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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69화 (269/600)

#269화. 第五十四章 야천(夜天)(4)

흑후는 시궁창 냄새가 퀴퀴하게 풍기는 매음굴로 들어섰다.

“쯧!”

흑후는 즐비하게 늘어선 거적때기 집들을 보며 혀를 찼다.

사실 매음굴에 있는 집들은 집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거적때기로 간신히 외부만 차단한 상태라서 안에서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바깥까지 흘러나왔다.

“하악!”

“으음!”

어떤 여자가 아침부터 손님을 받고 있다.

그들이 교합하며 내뱉은 신음이 바깥에 환히 들리는데도 오가는 사람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밖에 나와서 아침 햇볕을 쬐는 어린아이조차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쯧!”

흑후는 다시 혀를 찼다.

마을은 꽤 크다. 적어도 백여 호는 됨직하다.

이 마을 전체가 매음굴이다.

청루(靑樓)나 홍루(紅樓)처럼 일반적인 이름조차도 붙이지 못한다. 그 대신 동전 한 닢이면 욕구를 풀 수 있다고 해서 일전통(一錢通)이라고 불린다.

저벅! 저벅!

흑후가 지나가자 거적때기가 들썩거렸다.

일전통 여인들은 흑후가 손님인 줄 알고 옷소매를 낚아채려고 했다. 이곳에서는 누가 되었든 일단 낚아채는 사람이 임자다. 그래서 앞쪽은 서열 높은 사람이 차지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급히 손을 거뒀다.

흑후는 알지 못하지만, 흑후 뒤를 따르는 두 무인은 안다. 아니, 그들이 입고 있는 무복을 안다.

검은 무복을 입고 가슴에 흰 글자가 야(夜)자를 새겨 놨다.

야천 무인이다.

인생 막장을 사는 사람이 뭐가 무섭겠냐마는 그래도 야천 무인은 무섭다.

두 무인이 가닥 대기를 들어 올리자, 흑후는 코를 막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어휴! 냄새.”

흑후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인상부터 찡그렸다.

움막 안에는 그야말로 온갖 악취가 버무려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토록 지독한 냄새가 풍길까 싶기도 하다.

“어쩐 일로 뱃속 편한 양반이 이런 곳까지 걸음을 하셨을까?”

움막 안쪽에서 사내가 말했다.

그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서 사과를 씹어 먹고 있었다.

발치에는 두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서 다리를 주무르는데, 목에 쇠고랑을 찬 상태였다.

납치되어 와서 길든 여자들이다.

야구의 다리를 주무를 정도라면 이미 인생을 포기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고 봐야 한다.

일전통에는 두 부류의 여인이 있다. 하나는 이미 길들어서 군말 없이 몸을 파는 여인들이고, 또 하나는 이제 막 잡혀 온 여자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괴되었다.

이곳 놈들은 아무 여자나 기회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고 온다.

그리고 매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차분히 길들인다.

물론 길들인 여인은 이곳에서 쓰지 않는다. 청루나 홍루로 팔아넘긴다.

이곳에서 몸 파는 여인들은 퇴물이 되어 쫓겨난 여인들이다.

“요즘 밥은 먹고 사나?”

흑후가 사내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나야 뭐 늘. 이년들이 속만 안 썩이면 신경 쓸 것도 없지.”

사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야구(野狗)…… 들개…… 잡놈의 개새끼는 일전통을 이끄는 대구(大狗)다.

대구라는 말은 야구가 스스로 한 말로 ‘큰 개새끼’라는 뜻이다.

야구는 성질이 포악하고 몸이 날래고 싸움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인생 막장을 사는 놈들조차 두려워서 벌벌 떤다. 비위 상하면 경고도 없이 죽인다.

야천도 어둠 속에서 살지만, 일전통은 어둠 중에서도 가장 쓰레기 바닥 속에서 산다.

야천 무인도 이들과는 될 수 있으면 시비를 피한다. 서로 조심한다고 할까?

이들은 개 때다. 개 같이 싸운다.

들개들끼리는 충돌을 피하는 게 낫다. 이들도 야천 영역을 넘보지 않지만, 야천도 이들은 내버려 둔다.

“그래, 무슨 일로?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더니.”

야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돈을 되게 많이 벌었다고 들었는데 좀 쓰면서 살지 그래? 좋은 집, 포근한 침상. 이런 거 필요 없나? 이게 뭐야. 아우 냄새! 가만? 이거 몸에서 나는 냄새인가?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흑후가 코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송충이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뒈져. 야! 이 씨! 애무하냐!”

야구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의 다리를 주무르던 여인들이 찔끔하면서 급히 손에 힘을 주어 주물렀다.

“농담이나 하자고 오지는 않았을 테고. 용건은?”

“살인.”

“살인이야 그쪽 전문 아닌가? 우리는 매매 전문이지 살인과는 거리가 멀어서 말이지.”

“여기가? 킥킥!”

흑후가 웃었다.

야구는 인신매매가 전문이다. 여인만 파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사내도 잡아다가 판다.

또 살인도 한다. 주로 청부 살인이다. 하지만 일전통 청부 살인은 살수 문파의 살인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주로 사람을 납치해서 산에 갖다 묻거나, 강에 익사시키거나 아니면 때려죽인 후에 짐승 먹이로 준다. 아예 살인 흔적을 지워 버린다.

흑후가 코를 후비며 말했다.

“죽일 놈이 있는데 우리 손을 더럽히기가 그래서 말이야. 곤란하면 말고.”

흑후가 일어섰다.

“카아악! 퉤엣! 아, 이놈의 가래. 앉아. 뭐가 그리 급해.”

야구가 방에 가래침을 뱉으며 말했다.

“아이, 드러! 가래를 방에다가. 좌우지간 깨끗하면 어디 덧나나? 몸에 두드러기가 생겨?”

야구가 다시 사과를 아작 베어 물며 말했다.

“어떤 놈?”

“상대가 좀 세. 감당할 수 있으려나?”

“어떤 놈!”

“아걸이라고 들어 봤어?”

“아걸, 아걸, 아걸이라는 놈은 모르겠고. 무인인가?”

“별호로 말해 주면 되려나? 혈도비자.”

“킥!”

야구가 혈도비자라는 말에 웃음부터 흘렸다.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했군. 그런 놈을 죽이라고? 흐흐! 차라리 허도기를 죽이라고 하지 그래. 황제는 어때? 황제를 죽여줄까? 킥킥!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서 오면서 사실 망설이긴 했어. 좀 벅찰 것 같아서. 벅차지?”

흑후가 야구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이거 진담이네?”

야구가 비로소 정색했다.

“정말 혈도비자?”

“……”

흑후는 말없이 야구를 쳐다봤다.

“크크큿! 아침 댓바람부터 우리 개떼를 깡그리 잡아먹으려고 왔구만. 혈도비자 같으면 값이 꽤 비싸.”

“맡겠다는 거야?”

“천운루(天雲樓)를 내놔.”

“히야! 그건 너무 세잖아?”

흑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천운루는 금릉 제일 기루다. 천운루에 적을 둔 기녀만 이백 명이 넘는다. 고관대작이나 거상만 출입할 수 있으며, 하루 매상이 은으로 백 냥을 넘어선다.

아마도 중원 전역에서 제일 큰 기루일 것이다. 그런 만큼 천운루를 야천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하지만 천운루가 지닌 가치는 은자로만 풀이할 수 없다.

일전통의 금릉 진출!

개떼들이 시궁창을 벗어나 금릉 한복판을 활보할 수 있는 근거지가 마련된다.

야천이 천운루를 주면 이 부분을 용납하는 것이다.

“후후! 상대가 혈도비자라면 그만한 것은 줘야지. 우리가 몰살당할지도 모를 판인데. 더 요구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솔직히 천운루를 줄 생각도 없잖아? 우리가 몰살당할 게 뻔하다고 생각하지? 크크!”

야구가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

“좋아. 주지. 증거는 아걸의 머리. 내 눈으로 아걸의 머리를 직접 봐야겠어.”

“킥킥킥. 그긴 곤란하지.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 우릴 못 믿겠다면 우리 싸우는 데로 찾아와. 직접 두 눈으로 보면 되잖아.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보고.”

“아! 그 수가 있었나?”

“킥킥! 그럼 계약?”

“계약.”

흑후가 말을 하면서 군도를 꺼내 건넸다.

“현재 놈이 있는 곳은 여기.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이 네 군데를 막으면 포위가 돼. 여기까지 알려 줬으니까 내 할 일은 끝.”

“크크크!”

야구가 지도를 집어서 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리를 주무르던 두 여인이 즉시 손을 거두면서 일어나 허리를 반듯하게 세웠다. 순간,

싹! 싸악!

야구의 손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는 어느새 소도를 꺼내 두 여인의 목젖을 잘라 냈다.

여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이거 꼭 죽일 필요까지 있었나?”

“큭큭! 혈도비자를 죽이는 일이다.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혀 있으니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줄 알아? 혈도비자는 전보영하고 밀접하고, 취화원, 적랑대하고 연결되어 있어. 자칫하면 우린 개박살 나. 지금부터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두 죽이면서 간다. 큭큭!”

야구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들개들이 소집되었다.

들개들이 가진 흉기는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칼도 있고, 낫도 있고, 도끼도 있다. 이들은 난장에 능하다. 닥치는 대로 쳐들어가서 두들겨 부수는 데는 이들을 능가하는 자가 없다.

이들이 더 무서운 점은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거다. 털끝만치도 미련이 없다.

이들에게 청부금으로 은 천 냥을 주면 그 천 냥을 오늘 하루에 다 쓸 놈들이다. 흥청망청 쓰고 내일은 또 내일대로 시궁창에서 거칠게 살아간다.

앞날도 없고, 아끼는 사람도 없다.

야구는 군도를 펼쳐 놓고 수하 네 명에게 지시했다.

“너, 여기. 너는 여기. 너 여기. 넌 여기.”

네 명에게 흑후가 점찍은 네 곳을 맡겼다.

이들은 각기 백 명에서 이백 명 정도 파락호를 데리고 있다. 하나같이 밑바닥 싸움을 할 줄 아는 놈들이다.

“내가 신호하면 일제히 달라붙어! 단숨에 숨통을 끊지 않으면 피 보게 되어 있어. 놈은 혈도비자다. 누구라고?”

“킥킥킥! 혈도비자는 배때기에 칼이 안 들어간답니까?”

“나는 무식해서 어려운 말을 몰라. 혈도비자? 그거 강아지 새끼라는 소리지?”

“킥킥킥!”

야구의 수하들은 혈도비자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입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한 놈이 죽으면서 한칼만 먹이면 된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상처가 누적되면 놈도 움직이지 못한다. 놈이 백 명, 이백 명을 죽일 수 있지만 결국은 놈도 죽는다.

이것이 개싸움이다.

놈은 대산방 무인 사백 명을 죽이고 혈도비자라는 별호를 얻었다.

그러면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산방 무인보다 못한 개떼들은 천 명이 있어도 안 된다.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산방 무인들 사백 명을 죽였어? 그럼 우린 백 명만 죽으면 되겠네? 우리 애새끼들 한 명이면 대산방 허수아비 두 명을 죽일 수 있으니까.

이들은 싸움에 관한 한 절대로 무식하지 않다.

한칼을 먹이겠다고 무리하게 달려들지 않는다.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에 달려든다.

이놈은 뒈졌어!

야구와 수하들은 눈에 살기를 머금었다.

“아. 징그러운 놈들이네. 이놈들한테 일 시킨 게 잘한 건가? 괜히 천운루만 뺏기는 거 아냐?”

흑후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들에게 천운루를 줄 생각은 없다. 야천의 주요 수입원인데 그걸 왜 주나.

흑후는 이들이 아걸에게 전멸당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이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만만치 않다. 어쩌면 아걸이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 참! 아걸을 죽일 사람은 따로 있으니 놈이 어느 정도나 강한지 그것만 보여주면 되는데. 이놈들 정말 죽일 기세네.’

개떼들은 온갖 장비를 다 챙기고 있다.

일시에 열 발을 쏠 수 있는 노궁(弩弓)은 물론이고, 화약을 담은 화통(火筒)까지 준비했다.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것을 보면 며칠 굶긴 사냥개도 준비하는 모양이다.

이놈들이 아걸을 죽이면 어떻게 하지?

아걸도 그냥 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분명히 이들을 재기불능 상태로 빠트릴 것이다. 그러면 몇 놈 남지 않는데, 뒤통수를 쳐 버려? 모두 죽여?

‘아니야. 아니야. 차라리 천운루를 줘 버리는 게 나아.’

흑후는 고개를 내둘렀다.

개떼가 다 죽고 야구 혼자만 살아남아도 천운루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앞에서 야구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 아니, 그것도 부족하다. 불태워서 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복수할 놈이다.

야구의 복수는 매우 신선하고 잔인하다.

야구에게 당한 자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혀서 혀를 내둘렀고,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차라리 천운루를 줘 버리면 홀가분하다.

약속만 지키면 이놈은 딴짓하지 않는다.

‘쯧! 이렇게 되면 아걸이 이기기를 바라야 하나? 그럼 난 목 좋은 곳을 골라서 조용히 관전이나 해 볼까?’

스으으읏!

흑후는 개떼들에 앞서서 먼저 신형을 쏘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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