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279화 (279/600)

#279화. 279. 第五十六章 전장(戰場)(4)

쒜에에에엑! 쒜에엑!

하늘에서 파공음이 들린다.

‘역시!’

아걸은 즉시 신형을 날려서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탁! 타탁! 탁! 타타탁!

화살이 연신 바위를 후려쳤다.

슷! 타악! 스으으읏! 타아아악!

연속해서 화살을 쏘는 소리도 들렸다. 한꺼번에 화살 열 발을 쏠 수 있는 연노가 아니라, 전통에 화살을 담아서 차례대로 쏘아 대는 쇠뇌다.

쇠뇌에는 사람이 들고 다니면서 쏘는 수기노와 상 위에 올려놓고 크고 강한 화살을 쏘는 상노가 있는데, 지금은 두 개 모두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스읏! 쒜에에엑! 따아악!

‘상노. 상노. 수기노. 상노. 수기노.’

아걸은 상노 숫자를 헤아렸다.

상노는 위력이 강하지만,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다. 활이 너무 커서 고정해 놓고 사용해야 한다.

저들은 아걸이 움직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상태 이대로 허도기가 올 때까지 잡아 놓을 생각이다. 그러다가 죽일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이고.

잠시 화살 공세가 멈췄다.

아걸이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움직이지 않자 공격도 저절로 멈췄다. 순간,

스으으읏!

아걸이 귀신처럼 움직였다.

취화원의 절기, 암영보다.

원래 암영보는 어둠 속에서 이동하는 신법이지만, 아걸은 숲 그늘을 이용했다.

“엇! 움직인다!”

“저기, 저기 있다!”

뒤늦게 아걸을 발견한 자들이 분분히 소리쳤다.

하지만 늦었다. 아걸은 벌써 그들 곁에 바싹 다가선 상태였고, 이미 반철도가 호선을 그리며 날았다.

쒜에엑! 퍼어억!

반철도가 나무를 통째로 휩쓸어 버렸다. 나뭇가지를 잘라 내고, 나뭇잎을 베고, 사람도 가른다.

“으악!”

“커어억!”

움직임 한 번에 네 명이 후드득 떨어졌다.

원래 그가 공격한 나무 주변에는 다섯 명이 숨어 있었다. 그중 넷을 베어 냈다.

한 명은 찰나의 실수로 놓쳤다.

칼이 나뭇가지를 베어 내는 바람에 미처 남은 한 명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운 좋은 사내다.

“사, 사람 살려!”

그가 화들짝 놀라서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쒜에에에엑! 쒜에에엑! 타타타탁!

다시 화살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아걸은 즉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쒜에에엑! 쒜엑!

화살이 그가 숨어 있는 나무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뭇잎을 쓸어 냈다. 순간, 나뭇잎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났다.

화살에 독이 묻었다.

‘이놈들 정말로 날 잡을 생각이군.’

아걸은 다시 암영보를 펼쳤다.

스으읏!

그러자 그의 신형이 한순간에 숲과 동화되어서 사라졌다.

“어?”

“어디로 사라졌지?”

저들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들은 원래 고수가 아니다. 단지 자신의 발을 묶어 놓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후우! 됐어.’

아걸은 살짝 웃으면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군도를 배회하면서 적랑대에 밀마를 넣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따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방금 나무에 있는 자들을 공격할 때 적랑대 살수 한 명을 봤다.

네 명을 베고, 마지막 한 명을 베려는 찰나에 그가 가슴을 드러냈다.

가슴에 새겨진 붉은 늑대 문신!

적랑대 살수 중에서도 문주의 직접 지시만 받는 특급 살수가 따라붙었다.

아걸은 자신도 모르게 ‘됐다!’ 하는 안도감이 치밀었다.

그래서 잠시 쉬는 것이다. 이 정도 공격으로 쉴 이유가 없지만, 잠시 안도하면서 숨을 고른다.

‘이놈들이 누구 지시를 받는지 알아볼까?’

사실, 아걸은 여유를 부릴 만한 처지가 아니다. 허도기가 코밑까지 따라붙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사람을 잡기 위해서 독화살을 쓴다? 결코, 정도 문파 무인들은 아니다.

스으으읏! 파앗!

아걸은 은밀히 움직였다. 그리고 상노를 쏘아 대던 자들의 바로 앞에서 벌떡 일어섰다.

“엇!”

상노를 쏘아 대던 자가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파파파팟!

반철도가 시커먼 묵광을 토해 냈다.

상노를 쏘려던 자는 일격에 절명했고, 옆에서 화살을 날라 주던 자는 멱살을 잡혔다. 그런데,

쒜에에에엑!

아주 빠르게, 급격하게 다시 화살 소낙비가 퍼부어 댔다.

“음!”

아걸은 신음을 흘리면서 급히 움직였다.

“으아악!”

방금 그가 서 있던 자리는 화살 비에 갈대밭이 되어 버렸다.

화살이 가득 꽂힌 땅…… 그리고 아걸이 멱살을 잡았던 자는 화살 밑에 깔려 있었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온통 화살에 꿰어져서 사람 형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걸은 미간을 찡그렸다.

방금, 이 화살은 자신을 노린 게 아니다. 멱살 잡힌 자를 노리고 날린 것이다.

이들은 생포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걸에게 붙잡혀서 혹여 쓸데없는 말을 지껄일까 봐 미리 입막음을 해 버렸다.

살인멸구(殺人滅口)!

‘동료도 가차 없이 죽인다 이거지?’

그렇다면 이놈들은 확실히 정도인이 아니다. 틀림없이 사마 외도일 것이다.

‘허도기. 당신 도대체 누구를 움직이고 있는 거야?’

아걸은 궁금증을 포기했다.

허도기가 거리 차이가 한 시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면, 정말 시간이 없다.

쒜에에엑!

“으아악!”

대체로 스무 걸음 옮길 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아걸은 계속 살수를 떨치면서 움직였다.

이제 상노의 사정거리는 벗어났다.

저들은 수기노와 연노를 쏘아 대고 있지만, 아걸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솔직히 아걸은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 이들은 결코 감시자나 추격자 노릇을 할 수 없다. 성난 황소처럼 반철도를 휘두르면 질주하면 감히 따라붙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허도기가 자신을 찾아오지 못한다.

싸움을 피하는 게 아니다. 싸우기 좋은 장소를 선택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러자면 자신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려 줘야 한다.

쒜에엑! 퍽!

“악!”

반철도가 움직이고 사람이 쓰러졌다.

반철도는 그동안 수련한 모든 무공을 절정의 감각으로 드러냈다.

쒜에엑!

반철도가 터지면서 묵광이 다섯 갈래로 갈렸다. 칼날 다섯 개가 한 사람을 노린다. 환도의 결정체인가? 빠름은 가히 섬전이다. 묵광이 번쩍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칼날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퍼억!

칼이 몸을 갈랐다.

반철도에는 강력한 힘이 실렸다. 단숨에 상반신을 반으로 갈라 버릴 만큼 강한 패도다.

아걸은 이번 일격에 쾌도, 환도, 패도의 절정을 담았다.

분기도강(分氣刀剛)!

허도기는 분기도강을 줄여서 분도라고 말한다.

칼이 절정인지 초절정인지 가름해 주는 지표다. 분도가 일어나면 초절정이다.

분기도강을 맞고 절명한 자는 평범한 무인이다. 숲에 숨어 있는 많은 무인 중 한 명이다.

이런 자들을 죽이는 데 굳이 일홀도까지 쓸 필요는 없다. 진력 낭비다. 하지만 아걸은 충실히 일홀도를 펼쳤다.

이들은 최상의 죽음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이들 역시 검을 든 무인이니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죽이면서 자신은 죽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기심이다. 내가 남을 죽인다면, 남이 자신을 죽이는 일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결코, 억울해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능멸을 가하면서 죽이는 것에는 반대한다.

무공이 약하다고 아무렇게나 칼을 휘둘러서 죽이는 것이 능멸이다.

내가 펼칠 수 있는 최상의 무공으로 죽음을 끌어내는 것은 상대에 대한 최대의 존중이다. 이들에 대한 예우이고, 죽이는 자의 도리다.

아걸은 그렇게 생각한다.

허도기와 싸워야 하는 처지에서 진력 낭비를 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죽는 사람을 능멸할 수는 없다.

쒜에에엑! 퍼억!

탄궁도를 펼쳤다. 그리고 한 명이 죽었다.

일격 즉사다.

* * *

“놈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흑후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이동한다는 말을 못 알아듣겠군. 알아듣게 말해 줘야지? 도주한다는 거야?”

“아닙니다.”

“그럼?”

“제 애들을 무참하게 치면서……”

“하하하하하!”

허도기는 흑후가 말을 이어가는 중에 웃음부터 터트렸다.

“네 애들을 죽이면서 이동한다고?”

“네.”

“내가 쫓아가는 것을 눈치챘네. 평소대로 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 뭘 한 거야?”

허도기는 전혀 다급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평소대로 했는데……”

“아냐. 뭔가 다른 짓을 했겠지. 그렇지 않으면 눈치챌 리 없잖아.”

“아!”

흑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탄식했다.

“거리가 한 시진밖에 안 남아서 공격을 멈췄는데, 그래서 알아챘나 봅니다.”

계속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빌미가 되었다. 연노쯤이야 위협도 되지 않는데, 계속 쏘아 댈걸. 아걸이 반격해 오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벌어진 거야?”

“다시 한 시진으로……”

“그 정도면 괜찮아. 따라가지.”

“네.”

“충고 하나 할까?”

“아, 네. 감사합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애들을 즉시 물려. 네 수하가 보이는 한 아걸은 끊임없이 죽이면서 이동할 거야. 자기가 어디로 간다 알려 주는 거지. 따라오라 이거야. 그러니까 곁에 있으면 죽겠지?”

“그러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흑후가 허도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절대로.”

허도기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걸은 자기가 가는 방향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 줄 거야. 그놈은 자기가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놈이고, 그러면서도 날 피하지 않는 유일한 놈이지. 하하하! 오늘 우린 싸우게 돼. 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이 인간들 대체 뭐야!’

흑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로소 아걸과 허도기라는 사람을 정확히 이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들의 세상의 조금 엿본 듯한 느낌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걸은 허도기를 피하지 않는다. 피할 생각이 없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도주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싸우고 싶은 장소로 허도기를 끌고 가고자 한다.

내가 싸우고 싶은 곳으로 간다. 따라와.

허도기는 그런 점을 알면서도 따라간다. 급히 쫓아가면 지금이라도 싸울 수 있는데, 마차를 타고 유유히 쫓아간다. 아걸에게 시간을 충분히 준다.

좋다. 네가 원하는 곳까지 따라가지. 그래서 네가 마음껏 싸울 수 있다면 그래야지.

서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있다.

이 싸움은 반드시 일어난다. 다만 언제 어디서 일어나느냐는 아걸에게 달려 있다.

아걸이 걸음을 멈추는 곳, 그곳이 싸움터다.

“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애들을 물렸다가 정말로 아걸을 놓치는 일이 벌어지면.”

“하하하하하하!”

허도기가 다시 웃었다.

“누가 야천 제일 간뇌(間腦)가 아니랄까 봐. 후후! 약속하지. 아걸을 놓친다고 네 책임은 아냐. 걱정하지 말고 물리고 싶으면 물려. 그런데 너는 은밀히 쫓아갈 무인 하나 없나? 이렇게 환히 들통나서야 뭐 어디 써먹기라도 하겠어? 이 정도는 따라갈 만한 놈들 한둘쯤은 만들어 놨어야지.”

“죄송합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왜 나한테 해. 너희 야천에 해야지. 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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