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71화 (271/600)

#271화. 第五十五章 도화선(導火線)(1)

몰안으로 떨어지는 기름 항아리를 봤다.

‘불화살이 떨어지는 곳!’

이십이대 문주의 산화도는 화살 십여 대를 일시에 퉁겨 내기에 더없이 적합했다. 불화살이 앞길을 차단한 채 떨어졌지만, 반철도로 비교적 쉽게 쳐 냈다.

눈앞에 누군가가 있다. 멧돼지를 잡듯이 철 가시가 숭숭 박힌 투망을 펼친 채 앞을 노려본다.

우산처럼 활짝 펼쳐졌던 도신이 하나로 합일되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투망을 향해 쏘아 갔다.

쉬릭! 쫘아악!

반철도가 투망을 갈라냈는데, 마치 비단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쒜에에엑! 퍼억!

이어진 칼이 투망을 잡고 있던 자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동시에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납작 엎드렸다.

아걸은 폭발의 위험을 간과하지 않았다.

화약 폭발은 타격당한 곳만 흠집 내는 것이 아니다. 화통이 폭발력에 찢기면서 사방으로 비산한다. 작은 쇳조각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괴력으로 쏘아진다.

이 파편을 맞으면 몸이 관통당한다. 심장도 뚫리고, 폐도 터진다. 머리뼈도 간단하게 부숴 버린다. 더욱이 날아온 쇳조각은 한 개가 아니다. 수백, 수천 개다.

이것에 대응할 방법은 무조건 숨는 것뿐이다.

콰앙! 꽈아앙! 파파파팟!

화약이 터지면서 아걸이 누워 있던 바위를 부쉈다.

바위가 깨져서 작은 돌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뿌연 흙먼지도 피어났다. 하지만 바위가 부서지는 모습은 확 치솟은 불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꽈앙! 꽝!

작은 산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엄청난 폭발이다. 이 정도 폭발이면 십여 장 안에 있는 모든 생물체가 멸살한다.

‘개미 한 마리 살지 못해!’

화약 폭발과 불길을 본 사람이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

더욱이 기름으로 태워지는 불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까지 말려 버렸다.

“이거 너무 싱거운데. 후후!”

누군가가 중얼거리면서 웃었다.

스읏!

아걸은 납작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몸이 온통 진흙투성이다. 얼굴에도 진흙이 묻어서 맑은 광택이 사라졌다.

아걸은 이미 투망을 빠져나왔지만, 저들은 투망이 뚫린 것도 알지 못한다. 화약 폭발은 끝났지만 아직도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어서 몸을 감춘 상태다.

아걸은 목관을 들고 바퀴가 빠진 수레로 걸어갔다.

‘비 좀 맞으셔야겠네. 비 맞는 것, 좋아하시나? 후후!’

아걸은 목관을 수레에 올려놓고, 스읏! 신형을 나무 위로 뽑아 올렸다.

파앗!

몰안이 숲을 훑는다. 발아래 적이 보인다.

역시 투망을 잡은 자인데, 아예 바위 뒤에 편안히 몸을 기댄 채 푹 쉬고 있다.

스으읏! 쒜에엑!

아걸은 나무 위에서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졌다.

“엇!”

아걸이 노린 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머리 위에서 칼이 떨어지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자는 봤다. 그자가 크게 경악성을 내질렀다.

퍼억!

아걸은 이미 노렸던 자를 찍어 냈다.

이번에는 방금 경악성을 내지른 자!

쒜에에엑! 퍽!

십이대 문주의 유성비도가 사내의 가슴을 수직으로 갈라냈다.

‘이놈들은 누구지?’

아걸은 죽은 자를 살펴봤다.

죽은 자는 매우 험하게 살아온 듯하다. 얼굴이며 몸이며 상처 없는 곳이 없다. 팔과 다리에는 문신도 크게 그려 넣었다. 반면에 입고 있는 옷은 거지도 입지 않을 만큼 더럽고 허접하다.

빗속을 뚫고 풍겨 온 악취가 어디서 풍기는지도 알았다. 이자들의 몸에서 난다.

‘인간말짜?’

인간말짜! 세상을 등진 사람,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쓰레기 인간이다. 사람을 쓰레기라고 부르면 안 되지만, 정말 이들은 쓰레기로 불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다.

인간말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약한 자들, 힘없는 자들, 가장 비참한 자들을 등쳐 먹고 사는 좀벌레들이다.

“당신들이라면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지.”

아걸은 살심을 일으켰다.

탁! 탁! 탁!

아걸은 나무를 건너뛰었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안다. 상대는 잘 숨었다고 생각하지만, 몰안은 해변에 떨어진 바늘도 찾아낸다. 눈이 밝은 게 아니다. 집중력이 뛰어난 것이다.

예리한 안광이 숲을 꿰뚫어 본다.

이들이 기척을 흘리기도 전에 두 눈이 사람을 찾아낸다.

쒜에에에엑! 퍼억!

반철도가 나무에 앉아 있는 사내의 머리를 찍었다.

사내는 손에 연노를 들고 있다가 부지불식간 칼을 맞았다. 그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나무 밑으로 털썩 떨어졌다.

“놈이다!”

“여기 있다!”

적들이 시장터처럼 야단법석을 떨면서 소리쳤다.

스읏!

아걸은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아걸은 땅으로 내려서지 않았다. 땅은 뻘밭이다. 땅에 발을 디디면 신법의 자유를 잃는다. 그 점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지저분한 싸움이 된다.

‘이제 밤이 시작됐어. 날이 밝으려면 시간은 많아.’

‘이놈, 정말 고수다!’

야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혈도비자가 만만치 않은 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공을 십 할 자신하던 화공이 깨질 줄은 몰랐다.

어떻게 빠져나왔지?

지금까지 화공진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

일단 안에 갇힌 자는 투망을 뚫지 못한다. 투망에는 독 가시가 박혀 있다. 투망을 만든 쇠줄은 여간한 보검이 아니면 잘리지 않도록 두껍게 만들었다.

신법이 무척 빨라서 즉사를 피했다고 해도 불바다와 화약 폭발이 동시에 터지면 견디지 못한다.

이놈은 빠져나왔다.

투망은 무처럼 잘려 나갔다. 투망을 잡고 있던 놈을 허수아비처럼 베어 버렸다.

“구사(丘射)!”

야구가 즉시 소리쳤다.

쒜에에엑! 쒜에에에엑!

아걸을 향해 연노가 쏘아졌다.

아걸을 보고 연노를 쏘는 것은 아니다. 아걸이 있음 직한 곳을 노리고 쏜다.

타타타탁! 타타탁!

쇠 화살이 나무에 박히면서 콩 볶는 듯한 소리를 울렸다.

“훗! 후후훗!”

아걸은 웃었다.

연노는 제한적이다. 언제까지고 쏘아 댈 수는 없다. 저들이 자신을 보고 쏘는 게 아닌 이상, 이대로 숨어 있으면 곧 화살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 아걸은 일홀사도를 떠올렸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절대 강적을 만난 것과 다름없다. 목숨을 걸고 뚫어 볼까?

‘어디 감각이 몸에 얼마나 붙었는지 볼까!’

지금부터는 초식을 버린다. 머릿속을 텅 비운다. 오로지 반철도를 본능에 맡긴다.

스읏!

아걸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저기다!”

“나무 위! 나무 위에 있어!”

누군가가 아걸을 봤다.

동시에 여러 명이 경고를 했고, 곧 사방에서 수백 자루에 달하는 화살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쒜에에엑! 타타타타탁!

용수철도 날린 화살이 육신을 꿰뚫겠다고 달려들었다.

아걸은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치달렸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쏘아 갔다.

쫙! 타앙!

얼굴 앞으로 들이닥친 화살 세 개를 쳐 냈다.

그를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은 수백 개지만, 아걸은 오직 세 개만 쳐 냈다. 세 개만 치우면 아걸과 한 사내가 만난다. 두 사람 사이에 화살은 없다.

살상 공간이 나왔다.

아걸은 단숨에 달려들어서 상대방의 머리를 찍었다.

쒜에에엑! 빠아악!

반철도가 머리뼈를 갈라냈다. 동시에 칼에 맞은 사내를 발길로 차서 반탄력을 얻었다.

쉬이익!

아걸은 다시 나무 위로 튀어 올라갔다.

슈우웃! 퍼억!

나무 위에 이던 자는 제대로 병기도 휘둘러보지 못하고 목에 칼을 맞았다.

반철도가 목을 자르고 지나가 나무에 탁! 틀어박혔다.

머리 잃은 시신이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아걸은 매우 빠르게 다른 나무로 이동했다. 그리고 연노를 들고 있던 자의 옆구리를 쳐 냈다.

“컥!”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졌다.

‘점촌일도, 사도진파!’

아걸은 자신이 쳐 낸 수법이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라는 것을 안다.

삼십육 문주는 자신의 일홀도에 평생을 걸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수련의 연속이었다.

아걸은 그분들의 무리를 잇지 않았다. 다만, 서른여섯 가지 도법을 얻었다. 그분들의 일홀도에 감추어진 묘리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오직 초식만 빌려서 쓴다.

서른여섯 가지 도법이 상황에 따라서 시기적절하게 펼쳐진다.

아걸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도법이 튀어나온다. 머릿속이 텅 비었지만, 도법은 전개된다.

죽음 속에서 터득하는 일홀도가 점점 영글어지고 있다.

쉐에에엑! 퍼억!

반철도가 한 사람을 찍었다.

아걸은 숲에 있는 자들을 한 명씩 격타했다. 절대 서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대산방과 싸우면서 얻은 교훈이다. 서둘면 빨리 지친다. 잔인하게 공격하면 이들이 물러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림도 없다.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이들과 끝장을 본다는 심정으로 차분히 응대한다.

“승산이 없네. 킥킥!”

야구가 웃었다.

합공을 펼쳐도 안 되고, 불이나 화약으로도 잡지 못한다. 투망은 아예 싹둑 잘라 버린다.

개떼 몇 마리가 호랑이를 잡겠다고 달려드는 격이다.

개떼도 어린 호랑이는 잡을 수 있다. 멧돼지도 잡는다. 하지만 진짜 호랑이와 만나면 단박에 물려 죽는다.

일전통 놈들, 오늘 임자 만났다.

“뒤로 빼.”

야구는 수하들을 후퇴시켰다. 하지만 난감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포기도 하지 않는다. 이 정도에 물러선다면 일전통 쓰레기라고 할 수 없다.

“후후! 일단 빼고…… 다시 시작해 볼까?”

스스슷! 스스스슷!

사내들이 매우 빠르게 숲을 빠져나갔다.

길을 막은 자들은 더 빨리 후퇴했다. 아예 후퇴하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퇴각?’

아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말짜들은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 퇴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인간말짜들은 강하지 않다. 싸움은 이골나게 했지만, 무인과 붙으면 펑펑 나가떨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나가떨어져도 다시 달라붙는다. 마치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싸운다. 그래야 상대방이 질려서 한발 물러선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어느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는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것이 인간말짜들의 생존 전략이다.

힘없는 자가 힘 있는 자를 이기는 방법이랄까?

이 거머리전법이 깨지면 인간말짜들의 위명은 땅에 떨어진다. 그 후부터는 어느 정도 박살을 내면 스스로 떨어져 나갈 것으로 생각해서 힘으로 찍어 누른다.

아걸은 인간말짜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사는지 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스읏!

반철도를 거두고 일전통 사내들이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었다.

저들은 그가 생각한 대로 완전히 퇴각하지 않았다. 전장에서만 빠져나갔다.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서 웅성대며 잡담을 주고받는다.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

아걸은 숲에 흐르는 빗물로 반철도에 묻은 피를 씻어 냈다.

손을 묶은 헝겊도 풀어서 핏물을 짜낸 다음 다시 감았다.

인간말짜들은 다시 온다. 이번에도 화공을 사용할까? 기름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을 텐데.

아걸은 다른 생각도 했다.

허도기가 정말 이들을 고용했나? 누가 이들을 불러냈을까? 이런 쓰레기들을.

저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전열을 다시 정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를 준비하는 듯한 냄새를 풍긴다.

“후웁!”

아걸은 숨을 크게 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