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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82화 (282/600)

#282화. 第五十七章 평수(平手)(2)

꽈아아아앙! 꽈앙!

“욱! 뭐야?”

갑자기 땅이 미친 듯이 흔들리자, 흑후는 재빨리 나무를 붙잡고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폭음이 귀청을 날려버릴 듯 너무 요란하다. 너무 크다. 오히려 산사태라거나 절벽이 붕괴하는 듯한 소리에 더 가까웠다.

“이게…… 이게 뭐지?”

흑후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혼자 가겠다는 말을 듣고 하산하던 중이다.

아걸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니 싸움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은 공부에게 어떤 저녁을 대접하고 어떤 여인을 붙일 것이며, 어떻게 아부할 것인지만 궁리했다.

그런데 멀리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큰 폭발이 일어났다.

‘사고다!’

흑후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중지! 지금 즉시 올라가! 전부 다 올라가!”

흑후는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생각할 때는 신중하지만 움직일 때는 전격적이다. 백 명을 죽이는 것보다 좋은 때를 잡는 것이 더 큰 승리를 가져온다. 대체로 큰일은 좋은 때를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쉬이이익!

흑후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자신이 먼저 쏜 화살처럼 쏘아갔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쉽게 찾았다.

폭발은 군도에서 일어났다. 군도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군도를 걷다 보면 한눈에 보이는 장소다. 그러니 찾기가 어렵지 않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흑후와 수하들은 신법을 발휘해서 날다람쥐처럼 산을 타고 올라갔다.

“저깁니다!”

수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땅을 가리켰다.

흑후는 수하가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무너진 땅을 봤다. 그리고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는 중이다.

‘이건……?’

흑후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동굴! 동굴이야!’

흑후는 무너진 지형을 보고 단번에 동굴이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런데 폭발이 묘하다. 대체로 동굴을 폭파하면 굴 안만 무너진다. 바깥은 변화가 크게 없다. 그런데 이곳은 바깥 지형까지 완전히 무너졌다.

동굴을 형성한 땅이 무척 무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파고 들어간 동굴이다.

“암석 채굴장에서 일한 놈들, 추려와.”

“네.”

수하가 즉시 부복한 후, 사라졌다.

“음!”

흑후는 침음했다.

아걸과 허도기가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동굴 입구를 무너뜨렸다.

아마도 아걸일 것이다.

그가 어떤 방법으로 허도기 모르게 동굴을 무너트렸는지 모르겠는데, 틀림없이 아걸 짓이다. 허도기를 이길 자신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심산으로 동굴을 무너트린 것이다.

“이놈이 제 무덤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네.”

흑후가 중얼거렸다.

현재 이 상황, 야천에 절대 나쁘지 않다. 아니, 매우 바람직한 일이 벌어졌다. 일부러 일을 만들려고 해도 이것처럼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아걸이나 허도기 같은 자들은 야천이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상대들이 한날한시에 사라지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흑후는 눈빛을 반짝 빛냈다.

“암석 채굴장이나 광산에서 일한 놈들이 아무도 없는 거야! 왜 이렇게 늦어!”

흑후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야천에는 별의별 놈들이 다 모여든다. 천하에 온갖 잡놈이 다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산이나 암석 채굴장에서 일했던 자? 당연히 있다.

“이거 완전 흙이네. 당연히 무너지죠. 벽에 회칠해서 단단하게 만들었는데, 임시방편이에요. 이 굴을 팔 때, 원래 오래 쓸 생각은 하지 않았네요. 뭐라고 할까? 하라고 하니까 대충하는 시늉만 했다고 할까요?”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이거 다 무너진 거야?”

“이런 땅은 일단 무너지면 대책이 없는 땅입니다. 이런 땅에는 동굴을 파면 안 되는데. 아무리 형식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네. 돈도 많이 남겼을 거야. 진짜 동굴을 파는 것보다 보름은 단축할 수 있거든요. 그럼 인건비가…….”

과거, 석수로 일한 적이 있다는 자가 연신 주절거렸다.

“야 인마!”

흑후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예? 예.”

석수가 당장 허리를 숙였다.

“이거 다 무너진 거냐고 묻잖아.”

“잠깐, 잠깐만요.”

수하가 손을 들어 올려서 무너진 흙더미의 폭과 길이를 쟀다.

“폭이 다섯 뼘. 한 뼘당 삼 척이면 열다섯 척.”

석수가 자신만의 척도로 넓이를 쟀다.

“이 정도면 세 명이 나란히 서서 걸어 들어갈 수 있으니까…… 길이는 대략 백 장. 무너진 게 오십여 장이고, 이삼십 장 정도는 굴만 막혔다고 봐야 하고…… 안쪽에 대략 몸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은 남아 있겠는데요?”

“공간이 남아 있어?”

“장담은 못 하는데…….”

“이 새끼! 똑바로 말 못 해! 무너진 거야, 남아 있는 거야!”

“땅속이라는 게 암반 같은 것도 있어서…… 그런 게 받쳐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입구부터 파고 들어간다고 해도 공부님을 구하기는……”

수하는 흑후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읽었다.

흑후가 눈빛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남은 공간까지 완전히 무너트릴 수 있나? 생존 가능성을 영으로 만들 수 있냐고 묻는 거야.”

“네? 네. 가능합니다.”

“너 이 새끼, 똑바로 대답해. 너 지금 말 잘 못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줄 따인다.”

“네.”

“완전히 무너트릴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해.”

“네?”

“뭐해, 새끼야! 당장 움직이지 않고!”

“네. 네네.”

수하가 즉시 움직였다.

주변에 화약은 많다.

일전통 인간말짜들이 꽤 많은 화약을 놓고 도주했다. ‘철수’라는 소리에 짐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던져버렸다.

기름도 많이 거뒀다.

수하는 화약을 촘촘히 매설했다.

다른 자에게 묵직한 돌로 땅을 후려치라고 시킨 다음, 자신은 땅에 귀를 바짝 대고 울림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하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네. 이 아래, 빈 곳이 있어. 울림이 확실히 달라. 킥킥! 이 부근이니까.”

수하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 높이로 보면 대략 이십 장? 삼십 장? 큭큭! 여기에 화약을 잔뜩 넣고 그냥 빵! 터뜨리는 거야. 그러면 푹 주저앉아 버리겠지? 이건 대책이 없어.”

수하는 신이 나서 작업을 했다.

화약을 터트려서 사람을 죽인다는 데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더욱이 상대가 공부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석수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일 것이다.

“네 생각대로 안 되면 넌 죽는다.”

흑후가 일침을 놓았다.

“예? 아이, 그런다고 죽이시기까지……”

수하가 흑후의 말을 농으로 받으려다가 흑후를 보고는 움찔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흑후의 표정이 매우 싸늘하다. 독사의 눈빛이다. 지금 한 말, 거짓이 아니다. 정말 죽일 작정이다. 흑후는 웃지도 않는다. 이번 일에 운명을 건 듯한 표정이다.

흑후가 수하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거 성공하면 우린 두 발 뻗고 잘 수 있어. 한데, 성공하지 못하면 내 목 날아가. 내 목 날아가는 판에 네 목숨인들 붙어있겠냐? 네 목부터 떨어지지.”

“알겠습니다. 꼭 해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

“앞으로 두 시진 정도면 끝납니다.”

“오래 걸리네.”

“안에서 무너트리기는 쉬운데, 위에서 짓눌러 뭉개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빨리해.”

“네.”

석수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흑후는 그에게 수하를 백 명이나 붙여주었다.

아걸을 추격할 때 동원되었던 모든 사람이 석수의 지시를 따르는 막노동자가 되었다.

땅을 파고 들어간다. 그러면 석수가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서 화약을 매설한다.

“이 많은 화약을 갔다가 어디 쓰려고 그러나. 이 정도면 도읍 하나는 날려버리겠는데?”

“사실 도읍을 날리는 게 맞지 뭐. 산 하나를 완전히 날려버리겠다는 거잖아, 지금.”

사내들이 숲을 뒤지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인간말짜들이 놓고 간 화약이 숲 곳곳에 버려져 있다. 그것을 전부 수거해서 갖다 주어야 한다. 부지런히 뒤져봤는데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만약 맡은 구역에서 화약이 다량으로 나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하찮은 일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여기도 있네.”

앞서가던 자가 나무 밑에 떨어져 있던 전통을 주워들었다.

화살에 화약이 묶여 있다.

“몇 개나 있어?”

“여섯 대. 화약 무게까지 합치니까 꽤 묵직하네.”

전통을 주운 자가 말했다.

이 정도 무게라면 도주하는 데 방해가 됐을 것이다. 버리고 간 것이 이해된다.

“이놈들, 이 많은 걸 가지고 와서는 다 써보지도 못하고. 그러고 보면 아걸이 참 대단했던 거야?”

“대단하기는 했지. 완전히 날고 기었잖아.”

“날고 긴 게 아니라 그냥 완전 흉신악살이 따로 없었지. 이구!”

말을 하던 자는 그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음!’

적랑대 살수는 땅에 떨어진 전통을 주어 들면서 침음했다.

흑후는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정작 흙더미를 치우지는 않는다.

당장 입구부터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중간중간에 화약을 매설하고 있다.

이자들은 화약에 매몰된 흙더미 아래서 사람을 구하겠다는 게 아니다. 아예 한 번 더 화약을 터뜨려서 무너지지 않은 공간이 있다면 그마저도 무너뜨리겠다는 거다.

흑후는 무너진 동굴을 한 번 더 폭파할 생각이다.

지금 상태로도 불안해서 완전히 매몰시켜버리는 것이다.

아걸과 허도기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음! 어떡하지?’

적랑대 살수는 잠시 고민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일을 만류하고 싶다. 혹여 아걸이 살아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해본다.

어차피 자신이 화약을 터뜨릴 때부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나올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정말로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달리 무슨 방법이 없나 고민스럽다.

하지만 그는 흑후를 말릴 만한 힘이 없다. 그가 야천에서 맡은 일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잡졸이다. 평소 같으면 흑후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한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이 일은 진행된다.

“여기도 몇 개 있어.”

적랑대 살수는 숲에서 주워온 화약을 화약 더미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걸 혼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뭐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허도기가 살아 나온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아걸이 살아나올 가능성보다는 허도기가 나올 공산이 더 크다.

속 편하게 묻어버리자.

적랑대 살수는 마음을 홀가분하게 가졌다.

“뭐 또 시킬 일이라도……”

“마침 일손이 필요한데 잘됐네. 여기 좀 파. 이 밑에 암석이 있을 것 같은데. 두 자 깊이로 파야 해.”

“야 인마, 네가 상관이냐! 말 좀 좋게 하지 못해? 똑같은 처지에 어디서 명령질이야!”

“야! 이게 내 명령이냐! 흑후 님 명령이지. 하기 싫으면 관둬! 누가 너보고 하래!”

“어휴! 판다, 파. 이 일 끝나고 너도 좀 보자.”

적랑대 살수는 석수가 일러준 곳에 땅을 팠다. 그러다가 암석 같은 것이 나오면 일부러 거세게 내리찍었다. 소리를 울려서 밑에 묻힌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거다.

땅을 파 내려가고 있다!

화약 폭발까지는 말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땅에 묻힌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오는 것인지, 죽이려고 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석수는 그곳에 화약을 찔러 놓고 심지를 길게 뺐다.

석수가 흑후에게 보고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불만 댕기면 이 근방은 완전히 그냥 아작납니다.”

“그럼 뭐 하고 있어? 불붙이지 않고!”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석수가 심지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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