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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53화 (253/600)

#253화. 第五十一章 천무(天武)(3)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당신을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조위 장군은 마음속으로 단단히 결심했다.

허도기가 하는 말을 들으니 더 용서하지 못하겠다.

작게는 아들의 복수를, 크게는 나라를 생각해서 허도기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자, 이제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았으니까, 한 명은 죽어야지?”

“그러지.”

휘릭!

조 장군은 월극을 빙글 휘둘렀다.

월극에 깃든 힘을 점검한다. 공격할 부위를 찾는다. 감각적으로 공격할 방법을 떠올린다.

허도기는 검을 잡은 채 침묵했다.

허도기의 모습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부동심(不動心)이 보였다.

‘아!’

조 장군은 속으로 탄식했다.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칠 곳은 많지만, 어느 쪽을 공격해도 즉시 반격당한다.

휘릭!

장군은 월극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마음도 다잡고, 진기도 다시 집중시킨다. 억지로라도 뚫고 들어갈 틈을 찾아본다. 그때,

쉬이이이익!

두 사람을 향해서 매우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훗!”

허도기가 씩 웃었다.

조 장군도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일갈을 내질렀다.

“개입하지 마라!”

조 장군의 일갈에는 진력이 담겨있어서 다가오는 자를 제어하는 역할도 했다. 누가 되었든 조 장군의 음성을 들으면 당장 멈추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진력을 무시하고 빠르게 다가왔다.

“장군! 네 이놈!”

다가온 자는 조 장군과 허도기를 동시에 불렀다.

장군을 부를 때는 염려가, 허도기를 부를 때는 분노가 가득 담겨서 쏟아져 나왔다.

“건방지다! 나서지 마라!”

조 장군이 다시 일갈을 내질렀다.

“장군! 죄송하지만 명령을 받들지 못합니다!”

나타난 자, 왜살도 음성에 진력을 담아서 쩌렁 내질렀다.

왜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얼굴을 붉게 상기되었고, 두 눈에서는 핏줄기가 비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흔적이 역력했다.

왜살이 조 장군에게 부복하며 말했다.

“저놈, 제가 먼저 맡겠습니다.”

“명령이다! 나서지 마라!”

“그 명령! 거부합니다!”

왜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하게 말했다.

* * *

“물러섯!”

정동 무인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몸을 쭈욱 뽑아 올렸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이 냅다 날아들었다.

제삼궁대 궁수들의 연격술(連擊術)은 굉장히 뛰어나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자마자 즉시 손을 등 뒤로 돌려서 화살을 뽑아 든다. 그리고 다시 재운다.

타악!

화살이 목표에 박힐 즈음, 궁수는 두 번째 화살을 날린다.

굉장히 빠른 연격이다.

하지만 이것도 최선을 다한 게 아니다. 제삼궁대가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화살을 쏘아 내면 첫 번째 화살이 목표에 닿기 전에 다섯 번째 화살을 재울 수 있다.

화살 네 대가 한순간에 허공을 가른다.

타 타 타 탁! 타 타 타 탁!

화살이 소낙비처럼 퍼부었다.

정동 무인들은 병기를 들어서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역부족, 화살이 너무 많다.

“아아악!”

“크아아악!”

비명을 쏟아 내면서 쓰러지는 무인이 늘어났다.

요행히 앞사람 때문에 화살 공격에서 벗어난 자들은 이미 죽은 자를 집어서 방패로 사용했다.

날아오는 화살을 동료로 막아 낸다.

퍼퍼퍼퍽! 퍼퍼퍽!

화살이 살을 찢으며 틀어박혔다. 뼈를 뚫고 등 뒤에까지 시퍼런 화살촉이 쑥 튀어나왔다.

제삼궁대 화살은 파괴력이 매우 강하다.

순간, 한 명이 몸을 움찔거렸다. 동료를 뚫고 들어온 화살에 손등이 살짝 긁혔다.

“으으!”

정동 무인은 움직이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그 순간,

쒜에에에엑! 퍼퍼퍼퍼퍽!

그의 몸에 화살 십여 대가 일시에 꽂혔다.

‘악!’하고 비명을 쏟아낼 틈조차 주지 않고 순식간에 인간을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화살은 앞에서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전후좌우 사방에서 날아온다. 수백 대가 일시에 쏟아진다. 어떤 화살은 빗방울처럼 하늘에서 머리 위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크으으윽!”

정동 무인들이 한 명, 두 명 쓰러졌다.

* * *

왜살이 허도기를 향해 돌아서며 검을 뽑았다.

조 장군은 왜살을 말리지 않았다.

왜살이 오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이미 온 이상 싸움에 가담하는 것을 말릴 수 없다.

“주인은 충신인데, 수하는 충신이 아니군. 웬만하면 주인 말 좀 듣지 그래.”

허도기가 웃었다.

“저 소리 안 들려?”

왜살이 말했다.

외원에서 화살 소리가 콩 볶듯이 요란하게 들려온다. 비명도 끊이지 않는다.

소리만 들어도 어느 쪽이 도살당하는지 짐작된다.

“무슨 소리?”

허도기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네 수하, 다 죽고 있잖아.”

“수하? 무슨 수하? 난 수하 같은 것 없어. 뭘 잘 못 안 모양인데, 내가 이런 곳에 오면서 수하를 데리고 올 것 같아? 머리가 돌이라서 생각이 잘 안 돼?”

허도기가 여유 있게 웃으며 놀렸다.

제삼궁대는 싸움을 마무리하고 있다. 정동 무인 대다수가 이미 죽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쯤은 모두 전멸당했을 것이다. 화살이 저토록 강하게 날아간다면 살아날 수가 없다.

외원이 정리되면 제삼궁대가 내원으로 몰려든다.

조위 장군의 심복들이 내원으로 몰려들고, 무적 화살을 허도기에게 겨누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다.

허도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

하지만 허도기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시간이 무한정 있는 사람처럼 매우 여유로웠다.

사실, 왜살은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하면 제삼궁대와 외원 군졸들이 내원으로 집중된다.

지금까지는 내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나면 보고를 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온다. 그리고 침입자를 알게 된다.

제삼궁대의 화살이 허도기를 겨냥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또 있겠나.

조 장군을 죽이고자 하는 오늘 계획은 당연히 무산된다. 또한, 잘하면 허도기도 잡는다. 허도기가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제삼궁대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화살은 피해도 좋다.

허도기가 화살을 피해 낸다고 해도 화살을 피하고자 모종의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면 십분 승산이 있다.

허도기와 왜살은 서로 여유를 부렸지만, 여유의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왜살이 본심을 속이고 말을 이어갔다.

“듣자 하니 전보영도 쳤다던데, 이런 게 통할 것 같아?”

“왜살답지 않군.’

”뭐가 말이냐?’

“검을 쓰기 전에 말이 너무 많아. 뭔가 쫄리는 게 있든가, 아니면 꿍꿍이가 있든가. 후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말해 줄까? 싸움을 빨리 끝내는 게 좋아. 여기 있는 너희들만 죽느냐, 장군가 전체가 몰살당하느냐 하는 문제거든.”

“미친놈!”

왜살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믿든 안 믿든 싸움은 내 방식대로.”

허도기가 여유 있게 걸어왔다.

왜살은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끌기 위해서 마주쳐 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하지만 싸울 의사가 분명하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렸다. 진기가 깃든 검을 겨눴다. 검에서 진한 살기가 뭉클 피어나도록 살심을 돋웠다.

그런데 허도기가 왜살을 무시한 채 조위 장군을 향해 다가갔다.

타탁! 타타타타탁!

조위 장군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빠르다. 걷다가, 뛰다가, 신법을 펼쳤다.

쒜에에엑!

허도기가 조위 장군을 덮쳐 갔다.

허도기가 노리는 사람은 왜살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조위 장군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렇다고 급습을 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조 장군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왜살이 허도기를 능가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필시 협공을 취해야 한다.

일대일의 승부, 정당한 싸움은 논하지 않는다.

싸움에 걸린 보상이 ‘나라’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죽여야 한다.

그러던 차, 허도기가 공격해 왔으니 즉각 대응할 수 있다.

츠읏!

조 장군은 월극을 쳐들었다,

허도기는 신형을 허공에 붕 띄웠다.

그때, 왜살이 기회를 포착하고 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허도기가 먼저 신형을 날려서 몸을 허공에 띄웠다. 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나. 허공에서는 방향을 바꿀 수가 없다. 기습을 취하면 즉각 대응하지 못한다.

왜살은 협척검법을 펼쳤다.

검에 진기를 주입하고, 일시에 폭출시킨다. 검이 용수철처럼 퉁겨 나간다.

쒜에에엑!

보인다! 검신이 옆구리를 파고든다. 곧 피가 튀고 뼈가 갈릴 것이다. 순간,

철컥!

허도기 검이 검집에서 뽑혔다. 아니, 검신이 번쩍 빛을 토한다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휘리리릭!

허도기가 신형을 뒤집었다.

운룡번신(雲龍翻身),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는 평범한 신법이다.

그런데도 왜살은 허도기를 쫓아가지 못했다.

눈앞에서 신형을 비틀고, 방향을 바꾸어서 빠져나가는데, 그는 엉뚱한 곳을 향해 헛손질했다.

쒜에에엑! 퍼억!

검이 옆구리를 놓쳤다. 허공을 쳤다. 그런데도 살이 패는 둔탁한 파육음이 울렸다.

“컥!”

왜살이 뒤늦게 비명을 흘렸다.

어느새 허도기의 검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훑는다고 해서 길게 벤 것은 아니다. 붓으로 점을 찍듯이 콕 찌르고 지나갔다.

쿵!

왜살은 무너지듯 거칠게 떨어졌다.

두 발로 땅을 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몸이 옆구리부터 떨어졌다.

“컥!”

왜살은 다시 비명을 흘렸다.

이번 비명은 의식에서 나온 게 아니다. 무의식중에 자신도 모르게 흘린 비명이다.

허도기는 언제 검을 썼냐는 듯이 오연히 지켜봤다.

이번 일전은 조위 장군을 노린 듯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왜살을 노렸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취하면 어떤 식으로 공격이 전개될 것인지 이미 예상했다.

이런 점은 조위 장군도, 왜살도 생각하지 못했다.

싸움에 관한 한 허도기는 천재다.

조위 장군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땅에 쓰러지는 왜살을 쳐다봤다.

가슴에서 붉은 피가 꿀컥꿀컥 흘러나온다. 땅에서 샘물이 솟듯이 피가 솟아난다.

치명적이다. 도저히 살릴 수가 없다.

“이 친구…….”

조위 장군은 죽어가는 왜살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왜살은 말도 하지 못했다. 뱃속에서 역혈된 피가 목구멍을 막아 버렸다.

왜살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조위 장군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 눈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내 힘없이 옆으로 툭 떨궈졌다.

휘리릭!

조 장군이 월극을 고쳐 잡았다.

허도기가 고수인 줄은 알았지만, 왜살을 일 검에 쓰러트릴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일 검에 쓰러진다.

조위 장군은 왜살의 검공이 결코 자신보다 못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팔군창법과 협척검법은 비등하다.

왜살의 무재는 지극히 뛰어나서 능히 일가를 거느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밤이 길면 꿈도…… 후후! 길군.”

허도기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왜살에 이어서 또 다른 방해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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