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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74화 (274/600)

#274화. 第五十五章 도화선(導火線)(4)

솔직히 아걸은 눈앞에 있는 수뇌 두 명과 숲에서 죽어간 사내들 간에 무공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들 역시 일초지적이다.

전신에서 투기가 물씬 풍기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칼 한 번에 쓰러질 자들이다.

“허도기가 이런 일을 시켰을 리는 없고. 누구냐?”

아걸이 싸늘하게 말했다.

“어린 놈의 새끼가 혓바닥이 반 토막인가. 말 한 번 되게 짧네.”

두 명 중 왼쪽 사내가 말했다.

쓔웃!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에서 매서운 광풍이 일어났다.

아걸은 반철도를 광풍보다도 빠르게 쓸 수 있다. 하지만 광풍과 함께 움직여도 이들은 피하지 못한다. 굳이 전력을 다해서 도초를 펼칠 필요가 없다.

“컥!”

방금 말했던 자가 목을 움켜잡았다.

목덜미에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목을 눌러 잡은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줄줄 흘렀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걸의 시선은 오른쪽 사내를 향했다.

쿠웅!

뒤늦게 한 사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가 안 나타났으면 물러서는 저 사람들, 쉽게 도주 못 했어.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너, 뭐라고 불러?”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서 사내를 가리켰다.

“야구. 들개라고 부른다.”

“훗!”

아걸은 피식 웃었다.

옛날, 할배와 함께 인간말짜들이 사는 곳을 들렸는데, 그때 그곳을 움직이는 자는 공구(公狗)라고 불렀다. 수캐, 개의 수컷이라는 뜻이다.

“너희는 왜 하나같이 개지?”

“크큿! 오늘 정말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네. 내가 나왔으니까 날 죽이고, 쟤들은 놔줘.”

야구라고 자칭한 사내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누가 시켰냐고 물었는데. 말하고 죽을래, 그냥 죽을래?”

“흑후란 놈을 찾아가 봐.”

야구가 말했다.

“흑후?”

“흑후란 놈이 새벽 댓바람에 찾아왔거든. 널 죽이라고.”

스읏!

야구가 품에서 여러 조각으로 접은 종이를 꺼내 아걸에게 던졌다.

“군도다. 흑후란 놈이 어떻게 찾아내서는. 널 죽이면 금릉에 있는 천운루를 받기로 했는데.”

“넌 의리도 없네. 시시콜콜 말하는 걸 보면.”

“큭큭! 이대로 나만 죽기에는 억울해서 말이지. 난 오늘 죽겠지만, 그놈도 곧 죽을 거야. 네놈 귀에 흑후라는 이름이 들어갔는데 죽지 않고 배겨? 킥킥킥!”

야구가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검 뽑아. 일 초는 써 보고 죽어야지?”

“흑후 그놈, 허도기하고 야천을 이어주는 놈이야. 그놈을 잡고 따라가면 허도기 이름이 나온다는데 내 첩 년 다섯을 걸지.”

“첩까지는 필요 없고, 너만 죽으면 돼.”

“이 건방진 새끼가!”

쒀에에엑!

야구가 검을 쳐 왔다.

야구는 굉장히 빠르다. 검을 쓰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정통 검이 아니고 살인 검이다. 뭐라고 할까? 모든 허초를 배제하고 철저히 사람을 죽이는 데만 특화된 검이라고 할까?

휘이익!

야구는 검초를 전개하면서 흰 분말도 홱 뿌렸다.

산공독(散功毒)이다. 약간만 흡입해도 진기 흐름이 끊긴다. 조금 깊게 마시면 전신에서 힘이 쭉 빠진다. 칼을 들고 있기도 힘들 정도가 된다.

파라라랑!

아걸의 칼이 격렬한 변화를 일으켰다.

산공독을 날리는 데는 이십일대 문주의 산화도와 삼십오대 문주의 회륜도가 적합하다.

아걸은 제일대 문주의 환부살도 십육 식 백이십팔 초를 전개했다.

퍼억! 퍽! 퍽! 퍼어어억!

야구는 칼에 맞고, 맞고, 또 맞았다. 쓰러지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얻어맞았다.

쒜엑! 퍼억!

마지막 칼이 머리를 몸에서 분리했다.

일전통이 무너졌다.

아걸의 머릿속에 퍼뜩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옛날 성검문에 마인들이 습격했다.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마인들인데 느닷없이 성검문 한복판에 나타났다. 그리고 살상까지 벌였다.

이때, 제일 먼저 들었던 의문이 성검문 경계가 그렇게 허술했던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아걸의 의문이 아니다. 전 무림이 공통으로 떠올렸던 의문이다.

허도기가 내놓은 대답은 ‘한스러운 일이지만 태만.’이었다.

마인들이 성검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허문승, 허문학, 허문기 삼 형제를 죽였는데, 이 모든 일이 ‘태만’이라는 한 글자에 묻혀 버렸다.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성검문주가 병을 이유로 은거해 있는 사이, 성검문 제자들이 태만해졌다는 것인데…… 마인들이 침범하는 것을 모를 정도로 태만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당시, 허도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장자 허문승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성검문을 강하게 이끌고 있던 터였다.

누가 생각해도 태만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허도기가 이미 마인들을 제압하고 성검문까지 장악한 상황인지라 깊게 파고 들어가지 않았다.

야구, 흑후, 야천, 그리고 그 끝에 허도기.

‘허도기가 야천과?’

아걸은 눈에 귀광이 번뜩였다.

아걸은 야구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 내어 앞서간 무리를 뒤쫓아 갔다.

지금부터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

잘못된 길을 걸을까 봐 조심하는 게 아니다. 간신히 잡은 꼬리를 놓칠까 봐 조심한다.

쉬이이익!

아걸은 숲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내 네 명을 찾아냈다.

주위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다. 야구 무리 중에서 가장 뒤에 쳐진 자들이다.

이들은 아걸이 쫓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매우 여유롭게 걸었다. 하기는 불바다가 되었던 곳에서 꽤 멀리 오기는 했다. 거의 삼 리 가까이 움직였으니까.

쉬이잇!

아걸은 즉시 신형을 쏘아 내어 사내들을 가로막았다.

“웃!”

사내들이 아걸을 보고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아걸은 들고 온 야구의 머리를 사내들 앞에 던졌다.

“헉!”

“윽! 사규(蛇嘄)님!”

사내들이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를 보고 경악했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잘못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아이코! 정말 사신이신 줄 모르고…… 저흰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사내들이 털썩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무리에서 떨궈진 인간말짜는 맞아 죽기 딱 좋다. 뒤끝만 염려하지 않는다면 이런 자들쯤은 누구든 죽일 수 있다. 하물며 정면에서 싸운 아걸이 뒤끝 따위를 염려하겠나.

아걸이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사규는 뭐 하는 놈이냐?”

“부, 부두목. 부두목님입니다.”

“야구는 어디 있어?”

“모,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아걸은 단박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했다.

사규란 자가 야구를 위해서 대신 죽었다. 아니, 야구가 죽으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너희 어디서 온 놈이냐?”

“일, 일, 일, 일전통……”

사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일전통? 일전통이 뭐 하는 데야?”

“도, 동전 한 잎이면 여자와 정, 정을 통할 수 있다고 해서……”

‘매음굴!’

아걸은 즉시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중원에는 이런 곳이 많이 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큰 도읍 주변을 뒤져 보면 이름은 다르지만, 일전통과 비슷한 매음굴이 수두룩하게 있다.

이런 곳에 있는 여인들은 대부분이 폐기들이다.

나이 들어서 혹은 사고로 수족을 잃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평생 해 오던 일이라서…… 천 명에게 물어보면 천 가지 사연이 나온다고 해서 천사촌(千事村)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도 있다.

‘이놈, 정상적인 놈이 아니네.’

아걸은 흑후를 생각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흑후가 야천 인물이라면 이들이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전통에 있는 인간말짜를 동원했다. 왜? 무엇 때문에.

흑후가 허도기에게 공이나 세워 보겠다고 이들을 공격에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천과 허도기 사이에 뭔가가 있다.

‘나는 당신에게 죽을지 모르지만, 당신 역시 쉽게 진공부로 돌아가지 못하겠어. 직감인데 당신 싸움도 상당히 오래갈 것 같아. 인간말짜까지 끼어든 싸움인데, 쉽게 끝나겠어. 후후!’

스읏! 쒜에에엑!

아걸은 반철도를 휘둘러서 인간말짜 네 명을 베어 냈다.

“크윽!”

“컥!”

네 명은 아걸이 살려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느닷없이 터진 일격에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미안. 이 싸움에 나도 끼어들어야 해서. 너희가 야구를 만나면 번잡해지거든.”

아걸은 더는 쫓지 않았다.

등을 돌려서 터벅터벅 돌아갔다.

아직도 화염이 치솟고 있는 곳에 손승이 있다. 소가 있고, 수레가 있다.

* * *

“에구! 살 떨려. 이거 사신을 건드렸네. 저놈은 우리가 건드릴 놈이 아니야.”

흑후는 아걸이 생각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구는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다 쏟아부었다.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일전통은 망했다.

야구 대신 사규가 목숨을 내놨지만, 일전통 사내 중 절반 이상이 죽었으니 한동안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놈들에게 찜 쪄 먹힌다.

야천은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유인!

아걸을 함정으로 유인해서 가둬 버리는 것이다.

만약 야천이 아걸과 싸우게 된다면, 아걸을 적으로 돌린다면 오직 그 방법밖에 없다.

무인이나 병법으로 싸울 생각은 애당초 접어야 한다.

일홀도? 섬뜩한 칼이다.

사실, 이 유인책은 허도기를 노리고 준비했다.

어느 무리,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야천에도 강경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다.

강경파는 전쟁을 원한다.

온건파는 허도기가 달라는 것이 야천의 운영에 장애가 되지 않는 한, 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로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만약 전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생각이 일치한다. 무공으로 허도기를 꺾을 수 없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함정 유인이다.

허도기를 유인할 곳도 준비했다.

일단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천신도 빠져나오지 못할 함정을 만들어 놨다.

함정도 기관장치로 여닫는 것이 아니라 무식하게 입구를 무너트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방식은 한 번밖에 쓰지 못하지만, 철저히 가둬 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장 깊이 동굴로 유인한 다음 입구를 봉쇄해 버린다.

단언컨대 천신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두더지도 갇혀서 죽는다. 동굴을 무너트리는 것과 동시에 동굴 안으로 스며드는 모든 숨구멍이 막힐 것이다.

그 방법이 아니면 이런 칼 귀신들을 죽이지 못한다.

“어쨌든 이놈에 대해서는 알았으니까. 에구! 난 야구 그놈이 하도 단단히 준비하기에 뭔가 좀 통할 줄 알았지. 하! 어떻게 그런 공격을 빠져나오냐?”

흑후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야구 대신 죽은 사규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는 것은 꿈에서도 알지 못했다.

사규가 아걸과 대치할 때, 그는 이미 자리를 뜨고 있었다.

또 아걸과 사규는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않았다. 부딪쳤나 싶은데 곧바로 칼을 써서 목을 쳐 버렸다.

“휴우! 이놈들을 시킨 게 천만다행이지. 우리 애들을 썼다면 에휴! 끔찍할 뻔했네.”

흑후가 다시 치를 떨었다.

아걸을 공격한 것이 자칫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도화선처럼, 불붙은 줄처럼 꼬리를 타고 달려올 수 있다.

수하들을 시켰다면 불붙은 줄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자신을 지나쳐서 야천으로 향할 것이다. 또 야천을 지나쳐서 그 끝에 허도기가 있는 것도 알게 된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도화선이다.

자신이 직접 그 선에 불길을 댕길 뻔했다.

‘역시 생각 잘했어. 이럴 때는 쓰레기들을 써야 해. 후유!’

흑후는 야구 무리와 만나기 싫어서 부지런히 신형을 쏟아 냈다.

그놈들과 부딪치면 죽는소리밖에 더 듣나. 도와 달라, 수고비라도 달라는 투정을 귀가 따갑게 들어야 한다.

이제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

허도기에게는 깨 벗고 준다. 또 지금 돌아가는 즉시 군도를 허도기에게 건넨다. 아걸이 있는 곳을 허도기에게 알려 주어서 한 놈이라도 처리한다.

그러면 모든 게 깨끗해진다.

“히유!”

흑후는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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