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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73화 (273/600)

#273화. 第五十五章 도화선(導火線)(3)

파팟!

아걸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쳤다.

하늘에서 화살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솟구쳤다.

신형을 띄운 위치는 사내들의 키 높이.

쒜에엑!

반철도가 앞에 있는 자를 후려쳤다.

칼의 옆면, 넓은 쪽으로 머리 뒤를 후려쳤다. 목과 등까지 일시에 때렸다.

동시에 반철도를 배 밑으로 힘차게 밀어냈다.

상대방을 때린 탄력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뒤쪽으로 날아갔다.

꽈꽈꽈꽈꽝! 꽈꽝! 꽈아아앙!

아걸이 서 있던 자리는 금방 화염 더미가 되었다.

아걸은 땅을 데굴데굴 굴러서 숲으로 들어갔다. 뒤는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이건 정말 나쁜 놈들이네.’

아걸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할배는 인간말짜라고 해도 무시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인격적인 무시라고 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인격을 무시하는 일이 일어난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일을 불쑥 일으킨다.

그러니 어떤 인간도,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인간도 사람으로 대하라고 가르쳤다.

아걸은 인간말짜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

이들이 이런 삶을 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편이다.

- 오죽 먹고살 게 없으면 이런 식으로 살아가겠니.

할배는 인간말짜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걸이 이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할배를 쫓아서 적랑대 살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적랑대 살수는 신분을 숨기고 인간말짜 속에도 숨어 있었다.

할배는 이들을 싫어하면서도 존재 가치가 있다고 봤다.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피고름을 빨아 먹고 살지만, 또 그들을 보호해 주는 측면도 있다.

이들이 없으면 그들이 더 잘 살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들 역시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갈 희망이 전혀 없고, 오늘 먹을거리만 있으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나락에서 끌어낼 수도 없다.

이들은 이들끼리 어울려서 살아가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끌려와서 마약을 먹었다면? 억지로 허리에 쇠사슬 찼다면? 마약을 복용하는 순간부터 죽음을 예감했겠지만, 그래도 살고 싶지 않았을까?

이건 아니다 싶다.

인간말짜를 모두 벌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여기 온 놈들만이라도 살려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용서하지 못해!’

타타타닥! 타타닥!

아걸은 폭발이 끝나기도 전에 숲을 향해 뛰었다.

쒜에에엑!

반철도에서 거친 소리가 터졌다.

검고 투박한 칼날이 활활 타오르는 붉은 화광을 받으면서 거침없이 빛을 뿜어냈다.

“커억!”

“악!”

숲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솔직히 소축십검도 상대하기 힘들었던 절정도를 한낮 인간말짜가 받아 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들이 아무리 싸움판에서 날고 기는 싸움꾼들이라고 해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걸의 칼은 차원을 달리한다.

일홀도가 인간말짜들을 향해서 빛을 품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감히 일홀도에 대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홀도 역시 이들까지 베는 것은 칼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일홀도는 강자만 찾아다니는 칼이다.

여기서 분명히 무림과 일홀도의 차이가 생긴다.

무림은 선악을 중시한다. 악을 벌하고 선을 감싼다. 이것이 정도 무림인이 무공을 배우는 목적이다.

일홀도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직 강한 칼!

정사마를 막론하고 강한 칼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강한 칼을 추구하는 중에 선한 일까지 행하면 좋다. 일부러 악한 일을 찾아서 하지는 않는다.

정도 무림은 악당과 강자가 있으면 악당을 찾아간다.

일홀도는 강자를 찾아간다. 그러면 악당을 내버려 두는가? 일홀도가 걸어가면 악당은 스스로 길을 비킨다. 나쁜 짓을 하다가도 검을 멈추고 용서를 빈다.

진정 강한 칼은 베지 않고 제압한다.

쒜에에엑! 퍼억! 퍽퍽!

순식간에 세 명이 쓰러졌다.

구대문주의 십이살환도가 번개 같은 속도로 휘둘러졌다. 거기에 아걸이 수련한 본인만의 일홀도도 섞였다.

아걸의 일홀도는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한다. 손톱만 한 힘으로 거력을 끌어낸다.

회전력, 낙하력, 반탄력, 구심력…… 칼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힘을 유효 적절하게 조합한다.

왼쪽 무릎을 굽혔다가 위로 힘껏 튕겨 올리면 반탄력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작이고, 일상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무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아걸은 그런 힘으로 칼을 쳐 낸다.

그런 칼은 진기를 사용해서 휘두르는 칼과는 전혀 다른 칼이 된다. 칼의 위세, 허공을 가르는 흐름, 칼에 깃든 강도가 전혀 다르다. 진기로 구사하는 초식과도 다르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가 가장 능숙하게 칼을 쓰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누가 가장 감각을 잘 끌어내느냐.

그런 면에서 아걸에게는 또 일홀사도가 있다.

모든 초식이 본능에 녹아 있다.

아걸은 저들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칼을 쳐 냈다.

쉬리리릭! 파파팟!

“으아악!”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 생을 달리했다.

“아!”

누군가 탄식했다.

“십쇄도 안 됩니다. 우리 이거…… 잘못 건드린 거 같은데요.”

수하가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음!”

야구도 침음했다.

목숨을 내놓고 달려들어서 이길 수 있는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

아걸은 그렇지 못한 자다.

“워낙 차이가 벌어지지?”

“네. 저희가 준비한 모든 게 너무 쉽게 뚫렸습니다. 하! 이건 도무지…… 싸울 생각이 안 드는데요.”

“그래. 십쇄조차 저런 식으로 무너뜨린다면 어쩌란 말이야. 아까 십쇄를 두어 개 펼칠 수 있다고 했지?”

“네.”

“한 개 더 보내 봐. 한 개 더 보내고 이번에는 있는 거 없는 거 다 쏟아부어.”

“전부 말입니까?”

“죽으면 끝인데 남겨서 뭐해? 화약도 다 쏟아 버리고 독침, 연노 다 날려. 그러면 대략 이십여 장 정도는 죽음의 땅이 되겠지? 그렇게 해 보자고. 통하나.”

“네!”

수하가 힘차게 대답했다.

몸에 쇠사슬을 묶은 자들이 또 나타났다.

그들은 곧장 아걸을 향해 걸어왔다.

“너 사람 잘 죽인다며? 어디 우리도 한번 죽여 봐.”

“큿큿큿! 우리 죽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내 배때기에도 칼 좀 쑤셔 줄래.”

역시 생각했던 대로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은 열 명이지만, 말을 하는 사람은 두 명뿐이다. 나머지는 그저 칼만 든 채 질질 끌려온다.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두 명만 베고 싶다. 두 명만 쓰러트리면 다른 여덟 명은 저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뭘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멀거니 앉아 있을 것이다.

망초에 단단히 중독되었다.

하지만 두 명만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들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쓰러지는 순간, 이 근처는 불바다가 된다.

타탁! 타타타탁!

아걸은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아걸은 자신이 꼭 사형 서리가헌의 일탄십검을 사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 순식간에 검을 흘리는 것이 일탄십검과 흡사하다.

“크크큿!”

두 명이 괴소를 흘렸다.

확실히 두 명이다. 다른 여덟 명은 괴소조차 흘리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서 있다.

그러다가 아걸이 달려들자 매우 화난 듯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러 댔다.

푸욱!

그들이 휘두른 칼에 옆 동료가 맞았다.

“킥킥!”

칼 맞은 자가 상처를 보면서 웃었다.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순간, 아걸은 달리던 힘을 빌려서 허공으로 도약했다.

쒜에엑! 파앗! 빠악!

한가운데 있는 자, 배에 칼을 쑤셔 달라고 말하던 자를 단숨에 쳐 냈다. 칼이 옆머리를 후려쳤다. 동시에 그자의 어깨를 발로 찍으며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휘릭!

허공에서 몸을 휘돌린다.

반철도는 어느새 터져 나가고 있다. 몸이 빙글 휘돌릴 때, 반철도 역시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린다.

퍼어어어억!

가장 왼쪽에 있던 자가 허리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쭉 베이며 쓰러졌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칼이다.

아걸은 머리를 밑으로 해서 뚝 떨어졌다. 반철도는 반대로 땅에서 위로 그었다. 아걸은 머리 위에서 아래로 그은 것이지만, 상대는 허리를 가격당한 후 목덜미까지 베였다.

아걸은 두 사람을 베고 쇠사슬에 묶인 자들을 건너뛰었다. 그들의 등 뒤로 내려섰다.

사내 열 명은 아걸을 포위하지 못했다.

손에 철수를 끼고 있지만 아무짝에도 소용없었다. 도무지 일말의 위협조차도 되지 않았다.

쉬이이잇!

아걸은 앞만 보고 치달렸다.

뒤에 남겨진 자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화약이 터졌다. 기름 항아리가 터지는 듯 기름 냄새가 확 번졌다.

아걸은 공격 순서를 알고 있다.

꽈아앙! 꽈아앙! 꽝!

어김없이 등 뒤에서 거센 폭음이 올렸다.

‘역시!’

숲은 어느새 피로 물들었다.

기름 먹은 불길은 거세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활활 타올랐다.

쒜엑! 슷! 퍼억!

아걸은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다.

적들이 쓰러지고 또 쓰러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숲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이다. 운 나쁘게 진짜 심마니가 숨어 있어도 죽는다.

파아아앗!

아걸의 두 눈에서 얼음보다도 차가울 것 같은 한광이 쏟아져 나왔다.

“끝났네.”

야구가 침음했다.

수하들도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정면승부는 무리다. 다른 놈들에게는 이런 수단이 먹히는데, 혈도비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야구는 흑후를 떠올렸다.

‘얄미운 원숭이. 어쩐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오더라니.’

흑후가 찾아왔을 때부터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어야 했다. 야천이 하기 싫은 일이었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인지 고민했어야 한다.

“너희 중 두 명. 죽어 줘야겠다.”

야구가 수하 넷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명해 주시죠.”

“너. 너.”

야구가 수하를 지명했다.

“넌 가서 내 이름으로 죽어.”

“그러죠.”

수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통에서는 두목을 대신해서 죽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다.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너 죽어.’ 하면 ‘네.’하고 가서 죽으면 된다.

“그런데 말이야.”

야구가 주위를 돌아보더니 수하의 귀에 대고 낮고 빠른 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아걸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두 명을 봤다.

딱 봐도 누군지 알겠다. 이들을 이끄는 소위 수뇌라는 자들이다.

두 명의 몸에서는 다른 자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강인한 투기가 흐른다.

싸움꾼 중의 싸움꾼이라는 생각이 확 든다.

누가 이런 자들과 시비 붙으면 오늘 참 재수 없는 날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 같다.

무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거머리처럼 끈적끈적한 싸움을 할 것 같아서 고개가 내둘러진다.

저벅! 저벅!

아걸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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