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78화 (278/600)

#278화. 278. 第五十六章 전장(戰場)(3)

허도기는 서둘지 않았다.

무림은 원래 자신 것이다. 무림에서 더는 할 것이 없어서 눈길을 황궁으로 돌렸다.

‘고향길이군. 하지만 역시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

여전히 무림은 자신 것이다.

지금도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문파가 서른여섯 개나 된다. 소문파 삼십육 문은 여전히 성검문을 무림 제일 문파로 추앙하며 따른다.

‘누구누구를 조사하라!’ 하고 지시만 내리면 곧바로 중원 전역에 걸쳐서 삼십만 명 이상이 눈에 불을 켠다.

말 한마디에 모든 일이 착착착착 진행된다.

허도기는 이 세상에서 오직 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쥐었다.

무력과 권력, 그리고 금력이 집중되어 있다.

무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개입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황상조차도 하지 못할 일을 할 수 있다.

내 고향, 우리 집에 숨어 있던 쥐새끼 한 마리 잡아 죽이는데 서둘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말을 준비할까요?”

“서둘 필요 있나. 마차로 가지.”

“군도라서 마차는 요동이 심할 겁니다.”

“천천히 가. 흔들리지 않도록.”

“아, 네.”

문주를 위해서 말을 준비했던 마방 마부는 급히 마차를 준비해야만 했다.

허도기는 유유히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아걸이 어디로 도망갈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는다. 아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일홀도는 강한 칼이다. 상대가 누구든 회피하지 않는다.

‘강한 칼…… 후후!’

허도기는 회상에 잠겼다.

일홀도, 옛날에는 정말 강한 칼이었는데.

자신의 손에 죽은 일홀문주는 정말 강했다. 만약 독에 중독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이 패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홀문주는 치가 떨릴 만큼 강했다.

또 한 명, 절대적으로 강했던 무인이 한 명 더 있다.

‘형!’

이초결검 허도강.

형의 조명십해는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 완벽했다.

형에게 일차 반기를 들 때만 해도 호각지세였다. 일홀문주가 도와주지만 않았다면 완벽한 함정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주 직을 수행하면서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

하루에 빈객만 스무 명 이상을 만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결재할 서류가 켜켜이 쌓이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무공수련을 꾸준히 했다.

바빠서 수련을 못 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바쁠수록 더 처절하게 수련한다. 형이 그랬다.

형이 반위로 죽지 않았다면 성검문을 차지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보고드리겠습니다.”

마차 밖에서 흑후가 보고를 해 왔다.

허도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도기는 두 번째 반란을 생각하고 있었다.

형이 죽자 조카들을 공격했다. 조카 세 명을 죽였다.

‘그놈들도 무공이 꽤 강했어. 후후!’

허도기는 웃었다.

조카들을 죽이기 위해서 소축십검 두 명, 세 명이 달라붙었다. 거기에 마인까지 가세했다.

지금 무림에서 그만한 무인을 찾자면 당장 아걸이 생각난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도 필적할 만하다.

‘후후! 조카들과 비교될 만한 자를 생각했더니 당장 당금 무림 최강자가 생각나네. 상당히 강했지. 용골, 진정한 용골이었어. 무공 천재들.’

조카들을 제거할 계획은 독안혈검 전가성이 짰다.

성검문에 원한을 가진 마인을 찾아냈다. 마인이 죽고 없으면 무공이라도 찾아냈다. 그리고 야천에서 적당한 자들을 골라 왔다. 마공을 수련할 수 있는 자들을 선별해 왔다. 마공을 수련시켰고, 암살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당시에 동원된 마인은 두 부류다.

성검문에 진짜로 원한을 가졌던 마도 고수, 그리고 야천에서 끌어들여서 마공을 수련한 자들.

물론 소축십검이 직접 마도 암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전가성은 암살이 성공한 후, 이들을 제거할 계획까지 완벽히 수립했다.

전가성을 정말로 필요한 일을 할 줄 아는 천재였다.

“보고드리겠습니다.”

흑후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귀찮군.’

허도기는 미간을 찡그렸다.

오랜만에 옛날 일을 회상하고 있는데, 절대 강자들이 움직였던 시대를 떠올리고 있는데 귀찮게 방해를 하다니.

허도기가 싸늘하게 말했다.

“말해.”

“아걸은 여전히 군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럴 테지. 피할 놈이 아니야.’

“지금은 수레를 멈추고 쉬는 중입니다. 아마도 오늘은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좋군. 여기서 얼마나 걸리나?”

“말로 가시면 반 시진, 계속 마차로 이동하시면 한 시진 정도면 마주치실 겁니다.”

흑후는 은근히 말로 이동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 왔다.

“한 시진 거리면 신시정(申時正:오후 4시)이면 만날 수 있겠군.”

“네.”

“그러면 저녁은 어디서 먹지?”

“혈도비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데 반 시진 정도 걸리니 딱 해가 질 무렵에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녁은 새끼 돼지 구운 것으로 하지. 통째로 한 마리 구워 놔. 술도 좋은 것으로 준비해 놓고.”

“네. 산에서 내려오시면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흑후는 입안에 든 혀처럼 수발을 잘 든다. 눈빛은 독사눈인데, 꼬리가 아홉 개 달렸다.

아주 간사한 자다.

“그러지.”

신시정에 아걸을 만나면 베는 데까지는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하다.

바로 산에서 내려오면 다소 이른 저녁을 먹게 될 것이다.

‘아걸을 벤 후에는 뭘 하지? 조무래기들을 싹 쓸어버려야겠어. 취화원, 적랑대. 또 뭐 없나?’

허도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림이 대단히 부산한 것 같았는데, 아걸만 치우고 보면 뜻밖에도 할 일이 없다.

사실 무림에서 그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작해야 취화원과 적랑대 정도인데, 적랑대는 거의 활동을 중지하다시피 했고 취화원도 숨어 다니기 바쁘다.

이것도 아걸이 칼을 들고 설친 탓에 덩달아 일어선 것이다.

취화원은 완전히 아걸에게 흡수되어서 반대 길을 가고 있고, 적랑대도 일어서려고 꿈틀거린다.

아걸만 죽으면 그들 모두 다 정리된다.

‘아니지. 그놈들까지 싹 쓸어버리는 거야. 이번 기회에 뒤꿈치를 물 여지가 있는 것들은 싹 정리하는 게 낫겠어. 성검문 체계도 다시 잡고.’

생각대로 하면 대략 칠 주야 정도면 무림이 정비된다.

‘그래. 검을 뽑는 김에 싹 정리하는 거야. 이렇게 깔끔히 마무리 짓고 진공부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거지. 조위부터 쳐? 아니면 전보영부터? 아무래도 조위부터 치는 게 낫겠지. 뱀을 잡으려면 대가리부터 눌러야 하니까.’

허도기는 마차 안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그렸다.

* * *

공격이 멈췄다.

연노가 날아오지 않는다. 아니, 뒤쫓아 오던 자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뒤로 빠져?’

아걸은 입술을 비틀며 피식 웃었다.

드디어 폭풍의 중심에 들어섰다. 사방에서 광풍이 몰아치는데, 그가 있는 곳만 조용하다.

저들은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멀리서 은밀히 포위망을 펼친 채 격한 싸움에 대비한다.

자신이 이곳에 계속 머물면 저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고 하면 즉각 거센 공격을 가해 올 것이다. 지금처럼 공격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공격을 한다.

저들은 자신이 이곳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허도기와 만날 테니까. 후후! 드디어 오고 있군.’

아걸은 공격을 멈춘 사실만 가지고도 허도기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럼 이제 모셔야 하나?’

아걸은 목관을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목관을 열었다.

전보영에서 방부제를 좋은 것으로 쓴 탓인지 손승은 살아 있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저 누워서 푹 잠에 빠진 듯했다. 매우 평온해 보였다.

허도기가 만든 검흔은 여전히 날카롭다.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났어도 상처 부위가 여전히 선명하다.

물론 방부제를 바른 탓이겠지만, 그보다는 검속 영향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

검이 살을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가면서 열기를 일으켰다.

매우 강렬한 열기를 품고 상처를 찢었다. 그리고 매우 강렬한 열기를 일으키면서 빠져나갔다.

상처는 자연적으로 소독이 되었다.

아걸은 이 검을 능가하기 위해서 수십 번도 더 반철도를 쳐냈다. 하지만 이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반철도를 버리고 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반철도는 무겁다. 검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그러면은 쾌속은 더 빨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걸은 고개를 내둘렀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허도기의 검법은 병기를 바꾸는 정도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 봐도 이 상태에서 마주치면 패한다.

‘형님, 검흔 잘 봤습니다.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아걸은 손승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스읏! 퍽퍽! 퍽!

아걸은 반출도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군도 옆, 양지바른 곳에 흙을 다 파내고 그 안에 손승의 목관을 넣었다. 대략 한 시진 후면 허도기와 만나기 때문에 더는 시신을 볼 수 없다.

“형님, 잘 가십시오.”

아걸을 흙을 덮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와 손승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아걸에게는 매우 특별하다. 그를 쫓아온 스물한 명 은거 고수들이 모두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다.

아걸은 살아오면서 친구를 둔 적이 없다.

남자 중에서는 할배만이 정을 준 유일한 사람이다.

그 외에는 친구 한 명 없고,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중원을 떠돌기만 했다.

적랑대에 들어가서 살수들과 만났을 때도 할배는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는 칼을 연습했다.

어떻게든 일홀도를 얻는 게 급선무였다.

인맥을 넓히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친구를 사귈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그리울 때는 죽봉에서 죽어 간 사부를 떠올렸다.

사부와 특별한 애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사별했고, 또 그때는 너무 어렸다. 솔직히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싶은 과거다.

그때마다 할배가 말했다.

- 저놈이 너도 찾아올 거야. 너도 죽일 거야. 그러니 부지런히 칼을 갈아 둬. 언젠가는 반드시 싸워야 하니까.

물론 거짓말이다.

허도기가 자신을 알 리 없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죽을힘을 다해서 수련했다. 허도기가 정말로 무서웠다.

지금에 와서야 겨우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사람들은 아걸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허도기를 죽인 후에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지위나 권력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천하제일인 허도기를 정말 꺾을 수 있는지만 보고 싶어 한다.

진정한 무인의 발원이다.

손승은 그런 발원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아걸은 목관을 쓰다듬은 후, 흙을 덮었다.

두툼하게 봉분도 울리고 미리 준비해 놓은 목비(木碑)도 꽂았다.

목비 앞에는 ‘의형(義兄) 손승지묘(孫繩之墓)’라는 문구만 적었다. 뒤에는 ‘의제(義弟) 아걸(阿杰)’이라고 기록했다.

“후우!”

깊은 한숨만 흘러나왔다.

아걸은 수레로 돌아와서 굴레를 풀었다.

“수고했다. 이제 가!”

찰싹!

손바닥으로 소의 엉덩이를 때렸다.

군도에서 소를 놓아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다.

맹수에게 잡혀서 먹히거나 사람들에게 잡혀서 먹힌다. 주위에 살기 띤 자들이 많으니 아마도 그들에게 잡힐 것이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더는 돌볼 수 없어서 놓아준다.

수레에 묶어 둘 수도 있지만, 굴레를 씌운 채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일지언정 자유를 맛보게 하고 싶다.

가라!

어쩌면 저 소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가 같은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자유.

아걸은 군도를 펼쳤다.

‘거의 다 왔어.’

자신이 싸우기 좋은 장소로 허도기를 데려가야 한다.

지금까지 군도를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 것은 싸우기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장소가 이곳은 아니다. 조금 더 가야 한다.

‘자! 그러면 내가 원하는 장소로 가 볼까.’

저벅! 저벅!

아걸은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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