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第五十七章 평수(平手)(4)
꽝!
거센 폭발음이 일어났다.
일순, 두 사람은 청력을 잃었다.
굉음 소리가 너무 커서 고막이 찢어졌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구궁! 구구구구궁!
땅이 마구 뒤흔들렸다.
동굴이 폭파되었을 때도 굳건하게 버텨 주던 천정이 거센 울림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웃!”
아걸은 깜짝 놀라서 천정을 쳐다봤다.
고개를 쳐들어도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둠뿐이다. 천정에서 흙먼지와 돌가루가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리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때,
쒜에에엑!
검이 날아온다!
슷! 팟!
아걸은 ‘검!’이라는 것을 느낀 순간, 바로 신형을 퉁겨 냈다.
슷! 파아아앗!
검이 길게 검흔을 남기며 흘러갔다.
허도기는 동굴 천정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검을 썼다. 아걸이 경악성을 토해 내는 바람에 위치가 파악되었다. 그리고 이번 검은 꽤 정확했다.
‘크으으윽!’
아걸은 터지는 비명을 이 악물며 참았다. 소리를 흘리면 또 검이 날아온다.
“후후! 확실히 급소를 피하는 재주가 있어.”
허도기가 말했다.
허도기의 검은 심장을 노렸다. 검 끝이 심장 부위에 닿기도 했다. 하지만 심장을 찌르지 못하고 배가 있는 쪽으로 흘러내렸다. 아걸이 간발의 차이로 심장을 뒤로 젖혔다.
몰안은 상대방의 검기를 감지한다.
지금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감지하는 것이지만…… 절제되고 집중된 감각이 허도기의 검기를 느낀다. 그리고 검기가 급소에 닿기 전에 몸을 움직인다.
옛날, 풍도곡까지 쫓아온 소축십검 네 명에게 잠기일력타를 당하고도 살았던 바로 그것, 아걸에게 백궁일혈이라는 무인을 잡게 해 준 무공, 삼십칠대 일홀문주 아걸의 일홀도다.
그의 일홀도는 몰안에 중점을 둔다.
은거 무인들과 비무를 하면서 수련한 자연도는 그 자신의 일홀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 준다.
칼이 바뀐 것이 아니다.
기본은 유지하면서 칼의 속성만, 칼의 흐름만 발전시킨다.
아걸은 자신만의 칼을 진작 찾았다.
다만 그런 칼로도 허도기를 상대할 수 없어서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걸은 벌써 자신의 일홀도에 여러 가지 칼을 섞었다.
가장 큰 것은 단연 자연도와 무념도다.
은거 무인과 비무를 하면서 얻은 칼이 자연도이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몰안까지 잊고 오로지 칼이 움직이는 대로만 따라간 것이 무념도다.
방금, 칼이 싸우겠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 무념도다. 칼의 속성대로 칼을 먼저 보내고 몸이 따라간 것은 자연도다.
일촌직감(一村直感)!
일 촌 앞에서 검기를 파악하고 피한 것, 일 촌 앞에서 칼을 변화시켜서 살을 벤 것은…… 글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무리는 일촌직감인데, 도법은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아걸은 지금까지 자신의 칼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 이 정도면 칼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이름을 붙일 것이다.
꾸욱!
아걸은 반철도를 꽉 움켜잡았다.
반철도가 꿈틀거린다. 허도기가 기척을 흘리고 있다. 칼에 맞은 상처를 돌보는 듯하다.
공격하라!
반철도가 명령했다. 그리고 아걸은 즉시 신형을 띄우려고 했다.
허도기도 즉각 반응했다. 아걸이 반철도를 움켜쥐는 순간, 그도 검을 잡았다.
하지만 아걸은 물론이고 허도기도 더는 둘만의 싸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구구구구궁! 우수수수!
흙먼지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쏟아졌다. 돌가루도 섞여서 무너졌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동굴이 무너진다.
아걸은 급히 몸을 낮추고 한쪽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흙벽을 향해 반철도를 휘둘렀다.
파아아앙! 퍼퍼퍼퍼퍽!
흙벽에 구대문주의 십이살환도가 터졌다.
일순, 거센 광풍이 몰아쳤다. 반철도가 일으킨 힘에 무너지던 동굴 천정마저 잠시 주춤거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흙벽에 구멍이 뻥 뚫렸다.
쉬익!
아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흙구덩이 속에 몸을 숨겼다.
콰르르릉! 꽈앙!
아걸이 서 있던 자리는 금방 흙더미에 묻혔다.
‘시간이 없다!’
아걸은 연신 십이살환도를 전개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자신도 몇 번이나 휘둘렀는지 모르겠다. 초식을 펼치고, 끝나면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펼쳤다.
십이살환도는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다. 일 점 타격이 아니라 단면을 공격할 수 있다. 지금처럼 칼로 구덩이를 파야 한다면 십이살환도가 제격이다.
파파팟! 파파파팍!
땅이 움푹움푹 패였다.
아걸은 무너진 흙들을 뒤로 밀어내고 다시 십이살환도를 펼쳤다.
쉴 틈이 없다.
첫째, 무너진 흙더미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압박을 가해 온다. 그가 뚫은 구덩이를 단숨에 메워 버리면서 달려든다. 단순히 공간만 메우는 것이 아니다. 육신까지 압박한다. 흙이 몸이 짓눌러 온다. 생매장하겠다는 듯이.
둘째, 공기가 없다.
아직은 숨을 쉴만한 공기가 남아 있지만, 이 공기도 곧 사라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죽음뿐이다.
꽈앙! 꽈아아아앙! 후두두둑!
등을 통해서 거센 압력이 몰아쳤다. 무너진 흙더미가 십이살환도보다 더 큰 힘으로 그를 밀어붙인다.
“이이익!”
아걸은 이를 악물며 반철도를 떨쳐 냈다.
여기서 정신을 잃어버리면 흙 속에 생매장된다.
파파파파팟! 파파팟!
진기는 있는 대로 끌어내서 반철도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칼을 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십이살환도를 떨쳐 내고 있지만 앞을 뚫는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퍼퍼퍼퍼퍽!
반철도에 격중된 흙벽이 우수수 떨어졌다.
쒜엑! 퍽!
칼이 튀어 나가고, 흙벽에 구멍이 뻥 뚫렸다. 그리고 맑은 공기가 훅 몰아쳤다.
‘여긴?’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밖은 아니다. 도랑처럼 아주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맑은 공기가 들어온다. 입구가 무너졌을 때, 동굴 안에 공기가 계속 들어온다 싶었는데 여기서 들어온 것 같다.
“풋!”
아걸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가 만난 곳은 사람이 만든 굴이 아니다. 짐승이 뚫어 놓은 길이다. 아마도 상당히 큰 뱀이나 너구리 정도 되는 동물들이 뚫어 놓지 않았나 싶다.
쿠와앙!
등 뒤에서, 아니 몸 위에서 거센 울림이 일어났다. 동시에 아걸은 몸 전체가 흙더미에 묻히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흙더미가 몸을 짓뭉갠다.
“훅!”
아걸은 짧은 헛바람을 토해 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달을 틈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 * *
“이 정도면 어때? 살아남을 놈이 있나?”
“천신이라고 해도 못 빠져나올 겁니다.”
석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석수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누가 봐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조그맣지만 그래도 산이었는데, 일차 폭발로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 그것을 석수가 완전히 날려 버렸다. 산이 사라져 버리고 움푹 들어간 구덩이만 보였다.
동굴 같은 건 아예 없다.
“전부 다 사라지기는 했는데…… 이거 오히려 동굴을 짓뭉갠 것이 아니라 파헤쳐 놓은 거 아니야?”
“아이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제 실력을 뭐로 보고. 폭발을 자세히 보시면 위에서 아래로 짓뭉개고 들어갔지 않습니까? 이거 보세요. 옆으로 밀려 나온 흙들 보이죠?”
석수 말대로 흙이 밑으로 꾹 짓누르며 들어갔다. 동굴 안에 누가 있었든 살아 나오지 못한다. 허도기와 아걸이 동시에 매장되었다. 누가 저지른 짓인지도 모른 체.
흑후가 눈빛을 반짝 빛냈다.
“흠! 좋아. 수고했다. 내 돌아가면 두둑이 보상하지.”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주시겠다니. 히히!”
석수가 기대에 찬 눈으로 흑후를 쳐다보며 웃었다. 돌아가면 두둑한 포상을 받을 생각에 벌써 들뜬 모양이다. 흑후는 이런 면에서는 늘 인심이 후했으니까.
흑후는 십장(什長)들을 불러 모았다.
흑후가 이번 아걸 사냥에 데리고 온 십장은 모두 열두 명이다. 각기 수하를 열 명씩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모두 백삼이 명이 동원되었다.
“피해 보고.”
“저희는 두 명 죽었습니다.”
“저희는 세 명입니다.”
십장들이 각기 피해 보고를 했다.
초기 싸움 때 아걸에게 죽은 수하들의 숫자다. 오히려 허도기가 바싹 따라붙은 후에는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흑후는 십장들이 피해 보고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보고가 끝나자,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통한 표정으로 십장들의 얼굴을 일일이 쳐다보면서.
“부득이…… 소제(掃除)해야겠다.”
순간 십장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부는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트리기도 했다.
“후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이 산에서 벗어나기 전에…… 모두 정리해.”
“정말로…… 소제입니까?”
십장 중 한 명이 말했다.
“여기서 벌어진 일이 밖으로 흘러 나가면 모두 죽어. 여기 일을 아는 사람은 우리뿐인 것으로 하자. 입이 너무 많으면 반드시 새어 나가게 되어 있어.”
“흠! 알겠습니다.”
십장이 대답했다.
흑후에게는 수족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수부(鏽斧)라고 불린다. 녹슨 도끼를 병기로 사용해서 아예 별명이 수부가 되었다.
잘 든 도끼로 사람을 죽이면 너무 싱겁다. 잘 들어가지 않는 도끼, 녹슨 도끼로 치면 뼈가 부서지고 살이 뭉개지면서 죽는다. 쾌감 중 최고다.
다른 한 명은 독비(毒匕)다.
사람을 죽일 때는 은밀히 뒤로 다가가서 독이 묻은 비수를 슬쩍 찌른다. 깊게 찌르지도 않는다. 피를 묻힐 정도만 찌른다. 목숨을 꺼 두는 일은 독이 알아서 한다.
흑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입이 열두 개면 너무 많아. 그렇지?”
“후후! 알겠습니다.”
수부가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일단 십장들이 일을 마치게 도와줘. 밑에 놈 중에 감당하기 벅찬 놈도 있을 거야.”
“넷!”
“오늘 저녁은 매우 푸짐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우리 셋만 남는다면 간단하게 해야겠군. 독비, 수부. 간단한 국수 정도로 준비해. 요즘은 많이 먹으면 부대끼더라고.”
“넷!”
독비가 대답했다.
수하들을 모두 제거하고, 마을로 내려가서 국수까지 준비하라는 명령이다. 자신이 걸어가는 것보다 더 빨리 일을 마무리 지으라는 겁박이기도 하다.
쉬잇! 쉿!
두 사람이 쾌속하게 신법을 날려 사라졌다.
흑후는 텅 빈 산길을 혼자 걸었다.
허도기를 모시는 길일 줄 알았는데, 모두 죽고 자신만 남는다. 이로써 야천은 성검문에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다.
“이게 무슨 횡재지? 간밤에 똥 꿈이나 돼지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골치 아픈 두 놈이 한꺼번에 사라졌어. 후후후! 내려가는 즉시 성검문에 통보부터 넣고. 후후후후!”
흑후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서 수하들을 모두 제거할 생각이다.
만약 성검문에서 누군가가 이번 일을 의심하고 조사를 시작하면, 첫 번째 순서로 이곳에 온 적이 있는 자를 잡아서 직접 정보를 캐낼 것이다.
흑후는 수하들의 입을 믿지 못했다.
그의 수하들도 아걸에게 죽은 것으로 한다. 일차 접전에서 아걸에게 모두 죽은 후에야 허도기가 나선 것으로 하면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수하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다.
물론 저들의 칼이 흑후 자신에게 겨눠질 수도 있다. 아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장담한다.
쇄부와 독비는? 그들도 죽여야 할까?
아니다. 세상은 그들을 모른다. 야천에서도 그들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버려 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후후후! 후후후후!”
흑후는 계속 웃었다.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