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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49화 (249/600)

#249화. 第五十章 반충격(反沖擊) (4)

시신은 많은 말을 한다.

어떤 사람은 시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은 보기만 해도 듣는다,

조 장군은 시신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시신을 보면 그가 어떤 무공을 수련했는지 알 수 있다. 잘하면 어느 지역에서 생활했는지까지 알아낸다. 무공을 알게 되면 소속된 곳도 알 수 있다.

시신 한 구가 간자 열 명 몫을 한다.

자객이 허도기가 보낸 자라면 허도기가 어떤 자들을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거다.

전보영이 공격당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허도기가 전보영을 공격한 것은 당연하다. 이미 공격을 예측하였다. 다만 어떤 식으로 공격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허도기가 이런 식으로 공격해 왔을 뿐이다.

전보영 수장들이 한날한시에 나가떨어진 것은 타격이 크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이다. 언뜻 보면 허도기의 공격이 매우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허도기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

전보영은 성검문이 아니다. 성검문처럼 소축십검이 무너지면 거의 폐쇄하다시피 무용화되지 않는다. 소축십검이 손을 뗀 후, 성검문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

전보영은 수장이 변고를 당하면 부수장이 즉각 지위를 이어받는다.

전보영은 일개인의 것이 아니다. 조직의 힘으로 운영된다. 전보영 자체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일도 계속 진행된다.

수장과 부수장은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부수장이 모르는 계획은 거의 없다. 설혹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수장이 기록해 놓은 문서를 살펴보면 즉각 알게 된다.

물론 문서에도 기재되지 않은 비밀 사항이 있을 수 있다. 수장이 부수장에게까지 비밀로 하면서 진행한 일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중단이 된다

중단 여부를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수상이 암살되거나 급사했을 경우 수장 단독으로 진행한 모든 일은 즉시 중단되도록 규정화되어 있다.

또 수장도 일을 지시할 때,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명시한다.

전보영주가 죽어도 마찬가지다. 허도기가 죽으면 성검문은 와해한다. 전보영은 아니다. 탁호가 죽어도 전보영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아침을 맞이한다.

부영주는 변고를 아는 즉시 영주직을 위임한다.

전보영은 지금까지와는 방법이 조금 다르겠지만 새로운 전보영주에 맞춰서 개편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전보영은 굳건하다.

그래서 수장들만 골라서 급습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허도기가 진짜로 전보영을 무력화시킬 생각이었다면 비적이 무지막지하게 한 마을을 몰살시키듯이 전원 몰살 방식으로 쓸어버렸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허도기에게도 큰 모험이 된다.

전보영은 개인 문파가 아니다. 나라의 기관이다.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관청이다.

관청은 나랏일을 하는 곳이다.

작은 이해관계가 어긋났다고 해서 한낱 자객들이 일거에 들이닥쳐서 몰살시킬 수는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큼 큰일이 되어 버린다.

황제까지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허도기도 그런 짓까지는 감행하지 못한다.

어쩌면 허도기는 전보영 관원 중 조 장군의 손발을 잘라 내는 것으로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허도기의 이번 공격은 삼부장 칠청사에 그치지 않는다.

전보영은 빠져나올 때까지만 해도 전보영 수장을 노린 암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암살 대상이 훨씬 넓어진다.

이번 암살은 전보영에 있는 조 장군의 수족을 모두 잘라 내는 작업이다.

‘아무리 못해도 오늘 밤 삼백 명 이상은 죽을 것 같은데.’

암살 후, 장군가와 큰 인연이 없거나 아니면 허도기 쪽에서 파견한 사람이 전보영을 틀어쥔다.

허도기는 조 장군 손발을 자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전보영을 장악하는 쪽을 택했다.

이런 일도 일어날 수도 있구나.

도대체 허도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움직였길래 삼백여 명에 이르는 사람을 하룻밤 사이에 죽일 수 있나.

‘아냐. 아냐. 모두 죽일 필요는 없어.’

탁호는 또 생각을 바꿨다.

조 장군 사람으로 분류되는 삼백여 명을 모두 죽일 필요는 없다.

조 장군 수족이라고 해도 거리라는 것이 있다. 측근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지 호의를 가지고 협조하는 선에서 그치는 사람도 있다.

관심의 종류가 같을 수 없다.

조 장군 명령이라면 끓는 불 속이라도 뛰어들 정도로 충성심이 골수에까지 틀어박힌 사람만 제거하면 된다.

그런 자는 쉰 명 안짝이다.

쉬이이익! 쉬이익!

탁호는 죽은 시신을 움켜쥐고 죽을힘을 다해 치달렸다.

일단은 저들 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조 장관에게 가야 한다.

“아!”

한참을 치달리던 탁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잠시라도 멈추면 암살자들이 들이닥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라도 냉정하게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지금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

장군가로 달려가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이다. 달려가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전보영을 이토록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도 짐작했을 것이다.

장군가로 가는 길에 매복이 깔려 있다.

이대로 장군가로 달려가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다.

그렇다고 장군에게 전보영 변괴를 알리지 않을 수도 없다.

어쩌면 장군가 역시 허도기에게 공격당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냐. 장군가는 만만하지 않아.’

탁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보영은 무인 집단이 아니다. 암살도 수행하기 때문에 무공이 높은 관원도 있다. 하지만 탁호가 담당하지는 않는다. 삼부 칠청에 소속되어있다.

장군가는 다르다.

장군가에는 무공 높은 고수가 즐비하다. 성검문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공봉처럼 장군가에 기거하는 무인들이 많다. 또 부장(副將)들의 무공도 출중하다.

하지만 가장 무공이 높은 사람은 역시 조위 장군이다.

장군이 워낙 병법에 밝아서 지장이라고 불리지만, 무공 또한 어느 맹장에 뒤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창 한 자루를 잡고 무림에 뛰어들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창술이 뛰어나다. 아걸에게 패한 조경 장군이 ‘나는 아버님의 일창도 받아 내지 못한다’하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장군가는 전보영처럼 쉽게 공격할 수 없다.

자객들이 독무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화산쌍검이 버텼다면 장군가에는 버틸 사람이 훨씬 많다. 죽음은 피하지 못해도 맥없이 죽지는 않는다.

“음!”

탁호는 발길을 돌렸다.

조 장군에게 가지 않는다.

허도기가 장군가를 동시에 들이쳤다면 어차피 늦었다. 지금 가도 싸움이 끝났을 것이다.

장군가를 공격하지 않았어도 날이 밝음과 동시에 전보영 참변을 알아챌 것이다. 굳이 자객에게 쫓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달려갈 필요가 전혀 없다.

저벅! 저벅!

탁호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조장군이 아니더라도 갈 곳이 있다. 딱 한 사람, 허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아걸, 그에게 간다.

모습을 숨길 필요는 없다. 신법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 아걸에게 가는 길은 뻥 뚫려 있다. 허도기도 아걸은 이번 싸움에서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쉬이이익!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신형을 뽑아냈다.

* * *

슷! 척!

앞뒤가 뚫린 서가에 서신이 차곡차곡 쌓였다.

장정이 재빨리 서신을 뽑아내서 펼쳐 읽었다.

“제일부(第一部) 한충(韓忠).”

그가 서신에 적힌 이름을 말하자, 다른 자가 벽에서 한충이라는 이름이 적힌 목패(木牌)를 빼냈다.

벽에 못이 수북이 박혀 있다.

못마다 목패 하나씩 걸려 있었는데, 목표는 거의 걷히고 못만 남았다.

“후후!”

허도기가 웃었다.

아직 걷히지 않은 목패는 두 개다.

전보영주 탁호의 목패가 제일 앞줄 상단에 꽂혀 있다.

원래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걷어 냈어야 하는데, 시간이 축시를 넘어 인시로 다가가는데도 걷히질 않는다.

또 다른 목패는 호위청사 허굉우의 것이다.

허굉우는 취화원과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이번 공격에서 아예 제외해 놓은 상태다.

한 명은 예상된 자이고, 한 명은 예상하지 못한 자다.

꼬끼오!

밖에서 수탉이 울었다.

날이 밝아 온다. 이제는 공격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잡지 못했으면 놓친 거다.

“영주를 기어이 놓쳤군.”

허도기가 중얼거렸다.

허도기 주변에는 장정들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입이 있지만, 오직 서신에 적인 이름을 말할 때만 쓰인다.

“바보 같은 놈들.”

허도기는 정동 무인들이 영 못마땅했다.

늑대처럼 칼은 잘 쓰는데, 영 머리를 못 굴린다.

서리형개가 정동 무인들에게 독기 하나는 제대로 심어 놨다. 그 독기에 자신이 진짜 독을 덧발라서 완전히 악만 남은 악귀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도 영 마뜩잖다.

전보영 서른일곱 명을 공격했다. 서른여섯 명을 암살했고, 한 명만 빠져나갔다.

정동 무인은 단 한 명만 희생되었다.

이 정도면 대성공이 아닌가? 아니다. 허도기 계산에는 단 한 명도 죽으면 안 된다. 정동 무인이라면 이 정도 암습쯤은 희생 없이 해냈어야 한다.

더욱이 정동 무인은 탄명저주공까지 펼쳤다.

“절반 희생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그것도 바라지 못하겠어. 이거 순전히 무공만 믿고 싸우는 놈들이잖아. 늑대는 늑대인데 사납기만 한 늑대야.”

허도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동 무인들은 전보영을 공격한 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 정도 맛보기에는 굳이 정동 무인을 쓸 필요가 없다.

진짜 움직임은 지금부터다. 정동 무인은 할 일이 남았다. 아직 칼을 거두지 못한다.

허도기는 붓을 들었다.

스읏! 스으읏!

붓이 화선지 위로 미끄러졌다.

첫머리는 어제 초저녁에 쓰인 것처럼 ‘공격’이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 * *

몽설은 지난 밤에 일어난 살인 사건들을 유심히 살폈다.

“전보영 수장들이 당했네요?”

아삼은 적랑대에서 손을 놓았지만, 그래도 눈과 귀가 밝다. 아직도 사람이 많다. 날이 밝기 무섭게 지난 밤에 있었던 일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왔다.

“허도기가 당하고만 있을 놈은 아니지. 큭큭!”

아삼이 웃었다.

“공격한 자들이 누굴까요? 이 자들은 독무 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였다고 해요. 그건 탄명저주공인데, 무림에서 탄명저주공을 알 만한 사람이 누구죠?”

몽설이 아삼에게 물었다.

“그러게. 누가 알고 있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구나. 이건 살수 무공인데.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도 없고.”

아삼이 중얼거렸다.

탄명저주공은 살수 무공이다. 그것도 사파 무공이다. 사람은 죽여야겠는데, 능력이 닿지 않을 때 죽을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펼치는 공부다.

이걸 사용했다는 것은 사람 목숨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허도기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허도기가 탄명저주공을 끄집어냈다면…… 공격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전보영은 이 무공을 쓰기에는 약해요. 공격이 끝나지 않았어요. 아직 진행 중이에요.”

“지난밤, 전보영에 피바람이 불었는데 여기서 더 공격한다고? 더 칠 데가 어디…… 아!”

아삼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쩍 벌렸다.

몽설은 맞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탄명저주공을 쓰는 자들이 달려갈 곳은 장군가!

하지만 장군가에는 무인들이 있다. 관군도 많다. 조위 장군의 무공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아무리 탄명저주공이라고 해도 장군가는 뚫지 못한다.

아삼이 말했다.

“이거 장군가에 말해 줘야 하나?”

그런데 몽설이 낯빛을 굳히며,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게 아네요. 탄명저주공은 장군가를 뚫을 수 없어요. 그래도 공격하는 건 눈속임. 진짜 노리는 사람은 조위 장군. 조 장군님을 꺾을 사람은 허도기.”

“뭐라고! 허도기가 직접 움직인다는 거야?”

“할아버지 지금 바로 오빠에게 연락해 주세요. 허도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빠뿐이에요.”

“그놈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놈도 허도기 상대가 안 되는 건 똑같잖아.”

“아뇨. 합공은 할 수 있어요.”

“아걸이? 합공 안 할걸? 일홀도는 합공 같은 거 안 해.”

“아뇨. 하게 될 거예요. 빨리 연락하지 않으면 조 장군님이 당해요. 빨리요!”

몽설이 아삼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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