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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72화 (272/600)

#272화. 第五十五章 도화선(導火線)(2)

‘이건 괴물이잖아!’

흑후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혈도비자가 굉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게 정말 사람 무공이야?’

흑후는 아걸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전통 사내들이 약한 게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하나같이 싸움꾼이다. 툭하면 싸움질을 해서 싸움을 못 하면 견디지 못한다.

일전통 수입원 중 하나가 바로 사투(死鬪)다.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인데, 사투 판에 놓인 판돈이 저택 한두 채 값이다.

이들은 사투를 즐긴다.

목숨 건 싸움판에서 갈고 닦은 싸움 실력이야말로 최고이지 않나.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달려드는 것도 사투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아걸을 포위하고 선제공격을 가하기는 했는데, 그 후에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도살당했다.

상대가 안 된다.

‘이건 곤란한데.’

흑후는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아걸을 상대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허도기가 깨 벗고 달라고 하면 야천은 군말 없이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

어떠한 저항도 해서는 안 된다.

허도기는 눈앞에 있는 엄청난 자, 아걸을 장난감 취급한다. 이리저리 아무리 방법을 찾아봐도 상대할 사람이나 방법이 없는 절대 강자를 파리 목숨처럼 생각한다.

그렇다면 허도기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아걸이든 허도기든 야천의 상대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깨 벗고 줘야 해. 저항하면 다 죽어.’

흑후는 허도기가 자신들에게 한 가닥 숨통을 틔워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쟁하던 깨 벗고 주든 선택을 하라고 말한 것은 일종의 호위다. 너희 같은 버러지를 죽이기 싫으니까 그냥 알아서 기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다.

과거, 허도기가 야천 사람들을 데려갔을 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의 허도기와 지금의 허도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때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무신(武神)이다.

허도기, 아걸…… 야천은 둘 다 상대하지 못한다.

허도기는 아걸을 상대하기 위해서 야천 무인들을 뽑아 가려는 게 아니다. 아걸은 허도기가 직접 벤다. 그것만은 명확하다. 지금이라도 아걸 위치만 알려 주면 당장 달려온다.

아걸을 상대한다기보다는 전보영이나 황상을 노리는 데 쓸 가능성이 훨씬 크다.

‘누가 차출되든 일단 허도기 손에 넘어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해. 그것도 처참하게 죽어. 옛날 성검문을 공격했을 때보다 더 처참하게 죽을 거야.’

차출되는 자들의 앞날이 환히 보인다. 그래도 허도기가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주어야 한다.

“하아!”

흑후는 한숨을 토해 냈다.

* * *

“어떻게 공격할까?”

야구가 말했다.

화약과 화공은 써 봤다. 투망으로 길을 차단하기도 했다. 깨끗이 실패했다.

“십쇄(十鎖)는 어떨까요?”

“십쇄를 펼칠만한 놈들이 있어?”

“십쇄를 세 개 정도 펼칠 만한 놈들은 준비되어 있죠.”

“짜식!”

야구는 귀여운 듯 수하의 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쓱쓱 문질렀다.

“일단 하나면 던져.”

“네!”

머리를 잡혔던 수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걸은 이상한 사람들을 봤다.

허리에 쇠사슬을 감은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걸어왔다.

그들은 아걸이 들으라는 듯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 살수 년하고 배 맞아서 놀아난다며? 지금 그년 잡으러 간 놈들이 있는데, 몰랐지? 그년 잡히면 바로 아작날 거야. 킥킥킥!”

“아아! 걱정하지 마. 보통은 그냥 찢어 죽이는데, 그년이 예쁘다며? 이 어르신이 좀 가지고 놀다 버리려고. 이름이 몽설이라고 했던가?”

“꼴에 살수조직을 이끈다던데?”

“계집이 살수조직을 운영해 봤자 그게 그거지. 안 그래.?”

저들은 몽설을 모욕한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지거리를 해 대면서 잘근잘근 씹어 댄다.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들이 하는 말은 일절 듣지 않았다. 대신, 저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집중했다.

저들은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다. 다만 열 명이 기다란 쇠사슬로 허리를 묶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야! 새끼야! 겁먹었냐! 나와! 한 판 붙게!”

“이 새끼, 정말 겁먹었나 보네. 안 나와? 그럼 우리 지금 이대로 몽설 그 계집애한테 갈까?”

저들은 칼과 검을 들고 있다. 정말로 아걸과 한 판 싸우겠다는 듯 크게 소리 지른다.

‘좋은 경험이 되겠네.’

아걸은 피식 웃었다.

저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고 놀랄 게 분명하다. 그만한 수단이 있으니 저처럼 겁 없이 나서는 것이다.

쒜에에엑!

아걸은 솔개처럼 열 명을 덮쳐 갔다.

저들에게 무슨 수가 있는지 모르니 철저히 방비한다. 방비? 특별하게 방비라는 게 있을 리 없다. 위험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홀사도가 여기서도 일어난다.

그런데…… 어떻게 할까? 왼쪽부터 칠까, 오른쪽부터 칠까? 가운데에 있는 자부터 공격하면 대형 전체가 무너질 것 같은데, 일단 왼쪽에 있는 자부터 죽인다!

쒜에에엑!

아걸이 가장 왼쪽에 있는 자를 향해 덮쳐 갔다.

저들은 쇠사슬로 묶여 있어서 한 명이 쓰러지면 그 옆에 있는 자도 같이 쓰러진다. 억지로 버티고 설 수는 있지만, 몸이 뒤뚱거려서 공격 같은 것은 하지 못한다.

왼쪽 끝을 공격하면 오른쪽 끝에 있는 자도 공격해 오지 못한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다. 급히 검을 써야 하는데, 쇠사슬로 묶여 있어서 공격하지 못한다. 다른 여덟 명이 일제히 움직여야지만 그도 움직일 수 있다.

공격을 당한 자에게서 한 명만 건너뛰어도 검을 쓰기가 좋지 않다.

열 명이 몸을 쇠사슬로 묶고 싸운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어떤 수가 일어나든, 아걸은 치고 빠지면 된다. 상대를 치자마자 빠지면 무슨 수로 상대할 것인가.

이들은 왜 행동에 구속을 가한 것일까?

파팟! 퍼억!

아걸은 왼쪽 끝에 있는 자를 쳤고, 그자는 어김없이 칼을 맞았다. 처음부터 일홀도를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런 자들에게 일홀도를 쓴다는 것은 칼에 대한 모욕이다.

순간! 칼 맞은 자의 눈에서 흰자위가 번뜩였다.

“훗!”

아걸은 순간적으로 눈살을 확 찡그렸다.

사내의 눈이 비정상이다. 흰자위로만 가득한 눈에서 알지 못할 광기를 봤다.

슷!

칼 맞은 자가 두 손을 번쩍 들어서 아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앞으로 확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철컥!

사내의 깍지 낀 손에서 수갑 채워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들은 손에 철로 만든 수투(手套)를 끼고 있다. 일명, 철수(鐵手)라고 하는 것인데, 주로 권력을 높이기 위해서 주먹에 끼고 싸우곤 한다.

이들이 끼고 있는 철수에는 깍지낀 손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다.

철수 낀 손을 깍지끼면 고리가 저절로 연결된다.

이들은 칼 맞기 전에 두 손만 뻗어 올리면 된다. 그 후에는 죽어도 무방하다. 자석 성분까지 가미된 철수가 두 손을 끌어당기고, 고리까지 연결한다.

순식간에 칼 든 손이 구속되었다.

아걸은 피식 웃으면서 반철도를 휘둘렀다.

쉬이이익!

아걸은 엄지와 검지만 살짝 움직였다. 칼 든 손이 구속되었어도 그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

휘리릭! 파파팟!

반철도가 철수 낀 양팔을 잘라 냈다.

반철도는 사내의 품 안에서 휘둘러졌고, 먼저 오른손 팔뚝을 잘라 냈다. 그리고 원을 그리고 왼손까지 잘라 냈다.

쉬익! 퍼억!

아걸은 양팔을 끊어냄과 동시에 옆에 있는 사내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퍼억!

막 검으로 아걸을 쑤시려던 사내가 거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벌렁 넘어갔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왼쪽에 있는 사내가 앞으로 꼬꾸라지고 있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치우치는 중이다. 가슴을 얻어맞고 뒤로 쓰러지려고 했지만, 곧 다시 앞으로 튕겨 나왔다.

퍼억!

반철도가 목을 쳤다.

앞으로 튀어나오는 탄력에다가 반철도가 쏘아져 오는 힘이 보태지자 사내의 머리는 아주 싱겁게 떨어져 나갔다.

‘마약(痲藥)!’

인간말짜들은 아주 질이 나쁜 마약을 상습 복용한다.

양귀비는 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들은 양귀비처럼 질 좋은 마약을 쓰지 않는다. 아니, 양귀비가 질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값이 비싸서 쓰지 않는다.

양귀비가 몇 푼이나 한다고?

그것도 비싸다. 집에서 양귀비 몇 송이 재배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인간말짜들이 주로 쓰는 마약은 망초(芒草)라는 풀이다.

망초라고 하면 억새를 생각하기 쉬운데, 억새는 아니고 인간말짜들끼리 주고받는 은어다.

망초를 어떻게 재배하는지는 비밀이다.

아주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재배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다.

이들은 단지 망초라고 불리는 즙액을 복용하고 환락을 얻는다.

눈이 돌아가서 흰자위만 나올 정도라면 치사량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아마도 머릿속이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칼에 맞아서 죽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귀비 같은 마약에 중독되면 한두 시진 정도는 폭발적인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아주 강력한 마취 작용이 일어난다.

망초는 극한의 쾌감을 일으키면서도 행동은 통제하지 않는다. 몸이 쾌감에 맞춰서 움직인다.

환각에 빠져있는 동안 살인을 하기도 하고, 자살하기도 한다. 물웅덩이에 스스로 빠져 죽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강가 같은 곳에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 손에는 검과 칼이 쥐어져 있다.

망초를 복용하기 전에 칼을 마음껏 휘두르다가 일종의 정신 각인도 했을 것이다.

‘정말 인간말짜들이네.’

스읏!

아걸은 두 번째 사내를 벤 후, 뒤로 빠질 생각이었다.

이들이 망초에 중독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굳이 벨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아걸이 달려들기 무섭게 오른쪽 맨 끝에 있던 사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망초에 중독된 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다.

‘무인?’

아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열 명 중에 무인이 있다. 그는 망초에 중독되지 않았다. 정신이 아주 멀쩡하다. 하지만 눈가에는 어둠이 물들어 있다. 삶을 기대하지 않는 눈빛이다.

죽으려고 나온 자다.

쉬이이잇! 휘이이익!

살아남은 여덟 명이 아걸을 에워쌌다.

“다 죽여달라는 건가.”

아걸이 싸늘하게 말하며 칼을 들었다.

사내들도 더는 웃지 않았다. 몽설을 향해 퍼붓던 악담도 깨끗이 잊은 듯했다.

사내들은 종교의식을 행하듯 두 팔을 하늘로 쳐들었다. 그리고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다.

철컥! 철컥! 철컥!

철수가 서로 부딪치면서 고리가 연결되었다.

아걸은 비로소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왜 망초를 먹고 정신이 나간 자들을 내세웠는지도 알겠다.

인벽(人壁)!

사람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다.

“후후!”

인벽을 친 자 중 두 명이 싸늘한 눈빛을 쏘아 냈다. 다른 여섯 명은 흐리멍덩하다. 두 눈에 초점이 모여 있지 않다. 벌써 흰자위를 들어낸 자도 있다.

망초에 중독된 자들은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몽설을 욕해서 아걸을 충동질한 자들도 바로 이 두 명이다. 두 명만이 온전하다.

아걸은 이들을 일시에 베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로 쇠사슬로 몸을 연결했기 때문에 칼로 베면 뒤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꼬꾸라진다.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 깔린다. 그때,

쒸이이잇! 쒸이이이잇!

하늘에서 메뚜기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덮쳐들었다.

불화살! 화약을 매단 불화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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