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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63화 (263/600)

#263화. 第五十三章 서전(緖戰)(3)

우마차는 동네 뒷산 같은 야트막한 둔덕을 네 개나 넘었다. 그리고 드디어 깊은 산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세 명을 더 죽였다.

뒤쫓는 자를 다섯 명이나 죽였지만, 무인은 없었다. 모두 인근 지역에서 발탁된 자들이다.

무엇이 당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가!

죽은 자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지 정말 묻고 싶다.

허도기가 좋은 점도 있다. 그는 억지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일을 잘못하면 처벌은 강하다. 하지만 처음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억지로 몰아 붙이지 않는다.

할래? 하기 싫으면 말고.

자신의 손에 죽은 자들은 자발적으로 이 일이 뛰어들었다.

사실 물어볼 것도 없다. 탐욕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허도기가 내민 재화 혹은 다른 것에 바쳤다. 그러니 칼에 맞아서 죽는다고 해도 억울해하면 안 된다. 사실, 무인의 뒤를 쫓는다는 것은 언제든 칼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은가.

‘지금쯤이면 허도기에게 보고됐을 것이고.’

이제 두 번째 움직임을 보인다.

“이럇!”

아걸은 고삐를 당겨서 소를 큰 산으로 몰았다.

훅! 훅!

소가 하얀 거품을 내뿜는다. 입으로는 침을 줄줄 흘린다. 그러면서도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뚜벅뚜벅 산길을 걸어간다.

아걸은 수레에서 내려 소 옆을 걸었다.

“힘들지?”

소를 다독거렸다.

아걸도 숨을 헐떡일 정도로 경사가 심한 산이다.

이런 길이니, 기습하기가 쉬울 것이다. 누가 이런 산을 기어오를까 싶다. 민간인들이 얼씬거리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렇다. 산에 물도 없고, 흙은 퍽퍽하고…… 정말 힘든 산이다.

“후욱!”

아걸은 팔 부 능선에 올라서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제 오르는 길은 끝났다. 정상은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군도는 정상으로 향하지 않는다.

팔부능선을 타고 옆으로 휘돈다. 그리고 비로소 산에서 내려간다.

힘든 길은 다 끝났다. 지금부터는 편하게 타박타박 걸어 내려가도 된다.

군도답게 은폐는 확실하다.

숲길 사이에 길을 뚫어 놓아서 사람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전보영이 왜 이 길을 아끼는지 알겠다.

자신의 뒤를 쫓는 자들은 인근 지역 출신들이니 산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아걸이 걷는 이 길은 그들조차도 처음 밟는 땅일 수 있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 왔어. 조금만 더 가자.”

아걸은 소의 등을 다독거렸다.

갈림길이 나왔다.

군도는 왼쪽 길과 오른쪽 길로 갈린다. 왼쪽 길은 산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산을 빙글 돌아가는 길이다. 하산하려면 백 장 정도를 더 나아가야 한다.

아걸은 소를 멈춰 세웠다.

“됐다. 수고했어. 그런데 잠시 있어 줘야겠다. 주변에 풀이 많으니까 뜯어먹고 있어.”

아걸은 반철도를 들고 돌아섰다.

“나와라.”

나올 리 없다.

다섯 명이나 아걸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시신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지나왔는데, 나오란다고 순순히 나올 수 있나. 버틸 때까지 버틸 것이다.

“나오지 않으면 죽는다.”

아걸이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나무 뒤쪽에서 몸이 단단한 사내가 쭈뼛거리면서 나타났다.

아걸이 정확히 그가 숨어 있는 곳을 보면서 소리쳤다. 두 눈이 나무를 쏘아보았다.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 나가도 죽을 터이지만, 나가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는다. 차라리 나가서 살려달라고 애원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당신은 운이 좋군.”

사내는 아걸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추격이 발각되었는데 운이 좋아?

아걸이 사내 앞에 와서 섰다.

“무인은 아니고. 뭐 하는 사람?”

“따, 땅꾼. 땅꾼입죠. 이산, 저 산 돌아다니면서 배, 뱀을 잡는. 고, 공자 뒤만 밟으면 황금 이십 냥을 준다고 해서. 벼락부자 한번 돼 보자는 생각에서…….”

땅꾼이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사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땅꾼이 맞다.

허도기는 인근 지리에 능통한 사람을 수색해서 이번 감시에 붙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몇 명이 죽어 나가든 상관없다는 거다. 이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지만.

확실히 약초꾼이나 땅꾼, 이런 사람을 써서 감시하면 쉽기는 하다.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이십 냥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목숨보다 귀중합니까? 가세요.”

“가, 가도 됩니까? 호, 혹시 뒤에서 칼을 던지지는…….”

“마음이 변하면 또 모르죠. 칼을 던질지도. 어쩌면 지금 칼을 쓸지도 모르고.”

사내는 아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날려서 산을 치달려 내려갔다.

달리는 속도가 비호같다. 정말 산을 잘 탄다.

이 사내는 정말 운이 좋다. 다른 사내들은 허도기에게 길 안내를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무인 영역이다. 땅꾼이 가서 무인을 불러와야 한다.

아걸은 수레로 돌아와서 목관을 끌어내렸다.

“자, 수고 좀 해.”

아걸은 소가 계속 걸을 수 있게끔 고삐를 바짝 당겨 수레에 묶었다. 그리고 소의 엉덩이를 쳤다.

“이럇!”

소가 수레를 끌고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소는 멀리 가지 않는다. 백 장 정도 더 걷다가 하산하는 길이 나오면 멈출 것이다.

딱 그 정도만 더 가면 된다.

아걸은 주위를 살피다가 나뭇잎이 무성한 느티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 목관을 잘 걸쳐 놓았다.

이제 쉰다.

쉬이이잇!

세 사람이 날아왔다.

이들은 무인이다. 먼저 산길을 달려 내려간 땅꾼처럼 체력을 바탕으로 산을 타지 않는다. 신법을 전개한다. 매우 가볍고 부드러운 신법이다.

“갈림길이 맞는군.”

무인이 말했다.

갈림길이 아니었다면 계속 땅꾼을 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갈림길에서는 판단이 필요하다. 어느 쪽으로 이동했는지 빠르게 보고해야 한다.

“이거.”

무인 한 명이 땅에서 수레바퀴 자국을 찾아냈다.

“가!”

그 말에 세 명 중 두 명이 수레바퀴 자국을 쫓아서 오른쪽으로 치달렸다.

뒤에 남은 한 명, 그는 아무 흔적도 없는 왼쪽 길로 달려갔다.

치밀한 자들이다.

오른쪽 길로 간 자들은 대략 일다경 후에는 수레를 찾아낼 것이다.

아걸이 없다는 것을 알면 다시 돌아올 것이고, 세 사람이 모이기까지 대략 반 시진이 소요된다.

아걸은 목관을 나무에 걸쳐 놓고 왼쪽 길을 향해 신형을 쏘아 냈다.

스으으읏!

아걸이 앞서가는 사내를 보면서 천천히 뒤쫓았다.

앞서서 달리는 자는 자신이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치달렸다.

‘낯선 신법.’

아걸은 상대방이 펼치는 신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아삼과 함께 중원 전역을 떠돌면서 온갖 무공을 거의 견식 했다. 하지만 그 속에 사내가 펼치는 신법은 들어있지 않다. 처음 보는 신법이다.

상대방은 한참을 달리다가 이상한 느낌이 든 듯 멈춰 섰다.

아무리 달려도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풀이 매우 높이 자라서 흔적을 찾아내기가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이 길로는 누가 지나간 것 같지 않다.

사내가 돌아섰다. 그리고 아걸과 눈이 마주쳤다.

“엇!”

사내가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아니, 그 순간 어느새 검을 뽑았다.

차앙!

검을 뽑는 소리가 매우 날카롭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내는 어느새 품에서 화탄을 꺼내 허공에 쏘았다.

푸아아아악! 퍼어엉!

파란 하늘에 붉은 화탄이 터졌다.

“후후후!”

사내는 음침하게 웃었다. 검도 자신 있게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재빨리 사방을 훑었다.

“도주할 곳은 없어,”

아걸이 사내에게 말해 주었다.

“건방진 놈! 누가 도주로를 찾는다고! 넌 네 무공이 제일 잘난 것 같지? 공부 앞에서는 숨도 못 쉬는 놈이!”

휘리링!

아걸은 반철도를 휘휘 휘둘렀다.

“네 무공은 성검문 무공이 아닌데, 어디지?”

“그런 건 저승사자에게나 물어봐!”

사내가 잔혹하게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내는 거침없이 아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쒜에에엑!

검이 매우 날카롭다. 하지만 쾌검을 잘 쓰는 나통이 보더라도 웃을 정도로 느리다.

문제는 검이 아니다. 아걸은 사내의 손이 순간적으로 품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을 봤다.

‘암수!’

아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기는…… 상대가 안 되는 줄 알면 어떤 방법이라도 생각해야겠지. 손 놓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암수라고 해도 상대에게 통하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

사내는 아걸 곁에 이르자 손에 들고 있던 분말을 확! 터트렸다.

파아앗!

하얀 분말이 아걸을 향해서 뿌려졌다.

순간, 아걸은 반철도를 무서운 속도로 휘둘렀다. 사내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허공을 향해서 풍차처럼 빙빙 휘둘렀다.

파르르르릉!

허공에서 거센 광풍이 일어났다. 미친 듯이 돌개바람이 일어나 사내가 터트린 분말을 쓸어 냈다. 그리고 오히려 바람 방향을 바꿔서 사내에게 덮어씌웠다.

“아아아아악!”

사내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얀 분말은 사내의 살을 파고들었다. 살에 닿는 즉시 용암처럼 살을 태우더니 이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악!”

사내가 마구 땅을 뒹굴면서 비명을 쏟아 냈다.

살이 썩는다. 살이 타들어 간다. 흘러내린 핏물이 금방 검은색으로 변색한다.

악독하기 그지없는 부시독(腐屍毒)이다.

‘이놈들! 상종할 눈들이 아니다!’

아걸은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부시독을 거침없이 터트리나. 허도기와는 어떤 관계인가.

“음!”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신음뿐이었다.

쉬익! 쉬이이이잇!

오른쪽으로 수레를 따라갔던 자들이 뒤늦게 왼쪽 길로 돌아왔다.

그들은 화탄이 터진 것을 보았다. 아걸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걸과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와 부딪쳤다면 이미 죽었다.

그들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아걸을 뒤쫓기 위해서 달려간다.

쉬이이잇!

그들은 급하게 달려가다가 동료의 시신을 발견했다.

“엇!”

그들이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물론 시신은 손대지 않는다. 팥죽을 끓일 때처럼 살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메케한 냄새가 코를 마비시킨다. 주변에 흐르는 냄새만 맡았는데도 두통이 치민다.

“화독산(火毒酸)을…… 어떤 상황이기에 화독산을 뒤집어쓴 거야?”

두 명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쪽으로 간 건 확실해. 방금 죽었으니까 놈은 바로 앞에 있어. 조심해서…….”

무인이 말을 하던 도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왼쪽 숲을 바라봤다.

이상한 예감? 맞다. 아걸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을 죽인 곳에서 그들 두 명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즉시 좌우로 갈라져서 도주했다.

한 명은 왔던 길로 되돌아갔고, 다른 한 명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왼쪽 길로 달려갔다.

아걸은 왔던 길로 돌아가는 자를 향해 반철도를 전개했다.

순간적으로 몰안이 일어나고, 도신일체가 이루어진다. 몸과 칼이 하나가 된다.

타앗! 쒜에에엑!

아걸의 신형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한순간에 허공을 부웅 갈랐다.

허공을 벤다. 공기를 벤다.

검법 중에 물에 깃든 달을 베는 수월검법(水月劍法)이 있다.

물이 흔들리지 않게 물속에 드리워진 달을 베는 것이다.

물론 칼로 물을 치는데 물이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 베든 물이 흔들린다. 물을 지나쳐야 달이 베어진다. 하지만 수련을 깊이 하면 찰랑거리는 정도가 잦아진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는 정말 물을 건드리지 않고 달을 벤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그런 검초로 사람을 벨 때 지극히 빠르고 정교하며 아름다운 검법이 된다.

아걸의 반철도가 그런 그림을 그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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