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第五十一章 천무(天武)(2)
쉬이익!
허도기는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장군가는 어느 한 곳이 소란스럽다고 해서 모든 이목이 쏠리지 않는다. 소란이 일어날수록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곳을 더 신중하게 지킨다.
아주 잘 훈련된 군사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이다. 사람인 이상, 소란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인다.
딱 그 정도만 신경이 분산되면 된다.
솔직히 장군가를 공격하는데 정동 무인들의 힘까지 빌릴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정도 경계는 충분히 뚫고 들어올 수 있다.
신분을 감춰야 한다면 변복을 해도 되고, 복면을 써도 된다. 가면을 쓰는 방법도 있다. 큰 방갓만 깊이 눌러써도 된다. 감히 방갓을 들어 올릴 자가 어디 있나.
그런데도 정동 무인들을 소진해 가면서 이목을 따돌린 데는 이유가 있다.
검! 검은 숨기지 못한다.
자신이 사람을 베면 조명천검이 당장 드러난다. 검법이 너무 심유해서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다.
그래서 허도기 같은 사람은 사람도 함부로 죽일 수가 없다. 굳이 남들 모르게 살해해야 한다면 병기를 쓰지 말고 손발로 때려죽이는 편이 훨씬 낫다.
이래저래 귀찮은 짐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정동 무인을 앞세웠다.
오늘은 한 사람만 벤다.
딱 한 명만 죽이고, 이곳을 벗어난다.
츠으으읏! 스읏!
허도기는 미끄러지듯 장군가를 누비며 걸어갔다.
장군가 건축 설계도는 입수한 지 오래되었다. 너무 들여다봐서 눈감고도 그릴 수 있다.
‘왼쪽으로.’
전각을 굽이돌아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른쪽에는 경계병이 있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 경계를 서기 때문에 왼쪽 전각 밑부분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허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고, 편하게 잠입했다.
조위 장군이 거처하는 내원(內院)은 외원(外院)과 중원(中院)으로 감싸여 있다.
외원은 어느 장원이나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중원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온갖 나무들이 나타난다. 골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좁은 길도 있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이 나오기도 한다.
중원은 매우 복잡해서 길을 잃기 쉽다.
스으읏!
허도기는 거침없이 방향을 잡고 걸었다.
까앙! 까아아아앙!
동쪽 외원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정동 무인과 장군가 무인들이 부딪치는 소리다. 일차 격돌을 지났고, 두 번째 격돌인 것 같다.
“후후! 참 꼴이 말이 아니군.”
허도기가 툴툴 웃었다.
정동 무인 서른 명이면 적어도 장군가를 발칵 뒤집어 놓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담장을 넘자마자 바로 발각당해서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다.
서리형개가 양성한 놈들이 겨우 이런 수준이다.
무림에서는 난다긴다할지 모르지만, 조직적인 군병과 부딪치면 형편없이 깨진다.
허도기가 군대에 매력을 느낀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일대일로 싸움을 붙이면 백 번이라도 이길 놈들인데, 병법을 곁들이면 펑펑 나가떨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삼궁대다.
그놈들은 정말 별것이 아니다. 정동 무인들 정도 되면 단숨에 베어 버릴 수 있는 무지렁이다. 하지만 일단 포진하고 화살을 재면 천하무적이 된다.
정동 무인이 힘을 발휘하려면 서리형개가 직접 왔어야 한다.
그놈이 빛의 속도로 제삼궁대를 흩트려 놓으면 정동 무인들이 팔팔 날뛸 수 있다.
‘저기군.’
허도기는 내원 문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왔나.’
조위 장군은 침착하게 일어나 앉았다.
밖에서 매우 큰 소리가 울린다. 당장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화살 나는 소리가 북풍한설처럼 매섭게 몰아친다.
침입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삼궁대 앞에서 저토록 오래 버티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강한 무인들이다.
하지만 저들은 외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삼궁대가 버티고 있는 한, 장군가는 매우 단단한 철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력으로 장군가를 뚫고 들어설 사람은 거의 없다.
허도기가 그런 점을 모르고 공격 명령을 내렸을까. 아니다. 알면서도 내렸다. 그리고 허도기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면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공부가 직접 온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직접 검을 들었다.
스읏! 척!
장군은 월극을 잡았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병기다.
원래 조위 장군의 병기는 장창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자식의 병기인 월극을 잡았다.
휘릭! 휘리리릭!
가볍게 월극을 휘둘러봤다.
대청은 월극을 마음껏 쓰기에는 너무 좁다. 그래서 웬만하면 대청에서는 창이나 월극을 휘두르지 않는다. 무심코 휘두르다 보면 벽이 찍히고, 천정이 그어진다.
조 장군은 월극을 들고 대청 밖으로 나갔다.
“밖이 시끄러운데요.”
시종이 염려스러운 듯 말했다.
평소 병기를 잡지 않던 장군이 월극까지 들고 밖으로 나서자 더 염려스러운 모양이다.
“넌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
“아닙니다.”
“어허! 그만 가서 쉬래도!”
그제야 시종이 두 손 모아 포권을 취한 후 물러섰다.
조 장군은 마당으로 걸어 내려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이 밝다. 눈이 시리도록 밝다. 자식이 원망스런 눈초리로 쏘아보는 듯 마음 아프게 밝다.
쎄에에엑! 쒜엑! 크아악!
화살이 허공을 찢는다. 사람이 비명을 내지른다. 아마도 저 정도의 비명이라면 절명했을 것이다.
정동 무인들이 장군가로 쭉 밀고 온 걸로 봐서는 전보영도 탈이 났을 것이다.
‘탁호.’
조 장군은 전보영주를 떠올렸다. 그리고 안심했다.
탁호는 난관을 능숙하게 헤쳐 내는 사람이다. 이번 일도 쉽게 처리할 것이다. 허도기의 기습이 매우 유효해서 처음에는 밀리겠지만 곧 정리한다.
정말로 전보영은 염려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이다.
문득, 공부 허도기가 펼쳐 보였던 검법이 떠올렸다.
허도기가 펼치는 검법을 딱 세 번 봤다.
세 번 모두 황제가 베푼 축하연에서, 황제의 권유로 검무를 펼쳐 보였다.
그때가 되면 흥겹던 연주도, 왁자지껄 떠들던 소리도 물을 끼얹은 듯 쫙 가라앉는다.
일절 잡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인은 물론이고, 무공을 모르는 문사들까지 눈과 귀를 집중시켜서 검무를 지켜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 천하제일무인이 검을 펼쳐 보이는 순간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진풍경일지도 모른다.
스읏! 착! 스으윽! 착!
검을 뽑고, 집어넣는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검을 뽑고 다시 집어넣는다. 검을 재빨리 뽑아서 빙글 휘두른 다음 천천히 검집에 넣는다.
허공부는 차분하게 검법을 펼쳐 나갔다.
물론 싸울 때처럼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속도보다 십 분의 일만 펼쳐 낸다.
그러니 검초를 전개하는 모습은 매우 완만하다.
검을 뽑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검집에 넣는 순간도 뚜렷하게 봤다.
무공을 모르는 무인들에게는 지루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장들은 눈을 부릅떴다. 느린 움직임 속에서 천하를 갈라 버리는 빠름을 읽었다.
저 검이 살검으로 변해서 나한테 들이닥치면 과연 막아 낼 수 있을까? 저런 검초와 마주 서면 몇 초나 버틸 수 있을까? 일검이나 막을 수 있으려나?
허도기가 전개하는 검초를 보다 보면 불안감이 치민다.
대체로 강한 무공을 보면 싸우고 싶다는 투지가 일어나야 하는데, 허도기는 그런 투지마저도 꺾어 버린다.
저 칼이 나를 향하지 않기만을!
이것은 조위 장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허도기의 검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그 검이 장군가를 향했다.
허도기에게 패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장군가의 팔군창법 또한 패배를 모르는 역전의 창법이다. 무수한 전장에서 수급을 수도 없이 취한 창법이 있다.
꾸욱!
조위 장군은 월극을 땅에 깊이 박았다.
“그놈의 달도 참 밝다.”
조위 장군은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았다.
허도기는 밤이슬을 밟으면서 걸어왔다.
그렇다. 땅을 밟지 않고 이슬을 밟으면서 사뿐사뿐 깃털처럼 가볍게 걸어왔다.
그가 걸어오고 있지만 사람이 걸어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바람 같군.’
조위 장군은 미간을 찡그렸다.
허도기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공을 감추지 않고 완전히 드러낸다.
그는 마치 부드러운 바람처럼 매우 유유하다.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슬을 밟을 때처럼 가볍게 톡톡 걷어차면서 다가온다.
이 순간, 조위 장군은 또 한 번 자식 조경 장군을 떠올렸다.
자식이 이자에게 죽었다. 그리고 자신마저 죽이겠다고 다가온다.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복수하기는커녕 되잡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은 병법을 사용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오직 허도기와 조위 장군의 무공만 남았다.
“왔군.”
조 장군이 먼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장군을 베어야 할 것 같아서.”
허도기도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같이 황상을 모실 수 있는 길로 들어서는 게 어떨지?”
“후후! 그러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정국 장군의 몸에 칼을 박은 건 나니까. 아! 장군이라면 그런 원한도 잊을 수 있겠군. 뭐 천하가 알아주는 충신이니까.”
“으음!”
조위 장군은 침음했다.
이 부분에 대한 선택은 이미 끝났다. 아니,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다. 허도기가 마음을 돌린다면 자식을 죽인 원한쯤은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다만, 허도기가 그럴 마음이 없을 뿐.
허도기가 말했다.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마음만 먹으면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걸 왜 사양해야 하는지 영 모르겠단 말이지.”
“사람이니까.”
“그런 막연한 소리는 하지 말고, 실질적인 말로 해 달라니까.”
“사람이면 지켜야 할 도리가 있지.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벌레나 다름없어.”
“에이, 뭔가 더 그럴듯한 말로 설득해야지. 조 장군의 말이 맞으려면 이 나라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어야 해. 황상에게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는 반고(盤古)의 피가 흐른다면 그 말을 믿지. 아닌가? 이 나라도 누군가에게서 찬탈한 건가?”
스읏!
조 장군은 월극을 잡았다.
야망이 있는 자와 충성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그 생각 차이는 결코 말로는 틈을 좁히지 못한다.
조 장군은 허도기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절대적으로 좁힐 수 없는 틈을 봤다.
“후후후! 이거 한 마디만 제대로 대답해 봐. 나보다 못한 자가 나를 부릴 때, 짓밟고 올라서면 안 되는 건가? 그만한 재력, 권력, 능력이 있어도?”
“나는…… 짓밟기보다는 복종하지.”
허도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베러 온 거야.”
스읏!
허도기가 검을 고쳐 잡았다.
“우리는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것을 지렁이라 부르고, 뱀이라고 부르고, 지네라고 불러. 온갖 이름으로 부르는데…… 정작 지렁이는 자기가 지렁이라고 불리는 줄도 몰라.”
스으읏!
조위 장군은 진기를 모아 월극에 집중시켰다.
허도기와의 싸움은 단 한 수로 끝난다. 초식을 두 번 쓰지도 못한다. 그러니 첫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허도기의 검을 피할 수 없다면 같이 죽는 쪽을 택하자.
허도기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충신, 역적. 어떤 소리가 듣고 싶나? 아! 벌써 충신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어떤 말이든 나랑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는 거. 정작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뭐라고 불리는 줄도 모르는 거. 혹시 아나, 후일 그들이 날 황제라고 부르고 조 장군을 시대조류도 몰랐던 한심한 노인네라고 부를지.”
“후후! 내 삶을 살다 보니 충신이라고 불릴 뿐, 충신을 고집한 적도 없다.”
“나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데 뭐가 잘못됐나?”
허도기가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