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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55화 (255/600)

#255화. 第五十一章 천무(天武)(5)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났다.

“예상보다 잘 생겼군.”

“생각보다 키가 작으십니다.”

아걸은 조경 장군을 떠올렸다.

조경 장군은 키가 환칠했다. 덩치도 우람했다. 무거운 월극을 휘둘러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나왔으니 아버지를 보면 아들을,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조위 장군도 조경 장군처럼 키가 크고 몸이 우람할 줄 알았다.

조위 장군은 키가 작다. 하지만 몸은 단단하다. 눈매는 잔잔하지만 날카롭다. 인자한 면과 냉철한 면을 두루 갖췄다. 실수는 가족이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

조위 장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가? 아들놈보다야 훨씬 작지. 난 칭찬을 해 줬는데, 자넨 험담인가?”

“…….”

“후후! 농담이네. 왜살이 자네에 대해서 꽤 소상하게 말해 줬어. 전보영이 파악한 것과는 전혀 다른 면에서. 주로 인간적인 면을 많이 말했지.”

“별로 좋은 말이 없을 겁니다.”

“맞아. 오직 칼만 생각하는 우직쟁이라고?”

“칼을 모르니 칼만 생각할 수밖에요. 칼을 잘 알면 허도기처럼 욕심을 부릴지도 모르죠.”

“후후!”

조위 장군이 아걸을 빤히 쳐다보며 웃었다.

“차 들지.”

장군이 먼저 차를 들었다.

밖은 대낮처럼 불이 밝혀져 있다.

죽은 자들을 옮기고 일일이 신분 확인을 하는 중이다. 그래 봐야 나오는 게 없을 줄은 알지만, 조그만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샅샅이 뒤진다.

저들이 정동 무인이라는 사실은 안다.

장군가에서 찾고 있는 것은 탄명저주공의 흔적이다.

이 부분은 쉽게 찾아낼 것이다. 독분을 지닌 자가 있고, 탄명저주공에 휩쓸려서 몸이 많이 상해 있을 테니 주의 깊게 살피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허도기와의 관계도 알아내려고 한다.

만약 이 부분까지 드러난다면 장군가 입장에서 이번 침입은 실보다 득이 훨씬 크다. 허도기를 공개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물론 허도기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살을 자네한테 보냈을 때는 뒷일을 막아 주라는 거였는데, 저 친구가 명을 달리했으니.”

조 장군이 혀를 찼다.

“괜찮습니다.”

아걸이 침착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허도기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

아걸은 물론이고 조경 장군도 이번 침입 사건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못한다.

허도기는 장군가를 침입한 적이 없다!

분명히 허도기가 침입했지만,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못한다.

장군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지난밤에 그저 이상한 무인들이 급습해서 몰살당한 사실밖에 없다. 진공부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강호 무인들이다.

“허도기는 장군을 계속 노릴 겁니다. 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으니 다음에 오면…….”

아걸이 말끝을 흐렸다.

허도기는 이미 의중을 드러냈다.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이런 일쯤은 언제든 다시 벌일 수 있다. 정말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돌진한다면 제삼궁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쳐 올 것이다. 아니면 자객처럼 은밀히 숨어들어서 살검을 쓰거나.

허도기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장군이 말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날 죽이려면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둘이 아니니까. 그것보다는…… 이제는 공부가 자네도 노릴 것 같은데, 난 그게 더 걱정이야.”

“네.”

아걸이 짧게 대답했다.

날이 밝으면 허도기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다.

그 행동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장군과 아걸,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공격당할지 결정된다.

허도기가 어떤 용무로든 관직을 내려놓겠다고 하면 공격 대상은 아걸이 된다.

잠시 관직을 내려놓고 무림을 정비한다.

그럴 수 있다. 허도기가 무림을 정비하려 든다면 순식간에 정리할 것이다. 소축십검 같은 사람을 찾아낼 것이고, 성검문을 다시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동안 신경에 거슬렸던 자들은 모두 제거된다.

아걸, 취화원, 적랑대…… 그 외에 누가 되었든 신경 쓰이게 만든 자는 모두 죽는다.

허도기는 그런 일을 아주 우습게 해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은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허도기에게는 장난 같은 일이다. 대략 두어 달 정도면 무림을 다시 재정비해 놓을 수 있다. 잠깐 손대는 것만으로 마무리된다.

“만일의 경우, 괜찮겠나?”

조 장군이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도와줄 게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게 무림 일이다 보니 의외로 별로 없군.”

“괜찮습니다. 이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런가?”

“장군님 덕분에 취화원이 두 배 이상 강해졌습니다. 그거면 족합니다.”

“그거 외에 할 말이 있을 텐데?”

“제가 염려하는 바는 아실 것이고, 힘이 닿으신다면 취화원을 부탁드립니다.”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말게. 취화원이 음지에 있지만, 양지에서 움직일 수 있게끔 노력해 보지.”

“그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걸이 비로소 활짝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부탁하지.”

조 장군이 아걸을 쳐다봤다.

“네. 말씀하시죠.”

“만일 내가 먼저 당하면 전보영에서 사람을 보낼 거네. 그 사람을 따라가 주게.”

“…….”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내가 너무 부담을 줬나?”

“…….”

아걸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장군이 보낸 사람을 따라가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장군이 죽는 순간까지 염려하는 사람이 누구이겠나? 황상이다. 이 나라의 황제다.

황제와 무림인의 만남은 결코 끝이 좋지 않다.

“대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미 짐작했군.”

“네. 왜살이 저에 대해서 말했다니 아시겠지만 전 오직 칼만 봅니다. 일홀도만 추구합니다. 그 외의 어떤 것에도 눈길을 빼앗기기 싫습니다.”

조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대답은 상황에 맡기기로 하지. 난 사람을 보낼 테니, 따라가든 가지 않든 그때 결정하기로. 어떤 선택을 하든 자네나 취화원에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아걸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이제 본격적으로 허도기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만약 허도기가 공직을 버리지 않고 진공부에서 버틴다면 황궁 세력을 정비한다는 뜻이다. 군부를 먼저 건드릴 것이니 당연히 조위 장군이 공격 목표가 된다.

허도기는 어느 쪽이든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지금 이 상태로는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아 버렸다.

“그럼!”

아걸이 일어나서 두 손 모아 포권했다.

간발의 차이로 왜살이 죽었다.

아걸은 왜살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관계가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왜살이 조위 장군을 염려하는 마음은 절대적이다.

어쩌면 왜살이 살아가는 목적이 조위 장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을 간과했다.

왜살과 조위 장군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다. 혈육처럼 지내는 관계도 아니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아니다. 상하 관계가 분명하다.

상하 관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혈육처럼 끈끈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몰랐다.

이런 점을 몰랐다면 왜살이라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몰랐는데, 무엇을 이해했다고 말하겠나.

아걸은 왜살이 그토록 빨리 달려갈 줄 몰랐다.

조 장군은 명색이 장군과의 수장이다. 장군가는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다. 날고 기는 무인들이 수두룩하다. 장군이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위 장군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왜살과 비등하다고 봤을 때, 장군은 허도기의 상대가 안 된다. 장군의 무공이 왜살과 비슷하다면 장군, 왜살, 그리고 자신이 함께 협공을 펼쳐도 상대가 안 된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인가?

이것이 허도기의 검을 본 아걸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무턱대고 달려갈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장군의 목숨을 구할 것인지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왜살은 앞뒤 생각 없이 무작정 달려갔다.

자신이 달려가도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데, 그런 점을 알면서도 죽을힘을 다해서 달렸다.

아걸도 부지런히 뒤를 쫓았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서 쫓아가는 사람과 머릿속에 생각이 남아있는 사람은 달리는 속도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바로 그 차이가 간발의 차이다.

바로 그 차이가 왜살이 죽는데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허도기의 검은 촌음살검(寸陰殺劍)이다.

똑딱! 하는 순간보다도 더 짧은 순간에 삶을 끊어 놓는다. 정작 검이 튀어나오면 누구도 막지 못한다. 제삼자가 도와주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왜살은 그런 점을 알면서도 달려갔다.

자기 죽음보다도 조위 장군의 안위를 더 염려했다. 아니, 제 죽음은 애당초 고려 대상도 되지 못했다.

피보다 진한 관계!

조위 장군은 왜살이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한 삶이다.

다다닥! 다닥!

도취 의원이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왔다.

“같이 가요! 같이 가! 같이!”

의원이 아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가지 말고 잠시 기다리란다.

아걸은 걸음을 멈췄다.

“하악! 하악! 학!”

도취 의원이 아걸 곁에 이르자 허리를 굽히면서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 무슨 걸음이…… 금방 나갔다고 해서 바로 쫓아왔는데.”

아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원을 쳐다봤다.

왜살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사람이 장군가를 떠나 자신을 쫓아왔다.

이 사람도 장군의 명령 혹은 부탁을 받고 자신을 따라온 것이다.

왜살이나 도취 의원이나 장군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 도취 의원은 조위 장군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제 입으로 말했지만, 실은 목숨을 걸고 있다.

장군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서 목숨을 던져야 한다면 기꺼이 던질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녹선마황이라고 압니까?”

아걸이 물었다.

“녹선마황요? 그런 게 정말 있습니까?”

도취 의원이 놀란 눈으로 급히 물었다.

“녹선마황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견식이 무척 깊군요. 의원들 대부분이 모르는데.”

“그게 정말 있군요.”

“네. 있습니다.”

아걸은 할배를 떠올렸다.

할배는 왜살이나 도취 같은 사람이다. 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요, 은인이다.

왜살의 죽음을 접하자 문득 할배가 그리워졌다.

도취에게 할배 이야기는 할 수 없고, 그래서 할배가 키우는 녹선마황을 말했다.

“어디, 어디 있습니까? 구경 좀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겼나 보기만 해도 좋겠는데.”

도취 의원은 녹선마황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그게 좀.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해도 만날 수 없고, 그분이 절 찾아와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절 찾아오면 녹선마황 몇 개 부탁드리죠. 그걸로 절 살려 주세요.”

순간 도취 의원이 눈빛을 반짝 빛내며 말해다.

“아, 이러면 재미없는데. 모른 척하고 있어야 살려 줄 때 생색이 나는데.”

“후후!”

“그런데 녹선마황이 정말 있습니까?”

“그게 없었으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문파가 있습니다. 녹선마황이 있어도 채 십 년을 살기 힘든 지독한 문파죠. 후후! 솔직히 말해 봐요. 지금 제 몸에서도 주검 냄새가 풍기죠?”

“정 그렇게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아! 그래서 따라온 거 아닙니까. 제가 돌팔이처럼 보여도 죽은 목숨 한 번은 살릴 수 있다니까요.”

“하하하! 잘 부탁합니다.”

아걸은 도취 의원을 진심으로 신뢰했다.

조위 장군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목숨을 맡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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