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57화 (257/600)

#257화. 第五十二章 폭우(暴雨)(2)

장준(張俊)은 삼부칠청 중에서도 노른자위라는 제일부 제일소(第一所) 소령(所伶)이다.

제일소 소속 관원은 서른 명에 불과하다. 삼부칠청 중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다. 하지만 소속 관원들은 하나같이 수(數)에 밝은 천재들이다.

제일부 제일소는 전보영의 예산을 관리한다.

전보영 일 년 예산을 받아서 각 부처로 집행한다. 예산 집행 순서에서부터 규모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니, 인원은 적지만 권위는 막강하다.

제일소 소령에게 밉보이면 자금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 일도 벌어진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우선순위를 뒤로 밀어 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예산이 삭감당하기도 한다.

장준이 소령을 맡은 이후에는 비교적 공평하게 배분되고 있어서 분란이 많이 잦아들었다.

장준은 누가 뭐라고 해도 뛰어난 소령이다.

그는 자신의 권위도 내세우지 않는다. 청에 나오면 묵묵히 집무실에 박혀서 일만 한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제일부 이인자다.

제일부 부장의 유고 시에는 즉시 부장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다.

“어젯밤에 부장님께서 암살당하셨습니다.”

장준이 청에 오자마자 들은 소리다.

“영주님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진시(辰時)까지 기다렸다가 연락이 없으면 바로 대리 영주 직을 수행하셔야 합니다.”

“대리 영주? 부영주님이 계시잖아?”

“부영주님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영주님과 부영주님이 동시에 변을 당하시면 제일부장님이 직위를 잇는데, 부장님도 변을 당하셨으니…… 지금은 소령님이 전보영에서 제일 윗분입니다. 일단은 부장님 집무실로.”

장준은 자신의 집무실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이끌렸다.

“지난밤에 실종되거나 살해된 사람들을 파악해.”

첫 번째 내린 명령이다.

“전체 회의를 소집한다. 소령 이상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두 번째 내린 명령이다.

장준은 모든 명령을 일사천리로 풀어냈다.

어젯밤에 전보영 수뇌들이 모두 암살당했다. 삼부장 칠청사가 일시에 죽었다.

부처마다 수석 소령들이 직을 잇는 중이다.

지난밤의 전모가 속속 밝혀졌다.

전보영 수뇌를 암살한 자들은 곧장 장군가도 들이쳤다. 그리고 모조리 몰살당했다.

장군가 제삼궁대는 전문적인 살인 군대다. 전보영처럼 녹녹하지 않았을 것이다. 침입자들이 탄명저주공으로 무장했지만 화살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살인자들은 수뇌만 제거했을 뿐, 예하 사람은 건드리지 않았다.

“모두 모였습니다.”

제이소 소령이 장준에게 보고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의 입장이었는데, 하룻밤 새에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음! 가지.”

장준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다.

“영주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제삼소 소령이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영주님이?”

장준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네. 다행스럽게도 영주님은 무사하셨습니다. 지금 집무실에 오셔서 상황 보고를 받고 계십니다.”

“알았다.”

장준은 다시 주저앉았다.

전보영주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이제 사태 수습은 영주 몫이다. 자신은 제일부장 위치에서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면 된다. 아마도 회의에 참석하라는 명령이겠지만. 그때,

쉬이익!

천정에서 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다.

키가 작고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다. 등에는 낫을 두 자루나 메고 있다.

“왜? 영주가 살아왔다니까 반갑지 않은가 보네?”

사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웬 놈이냐?”

장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사내를 쏘아봤다.

하지만 그도 머리가 뛰어난 사람, 방금 그에게 보고했던 제이소 소령과 제삼소 소령이 조용히 옆으로 물러서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사태를 파악했다.

‘되잡혔군.’

상황이 역전되었다.

전보영이 일시 뒤집히는 듯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영주님께서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했나?”

제삼소 소령에게 묻는 말이다.

“그렇네.”

제삼소 소령이 예전 동료로 말했다.

“이 자는 누군가?”

“굳이 말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영주님이 모셔온 사람이라고 하지.”

제삼소 소령의 눈가에 차디찬 한광이 흘렀다.

“풋! 영주님도 독한 데가 있으셨군.”

장준이 피식 웃었다.

설마 오자마자 전보영을 정리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잡아 놓고 사정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다짜고짜 척살이라니. 아니, 이게 원래 전보영의 본래 면목이다.

“그 새끼 참 말 많네.”

스읏!

키 작은 사내가 낫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쌍겸. 너무 설치지 마라.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 따위가 설치는 거야.”

스릉!

장준이 싸늘하게 말하며 검을 뽑았다.

전보영 사람치고 아걸과 같이 붙어 다니는 은거 무인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들이 공부 허도기와 싸우고 있어서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들은 얼마 전에 토족 전사들과도 싸웠다.

전보영은 그 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니 제일소 소령이 모를 리 없다.

“크크큭! 주둥이는 살아서.”

쌍겸이 낫을 들어 올렸다.

그의 낫에는 핏물이 묻어 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피를 봤다는 뜻이다.

‘일망타진?’

장준은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준, 자신만 발각된 게 아니다. 허도기 측근이 모두 참살당하고 있다. 지금 전보영 삼부 칠청에서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과 똑같은 일들이 진행 중이다.

모든 부처에서 배신자들이 솎아지고 있다.

“내가 몇 번째냐?”

장준이 쌍겸의 낫을 보며 물었다.

“세 번째. 이미 두 명이 골로 갔어. 제일부 제일소에서만 너까지 세 명이야.”

장준은 죽은 자들을 떠올렸다.

쌍겸이 누구를 죽였는지 알겠다. 제일소에 심복이 두 명 있는데, 그들이 먼저 갔다.

그러면 전보영에서 오늘 하루 죽는 자는 정확히 서른다섯 명이다.

허도기가 수뇌 여덟 명을 죽였고, 전보영주가 허도기 수족 서른다섯 명을 죽인다.

전보영에 피바람이 분다.

“감히 시골 촌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낫을 휘두르는 게냐!”

장준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제이소령과 제삼소령은 멀리 떨어져서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들도 무공을 펼칠 줄 알지만, 이번 싸움에는 개입할 의사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전혀 활로가 없지는 않다.

“이봐! 이래 봬도 내가 아걸에게 인정받은 몸이야. 아걸이 아무나 건드리지 않는 건 알지?”

쌍겸이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봤자 잡놈!”

“그래? 큭큭! 별 시러베 잡놈이 누구보고 잡놈이래? 상관 뒤통수나 치는 놈이 뭘 잘했다고!”

장준은 검을 귀 높이까지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면 손목이 바깥쪽으로 꺾인다. 또 손목이 고정된다. 검초를 펼치기 이상적인 자세가 된다.

귀령검법(鬼靈劍法)!

정도 무공은 아니다.

음유하고 악랄하며 검초를 전개하면 반드시 피를 부르기 때문에 사용이 금지된 사파 무공이다.

그가 맡은 임무는 예산이라서 무공을 펼칠 일은 없다. 하지만 전보영 사람치고 무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전보영은 업무상 온갖 종류의 무공을 알게 된다.

사파 무공이든 마공이든 강하면 수련한다.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무공을 수련해도 간여하지 않는다.

전보영만의 특권이다.

장준은 제이소령과 제삼소령이 보는 앞에서 지독한 사파 검공인 귀령검법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다.

악독한 무공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제길! 귀령검법을 보고 놀란 사람은 나밖에 없군. 좌우지간 이곳도 요상한 곳이야. 쯧!”

쌍겸은 전보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쒜에엑! 쒜에에에엑!

장준은 순식간에 십여 초를 떨쳐 냈다.

귀령검법은 부드러운 흐름을 중시한다.

상상 속에서 귀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물 흐르듯이 유유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는 데 필요하다면 탈골도 한다.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뼈를 꺾어서 흐름을 가속시킨다.

이런 방법은 매우 잔혹하다.

마주 선 상대는 흐름을 예측하지 못한다. 검이 들어올 수 없는 각도에서 꺾이기 때문에 ‘앗차!’하다가 검을 맞는다. 시전자는 한 번 싸우고 나면 탈골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검을 쓰지 못한다.

귀령검법은 다수를 상대로 펼칠 수 있는 검법이 아니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검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줄줄이 이어 나간다.

몸과 칼이 부자연스러우면 흐름이 끊긴다. 부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없애려면 진기를 몸과 칼에 고루 분산시켜야 한다. 그렇게 유연하고 부드러우면 허점도 사라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굳이 탈골까지 일으킬 필요는 없다.

중증 상태에서 적을 꺾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검을 수련했다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검법은 충분히 받아 낸다.

귀령검법을 상증으로 끌어 올린다.

검이 급격하게 빨라지면서 흐름도 뚝뚝 끊긴다. 억지로 흐름을 이어가야 할 순간이다.

쒜에에엑! 뚜욱!

검이 쌍겸의 옆머리를 노리면서 날아갔다. 그러다가 중간에서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심장을 쑤셨다.

이런 변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큭큭!”

쌍겸이 웃었다.

까앙!

장준이 쳐 낸 검은 어느새 낫에 가로막혔다. 순간, 물길이 둑에 막힌 듯 흐름이 끊겼다.

“후욱!”

장준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럴 리 없다. 이번 변초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 설혹 막았다고 해도 자신의 검에는 전신 진기가 밀집되어 있다. 철벽도 뚫을 수 있는 힘이다.

평범하게 펼쳐 낸 낫 한 자루로 전신 진기를 가로막는다고?

쌍겸, 강하다! 너무 강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또 다른 낫이 흐름을 끊고 파고들었다.

장준은 위험을 느끼고 즉시 상체를 비틀었다. 하지만 늦었다.

퍼억!

낫이 목동맥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쌍겸을 죽인다고 해도 전보영을 빠져나가기는 힘들다. 자신의 죽음은 이미 정해졌다. 이미 제일부장 집무실 주변에는 전보영 무인들이 쫙 깔려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제일부 소령인데 이름도 없는 놈에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정도는! 이런 놈 정도는!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다. 쌍겸은 일홀도가 인정한 놈이다. 아걸이 아무나 찾아다닌 게 아니다. 정말 강한 강자만 찾아다녔다. 그런 자와 싸워야만 발전이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쌍겸이 최강 고수 중 한 명이라는 것만은 사실이다.

“크윽!”

장준이 무너졌다.

쭈욱! 파아앗!

쌍겸이 목에 박힌 낫을 빼내자 핏물이 분수처럼 쫙 솟구쳐 나왔다.

“이제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제이소령이 쌍겸에게 말했다.

“큭큭!”

쌍겸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멀리 사라지는 쌍겸 모습이 가물가물해진다. 뚜렷하게 보였다가 흐릿해지기를 반복한다.

익히 알고 있던 제일부 관원 몇 명이 들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전보영에서 시신이 나오면 저들이 가져온 들것에 실린다. 뒷산으로 옮겨질 것이고, 넓은 구덩이에 던져진다. 그리고 불태워진다. 흔적도 남지 않고 깨끗이 소멸한다.

“큭큭!”

장준은 피가 솟구치는 목을 움켜잡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빨리 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목숨이 길게 이어진다. 곧 죽을 것 같다가도 다시 정신이 돌아온다.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경련을 일으킨다.

제일부 관원들은 제일소령 장준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다. 도와주지도 않고 멀거니 옆에 서서 숨이 떨어질 때까지 지켜본다.

“끄으윽! 끄윽!”

장준은 마지막 경련을 일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