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第五十七章 평수(平手)(1)
두우웅!
매우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곧 다른 소리를 불러왔다.
구구구! 궁! 궁! 콰콰콰콰쾅!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지축이 마구 흔들렸다.
“웃!”
허도기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놀랍기는 아걸도 마찬가지다. 적랑대 살수에게 화약을 건네기는 했지만, 위력이 이 정도나 될 줄은 몰랐다. 이건 동굴 전체를 무너트릴 듯하지 않나.
동굴도 화가 난 듯 흔들거렸다. 아니, 이미 바깥쪽부터 무너지는 중이다.
투두둑! 두둑! 두두둑!
썩어서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부목들이 먼저 무너졌다. 그 위를 흙더미가 거칠게 덮쳤다.
우르르릉! 콰앙!
동글 안에 흙먼지가 회오리쳤다.
“화약!”
허도기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흙먼지 속에는 매캐한 화약 냄새도 녹아있다. 그것은 곧 동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허도기와 아걸은 즉시 몸을 낮췄다.
몸을 낮춘다고 흙더미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굴이 무너지면 꼼짝없이 묻힌다.
몸을 낮추는 것은 본능적인 움직일 뿐이다.
후두두두둑!
동글 천정에서 작은 돌멩이와 흙더미가 쏟아졌다.
잠시 후, 바깥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음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작은 진동은 계속 일어났다.
구릉! 구르릉! 구릉!
심하게 흔들리던 동굴이 잠잠해졌다. 진동은 계속되고 있지만, 동굴이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폭발은 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진동이 멈춘 후에도 숨을 크게 토해내지 못했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동굴에 흙먼지가 회오리쳐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입을 벌리면 흙더미가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마구 씹힌다.
옷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진동은 사라졌지만,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는 여전히 둥둥 떠다닌다.
“네 놈 짓이냐?”
허도기가 말했다.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된다. 바깥 상황이 어떤지는 상관할 게 아니다.
동굴 입구에서 화약이 터졌다. 입구가 막힌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무관한 일이다. 싸움과는 전혀 상관없다. 설혹 동굴이 무너졌더라도 대결은 이어간다.
살았으면 싸우고, 죽었으면 끝난다.
“이건 뭐야? 동귀어진? 같이 죽자는 거지? 하하! 이런 얕은수까지 쓰는 걸 보니 너도 다 됐군.”
허도기가 웃었다.
아걸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는 딱 두 사람이 있다. 강자와 약자가 있다. 빠른 자와 느린 자가 있다. 절대로 질 수 없는 자와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자가 있다.
빠른 자는 소리를 지를 수 있다. 느린 자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한다.
허도기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고 있다. 아걸이 소리를 듣고 위치를 짐작한 다음에 공격해 올 것이 뻔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바로 그렇게 망설이지 말고 공격하라는 거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에서는 먼저 소리를 지른 사람이 굉장히 불리하다.
유불리만 따지면 이것은 확실하다.
허도기는 불리함을 안고 싸우겠단다. 그래서 계속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그런데도 공격이 쉽지 않다.
공격하려면 이쪽도 소리를 내야 한다. 허도기는 그 소리를 듣고 반격하겠다는 거다.
네가 먼저 쳐라. 나는 네가 치는 소리를 듣고 나중에 치마.
아걸이 먼저 공격할 것은 분명하다. 아걸이 움직이지 않으면 허도기도 움직이지 못한다. 천하제일 무인도 보이지 않고, 듣지 못하고, 느낌조차 없으면 공격하지 못한다.
분명히 아걸이 먼저 움직여야 싸움이 된다. 하지만 결국 검은 허도기가 더 빠를 것이다.
허도기가 공격하는 소리를 듣고 다시 반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다.
‘하아!’
숨을 얕고 길게 내쉬며 전신에서 힘을 뺀다. 반철도가 천 근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을 뺀다.
전신 감각을 망각한다.
시력은 진작 잃었다. 이제 청력, 후각, 촉감까지 던져버린다. 모든 걸 다 놓아버린다.
감각망기술이다.
뱀이 발뒤꿈치를 물어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각을 놓는다.
그런 후, 전신에 존재하는 신경을 호흡에 맞춘다.
이 작업을 눈에 맞추면 몰안이 된다. 모든 감각이 지워지고 눈만 살아서 지켜보는 게 몰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 들락거리는 숨에 집중한다.
지금은 몰안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눈이 고양이 눈처럼 밝아도 볼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자신의 호흡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다.
싸우는 중이니 허도기의 호흡을 찾아내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승부가 팽팽할 때나 할 수 있는 일, 지금 아걸에게는 호사다.
사실, 허도기를 찾을 필요도 없다. 허도기는 일부러 신경을 집중시키지 않아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계속해서 말을 건네오고 있다.
“화약을 준비하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터이고…… 내통하는 자가 있나? 어디지? 취화원? 적랑대? 쯧! 그것들, 확실히 정리해야 해. 발톱에 난 티눈처럼 귀찮아.”
거리는 이 장, 빠르게 공격하면 한 호흡이면 끝난다.
허도기의 위치는 명확하다. 문제는 자신이다. 자신은 숨기에 바쁘다.
숨소리를 죽인다. 티끌만 한 숨소리라도 흘러나가면 그 즉시 공격 대상이 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다.
들어오는 숨도, 나가는 숨도 일절 느껴지지 않게끔 조용함을 유지한다.
“일홀도는 항시 배짱이 있었는데. 지더라도 당당하게 싸웠단 말이야. 아걸, 이건 일홀문을 욕되게 하는 행동이지. 안 그래? 죽어서 사부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허도기는 말했고, 아걸은 침묵했다.
허도기가 화제를 바꿨다.
“아걸.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너 누구야? 심증으로는 조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
아걸의 과거를 캐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삼이나 몽설을 잡아서 고문하면 혹시 모르겠다. 두 사람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비밀을 토해놓는다면 아걸이 누군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아걸을 알아낼 방도가 없다.
의부모 흑방 살수는 아걸의 과거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일곱 살 이전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아걸을 알아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삼은 일곱 살 이후의 기록을 완전히 지웠다.
아걸이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적랑대 살수조차도 알지 못한다.
아삼은 자신이 문주로 있는 문파까지도 완전히 눈을 가려버렸다.
아걸은 일곱 살 무렵, 딱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홀문주에게 거둬져서 네 번째 제자로 입문했으며, 무공도 배우기 전에 서리 성씨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는 아걸을 보지 못했다.
사부는 넷째 제자를 거뒀으면서도 사형제 간에 인사조차 시키지 않았다.
허도기는 아걸이 누구인지 조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걸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매우 적다. 아무리 뿌리를 캐봐도 첫 시작이 강주 마구간에서 활검문 문도를 베는 순간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의 기록은 전혀 찾지 못한다.
허도기가 말했다.
“넌 용골이야. 내 눈은 속이지 못해. 후후! 용골은 성골이야. 우리 허씨 가문만 배출하지. 근골은 용골인데, 누구 씨인지 짐작이 되지 않아서 말이지. 내가 모르는 형님 자식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첩이라도 있었어? 가능하지. 그럴 수 있어.”
허도기가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했다.
“자, 말해봐. 누구인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
쒝! 빠가가각!
검이 동굴 벽을 훑었다.
소리가 난 곳에서 기척이 일어났다. 지네가 흙을 뚫고 튀어나온 모양이다.
역시 허도기는 미세한 소리조차 놓치지 않는다.
“네가 내 조카라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지. 검을 거두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해. 아니, 핏줄이 모두 죽은 지금은 성검문을 이어받을 유일한 전인이 되는 거지.”
허도기가 달콤한 말을 던져왔다.
허도기는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러니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때는 침묵한다. 서로 매우 긴 싸움이 된다.
“몽설이란 여자, 재미있더군. 취화원 살수가 애를 낳아서 다시 취화원 살수로 키웠다. 하하하! 재미있어. 일홀문주들은 취화원 살수가 좋은가 봐? 네 사부도 취화원 살수, 너도 취화원 살수. 내가 어미를 죽였는데, 또 딸까지 죽여야 하나?”
이번에는 격장지계다. 사람 마음을 들쑤셔 놓는다. 앞으로 이보다 더 추잡하고 비루한 말이 튀어나올 테지만 동요하면 안 된다. 아예 귀를 막아버려야 한다.
‘후우우웁!’
아걸은 오직 호흡에만 집중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흘려보낸다. 왼쪽 귀로 들어와서 오른쪽 귀로 흘러나간다. 무슨 말을 하든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들어야 한다.
격장지계는 알고 당해도 참 추잡하다.
쒜에엑! 퍼억!
검이 벽을 훑었다.
이번에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네는 아닌 것 같고…… 스르륵 미끄러지는 소리로 보아서는 뱀이었던 것 같다.
아걸은 일체의 동요 없이 오직 호흡에만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제 동굴은 무너졌다. 이 안에서 살아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은 칼에 맞아 죽을 것이고 한 사람은 굶어 죽거나 숨이 막혀서 죽을 것이다. 동굴에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아니, 공기가 통할 리 없으니 틀림없이 숨이 막혀 죽는다.
‘후우우우! 후우!’
숨이 들어오고 나갔다.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몸이 늪에 빠진 듯 끝없는 나락으로 쭉 가라앉는다.
몸에서 어떠한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손에 들고 있는 반철도도 의식되지 않는다. 분명히 반철도를 쥐고 있는데,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터엉!
한순간, 머리도 현실과 분리되었다.
동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과 무관해졌다. 그리고 지극한 고요함이 찾아왔다.
이토록 조용할 수 있나?
허도기를 대하고 있다는 긴장감은 물론이고 자신이 동굴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지극한 공포가 사라졌다. 흙먼지가 일으키는 텁텁함은 현실이라서 떨치고 싶어도 떨칠 수 없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
몸이 아주 상쾌하고 가볍다.
세상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자신 혼자만 고요히 앉아 있는 느낌이다.
들이쉬는 숨을 보고 나가는 숨을 본다.
극도의 정신 집중이 호흡에서 일어난다. 완벽히 물아일체 된 상태에서 이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오직 아걸만이 들을 수 있는 호흡 소리다.
“후우우우…… 하아아!”
정신이 편안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운공은 선정과 흡사한 면이 있다. 운공에 몰입하면 선정에 들었을 때처럼 지극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런데 몸도 편안해진다.
원래 운공에 몰입하면 몸은 느껴지지 않는다. 몸인지 정신인지 알 수 없지만 무조건 편안하다는 생각만 일어난다. 결국은 양쪽 모두 편안한 것이겠지만.
지금은 몸과 정신이 분리되어서 느껴진다.
정신은 맑고 상쾌하다. 몸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불편한 곳이 전혀 없다.
쒜에에엑! 피윳!
허도기가 검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푸드덕거렸다. 나비인 것 같기도 하고 잠자리 종류인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작은 벌레 소리는 아니고 약간 크고 느리고 부드러운 움직임이다.
허도기는 그 소리조차 놓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정확하게 들었고, 단숨에 갈라냈다.
아걸은 허도기의 검기마저 느끼지 못했다.
바로 지척에서 검기가 난무하고 있는데도 전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자신과 상관없다.
그저 고요하다. 이 고요함이 좋다. 이 속에 파묻히고 싶다.
아걸은 고요함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후우웁!”
들이쉰다.
“후우!”
내쉰다.
허도기가 바로 옆에서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