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第五十三章 서전(緖戰)(2)
감시하는 눈들이 떨어져 나갔다.
적랑대는 은랑(隱狼)이라고 부르고, 전보영은 세작(細作)이라고 부르며, 취화원은 녹사(綠蛇)라고 부르는 감시자들이 일제히 떨어져 나갔다.
실제로 감시자들이 지켜보고 있는지 아닌지는 감시하는 단체나 감시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그래도 기필코 알아내야 할 상황이라면 눈치로 잡아채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은 감시자도 서툴게 행동하지 않는다. 감시자는 날이 갈수록 더 은밀해진다.
길에서 과일을 파는 과일 행상조차도 누군가의 감시자일 수 있다.
이상한 말을 해 보면…… 내 아내가 나를 감시하는 첩자였다고 말하면 세상은 ‘그래?’하면서 놀란다. 그리고 믿는다. 말도 안 되지만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길에서 엿을 파는 엿장수가 첩자라고 하면 믿지 않는다.
에이, 그렇게 망상이 심하면 어떻게 살아? 그런 식이면 세상 모든 사람이 첩자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감시자들은 떨어져 나가면서 아걸에게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니 곁에 붙어 있는지, 떨어졌는지 알 방법이 없다. 어떻게 알겠나, 그 세상을.
그런데도 감시망이 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가는 사람이 확연히 줄었다.
번잡한 길을 걷다가 사람이 뜸한 길을 걷는 것처럼 갑자기 사람이 없어졌다.
늘 주변에 서너 명씩은 얼씬거렸는데, 아무도 없을 때가 많다.
확실히 사람이 줄었다.
‘모두 이해해 줘서 고맙고.’
많은 사람을 떠올랐다. 전보영주도 생각나고, 얼굴도 보지 못한 임지정도 떠오른다. 지금쯤 화를 이기지 못하고 길길이 날뛸 할배 모습도 연상된다.
또 새침해져 있을 몽설도 보인다.
아니, 몽설은 새침해져 있지 않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낼 것이다. 허리에 손은 얹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빨리 말하라고 다그칠 거다.
사실대로 말할까? 그러면 그런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야지, 왜 숨기고 있었냐고 화낼 것이다.
이상하게 잘한다고 하는데 몽설에게는 늘 야단만 맞는다.
“후후!”
아걸은 몽설을 생각하면서 실소를 흘렸다.
그녀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온다.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닌가.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워워!”
아걸은 고삐를 당겨서 왼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소를 몰았다.
금릉에는 황궁이 있다.
군사,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중원 그 어느 도읍보다도 중요한 곳이다. 금릉의 중요도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금릉에는 수비군이 있고, 금릉 주변에 황궁에서 직접 담당하는 요새가 빼곡하다.
또 하나, 금릉 주변에는 군대만 이용하는 전용 도로가 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침투 혹은 기습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많은 군인을 동원해 길을 닦아 놓았다. 주로 산이나 강가에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군사 목적으로 만든 길이다.
이 길은 민간인들이 알지 못한다.
금릉 사람 중에는 이 길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또 설혹 길을 알아도 섣불리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함정이 많아 험한 산길보다 위험해서다.
군에서는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 이 길에 독사와 맹수를 풀어놨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흘리고, 일부러 깎아지른 벼랑 쪽으로 길을 내기도 했다.
길을 알지 못하고 들어서면 죽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길을 만든 것이다.
더욱이 길을 만든 초창기에는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 감시병까지 세워 놓기도 했었다.
군도(軍道)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출입 통제 도로다.
하지만 지금은 길이 많이 바뀌었다.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 놓았어도, 평화가 지속하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도로인지 숲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길이 망가졌다.
아걸은 전보영에서 군도가 그려진 지도를 찾아냈다.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는 군사용 지도다.
전보영 관원은 인근 지도를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대뜸 이 지도를 내밀었다.
아걸의 뜻을 간파한 전보영주의 배려다.
‘이걸 잘 이용하면!’
어쩌면 허도기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걸은 그 즉시 우마차를 생각해 냈다.
말도 수레를 몰 수 있다. 소가 끄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산도 소보다 잘 탄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우마차를 선택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데는 우마차가 훨씬 낫다. 금릉이 시골이라면 화려한 마차가 시선을 끌겠지만, 번화한 도읍에서는 허름한 수레가 더 시선을 잡아당긴다.
“하앗!”
아걸은 수레를 끄는 소에게 힘을 내라고 소리쳤다.
소가 산을 꽤 잘 올라간다. 속도 면에서 말이 끄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수레를 끌지 않으면 말이 훨씬 빠르겠지만, 수레를 묶어 놓으면 거의 똑같다.
삐걱! 삐걱! 삐걱!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길을 굴러갔다.
군도는 사람 손이 타지 않아서 수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군데군데 가시덤불도 있고, 덩굴줄기가 도로를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이건 길이라고 할 수도 없겠는데.’
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엉망이라서 그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산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다만 수레 하나가 지나갈 만큼 폭이 넓어서 사람이 만든 길이라는 것을 알겠다. 만약 노폭(路幅)조차도 좁았다면 지도를 잘못 본 게 아닐까 하고 의심했을 것이다.
“워! 워!”
아걸은 유유히 산길로 소를 몰았다.
으적! 으적!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는다.
마차는 멈췄다. 아걸은 수레에 누워서 팔베개를 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길을 가다가 잠시 쉰다.
휘이이잉!
산바람이 나뭇잎을 쓸고 지나갔다.
매우 한가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허도기가 당장 오늘 한 명을 죽인다고 했는데, 아걸의 모습에서는 어떤 긴장도 엿보이지 않는다.
투툭!
산 위에서 돌이 굴러떨어졌다.
산짐승이 지나가다 돌멩이를 건드렸는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무너진 부스러기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아걸은 돌이 굴러떨어져도 꿈쩍하지 않았다.
드르릉!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걸이 잠들었나?
아걸은 수레에 두 발을 모았다. 발가락 끝이 수레 끝부분에 걸쳐져 있다.
‘어떻게 할까?’
아걸은 고민 중이었다.
마차를 괜히 멈춘 것이 아니다. 한가롭게 하늘이나 쳐다보려고 멈춘 것도 아니다.
악!
매우 짧은 비명이 터졌다.
귀를 자세히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소리였지만, 아걸은 분명히 들었다.
그 비명도 괜히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아걸은 수레를 몰고 오면서 산길에 철질려(鐵蒺蔾)를 뿌렸다.
이것 역시 전보영에서 취한 것인데, 무림에서 사용하는 철질려보다 절반 정도가 작다.
걷거나 달리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찔리는 것이 아니라 가시에 박힌 듯 따끔거리기만 한다. 하지만 철질려에 독을 발라 놓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아걸은 독을 바르지 않았다.
독으로 적을 잡을 생각은 없다. 또 독으로 잡는 것은 허도기와 싸우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할 수 없지. 뒤쫓아 온 당신 잘못.’
타악! 쉬잇!
아걸은 발끝으로 수레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엇!”
상대방이 깜짝 놀라서 고함을 내질렀다.
역시 어리석다. 전문적인 살수나 간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민간인일 것이다. 그래서 수레를 멈추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벨까, 말까 하고.
쒜에에엑!
허공에서 칼바람이 일어났다.
그러자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은신해 있던 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도주하려고 했다.
상대방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칼을 봤다. 너무 강하고 빨라서 감히 막지도 도주하지도 못한다.
그는 엉겁결에 팔을 들어서 칼을 막으려고 했다.
팔로 칼을 막아? 어림도 없다.
이런 어림도 없는 행동을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아주 종종 사용한다.
쒜에에엑! 퍼억!
반철도가 팔을 잘랐다. 동시에 머리까지 격타했다.
퍼억!
상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걸은 빠른 죽음을 위해서 일부러 치명적인 부위를 격타했다. 칼이 들어가는 즉시 정신을 잃는다. 아픔도 느끼지 못하면서 순간적으로 절명한다.
아걸은 반철도에 묻은 피를 옆에 있는 나무에 흩뿌렸다.
일부러 피의 흔적을 남겼다.
뒤따라오는 자가 흔적을 봐야 한다. 그리고 허도기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자를 내버려 두면 허도기가 바로 따라붙는다.
이 자를 죽였으니 이제 다른 자가 따라붙을 것이다. 추격자가 죽은 사실은 보고될 것이고, 이후에는 무인이 투입된다.
“후우!”
아걸은 죽은 자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일반인은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악!”
짧은 비명이 들렸다.
“워!”
아걸은 천천히 소를 멈췄다.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지나간다.
분명히 방금 짧은 비명이 들렸는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하다.
아걸이 지나온 길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길게 자란 풀들이 수레바퀴에 부딪힌다. 쓸리기도 하고 밟히기도 한다.
바퀴에서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움직임이 느린 수레를 타고 산길을 오르지만 실은 상당히 많은 소리가 터진다.
추격하는 자들은 이 소리를 이용한다.
수레가 삐걱거릴 때 발을 내디딜 수 있다. 풀이 마차에 밟힐 때, 또 한 걸음 움직일 수 있다.
마차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이용하면 아주 쉽게 추격한다.
풀이 높이 자라 있는 것도 추격자에게 유리하다. 여차하면 몸을 낮게 숙인다. 자연 은폐다. 시력이 아무리 밝아도 찾아내기 곤란하다. 인간 냄새를 맡는 자라면 모르겠거니와.
그래서 철질려를 뿌려 놓는데, 이건 피하기가 무척 어렵다. 철질려까지 피하려면 땅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걸어야 한다. 한 걸음 내디디고 살펴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아걸은 비명을 명확하게 듣는다.
철질려를 뿌린 당사자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비명 속에서 위치까지 찾아낸다.
“후우!”
아걸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아걸은 천천히 비명이 들린 곳으로 걸어갔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안다. 풀숲에 숨어 있지만, 사실은 진작 드러났다. 철질려를 뿌려 놓은 곳에서 비명을 흘렸는데 위치를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저벅! 저벅!
아걸이 거침없이 걷자, 상대방은 더 깊이 숨을 죽였다.
상대방은 무인이 아니다. 풀숲에 몸을 숨기지만 은신술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숨을 줄은 안다. 어떻게 하면 맹수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안다.
엽사(獵師)가 아닐까 싶다.
무인은 아니지만, 허도기에게 고용되어 뒤를 밟은 이상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 자신이 이곳에 분명히 존재했다는 흔적도 남긴다.
쉬이이익! 퍼어어억!
반철도를 휘둘러서 풀들을 잘라 냈다.
아주 강한 힘으로 수림을 쓸어내렸다. 이제 상대는 조급해진다. 가만히 있으면 풀을 베는 칼에 베일 것 같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든다.
“자, 자, 잠깐!”
추격자가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곧바로 뒤돌아서서 있는 힘을 다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스읏! 스읏! 스읏! 휘리리리링!
아걸은 반철도를 크게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째에 휘도는 탄력을 이용해서 반철도를 던졌다.
수림을 베면서, 반철도로 살상하면서 확실히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쒜에에엑! 퍼억!
반철도가 사정없이 장한의 등을 격타했다.
칼이 등을 뚫고 들어가 가슴 앞까지 삐져나왔다.
아걸은 걸어가서 반철도를 뽑아냈다.
이제 두 명 죽었다. 오늘 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아걸은 무심히 수레로 돌아와 다시 고삐를 당겼다.
“이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