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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86화 (286/600)

#286화. 第五十八章 사자(死者)(1)

숲에 어둠이 찾아왔다.

낮과는 전혀 다른 적막감이 숲을 휘감는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부엉이 소리도 들린다.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도 생생하게 들려온다.

밤은 동물들의 세상이다.

사람은 낮에 활동하지만, 동물은 주로 밤에 움직인다. 상당히 많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에게는 고요하게만 느껴진다.

이 밤, 많은 동물이 잡아먹힌다. 목숨을 잃는다. 반대로 날카로운 이빨로 살을 찢어 먹는 쪽도 있다. 그럴 때는 머리 전체가 피로 흠씬 젖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도 적막하다고 생각한다.

아걸은 이런 모순을 자신에게서 읽었다.

밤하늘에 별이 깨알처럼 박혀 있다. 너무 많아서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달빛도 환하다. 숲 깊은 곳에 누워 있는데도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다.

지극히 평화로운 곳에 누워 있다.

몇 시진 전만 해도 매몰된 흙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달을 보고 있다.

몇 시진 전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살아 있으니 좋군.’

쒜에에엑! 차앙!

검이 날아온다. 반철도로 막는다. 또 날아오고 막는다. 검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 서로가 변화를 일으킨다. 몸을 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격한다.

아걸은 허도기와 싸웠던 일전을 떠올렸다.

어둠 속 허도기는 발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검이 검집에서 뽑히는 순간 목숨을 빼앗는 검인데…… 동굴에서는 아예 검을 뽑아 놓고 싸웠다.

허도기가 주도권을 잡은 싸움이 아니었다.

단언하건대 허도기는 이런 유형의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경험이 있었다면 예의 발검을 펼쳤을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시간상으로는 길었지만, 부딪치는 순간은 매우 짧았다.

순간적으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둠을 택한 건 잘했어. 이번 싸움은 확실히 해볼 만했어.’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도기를 이기지는 못했어도 만족한 싸움이었다. 허도기의 검도 피했고, 몸에 칼을 대기까지 했다.

밝은 곳에서 싸웠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번 싸움에서 확실하게 안 것은 허도기도 자신이 수련한 촌경 일촌살타를 안다는 것이다.

격검 직전, 일 촌 앞에서 검을 비틀었다.

검과 칼은 계속 서로에게 나아갔지만, 검이 부딪치기 전 허도기의 검은 이미 방향을 바꿔서 몸을 쳐 왔다. 한발 빠른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다.

첫 번째 격돌은 촌경에 당했다.

두 번째는 서로 촌경을 사용했다. 허도기도 성공했고, 자신도 성공했다.

허도기는 촌경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아걸이 은거 무인들과 함께 수련하면서 터득한 촌경을 아주 자연스럽게 몸의 일부처럼 구사한다.

“풋!”

아걸은 실소를 흘렸다.

허도기가 촌경을 아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촌경 일촌살타는 초식이 아니다. 무인의 감각이요, 느낌이다. 순간적인 판단이다.

허도기가 사용한 것이 촌경이든 아니든 상관할 것이 없다. 허도기의 감각, 느낌, 순간적인 판단이 아걸보다 뛰어나다. 그러니 그의 검이 빠른 것이다.

‘이번 싸움에 대한 미련은 여기까지. 허도기가 살아 나왔다면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고, 다음 싸움은 이번처럼 수월하지 않을 거야. 허도기도 어둠에 대해 대비를 할 것이고.’

다음 싸움은 어둠을 택하더라도 지금처럼 전개되지 않는다. 감당하지 못할 발검술이 터질 것이다.

‘다시. 다시 시작하자.’

아걸은 달을 보면서 자신의 무공을 다시 생각했다.

실패를 경험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잘못되었으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차분히 살피는 것이다.

지금의 무공을 버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계속 유지하되, 더 보탤 부분을 찾는다.

처음!

삼십육 문주의 무공을 섭렵하면서 최우선으로 중점을 둔 부분은 무념이다.

무념이 몰안을 일으켜 준다. 무념이 도신일체를 이루어 준다.

이런 상태가 된 후에야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할배와 함께 무림을 떠돌면서 수련한 것은 모두 무념으로 귀결된다. 무념을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모든 세월을 무념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있다.

무념 상태가 되어야만 전신 감각이 떨어져 나간다.

적도 없고, 나도 없다. 칼을 든 자도 없고, 칼로 쳐야 할 자도 없다.

적과 마주쳤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적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무념이 되어서 칼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도신일체 상태를 이룬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무엇도 되지 않는다.

칼과 한 몸이 되면 그때는 적이 생긴다. 나는 없다. 그 대신에 칼이 있다.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칼이 싸운다. 칼과 적이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도법이 나온다.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 중에서 어떤 칼을 써야 할지는 오직 감각이 결정한다.

그런데 무념에도 단계가 있었다.

마방에서 활검문 문도를 벨 때,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무념에 단계가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무념은 꾸준히 발전했다.

얼마 후, 무념도는 소축십검이 전개한 잠기일력타까지도 흘려 냈다.

눈으로 잠기일력타를 보고 피하기는 정말 어렵다.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불가능에 가깝다.

잠기일력타가 육신을 공격해 올 때, 육신에 티끌만 한 미련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피하지 못했다. 급소도 육신이고, 급소 아닌 곳도 육신이다. 검이 가슴을 노린다고 해서 급소를 피하려고 일부러 다른 부위를 내밀지는 못한다.

인간의 본능이 칼 맞는 것을 거부한다.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지워지고 오직 칼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육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점이 잠기일력타를 간발의 차이로 흘려보냈다. 전신 진기가 깃든 검을 맞기는 했지만 즉사할 부위는 피했다.

무념이 극상으로 발전했다.

‘이제 더 할 게 없어. 이것보다 강한 도법은 없어!’

그런데 이런 무념도를 가지고도 허도기에게 검을 맞았다.

날 보고 더 어쩌라고? 이제 뭘 하라고? 할 게 없다. 무념으로 펼친 칼보다 더 뛰어난 칼이 어디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데도 졌다면 끝난 거지.

절망이 엄습했다.

두 번째!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은거 무인과 같이 생활하면서 칼을 가다듬었다.

칼이 지닌 속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 매우 빠르게 쳐 낼 수 있다.

사실, 이런 무리를 모르는 무인은 없다. 검을 처음 잡는 무인에게 하는 말이 ‘검을 힘으로 쳐 내지 마라’는 말이다. ‘검이 가진 힘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수련한 것은 아니다. 무념도에 살을 보태는 작업이다.

그 결과 촌경, 일촌살타가 만들어졌다.

일 촌 앞에서 칼을 변화시킨다. 무념도로 칼을 쓰되 일 촌 앞에서 결정타를 만든다.

칼을 부딪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다.

허도기와 싸웠을 때 일으켰던 것과 같은 변화가 이루어진다.

칼에 힘이 집중되면 분기도강 형식으로 표출된다. 칼이 다섯 자루로 늘어난다.

칼을 이 정도까지 수련했는데도 또 허도기에게 눌렸다.

왜 그럴까? 도대체 허도기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빠른가.

처음 허도기에게 검을 맞았을 때, 절망을 느꼈을 때 머릿속을 휘감던 의문이다.

지금은 이런 의문을 떠올리지 않는다.

모든 의문을 일거에 해소할 방법이 있다. 허도기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점을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나보다 강하니까 나보다 빠른 게 당연하다.

“후후!”

아걸은 답답함 대신 웃음을 흘렸다.

원래 무림에서는 이런 것을 층층수(層層手)라고 부른다.

계단 위에 계단, 그 위에 또 계단, 계단……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다만, 계단 위에 선 사람은 위에 있는 계단을 보지 못한다. 마치 정상에 선 느낌만 든다.

이것이 층층수다.

첫 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하늘에 닿은 것처럼 여겨진다. 더는 수련할 것이 없어 보인다. 어떤 자도 내 칼을 받아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밟고 선 곳보다 더 높은 곳이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림을 활보하다 보면, 무공을 수련하다 보면, 세월이 흐르면 또 다른 계단을 밟는다.

예전,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무공이 어리숙해 보인다. 철없이 여겨진다.

‘그때는 어렸어. 이것이 정상인데.’

한 계단 위에 올라서면 역시 하늘에 닿은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이제야 최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거의 대다수 무인은 이 상태에서 안주한다.

하지만 계속 발전해 가는 사람은 또 다른 계단을 발견한다. 그리고 올라선다.

여기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어떤 자는 만족하고 안주한다. 어떤 자는 또 다른 계단을 찾아서 더욱 분투한다.

계단은 반드시 나온다.

올라서고, 올라서고, 계속 올라선다.

무념을 이루어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를 마음껏 전개할 수 있었을 때, 아걸은 자신이 무적인 줄 알았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편하게 말을 해서 그렇지, 사실 무념 상태에서 칼을 쓸 줄 아는 무인이 중원에 몇 명이나 있겠나. 도신일체가 쉽나? 그런 상태를 이룬 무인이라면 일문을 창건하고도 남는다.

사실, 무념도만 해도 무적이다.

남의 도법을 훔쳐서 쓰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가히 절정 도객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내 칼이 최고다’라는 자부심 정도는 가져도 된다.

그런데 그때는 아직 ‘최고다’라는 자부심을 품지 못했다. 내 칼, 일홀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분명하게 이루지 못한 것이 있어서 최고가 아닌 줄을 알았다.

사형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념도를 사용한다. 하지만 분명히 층차가 있다. 사형들은 삼십육 문주가 자신의 도법을 창안했듯이 자신의 칼을 가졌다.

남은 무공을 흉내 내는 수준에서는 이길 수 없다.

‘더 수련해야 해.’

강한 무공을 지닌 것은 사실인지만 아직 풍도곡이나 허도기를 상대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결과는 바로 드러났다. 서리형개가 전개한 칼을 고스란히 맞았다. 지금 같아서는 급소를 피해서 칼을 흘려냈을 텐데, 그때는 그대로 맞았다.

도신일체도 사형들보다 부족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을 했다. 지금이라면 그때의 아걸을 두세 명 정도 상대할 수 있다. 두세 명? 아니, 서너 명까지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만의 일홀도를 만들어 내서 이제는 더 이룰 것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형들을 이겼다.

일홀도 대 일홀도의 싸움에서 이겼다.

‘됐어! 다 이뤘어!’

아걸은 자신이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도기가 자신을 눌렀다. 그런가? 흠! 허도기가 더 높은 계단에 있네. 그러니 무념도로 펼친 촌경 일촌살타도 막아 냈고, 분기도강도 막아 낸 것이지.

앞으로 무엇을 더 얻을지 모르지만, 더 높은 계단은 반드시 나온다. 그리고 그 계단에 올라선 후에는 허도기와 어떤 싸움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허도기의 상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계단이 있는 것이다. 허도기가 이미 올라선 계단이니 확신하고 찾으면 된다.

아걸은 매몰된 동굴에서 빠져나오면서도 무념도와 자연도를 펼쳤다.

칼로 흙을 갈아 낼 때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오직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무념 상태다. 무념으로 칼을 썼으니 단순히 흙을 긁어낸 것에 불과해도 그것 역시 무념도였다.

작은 움직임으로 최대한 많은 흙을 파내려고 노력한 것은 자연도다.

전력을 다해서 펼친 것이 아니라서 분기도강과 촌경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걸은 자신이 얻은 모든 칼이 행동 속에 녹아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 당장은 이런 칼로도 허도기를 이기지 못했으니 더 할 것이 없어 보인다. 무엇을 수련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짓을 해도 필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반드시 있다.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아걸은 달빛을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편하게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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