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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64화 (264/600)

#264화. 第五十三章 서전(緖戰)(4)

그의 원래 별호는 기령흑후(機靈黑猴)다. 약삭빠르고 속이 검은 원숭이라는 뜻인데, 언제부터인가 기령이라는 말이 빠지고 흑후라는 말만 남았다.

그는 다리가 유난히 짧다.

키는 보통인데, 상반신과 비교하면 하반신이 매우 짧은 편이다. 그러면서도 팔은 길다. 손을 축 늘어트리면 손가락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다.

원숭이 후(猴)는 신체 특징을 따온 말이라서 당사자에게는 상당히 듣기 거북한 말일 수도 있다. 아마도 원숭이를 볼 때마다 흑후가 생각날 것이다.

흑후는 다리가 짧아서 걷거나 달리는 모습이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이런 모습 때문에 어려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는 것쯤은 익히 짐작된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다리가 짧다고 해도 남들보다 빠를 수 있다.

신법이라는 마술은 짧은 다리를 가지고도 남들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신법을 배우자.

그동안 놀린 놈들은 어떻게 할까? 당연히 가만두면 안 되지. 우선은 실컷 놀리게 내버려 두는 거야.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높게 올려놓은 다음에 뚝 떨어트리는 거야.

신체적 불균형이 흑후를 신법의 달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마음속 깊숙이 잠재된 복수심, 세상에 대한 증오가 그를 속이 검은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흑후는 올바르게 산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하! 이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흑후(黑猴)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눈앞에 시신이 세 구가 있다.

추혼삼마(追魂三魔)는 추격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고수다.

무공 고수는 아니지만, 추격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수다. 단연 일급이다. 추격 경험이 많고, 다양한 추격술을 구사하는 노련한 추포꾼이다.

이들이 점찍어서 빠져나간 자가 없다.

추격에 몸담은 게 이십 년, 그동안 단 한 번도 실패한 전례가 없다는 점이 이들의 능력을 대변해 준다.

이러니 추격에 관해서는 정사마 모두가 인정해 주고 있다.

그런 추혼삼마가 추격에 실패했다. 시신이 되어서 볼품없이 널브러져 있다.

한 구는 화독산에 당해서 살이 완전히 녹아 버렸다. 독기가 뼈까지 침투해서 하얀 뼈를 검게 물들였다.

검은 해골.

흉물스럽다. 만지는 것은 고사하고 보기만 해도 독기가 스며들 것 같아서 멀리하게 된다.

다른 두 구는 칼에 맞았다.

한 명은 도주하다가 당했는지 등이 베였다.

오른쪽 어깻죽지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일직선으로 아름다운 혈선이 그어져 있다.

이상하다. 사람을 죽인 도흔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거 면도칼로 썬 것 같지?”

흑후가 말했다.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흑후 곁에는 네 명이 더 있는데, 모두 바짝 얼어 있다.

“상처가 아주 반듯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반철도는 매우 강하고 투박한 칼인데 면도에 베인 듯 상처가 가늘고 좁아. 이 정도 칼이면 도신(刀神) 아냐?”

이번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큿큿! 이놈은 도주하다가 달리던 그대로 무너졌네. 아마 비명도 지르지 못했을걸? 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나 혼자 주절거리려니까 영 심심하잖아.”

“네.”

그제야 곁에 있던 자들이 대답했다.

흑후는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한 듯, 그들의 대답을 귓가로 흘려버렸다.

원래 대답 같은 것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이놈은 어디서 죽었다고?”

흑후가 목이 반쯤 걸린 시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서 사십 장 정도 가면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핏자국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길이 막힌 길이라 이거지?”

“네.”

흑후는 풀로 가득 덮인 길을 쳐다봤다.

세 명 중 한 명은 이곳에서 죽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죽이고는 이곳으로 끌어다 놓았다.

왜 이런 수고를 했을까? 살인 현장을 감추려고? 아니다. 아걸은 추격자를 완벽하게 놀리고 있다.

“이쪽으로 가면 낭떠러지. 그러니까 이쪽으로 도주한 놈은 쫓을 필요가 없고. 그러니까 이놈부터 죽인 거네. 이놈을 죽이고 낭떠러지로 가서 이놈도 죽이고.”

흑후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황을 보면 아걸은 추혼삼마를 나눠서 죽였다. 한 명을 먼저 죽이고, 또 한 명 죽이고…… 마지막으로 한 명을 죽였다. 세 명을 죽이는데 각기 시간 차이가 있다.

‘왜?’

이렇게 죽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아걸 정도의 무공이라면 추혼삼마를 일거에 죽일 수 있다.

추혼삼마가 도주하기로 작심하고 세 방향으로 튀어도 따라잡을 수 있다.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데 왜 나눠서 죽였을까?

흑후는 산길을 유심히 살펴봤다.

“쳇!”

흑후 입에서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걸의 속셈이 빤히 보인다.

화독산에 당한 놈이 이곳에서 화탄을 쏘았다. 그리고 마지막 놈이 낭떠러지에서 화탄을 쏘았다.

두 번에 걸쳐서 붉은 화탄이 허공에 쏘아졌다.

이번 추격은 추혼삼마가 계획하고 실행했다. 약초꾼, 땅꾼, 나무꾼, 엽사 등등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동원한 것도 모두 추혼삼마의 생각이다.

추혼삼마는 이곳에 있지만, 이들이 고용한 자들은 주변 산에 쫙 깔려 있었다.

그들이 화탄을 보고 일제히 이곳으로 달려왔다.

산밑에서 달려오던 자들은 중간에 우마차를 보았겠지만, 무심히 지나쳤다. 화탄이 터진 곳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이미 추혼삼마가 수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걸은 우마차를 타고 빠져나갔다.

아걸이 추격자를 피하는 것은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추격자 뒤에 허도기가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어서다. 허도기를 따돌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들이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아걸과 부딪친 이상 살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런 점을 잘 알 텐데, 아걸과 부딪쳐? 하! 그렇군. 아걸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어.”

추혼삼마는 아걸을 보지 못했다.

죽은 자들을 쫓아서 아걸이 지나간 동선은 파악했지만, 아걸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추혼삼마가 멀리 떨어져서 혈흔만 쫓을 정도로 아걸이 날카로웠다는 거다. 약간만 틈이 보였어도 고용한 자들을 물리치고 이들이 직접 추격했을 텐데.

“쯧! 추혼삼마가 실패했다면 이놈은 추격 못 해. 추격하면 죄다 귀신이 되지.”

흑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뭐라고 말하나? 곤란하게 됐군.”

흑후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 * *

허도기는 아걸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아걸을 벨 때만 잠시 신경 쓴다. 아걸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전혀 없다.

‘슬슬 움직여 볼까?’

아걸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한마디만 하면 된다.

“놈은?”

그렇다. 이 ‘놈은?’이라는 말 한마디면 아걸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이상하다.

“이거 미안한 말씀을 드려야겠는데…… 지금 놈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지 못해서. 지난 경과는 여기에.”

흑후가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허도기는 흑후를 힐끗 쳐다보고는 종이를 확 빼앗아서 펼쳤다.

종이에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허도기의 인상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아걸을 놓쳤다?”

“죄송합니다.”

“가만, 가만.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이건 흑후가 할 말이 아닌데? 흑후는 ‘미안하다, 죄송하다’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흑후가 머리를 숙였다.

허도기는 흑후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 저, 저. 간신 짓. 이상하지? 흑후는 아무리 머리를 숙여도 미안해하는 것 같지가 않아. 아니꼽지만 머리 한 번 숙여 주지. 그래야 곱게 지나가니까. 이런 느낌이거든.‘

”그럴 리가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흑후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래서? 천하의 흑후가 이대로 물러나진 않을 것이고. 어쨌든 아걸이 어디 있는지는 말해 줘야지?”

“지금 전역망(全域網)을 펼쳐 놓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역망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라.”

흑후가 말끝을 흐렸다.

추혼삼마 추격이 적극적인 추격에 해당한다면, 전역망은 소극적인 추격 방법이다.

지역 전체에 등불을 밝혀 놓는다. 추격하는 사람이 등불에 드러나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답답해 보인다. 이런 지역 감시 개념은 제약이 많다. 거미줄을 쳐 놓고 벌레가 걸려들기만 기다린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니다. 지금은 상당히 다르다.

일단 중심처가 있다. 아걸이 사라진 산이 중심처다. 중심처를 가운데에 두고 사방 삼백 리에 등불을 밝혔다. 거의 한걸음에 하나씩 등불을 밝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등불을 밝혀놨다. 이것이 흑후의 전역망이다.

전역망을 펼치면 누구든 찾아낸다.

다만 시간 차이는 생긴다. 쫓는 자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전역망도 찾아낼 수 없다. 움직여야만 찾는다. 그리고 일단 움직이면 빠져나갈 수 없다.

그때부터는 등불도 적극적으로 따라붙는다.

허도기는 누군가의 생명을 끊어 놓기 위해서 출타할 생각이었다. ‘놈은?’이라는 말에 이런 대답이 돌아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가는 곳을 말해 줄 답변이었어야 한다.

아걸을 찾지 못했으니 일단 멈춰야 한다.

또 흑후가 건넨 글에는 은거 무인들이 전보영에서 나오지 않은 사실도 기재되어 있다.

은거 무인을 죽이자고 전보영을 다시 침입할 수는 없다.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은거 무인들이 전보영에 순순히 남았을 리 없다. 그가 파악한 은거 무인들은 관청 같은 곳에 묶여 있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누군가에게 구속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사람들이다.

아걸이 이해하지 못할 수를 두고 있다.

허도기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때 흑후가 죄송하다는 듯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저 약이 오르시겠지만 이거.”

흑후가 피에 젖은 헝겊을 꺼내서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허도기가 뭐냐고 눈으로 물었다. 그러나 흑후가 대답하지 않자, 탁자에 펼쳐 놓으라고 눈짓했다.

흑후가 조용히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헝겊을 탁자 위에 펼쳤다.

- 일일일살(一日一殺) 실패(失敗). 하하하(哈哈哈)!

누가 봐도 조롱이다.

아걸이 허도기를 놀리고 있다. 글에 ‘하하하!’라는 웃음소리를 적어 놓기까지 했다.

“일일일살 실패라. 후후! 오늘 자정 넘기려면 얼마나 남았지? 아직은 밤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 성급하군. 오늘 자정까지는 네 시진이나 남았어. 흑후, 내 체면 좀 세워 줘야겠는데?”

흑후는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 안에는 파악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걸 같은 자가 숨기로 작정했다면 저희가 찾을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기분은 기분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합당한 지시를 내려 주시지요.”

흑후의 음성은 매우 차분했다.

허도기가 흑후를 쳐다보면서 싱긋 웃었다.

“역시 넌 믿을 수 없는 놈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오늘은 틀렸다는 거지?”

“죄송합니다.”

“그 죄송하다는 말, 말이야. 내 귀에는 ‘그래. 못 찾아. 네가 어쩔래?’하는 소리로 들려.”

“아닙니다. 어찌 감히 제가…….”

“흑후.”

“네.”

“마음을 정해.”

“무슨 말씀이신지? 제 마음을 확실히 보여드렸는데, 아직 부족했나 봅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네?”

“……?”

흑후가 고개를 들어 허도기를 쳐다봤다.

허도기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야천(夜天)에 전하라고. 어정쩡하게 행동하지 말고 태도를 확실히 밝히라고. 전쟁하든가, 깨 벗고 주던가. 생색내듯이 찔끔거리는 것은 더 못 봐주겠어.”

“그 말씀은 제가 대답할 수 없는 것이라서. 일단 말씀하신 대로 전하겠습니다.”

“후후후!”

허도기가 흑후를 쏘아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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