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277. 第五十六章 전장(戰場)(2)
소축십검 중 살아남은 사람은 세 명이다.
둘째 번개 초가평, 넷째 쓰레기 이뢰, 다섯째 점박이 오진북만 남았다.
다른 일곱 명은 모두 한 명에게 쓰러졌다. 어처구니없게도 명줄을 모두 아걸에게 잡혔다.
전쟁터에서 길든 협성림도 죽었다.
소축십검 중 지혜가 가장 밝다는 독안혈검 전가성은 혈무대에서 묘법조차 써 보지 못하고 죽었다.
소축십검은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장장 이십여 년 동안 강호 초강 고수로 군림했다.
어떤 도전도 이들을 넘지 못했다. 날고 긴다고 하는 고수들도 소축십검과 부딪치면 종이호랑이처럼 나가떨어졌다. 그야말로 조명십해는 무적 검이었다.
무적 검!
무적 검의 신화는 영원불멸하다.
‘아걸…… 그놈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지금이 딱 좋았는데.’
허도기는 아쉬움이 컸다.
사제지간(師弟之間).
참 좋은 말이다. 달콤한 말이다. 사제 간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끈끈한 유대감이 읽힌다. 마치 가족처럼 끊어지지 않는 줄로 연결된 느낌이다.
맞는 느낌이다.
한데 이 사제 간이라는 말에는 매우 엄격한 절제가 숨겨져 있다.
제자가 사부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할 때까지는 사제 간이라는 말속에 온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부를 능가하게 되면 당장 칼날이 막을 찢어 버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검이 다 이렇다.
다만 사부라는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느냐, 아니면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이 정도가 되면 사제 간이라는 명칭은 그냥 부르기 좋은 허울에 불과해진다.
사부는 사부이고, 제자는 제자다. 사제 간으로 뭉뚱그려서 말할 수 없는 별개의 인간이 된다. 사부는 제자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가 없다.
제자도 머리가 컸다고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소축십검, 그 정도가 딱 좋았다.
사제 간이라는 말로 제자는 사부를 존경하고, 사부는 제자를 배려해 준다. 제자는 사부의 그늘에서 절대 권력을 누린다. 절대 검이 되어서 세상을 호령한다.
얼마나 좋은가.
아걸이 그런 막을 찢어 놨다.
열 명 중 일곱 명을 죽였으니,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허도기는 마지막 남은 고리를 끊었다. 제자들이 보호막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검은 검날이 날카로울수록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어설픈 검집으로는 검을 가두지 못한다. 하지만 날카로운 검이 필요한 상황이니, 매우 날카롭게 갈아 둔다.
드르르륵!
허도기는 석실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제자들을 위해서 석실 열 개를 마련했는데, 일곱 개가 주인을 잃었다.
석실 안에는 검속제일 초가평이 가부좌를 튼 채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신색이 좋구나.”
허도기가 초가평 앞에 앉으며 말했다.
파앗!
초가평이 눈을 떴다.
석실 문이 열릴 때부터 사부가 들어선 것을 알았을 텐데, 말을 건 후에야 눈을 뜬다.
건방지고 오만해졌다.
눈빛도 평범하지 않다. 초가평의 눈빛은 살기가 되어 사부에게 꽂혔다.
굉장한 살기다. 초가평에게 검을 겨누면 반드시 생사 결전을 벌여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둘 중 한 명은 죽는 싸움이 된다. 그런 느낌이 확 와닿는다.
“좋군. 일사검광(一死劍光)을 제대로 수련했어.”
허도기가 피식 웃었다.
일사검광은 조명십해 중 하나다. 검이 빛을 뿌리면 죽음이 일어난다는 쾌검이다. 검속제일이라는 평을 듣는 초가평에게 가장 맞아떨어지는 무리다.
“이제 검을 조금 알았습니다.”
초가평은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사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지나가는 똥개에게 말하는 듯 일절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사부를 무시한다. 지금이라면 사부와도 일전을 겨룰 수 있다. 사제 간이라는 막이 찢겼다. 그리고 초가평이라는 인간이 지닌 본연의 기질이 튀어나왔다.
초가평은 성검문을 떠날 놈이다.
바깥세상에도 이런 칼이 있다. 일홀도라고 한다.
성검문에도 천하제일검이 있다.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검, 이것이 진정한 조명십해다.
“훗! 언제 떠날 생각이냐?”
허도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왜 떠난다고 생각합니까?”
“너는 이제 내가 잡아 둘 수 없는 놈이니까. 일사검광을 수련하면 세상이 눈 아래로 보이지. 그 눈에 사부인들 들어올까. 아! 가장 검을 맞대 보고 싶은 상대로 보이겠군.”
“검을…… 섞어 주시겠습니까?”
“하하하!”
초가평은 날카롭게 말했고, 허도기는 크게 웃었다.
“지금은 아니지. 네 검은 생사검 아니냐. 우리 둘이 검을 섞으면 한 명은 죽어. 기껏 검을 가르쳤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내 손으로 베면 허무하지.”
“후후후!”
이번에는 초가평이 웃었다.
“명단을 주마. 일사검광을 준 대가로 열 명 정도는 쓰러트릴 수 있잖아? 그 후에 와라. 언제든지.”
초가평은 눈을 감아 버렸다.
당신 말대로 하지. 열 명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베어 주지. 당신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데, 굳이 제자에게 시키는 것을 보니 죽이기 껄끄러운 상대인가 보네. 하지. 그 후에.
“명단은 네가 출관하면 총관이 건네줄 것이다. 난 곧 출타할 것이니까 찾을 필요 없어.”
초가평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후후!”
허도기는 웃었다.
검에 절대적으로 자신을 갖는 날이 온다. 긴가민가한 느낌에서 ‘절대!’라는 영역으로 넘어간다. 두려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오직 자신감만 생긴다.
소축십검은 사라졌다.
강호에 출도하지 않고 오직 가르침만 받는다는 관례는 깨진다. 초가평은 무림에 나갈 것이다. 무명을 얻을 것이고,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살 것이다.
초가평이 절대 강자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가평에게는 아직도 마지막 한 단계가 더 남았다.
일사검광을 누구에게 배웠나? 사부에게 배웠다. 그러니 절대 승산을 장담하려면 일사검광을 넘어서는 새로운 검을 가져야 한다. 그런 검을 가지면 비로소 자신과 상대할 수 있고, 터득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상당히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될 거다.
“행운을 빈다.”
허도기가 진심으로 말했다.
물론 초가평은 들은 척도 하지 않지만.
초가평이 떠날 놈이라면 이놈은 남을 놈이다.
쓰레기, 진개…… 이뢰는 성격이 포악하면서도 남들 위에 군림하는 성격이다.
진개는 홀로 서는 것을 싫어한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힘들게 쌓아 올리는 것보다는 남이 이뤄 놓은 것을 가로채기가 더 쉽다고 여긴다.
진개는 늘 성검문을 이끌고 싶어 했다.
성검문의 위치와 힘을 이용해서 권력자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싶어 한다.
진개는 마단을 복용했다. 잠력을 최대한 격발시켜서 조명십해를 펼쳤다. 그러고도 팔이 잘렸다.
진개도 초가평처럼 보호막을 찢고 튀어나와야 한다.
드르르륵!
허도기는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사부님! 오셨습니까?”
진개가 활짝 웃으면서 허도기를 반겼다.
팔 하나를 잃은 후 절망에 잠겨서 쩔쩔매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얼굴 전체에 웃음기가 활짝 폈다.
“표정 좋네. 진전이 꽤 있었나 보군.”
“있었죠. 히히!”
철컥! 철컥!
진개가 검동(劍銅:방패막이)을 엄지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때마다 검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들어갔다.
“이 소리, 듣기 좋지 않습니까?”
철컥!
“으악!”
철컥!
“악!”
진개는 검동을 툭툭 치면서 입으로 비명까지 흘렸다.
“그 비명은 누가 지르는 거냐?”
“이거 비명 아닌데요.”
“비명이 아니면?”
“살려 달라는 절규죠. 제가 팔 하나를 잃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어요. 아! 사람은 함부로 죽이면 안 되는 거구나. 반드시 사지를 절단한 후에 죽여야겠구나. 킥킥킥!”
진개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미친놈!”
“킥킥! 사부님이 아니라 다른 놈이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검을 뽑았을 텐데.”
허도기는 진개의 말을 무시했다.
분뢰절맥은 강력한 좌수 검법이지만 인성을 변하게 만든다. 검에 마가 끼기 시작한다. 사람을 죽여도 전혀 안타깝지 않을 것이다. 인성이 사라지는 중이니.
허도기는 석실을 쓸어 보았다.
석실 벽면에 무수한 검 자국이 새겨져 있다. 정교한 검흔은 아니다. 정반대, 힘으로 파낸 듯한 검흔이다. 아마도 일 초에 검흔 서너 개씩은 새겨 넣었을 것이다.
진개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분뢰절맥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
허도기가 석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직 부족해. 조금 더 해라.”
“네. 그러죠.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불러 주시고. 킥킥!”
진개가 검을 가슴에 들고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허도기를 공경해서 허리를 숙인 건 아니다. 놈은 허리를 숙이자마자 고개만 빨딱 쳐들고 씩! 웃었다.
“사부님이 원하시면 지역도 들어갈 놈인 건 아시죠?”
“이놈아, 마성 좀 안으로 감춰. 본심이 그렇게 드러나면 세상이 무서워해.”
철컥!
진개가 또 검동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 검을 손에 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경고죠. 조심해라. 여차하면 벤다. 아닙니까? 이놈을 수련하느라고 이만큼 고생했으니 좀 즐기기도 해야죠.”
허도기는 피식 웃었다.
“곧 즐길 수 있을 거다. 수련이나 해.”
“넵!”
허도기는 힘찬 대답을 뒤로하고 석문을 닫았다.
지금쯤 진개는 비웃음을 흘릴 것이다. ‘저놈, 사부랍시고 죽지도 않고’ 등등 온갖 욕지거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 충성한다. 또 그 충성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기도 하다. 절대 권력이 눈앞에 보이는 한 그 충성심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 놈은 떠나고 한 놈은 남는다. 이제 한 놈.
목에 커다란 점이 있어서 장반이라고 불리는 오진북.
장반은 소축십검 중 가장 조용하다. 또 성격이 굉장히 침착하다. 하지만 침착한 속에 잔인함을 숨기고 있다. 지금까지 소축십검은 오진북의 잔인함을 보지 못했다.
오진북이 스스로 조심해 드러내지 않아서다. 하지만 오진북의 잔인함은 진개를 능가한다. 진개가 겉으로 위협을 주는 무뢰배라면, 오진북은 조용한 암살자다.
덜컥!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진북은 검을 들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검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문을 여는 순간, 살기가 강렬하게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오진북은 허도기를 보자 검을 거두고 검례를 취했다.
세 놈 중 가장 제자답다.
“오셨습니까?”
“연무환영심(煙霧幻影心)이 제법이군.”
허도기는 잠깐 본 모습에서 오진북의 검법을 읽어 냈다.
“아직 부족합니다.”
“언제까지 이 안에서만 있을 거야. 인제 그만 나와야지?”
“아직 부족합니다.”
오진북의 음성은 굉장히 침착했다. 하지만 침착한 속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어느 정도 잔인함도 드러내고 있다. 검을 뽑으면 누가 되었든 잔인하게 찢어 버리겠다는 섬뜩함이 깔려 있다.
허도기는 세 제자에게 보호막을 찢게 해 주는 무공을 전수했다.
두 명에게는 조명십해를, 한 명에게는 마도 최강 좌수 검법을.
조명십해의 진수를 알려 주자 당장 검이 변한다. 소축십검은 이런 자들이다.
“일홀도를 쳐야겠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오진북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니, 일홀도는 내가 친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지. 너는 여기 남아서 성검문을 정비해. 가평이는 떠날 거고, 진개에겐 조금 더 수련하라고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성검문을 정비해 놔.”
“네.”
오진북이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다.
초가평, 진개, 오진북.
반응은 각기 다르지만 셋 모두 보호막을 찢었다.
조용한 살수, 오진북은 성검문주가 되지 못한다. 그만한 자격이 없다.
성검문은 밝음 속에서 빛나는 태양이어야 하는데 오진북은 너무 음습하다. 성검문 같은 정도문파 수장보다는 살수 문파를 이끄는 쪽이 더 어울린다.
초가평은 떠돌이, 진개는 마인, 오진북은 음습한 살인자…… 성검문을 이끌 후인이 없다.
‘아쉽군. 독안혈검 전가성. 그놈이 죽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허도기가 말했다.
“내 인장과 영패는 방에 둘 테니까 가져다 써.”
“네.”
소축십검, 죽은 놈들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