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第五十章 반충격(反沖擊) (3)
탁호는 혼인하지 않았다. 일부러 식솔을 만들지 않았다. 말로는 전보영 일에 매달리다 보니까 여자를 만날 틈이 없었다고 했지만, 전보영 일의 특성상 식솔은 발목을 잡는 족쇄로 둔갑할 여지가 다분해서 일부러 자제했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오직 일, 일, 일, 일만 했다.
퇴청이라는 것도 해 본 적이 없다.
전보영 안에 마련된 관사에서 지내는 것이 영 밖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내 옆에 있을 필요 없다.”
“그럼!”
화산쌍검이 몸을 숨겼다.
탁호는 관사를 향해 걸어갔다.
제이부장과 제삼부장은 퇴청하는 길에 암살당했다. 다른 사람은 집에서 당했다.
자정을 기해서 일제히 기습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신을 노리는 자는 어디에 있을까? 오늘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자정 무렵, 어디에 있었을까? 관사에 머물렀다. 해시(亥時)면 잠자리에 드니, 지금쯤 침상에 있을 것이다.
자다가 공격을 당했다.
허도기를 놓쳐서 그의 행적을 좇다가 퇴청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그 일이 목숨을 구해 주었다.
저벅! 저벅! 저벅!
탁호는 관사를 향해 걸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차지 않았다.
자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평상시와 다름없이 태연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허리춤에 쇠 부채 한 자루를 꽂아 넣었다.
쇠 부채는 접는 부채, 접선(摺扇)이다.
쇠로 만든 살이 스물한 개다. 살 한 개에 비침 세 개씩 꽂혀 있으니, 일시에 예슨 세 개의 비침을 쏘아 낼 수 있다. 또 살 자체가 화살 역할을 한다. 단시(短矢) 스물한 대를 쏠 수 있다.
전보영 암살자들이 애용하는 병기다.
“오셨습니까?”
관사를 지키던 문지기가 활짝 웃으면서 반겼다.
문지기는 그가 퇴청하기 전에 잠든 적이 없다. 아무리 늦어도 기다린다.
“밤이 깊었는데도 자지 않고.”
“아닙니다. 쇤네야 당연한 거죠.”
문지기가 문을 활짝 열었다.
관사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문지기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부름 좀 부탁할까?”
탁호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 서며 말했다.
“네. 무슨……?”
“내 집무실에 가서 책상 위에 있는 것 좀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탁호가 말하면서 자신의 영패를 꺼내 건네주었다.
“아, 네.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문지기가 영패를 받아들었다.
탁호는 피식 웃으면서 돌아섰다.
지금부터 이곳은 지옥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그러니 괜히 옆에 있다가 겁살을 맞을 필요가 없다. 이럴 때는 멀리 뚝 떨어져 있는 게 최상책이다.
탁호는 문지기의 목숨이라도 구해 줄 생각이었다. 순간,
“커억!”
갑자기 등 뒤에서 문지기가 격한 비명을 쏟아 냈다.
탁호는 재빨리 철선을 뽑아 들고 홱 돌아섰다.
문지기가 보인다.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고 비틀비틀 몇 걸음 걷더니 풀썩 쓰러졌다.
문지기의 목에서 피가 뭉클뭉클 흘러나왔다.
문지기를 죽인 자가 탁호를 향해 쏘아 왔다. 거두절미, 목숨부터 빼앗고 보자는 투다.
휘리릭!
탁호는 철선에 담긴 비침을 쏘아 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은빛 비늘이 번쩍거렸다. 마치 은어 수십 마리가 검은 바다를 헤엄쳐 가는 듯이 보였다.
쉬이익!
자객은 비침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 냈다.
몸을 왼쪽으로 숙이더니 땅에 바싹 밀착해서 급하게 달려온다. 두 발이 무척 빠르게 교차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새 검이 탁호의 가슴을 노리고 벼락처럼 쏘아졌다.
타타타타탁!
탁호는 다시 한번 철선을 쳐 냈다. 그러자 부챗살이 작은 화살이 되어서 쏘아졌다.
타타탕!
자객은 급히 검을 돌려서 화살을 막아 냈다.
탁호는 급히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못했다. 자객이 쇠 화살을 쳐 냄과 동시에 틈을 주지 않고 재차 달려들었다. 어느새 검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까앙!
자객이 쳐 낸 검은 화산일검에게 막혔다.
“들어가시죠!”
화산일검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그리고 암습자를 맞이해 매화검법을 펼쳤다.
쉬리리링!
검 끝에서 다섯 잎 매화꽃이 피어났다.
매화검법이 절정에 이르면 일검에 다섯 송이 꽃잎이 완벽하게 그려진다.
검 끝의 변화가 매우 빠르고 현란하다는 거다.
일면 곧장 검을 쳐 내는 것 같지만 수십 번에 이르는 진동이 가미되어 있다.
“후후!”
자객이 재빨리 검초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매화검법에 서슴없이 부딪쳐 왔다.
까앙! 깡! 깡!
장검과 단검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이건 도법이다!’
화산일검은 자객의 단검에서 강한 칼의 냄새를 맡았다.
단검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은 원래 장도를 쓰는 것으로 짐작된다.
‘뭐 하는 놈들이기에!’
자객은 화산일검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퍼억!
눈앞에서 독분이 확 피어올랐다.
“훗!”
화산일검은 깜짝 놀라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독무를 들이마셨다. 상대가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독을 퍼트릴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이러면 자객도 독에 당한다.
실제로 자객은 독기에 중독된 듯 비틀거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하지만 자객은 곧 신형을 추슬렀다.
화산일검은 그러지 못했다. 독기가 몸을 마비시켰다. 급히 진기를 끌어냈지만, 이번에는 얼마 전처럼 억누르지 못했다. 전에 침투한 독기까지 급격히 치솟았다.
“우욱!”
화산일검은 죽음을 떠올렸다.
몸이 마비된다. 당장 두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럼증이 치밀고, 코와 입이 막힌다. 오공에서 진득한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핏물인 것 같다.
슈우우웃!
단검이 가슴을 찍어 왔다.
그때, 화산일검은 사력을 다해서 고함쳤다.
“마지막!”
쒜에엑! 쒜에에에엑!
화산일검은 이십사수매화검법 중 폭풍사초(暴風四招)로 알려진 매화혈우(梅花血雨), 매화구변(梅花九變), 매화만개(梅花滿開), 매화인동(梅花忍冬)을 연달아 펼쳤다.
퍼억!
검이 자객의 복부를 뚫었다.
검이 핏빛 비를 뿌리듯 격렬하게 내리친 후, 아홉 번의 변화를 일으켰다. 아홉 번에 걸쳐서 요혈을 공격했다. 그리고 매화만개, 다섯 송이 꽃송이가 얼굴만 하게 그려졌다.
그야말로 온 힘을 기울인 검초다.
자객은 독무를 너무 믿었다. 화산일검이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자객은 제대로 무공도 펼쳐 보이지 못하고 복부를 찔렸다.
“크윽!”
화산일검은 자객의 얼굴에 독이 담긴 핏물을 토해 냈다.
마지막!
화산일검의 고함은 마지막 공격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삶이 끝났다는 소리다.
그는 화산이검에게 고함을 질렀다.
화산파에서부터 동고동락한 사형제 간에만 알아들을 수 있는 고함이다.
내 삶은 끝났다. 그러니 나에게 오지 말고 네 할 일을 하라. 어차피 너의 삶도 오래 남지 않았으니 누구를 구하는 행동을 하지 말자. 먼저 간다.
‘마지막’이라는 고함에 깊은 뜻이 담겨서 전달되었다.
‘영주를 지켜야 해!’
화산이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객 시신을 조 장군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탁호는 화산쌍검에게 절대명령을 내렸다.
자객 시신은 만들어졌다. 화산일검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 시신 한 구를 만들어 냈다.
화산이검은 시신에서 눈길을 돌려 버렸다.
화산일검의 시신을 보기 싫다. 사형이 죽은 모습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자신 목숨도 오래 남지 않았지만, 사형이 죽은 모습은 차마…….
그때, 환청처럼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화산일검이 마지막 재촉을 하고 있다. 화산이검이 움직이지 않으니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모양이다.
쉬이익!
화산이검은 사형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 신형을 멈추고 검을 들어 올렸다.
스으읏! 스스슷!
주위에 자객 두 명이 나타났다.
순간, 화산이검은 재빨리 호흡부터 막았다.
자객들은 절대 일반 살수가 아니다. 암습에 뛰어나지 않다. 하지만 일신 무공은 고절하다. 살수가 아니라 뛰어난 무인들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스스스스스슷!
화산이검은 검으로 자객들을 겨눈 채 재빨리 뒷걸음질을 쳐서 쓰러진 사형에게 갔다.
“사형!”
화산일검은 대답이 없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화산이검은 불길한 느낌에 급히 눈을 흘겨서 사형을 봤다.
사형은 이미 죽었다. 검으로 자객을 찔렀지만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눈은 부릅뜬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못마땅한 눈이 자신을 향한 것인가?
화산이검은 발을 들어서 죽은 자객의 시신을 세차게 걷어찼다.
퍼억! 쉬익! 쿵!
자객 시신이 관사 안쪽으로 날아갔다.
“마지막!”
화산이검이 고함을 내질렀다.
사형은 자신을 향해서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은 영주에게 고함친다. 영주가 바깥 상황에 눈을 주고 있다면,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지금 당장 움직일 것이다.
타악!
눈앞에서 검은 연기가 풀썩거렸다.
화산쌍검은 끝내 독무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독무에 쓰인 독이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독이 어떤 독인지 알려 줄 필요는 있다.
스읏!
화산이검은 틀어막고 있던 숨을 풀어 버렸다.
어차피 자객 두 명은 상대하지 못한다. 일 대 일이라면 싸울 수 있지만 두 명은 무리다. 더욱이 독무에 중독된 상태에서 싸우는 것은 이미 승부가 정해졌다고 봐야 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한다.
“크윽!”
화산이검은 신음을 쏟아 냈다. 억지로 고통을 참지 않았다. 아프면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온몸으로, 표정으로, 입으로 표현했다. 고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되게 어지럽네. 뭐야? 다리부터 마비되는 거야? 웃! 손까지. 이거 순식간인데? 무슨 독인데 이렇게 지독해? 세상에 이런 독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는데.”
“킥킥킥! 네가 들어 보지 못한 게 어디 이 독뿐이냐?”
“너희는 왜 멀쩡하지? 미리 해독단을 복용하고 왔나? 치사하군. 이건 싸움이 안 되잖아?”
“흐흐흐!”
쉐에에엑!
음침한 음성과 함께 검이 날아왔다.
퍽! 퍽! 퍽! 퍽!
단검이 화산이검의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화산이검은 저항하지 않고 죽는 쪽을 택했다. 매화검법을 펼치면 이들 중 한 명은 죽일 수 있다. 저승길에 같이 끌고 갈 자신이 있다. 또 사형이 자신보다 앞서서 증명해 주었다.
매화검법은 이들을 누른다.
하지만 검법을 펼치지 않고 이들이 퍼트린 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크윽!”
화산이검이 비명을 흘리면서 무너졌다.
심장이 정통으로 찔렸으니 살지 못한다. 아니, 무릎이 꺾이는 순간에 이미 절명했다.
암습자들은 관사로 들어섰다. 한데,
“웃!”
그들은 제일 먼저 동료의 시신이 없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놈이!”
탁호는 물론 없다.
“이곳에 비밀 통로가 있나?”
“그런 소리는 못 들었어.”
“음!”
암습자, 정동 무인들은 침음했다.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비밀 통로가 있는 게 틀림없다. 잠시 화산이검에게 한눈을 파는 사이, 탁호가 사라졌다. 그것도 동료의 시신을 훔쳐서.
정동 무인들은 서둘지 않았다.
탁호가 도망갈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절대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