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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50화 (250/600)

#250화. 第五十章 반충격(反沖擊) (5)

쉬이이익!

잠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땀을 식히던 탁호 앞에 한 사람이 내려섰다.

“웃!”

탁호는 깜짝 놀라서 부챗살이 없는 빈 부채를 꺼내 들었다.

비침도 부챗살도 없는 부채가 힘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거라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영주! 무슨 일이야!”

탁호의 모습에 오히려 앞에 나선 사람이 더 놀라서 소리쳤다.

“아!”

탁호는 그제야 나타난 사람을 제대로 쳐다봤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키에 깡마른 사람, 눈에서 살광이 번뜩이는 외톨이, 왜살이다.

“무슨 일이야?”

왜살이 재차 물었다.

전보영주는 꽤 높은 고관이다. 그런 사람이 언뜻 보기에도 자객처럼 보이는 자를 옆에 끼고 있다. 더욱이 자신이 나타나자마자 병기 같지도 않은 쇠 부채를 꺼내서 겨눴다.

왜살은 철선에 대해서 안다.

부챗살은 화살처럼 쓸 수 있고, 부챗살 속에 비침이 가득 담겨 있다.

용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을 안길 수는 있는 흉포한 암기다.

탁호가 들고 있는 부채는 암기를 모두 사용했다.

탁호 같은 사람이 비침도 쏘아 내고, 부챗살도 날렸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왔다.

삼척동자라도 전보영에 탈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허도기가 전보영을 공격했네.”

탁호가 말했다.

“허도기가? 음! 그런데 허도기가 공격할 것은 진작 알고 있었잖아? 뭐 하고 있다가 맥없이 당한 거야? 피해는?”

“아직.”

탁호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피해 파악을 아직 하지 못했다. 탁호가 아는 것은 부장 두 명이 죽었다는 사실뿐이다.

탁호가 말을 이었다.

“대충 짐작하기로는 삼부 칠청 수장들이 모두 당한 것 같고. 그 외에도 대략 스무 명쯤?”

“음! 허도기가 눈에 뵈는 게 없군.”

“혹시 탄명저주공이라고 알아?”

“뭣!”

왜살이 깜짝 놀라서 탁호를 쳐다봤다.

왜살은 단번에 탄명저주공을 알아들었다. 장군의 그림자로 살다 보니 그쪽 방면에 관한 공부가 있었나 보다.

“독무를 사용했나?”

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해독단을 복용하지도 않았고, 같이 중독되었는데 곧 멀쩡해지고?”

“맞아.”

왜살은 급히 탁호가 안아온 시신을 살펴봤다.

자객의 시신에서는 알아낼 만한 것이 없었다. 의복이 모두 새것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이번 암살을 위해서 준비했다. 병기도 단검만 사용했다. 검이나 칼을 쓰면 본신 무공이 흘러나올 수 있어서 철저히 가렸다.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거의 없는데?”

“아걸 도움을 받을까 해서 왔는데, 안내해 줄 수 있나?”

“당연하지. 그런데 아걸은 왜?”

“잠시 쉬었다가 날이 밝으면 아걸과 함께 돌아가려고. 아걸이 도와준다면 전보영을 바로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장군께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어.”

“훗! 이미 알고 계실 텐데.”

“그러시겠지. 하지만 전보영이 수습되는 걸 보시면 움직이지는 않으실 거야.”

“가지.”

왜살이 탁호 대신 시신을 안고 일어섰다.

“나, 전보영주 탁호라고 하네.”

“아걸입니다.”

탁호와 아걸이 서로 포권을 취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같이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보영에 이번과 같은 일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 시신부터.”

아걸은 왜살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래서 긴 이야기를 생략하고 대뜸 시신부터 살폈다.

시신은 상당히 강한 자였다.

태양혈(太陽穴)이 불룩하며 굳건하다. 죽은 지 꽤 됐는데, 아직도 단전이 단단하다.

몸은 흉터투성이다.

상당히 험한 수련을 거쳤는데, 솔직히 무인치고 몸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외의 것은 알 수 없다.

상당한 무공을 지닌 자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작심하면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이자가 탄명저주공을 사용했다고요?”

“그렇네.”

‘탄명저주공.’

아걸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걸은 탄명저주공을 안다. 어렸을 적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마공이기 때문에 모를 리 없다.

열 살쯤 될 무렵, 상대해야 할 자가 천하제일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전에도 무서운 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천하제일인일 줄은 몰랐다.

사부를 죽인 자!

그런 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칼을 배운다.

배운다? 수련한다? 스승도 없이 혼자서 터득한다? 그런 칼로 천하제일인과 싸운다?

누가 봐도 어림없는 수작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꼬마가 스승도 비급도 없이 혼자 칼을 배우기 시작해서 천하제일인과 싸운다고 하면 웃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걸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했다.

그래서 단숨에 고수가 될 수 있는 편법에 눈을 돌렸다.

무공에서 편법이란 거의 사공, 아니면 마공이다. 독으로 잠력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있다. 어떤 식이든 강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몸에 아주 좋지 않다.

허도기만 이길 수 있다면 어떤 무공이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런 심정이었으니 당연히 탄명저주공을 쳐다보게 되었다. 아니, 아주 깊이 연구했다.

결과만 말하면 이런 공부로는 허도기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탄명저주공은 동귀어진으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적합하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공부는 아니다.

정도에 길이 있다.

사도나 마도로는 일시 앞설 수 있지만 결국 정도에 무너진다.

아걸은 오래전에 들었던 무공을 다시 들었다.

‘당금 무림에서 탄명저주공을 사용하는 곳은 없어. 전보영을 공격한 사람은 허도기라고 해도, 탄명저주공을 쓸 자는…….’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을 고쳐 봐도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는 자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아걸도 시신에서 알아낸 것은 없다.

시신은 많은 말을 한다지만, 미리 준비하면 어떤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전보영으로 가죠.”

“그래 주겠나?”

“그런데 이 자들, 이미 전보영을 떠나고 없을 텐데요?”

“이번 기회에 간자들을 모두 추려 내려고 하네. 역으로 허도기 손발을 잘라 낼 생각이야.”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아걸과 은거 무인들은 전보영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 봐야 병기 한 자루 챙기면 그만이다. 가지고 갈 것도, 두고 가는 것도 없다.

그때, 낯선 자가 나는 듯이 달려왔다.

아걸은 허도기 눈을 피하려고 객잔에 투숙하지 않았다. 산신각이나 폐가를 이용해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그것도 매일 거처를 바꿨다.

그런데 낯선 자는 마치 아걸이 폐가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달려온다.

“누구냐!”

손승이 앞을 가로막았다.

달려온 자는 급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촌각이 급한 전갈입니다. 아삼이 보냈다고 하면 아실 거라고.”

“할배가!”

낯선 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 아걸이 사내 앞에 섰다.

“음!”

아걸은 침음했다.

서신은 몽설이 보내온 것이다.

아걸은 몽설이 금릉에 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한성에 숨어 있는 줄 알았는데.

몽설이 자세한 내용을 적어 왔다.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 허도기는 자객들 생명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장군가를 공격하게 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조위 장군을 친다.

아걸이 장군을 도와주지 않으면 장군은 죽는다.

자신이 가도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일대일 승부를 가리게 되면 허도기에게 압도당한다. 그러니 합공하라. 합공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

아걸은 서신을 탁호에게 보여 주었다.

“아!”

탁호가 신음했다.

“가능한 말입니까?”

“가능…… 하네.”

탁호가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탄명저주공으로 장군가를 뚫을 수는 없다.

장군가는 무가가 아니다. 병가(兵家)다. 자객들을 죽이기 위해서 반드시 검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활을 쓸 수도 있고, 저들처럼 독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공격이 시작되면 모든 이목이 쏠린다.

그 사이, 허도기가 조위 장군에게 다가가면 일전을 벌일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싸움은 그야말로 촌각 만에 끝난다. 단 일 합이면 승부가 갈린다.

이게 허도기 검이다.

“이런!”

쒜에에에엑!

왜살이 당장 신형을 퉁겨 냈다.

원래 왜살은 전보영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군가가 공격받는다는 서신을 받은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 저렇게 가면 어쩌자고. 아직 몸이 완쾌된 게 아닌데. 저승길까지 다녀온 사람이.”

의원 도취가 투덜거리면서 재빨리 왜살을 쫓아 신형을 쏘아 냈다.

아걸이 말했다.

“전보영은 형님들과 가시죠?”

탁호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걸과 왜살은 장군가로 가야 한다.

탁호도 마음 같아서는 전보영을 팽개치고 장군가로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전보영을 수습하는 일도 큰 문제다. 내부 문제는 자신이 수습할 수 있지만, 반항을 염려해서 절대 고수가 뒷받침을 해 주어야만 한다.

“그럼.”

아걸이 은거 무인 일곱 명을 쳐다봤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관가와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지만, 이것도 자네 일이니 하지.”

손승이 말했다.

아걸은 탁호와 은거 무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전보영은 지켜질 것이다.

이제 자신이 장군가로 가는 일만 남았다.

“후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또 허도기와 만난다. 그와 싸우는 것은 두렵지 않다. 승패도 연연하지 않는다. 전력만 기울인다. 그런 마음으로 진공부를 공격했고, 싸우게 될 줄도 알았다.

허도기와의 만남이 조금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런 방법도 피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협공을 취하면 조 장군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잘못되었다.

왜살은 장군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니 이번 싸움도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왜살 같은 고수가 오직 동귀어진만을 노리고 달려든다면 허도기도 곤란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오직 왜살뿐이라면 단박에 베어 내겠지만 조위 장군까지 있다. 왜살을 베는 동안 조 장군이 달려들면 곤란하다.

조 장군을 구할 목적이라면 왜살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후후!’

아걸은 쓴웃음을 흘렸다.

지금 생각은 조장군과 왜살을 최대한 존중하고 고려해서 떠올린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베고 벤다. 허도기라면 가능해.’

왜살 같은 고수도 허도기에게는 일초지적에 불과하다. 발검 한 수면 끝난다. 조 장군도 다르지 않다. 아니, 자신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게 뻔하다.

고수 세 명이 합공하면 위력도 그만큼 증가해야 당연하지만, 허도기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두 명이면 베고 베는 것이고, 세 명이면 베고, 베고, 벤다.

허도기가 다른 사람을 앞세워서 장군가를 공격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감추려는 의도밖에 없다.

호황위를 견제하려는 거다.

이유는 딱 그것 하나밖에 없다. 호황위가 아니었다면 허도기는 단신으로 장군가를 쳤다.

‘그래. 가 보자.’

아걸은 반철도를 꾹 잡았다.

일홀도는 전투가 아니다. 무공 대 무공의 겨룸이다. 그 사실은 상대가 허도기가 아니라 지옥에서 막 튀어나온 악귀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무공으로 최강이 되어야 한다.

지형지물은 이용할 수 있다. 날씨 같은 여건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싸움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 싸움은 오로지 자신의 무공으로 일궈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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