 퇴청할까?”

탁호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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