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第五十九章 하단(下端)(1)
싸움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적을 파악해야 한다.
싸워야 할 자가 누군가? 인원은 몇 명이나 되고,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적을 파악하지 못하면 답답해진다. 하지만 적을 파악하면 대책이 나온다. 절대 강자와 절대 약자의 싸움이라고 해도 이런 대응책은 나온다.
더욱이 싸움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상대를 파악하는 즉시 대책이 수립된다.
야구는 이미 어떤 작자들이 일전통을 차지했는지 파악해 냈다.
‘젖비린내 나는 계집년들이!’
뜻밖에도 일전통을 급습한 사람은 전부 여인이다.
늙어서 쉰내가 풀풀 풍길 것 같은 노파와 이제 막 젊음이 피기 시작한 여자 열두 명이다.
노파가 이끌고 열두 명이 수족처럼 움직인다.
도대체 여자들이 일전통을 깔고 앉아서 뭐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 밑바닥, 시궁창 생활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여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일전통을 장악했나.
그녀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매음을 중지시킨 것이다.
그건가? 매음 행위가 싫어서 일전통을 차지했나? 아니면 몸 파는 여인들이 불쌍해서?
딱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일전통에서 매음을 강요하거나, 여인에게 손찌검한 사내들은 가차 없이 쫓겨나거나 죽었다.
아니, 여자들은 오직 죽이기만 했다. 사내들이 저 스스로 죽기 싫어서 도망간 것이니 굳이 쫓아냈다고 할 수가 없다. 제 발로 뛰쳐나온 것이다.
현재, 일전통에는 거의 여자만 남아 있다.
남자도 있지만, 어린애이거나 늙어서 사내구실을 못 하는 노약자들뿐이다.
여자들이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어디서 어떤 돈이 나와서 저들을 먹여 살리는지 몰라도 넉넉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저 입에 풀칠하는 수준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정도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지. 마땅한 수입원이 없잖아.’
이것이 일전통의 상황이다.
그러면 저들, 여자들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놀랍게도 무공은 상당히 높다. 노파는 야천에서도 최고수가 상대해야지 될 만큼 무공이 높다.
그 외에는 싸울 만하다.
여자 열두 명은 무공이 강하지만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상대로 보인다.
솔직히 일전통을 훼손하지 않고 완전히 되찾을 생각이니 이만큼 참은 것이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싸웠다면 저들 목숨은 벌써 떨어졌다.
야구 방식대로 화약을 쏟아부었다면 저들이 대체 무슨 수로 피할 수 있겠나.
그런데 빌어먹을 일은 또 있다.
야구는 일전통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은 화약을 사놨다.
자신이 거처하던 지하 일 층과 이 층이 화약으로 가득 차 있다.
또 일전통에서 거둬들인 세금을 황금으로 바꿔서 땅속에 숨겨 놨다. 화약이 터져도 황금에는 손상이 없도록 강둑 반대편 쪽에 고이 숨겨 놨다.
그의 모든 것이 전부 일전통 안에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화약도 없고, 폭죽 한 줌 살 만한 돈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야구는 화약을 살 수 있는 돈도 없다.
야구는 누구에게 인정을 베푼 적도 없다. 언제나 차디찬 계산만 존재했다. 화약이든 무엇이든 외상으로 줄 수 있는 사람도 구할 수 없다. 아니, 썩은 생선 조각 하나도 주지 않는다.
“매달 사백 냥씩 상납하겠습니다.”
야구가 청석 바닥에 오체투지, 두 손과 두 발을 땅에 바싹 엎드린 채 애원했다.
“사백 냥? 일전통에서 그만한 돈이 나와?”
의자에 앉은 중년 사내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나옵니다. 안 나오면 나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이번에 도와주신다면 반드시 약속 지키겠습니다.”
“사백 냥. 어디 계산 좀 해 보자. 일전통이란 말이야. 일전통에 여자가 몇 명이나 되지?”
“대략 삼백 명 정도……”
“에이, 계산이 안 나오잖아? 거긴 몸 한 번 굴리는데 동전 하나잖아? 삼백 명이 세 명씩 받으면 구백 개. 좋아. 천 개라 치고, 그럼 은 한 냥. 한 푼도 안 쓰고 일 년을 굴려야 삼백육십오 냥. 어떻게 한 달에 사백 냥이 나와?”
야구와 중년인이 말하는 사백 냥은 은 사백 냥이다. 일전통에서 화대로 받는 일전을 천 개 모아야 은 한 냥이다.
야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야구가 비록 막살기는 했어도 약속 하나는 칼 같이 지키는 놈 아닙니까. 일전통이 매음만 하는 곳은 아닙죠. 그건 여자들이 하는 일이고, 사내들은 더 험한 일을 하는지라. 도와주십쇼! 약속은 꼭 지킵니다!”
“지켜야지. 지키지 않으면 모가지 날아가.”
“믿어 주십시오!”
야구가 힘 있게 말했다.
“사백 냥, 나오겠어?”
사내가 의자 옆에 시립해 있는 염소수염의 사내에게 물었다.
“사백 냥은 나올 겁니다. 일전통은 매음보다도 동첩(童妾)으로 돈을 버는지라.”
“동첩?”
“네.”
“야, 야구. 거 괜찮은 애 있으면 나도 하나 줘. 왜 그런 걸 하면서 입 싹 씻었어?”
“꼭 바치겠습니다. 매월 한 명씩 바치겠습니다.”
야구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말했다.
동첩은 팔순이 넘는 노인이 아직 이팔(二八:16세)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를 첩으로 맞이하는 일이다. 어린 여아를 품고 자면서 음기를 흡수하면 장수한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동첩은 노인이 죽으면 같이 생매장당한다.
이런 동첩은 가난한 자가 딸을 팔기도 하지만 야구 같은 자들이 동녀를 납치해서 바치기도 한다.
“그런데 난 저놈을 믿을 수 없어서 말이야. 처음에는 잘 상납하겠지. 하지만 좀 지나면 대들지 않을까? 저놈 저거 주인도 물어뜯을 망나니 들개잖아?”
“그래서 좋은 말이 있잖습니까? 말 안 듣는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그런가?”
“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수염을 가지런히 기른 사내가 공손히 대답했다.
야천에는 불문율이 있다. 말 안 들으면 죽인다. 배신하면 죽인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죽인다. 말대꾸하면 죽인다. 어떤 일이든 죽이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
세상에 일전통 같은 곳은 많다.
그런 곳 중 하나를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감히 야천을 능멸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난다. 야천에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좋아. 도와주지.”
의자에 앉은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야구는 몸을 더욱더 낮게 숙이면서 힘있게 소리쳤다.
“어떻게 도와줄까? 돈? 애들?”
“찰도(鍘刀:작두) 님과 석두각(石頭角:돌머리 뿔) 님을 주셨으면…… 합니다.”
“뭐?”
중년인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야구를 쳐다봤다.
“저쪽에 할망구가 있는데 무공이 깜짝 놀랄 정도로 초절합니다. 두 분 다 필요합니다.”
“그렇게나?”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찰도와 석두각은 야천팔방(夜天八邦) 제이선(第二線)이다.
야천팔방은 방주 휘하에 열 명의 고수, 십리(十螭)가 있다.
교룡[螭]은 뿔 없는 용을 말한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이니 방주 아래라는 뜻이다.
이들, 팔방주 팔룡과 십리가 제일선이다.
중년인은 십리 중 도첨삭리(刀添削螭)다. 아마도 제일선 열 명 중 제일 잔인할 것이다. 칼을 뽑으면 항상 살점을 뼈가 드러나도록 베어내니까.
찰도와 석두각은 도첨삭리의 수족이다. 염소수염의 사내, 간뇌(姦腦)가 문(文)을 담당한다면 철도와 석두각은 철저하게 무(武)를 맡고 있다.
두 사람의 무공은 상당하다.
찰도와 석두각 중 어느 한 사람만 내보내도 일전통 같은 곳은 싹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을 달라? 겨우 일전통 같은 곳을 되찾는다면서 도첨삭리의 최고수를 요구한다? 일전통 같은 곳을 서너 개쯤 박살 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도첨삭리의 심정을 헤아린 듯, 염소수염의 사내 간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전통을 장악한 여자들이 매우 수상합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일체 정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무공은 하나같이 강한데 어떤 무공인지조차도. 노파가 찰도와 석두각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자가 왜 일전통을 건드려? 세상에 건드릴 데가 그렇게도 없었나?”
“오늘 일전통 창기들이 소식을 전해 왔는데, 일전통에 웬 사내가 나타나서 그 여자들과 대판 싸운 모양입니다. 여자 한 명이 제압당하고, 난리가 났던 것 같은데…… 경계가 심해서 노파와 무언가 말을 주고받는 것까지밖에 확인하지 못했답니다.”
“그럼 그놈도 지금 일전통에 있나?”
“떠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간뇌, 네가 언제부터 일전통 창기한테 보고 같은 것을 받았어?”
“제가 받은 것이 아니라……”
간뇌가 야구를 눈짓했다.
야구는 아직도 일전통을 지배하고 있다. 일전통 창기 중 상당수가 야구를 따른다.
야구가 즉시 말했다.
“찰도 님과 석두각 님은 굳이 싸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먼저 싸울 겁니다.”
“네가 무슨 수로?”
“저는 화약을 잘 다뤄서……”
“아! 화약.”
도첨삭리가 피식 웃었다.
“제가 싸운 후에, 그래도 노파나 여자들이 살아 있으면 그때는…… 마무리를 부탁드리고자.”
“간뇌.”
“네.”
“저놈이 말하는 공격 계획을 들어 봐. 그래서 타당하다 싶으면 지원해 줘.”
“알겠습니다.”
간뇌가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야구는 도첨삭리와 만나기 전, 간뇌에게 은 스무 냥을 건넸다. 중간이 부탁이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말이 잘 되게끔 도와달라는 뜻이다.
간뇌는 정말 잘 도와주었다.
“간뇌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공격 계획 말해 봐. 공격 계획이 마음에 들면 지원하고, 아니면 아무것도 없어.”
간뇌는 언제 뇌물을 받았냐는 듯 냉정하게 말했다.
야구는 간뇌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당황하지 않았다. 무조건 뇌물을 받았으니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뇌물은 옆에서 거들어 주는 것으로 끝났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공격 계획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야천 사람들은 무조건 사납고 흉포한 줄 알지만, 제일선이나 제이선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강하다. 그리고 영리하며, 신중하다.
야구는 즉시 지도를 쫙 펼쳤다.
“제가 일전통을 건드리지 않고 할망구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는데…… 여깁니다.”
야구가 강 하구를 손으로 짚었다.
“제 수하 놈들이 일전통에 가서 계집년들한테 시비를 걸 겁니다. 저쪽은 당연히 딸려 나올 것이고. 몇 놈은 실제로 싸우다가 죽죠. 하지만 결국 여기로 유인됩니다.”
야구가 짚은 곳은 강 하구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암습을 겁니다. 이 주변 땅은 제가 잘 아는데, 화약을 조금만 써도 땅이 뒤집히죠. 여기서 딱 한 년만 잡으면 됩니다. 한 년만 잡으면 할망구는 물론이고 다른 계집들까지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죠.”
“땅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봐. 도대체 어떤 땅인데 무공 고수를 잡을 수 있다는 거야?”
간뇌가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
야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뱃속에서는 울화가 치밀었고, 두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이놈한테 뭘 말해 주지?
간뇌는 인간말짜들이 무공 고수를 어떤 식으로 잡을 수 있는지 듣고자 한다. 즉, 야천팔방이 공격한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대놓고 물은 것이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사실대로 말해 주면 이들에게 일전통을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공격 계획이 미비하다면서 지원을 중지할 수도 있다.
‘제길!’
야구는 이를 악물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지금은 일전통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 땅은 겉보기에는 진흙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푸석푸석한 암반이 나오죠. 정으로 쪼개도 별 힘들이지 않고 부술 수 있는 암반인데……”
야구는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이 아니고서는 간뇌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보니 도첨삭리가 간뇌에게 공격 계획을 들으라고 한 것도 완전히 계획적이었던 것 같다. 여차하면 일전통을 흡수, 병합해 버릴 생각이다.
‘너희들 뜻대로는 안 될걸! 일전통이 어떤 곳인데. 킥킥! 이용만 당하고 떨어져.’
야구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여기에 화약을 일곱 겹으로 쌓아 두는 겁니다.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