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56화 (256/600)

#256화. 第五十二章 폭우(暴雨)(1)

뛰어난 추격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추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수와 고수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호위 무인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이나 홀로 떠다니는 식객이나 어떤 구분도 두지 않고 뒤를 밟을 수 있어야 한다.

감시는 싸움이 아니다.

싸움은 무공이 강해야 하지만, 감시는 눈치만 빠르면 된다.

물론 감시도 평상시 감시와 특별 감시는 분명히 다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일반 감시다.

특별 감시는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십여 명, 이십여 명이 일제히 나서기도 한다. 일정 지역을 둘러싸고 감시해야 해서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 감시를 할 때도, 추격 감시가 아니라 지역 감시로 전환할 때가 있다.

감시 대상자가 워낙 고수일 경우에는 뒤를 밟지 못한다.

이럴 경우 지역 감시로 전환해서 여러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감시한다.

허도기를 감시하는 일이 그렇다.

허도기는 워낙 고수라서 직접 뒤를 밟는 것은 위험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뒤를 밟은 적도 있지만 살아 돌아와서 보고한 사람은 없다.

허도기의 뒤를 밟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

허도기는 추격할 수 없다. 허도기보다 이목이 예민한 사람은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직접 감시에서 지역 감시로 방향을 바꾼다.

금릉에 포진한 삼백일흔두 명이 오직 한 사람만 주시한다. 보는 듯 안 보는 듯 슬쩍 쳐다보기만 한다. 그러면 허도기가 움직이는 동선을 찾아낼 수 있다.

“장군가에서 나왔습니다.”

“누가 죽었나?”

“왜살이라고 합니다.”

“왜살이? 음! 장군은?”

“무사합니다.”

“아걸은?”

“역시 무사합니다.”

“음! 제삼궁대에 떠밀려 나왔군. 화깨나 나겠는데. 장군가에서 나왔으면 진공부로?”

“아직 진공부에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지역 감시의 맹점이 이것이다.

어디서 나온 것은 알지만 다음 사람의 눈에 띄기 전까지는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중간에 본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장군가에서는 나왔는데 진공부에는 도착하지 않았다. 이러면 문제가 된다. 그러면 허도기는 어디에 있나? 삼백일흔두 명이 보지 못하는 곳에 있다.

금릉 전 지역, 삼백일흔두 명이 시시각각 보고하고 있다.

- 아직 안 보입니다.

-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 이쪽으로는 온 것 같지 않습니다.

허도기가 금릉을 돌아다닌다면 이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경계망에도 걸리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사정이 발생하면 보고조차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가족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다. 만일의 경우, 비밀을 전혀 몰랐다면 살 수도 있다.

그러니 허도기 같은 고수라고 해도 눈치채지 못한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직은 모릅니다.”

“그럴 수가 있나?”

“워낙 상식을 깨는 사람인지라. 계속 지켜보고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다면 찾을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입니다.”

“으음!”

적랑대주 임지정이 침음을 흘렸다.

입체적인 추격 방법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가 지금처럼 치명적인 실패를 만들어 낸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최우선으로 살펴야 할 사람을 놓쳤다.

“적극적으로 찾아볼까요?”

“아니! 안 돼! 내버려 둬!”

임지정이 급히 말했다.

사람을 풀어서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칫, 적랑대가 드러날 수도 있다.

임지정은 위험을 감지했다.

허도기의 움직임이 매우 은밀해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초일류 고수가 살수처럼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사실, 임지정은 어제부터 아주 심각한 위험 요소를 파악했다.

중원 무림이 조용히 움직인다. 아니,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사냥을 가장하기도 하고, 단체 수련을 핑계 삼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굉장한 위험 신호다.

이 신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때는 이미 살검이 목에 닿아 있을 것이다.

적랑대는 오랫동안 추살을 당해 왔다.

중원 전 무림이 적랑대를 찾아다녔다. 그런데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위험을 동물적으로,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대비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딱 그때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움츠러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약간 위험한 정도가 아니다. 굉장히 위험하다.

“절대로 움직이지 마. 꼭꼭 숨어 있어. 잘 알고 있겠지만 느낌이 이상하면 보고도 하지 말라고 해. 최대한 숨는다.”

적랑대주 임지정이 말했다.

* * *

분산, 잠적.

몽설은 아삼에게서 숨는 법을 배웠다.

엄밀히 말하면 조직을 숨기는 법이다. 적랑대가 살아온 방편이기도 하다.

적랑대는 무림에서 마인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일단 마인 집단으로 낙인이 찍히면 살아날 방법은 없다. 대를 이어서 추살 당한다. 모든 무인이 철천지원수인 양 죽이지 못해서 안달한다.

마인 집단에 속한 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 죽이기 좋아하는 놈들의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다. 애먼 사람을 죽여 놓고 적랑대 살수라고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강호 초출의 전공을 세워 주는 도구 역할도 하고, 무공을 실험해 보는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인 집단으로 낙인찍혔다는 말은 인간이 아니라 가축으로 전락했다는 말과도 같다.

적랑대는 그런 탄압 속에서 살아남았다.

“아!”

몽설은 단식했다.

몽설도 취화원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다. 한성에 꼭꼭 숨겨 놔서 누구도 찾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퇴빙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은 표면에 나와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어쩐지 평범하지 못한 자들은 은밀한 지하 밀실에 숨어서 계속 무공을 가다듬는다.

그 외에 어떠한 활동도 모두 중지했다.

이만하면 잘 숨지 않았나. 아니다.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삼에게서 숨는 법을 배우고 나니 정말 잘못 숨었다. 너무 환히 보이지 않나.

일단 먹는 입이 있다.

한 명이 활동하고 아홉 명이 숨는다고 하자. 매끼에 밥 열 공기가 축난다.

그러면 의심을 산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매달 쌀 한 가마씩 축이 난다면 누가 의심하지 않을까.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식주에 해당하는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문제다.

숨어 있는 자도 살기 위해서는 먹고, 입고 자야 한다. 이 부분을 추격하면 숨은 장소를 찾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한성에서 취화원을 찾고자 한다면 단박에 찾을 수 있다.

“퇴빙을 구사하든 못하든 일단 뿔뿔이 다 흩어 놨어야지. 지금은 이삭줍기 딱 좋잖아.”

가을 추수를 하다 보면 이삭이 떨어진다. 넓은 논에 한 톨, 두 톨 떨어진다.

넓은 땅에 조그만 이삭 하나 떨어졌으니 찾지 못할까?

찾는다. 너무 잘 보인다. 논에 떨어진 이삭처럼 잘 보인다면 웃으면서 주울 수 있다.

취화원에게는 한성이라는 도읍이 매우 크게 보일지 몰라도 줍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도 좁은 땅이다. 그런 곳에 취화원 식솔을 숨겨 놓은 건 이삭줍기를 해 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더 큰 지역에 더 넓게 흩트려 놔야지.”

“할아버지! 저 가 봐야겠어요!”

몽설은 조급함을 느꼈다.

“큿큿! 이제야 마음이 급해진 거야?”

“할아버지, 고마워요.”

“이것아!”

아삼을 소리를 빽 질러서 몽설의 주의를 환기했다.

몽설이 일어나서 뛰쳐나가려다 엉거주춤 주저앉았다.

아삼이 차분히 말했다.

“내가 왜 하필이면 지금처럼 신경 쓸 곳이 많을 때 이런 걸 가르쳐 주었겠냐?”

순간, 몽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삼은 적랑대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적랑대가 어떻게 숨는지, 어떤 방식으로 위장하는지 세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런 식으로 취화원도 숨으라는 말이다.

문파의 제일급 비밀을 왜 가르쳐 주었을까?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럼 혹시?”

몽설이 놀라서 되물었다.

“그 멍청한 놈이 너무 똑똑한 여자를 얻은 것 같아. 아무리 봐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리 돌아간단 말이야.”

아삼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밀서 뭉치 한 아름을 내놨다.

“갈 땐 가더라도 이건 읽어 보고 가. 취화원은 모든 활동도 접었잖아. 지금 강호상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허도기가 본격적으로 사냥을 할 것 같다.”

“사냥요?”

“읽어 봐.”

아삼이 일어섰다.

만약에 사냥이 시작된다면. 적랑대나 취화원은 같은 처지가 된다. 똑같이 허도기의 사냥 대상이 된다. 그래서 철저하게 숨어야 한다고 말해 준 건가?

“어디 가세요?”

“바깥바람 좀 쐬러. 인사하려고 기다릴 것 없다. 그거 읽어 보는 대로 바로 떠나.”

아삼이 밖으로 나갔다.

몽설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밀서들을 읽어 내려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어서고 싶다. 취화원이 풍전등화다. 꼭꼭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격이다. 몸통은 환히 드러낸 체 눈만 가리고 있었다.

허도기가 잡을 생각이 없었으니 살아남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결딴났을 것이다.

몽설은 밀서를 읽다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활검문!’

밀서에 활검문 이야기가 적혀 있다.

자연스럽게 자신과 아걸을 만나게 해 준 사건, 활검문 강조 암살사건을 떠올랐다.

바로 그 활검문이 한성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에게 취화원 척살 명령이 내려진 것 같다.

“아!”

몽설은 아삼이 왜 이걸 읽어 보고 가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괜히 장호정세나 알라고 갖다 준 것이 아니다.

적이 누군지 알면 싸우기가 쉽다. 몽설은 누구와 싸우게 될지 분명히 알았다.

밀서를 수집한 대로 박박 긁어서 갖다 준 것도 아니다. 읽을 양이 매우 많은데, 먼저 할배가 읽어 보고 몽설에게 필요하다 싶은 부분만 추려 낸 것이 이 정도다.

그러니 반드시 내용을 알아야 한다.

몽설은 밀서를 읽는 동안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웃기는 말이지만 밀서를 읽는 동안에 취화원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방향을 깨달았다.

‘됐어. 아직은 움직일 수 있어.’

아직 시간이 있다. 취화원을 끄집어내서 뿔뿔이 흩어 놓을 만한 여유가 있다.

한성을 향한 활검문의 움직임이 그리 빠르지 않다.

할배가 건네준 밀서들을 전부 다 읽었다.

취화원이 잘못 숨었다는 불안감은 깨끗이 사라졌다. 지금이라도 다시 숨으면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도 못 보네.”

몽설은 아걸을 떠올렸다.

아걸은 지난 밤에도 죽을 위기를 모면했다.

허도기와 세 번 부딪쳐서 세 번 모두 목숨을 부지했으니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중원에서 아걸처럼 운이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걸은 무인이다. 그것도 일홀문도다. 그토록 좋은 운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 내일? 언제든 아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런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아걸이 허도기하고 싸운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몽설은 아걸도 위험해졌다는 것을 안다.

취화원은 활검문이 노리지만, 아걸은 허도기가 노린다. 칼을 겨누는 상대가 너무 다르다. 취화원은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데, 아걸도 그럴까? 상대가 허도기인데?

“나중에 봐. 그때까지 꼭 살아 있어.”

쉬이이익!

몽설은 힘껏 치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