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第五十九章 하단(下端)(2)
‘이럴 줄 알았어.’
아걸은 일전통을 향해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주시했다.
일전통은 매음굴이기 이전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그러니 사내들이 들락거리지 말란 법은 없다. 현재, 일전통을 지배하는 팔 장로와 십이 살수의 뜻에만 따르면 된다.
예전의 인간말짜들만 아니라면 주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아걸이 주시하는 두 사람은 인간말짜다.
팔 장로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일전통으로 걸어가는 것은 다분히 싸우겠다는 뜻이다.
아걸은 인간말짜들의 행동 양태를 잘 알고 있다.
열서너 살 때쯤, 사천(四川)에서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흔들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다. 그때도 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싸움하게 됐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거의 한 달 넘게 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싸운 것 같다.
이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근거지를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근거지를 뺏기면 반드시 되찾는다.
야구란 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시 온다.
이번에는 상수(上手)를 공격하느니 만치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올까? 야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지? 어떤 종류의 싸움을 선호하지? 물론 진흙탕에서 뒹구는 개싸움인 것은 분명한데, 어떤 종류일까?
다른 자 같았으면 팔 장로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아걸은 야구에게 공격을 당해 봤다.
화약, 기름!
엄청난 양의 화약과 기름을 쏟아부었다.
특히, 사람을 약에 취하게 만들어서 인간 폭탄을 만든 비열함에는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런 일이 팔 장로에게 벌어진다.
팔 장로가 현명하게 대응하겠지만 아무래도 취화원 살수들이 다칠 우려가 크다.
인간말짜 방식의 싸움은 절대로 상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들에게는 인간도 하나의 병기일 뿐이다. 검은 부러지면 다른 검을 취하면 된다. 인간도 죽으면 다른 인간을 쓰면 된다. 절대로 아까워하지 않는다.
인간말짜 방식으로 재차 공격해 온다면 아무리 취화원 살수라고 해도 절반 이상은 사망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일전통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역시 일전통 하구 쪽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어쩌면 한 치도 예상에서 어긋나지 않냐. 이런 건 좀 달라져도 괜찮은데.’
아걸은 피식 웃었다.
아걸은 야구가 잘하는 것, 화약을 생각했다. 화약을 어디서 사용할까? 화약을 쓴다면 매설 방식이 있고, 화살에 날려 보내는 방식이 있는데……
매설 방식으로 가장 유용한 곳은 일전통이다.
일전통 전체를 날려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물론 이것도 쓸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이제는 도저히 일전통을 되찾지 못하겠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날려 버린다. 일전통에 사람이 있건 없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일간 말짜들은 이렇다.
우선은 일전통을 되찾기 위해서 싸울 것이다. 그러면 일전통에 매설하는 방식은 아니다.
일전통과 떨어진 곳, 하지만 폭발력이 강한 곳.
주변 지형지물로 봐서 화약을 쓸 수 있는 곳은 강 하구 쪽이다.
하지만 강 하구에서 화약을 쓰려면 일단 살수들을 마을 밖으로 유인해 내야 한다.
유인책을 쓸 때처럼 시비를 거는 척하다가 냅다 도주하는 방식은 먹히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취화원 살수들의 무공이 너무 빠르고 강하다.
결국은 희생이다.
살수를 마을 밖으로 유인하는 데만 서너 명, 많으면 십여 명까지 목숨을 내놓을 것이다.
쉣!
어김없이 검이 날아왔다. 일전통을 방문하는 사내는 반드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웬 놈들이냐!”
차가운 말투가 뒤를 이었다.
“저, 저기…… 저기…… 왜 이러시는지. 저희는 그저 여자 생각이 나서……”
“꺼져!”
“아,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당장 갑니다.”
두 사내가 급히 뒤돌아서서 내뺐다. 그중 한 명은 너무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때,
쒜에에엑! 쒜에에엑!
허공에 화살이 날았다.
목표는 당연히 검을 빼든 여살수다. 사내들이 여살수를 끌어냈으니 뒤에 대기한 자들이 화살을 퍼붓는다.
물론 취화원 여살수는 화살 공격 따위에 당황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목표가 된 여살수는 파공음을 듣는 즉시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와 동시에 다른 곳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여살수 세 명이 신형을 쏘아 냈다.
파파파팟! 파파팟!
은밀하면서도 빠른 신법 암영보다.
그녀들은 매우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신형을 쏘아 냈다. 방향은 화살이 날아온 곳이다. 도주하는 두 명은 일체 신경 쓰지 않고 화살이 날아온 곳만 노린다.
“도망쳐!”
“빠져나가!”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내 여섯 명이 메뚜기처럼 후다닥 뛰쳐나왔다.
화살을 날린 자들도 자신들이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화살을 날리자마자 뒤로 신형을 빼냈다. 여살수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공격을 끝내자마자 즉시 도주한다.
쒜에에엑!
골목으로 몸을 피했던 여살수가 달려 나와 도망치기 시작한 두 명을 뒤쫓았다.
싸움은 두 방향에서 진행됐다.
화살 날린 자를 쫓는 여살수 세 명, 시비 건 자를 쫓는 한 명.
이들은 도주하고 쫓아가는 방향은 같다. 하지만 목표는 각기 달랐다.
여살수 세 명은 시비를 건 자들보다 앞서서 달리고 있다. 그러니 뒤돌아서 검을 쳐 내면 두 명쯤은 거뜬히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오직 화살을 날린 자들만 노리고 있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하늘에서 또다시 파공음이 들렸다. 새까만 점들이 깨알처럼 피어나며 날아왔다.
두 번째 화살이다. 이번 화살은 여살수 네 명을 동시에 노린다.
화살은 한 곳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은 두 방향이다.
타앙! 탁탁! 타아악!
여살수들이 화살을 쳐 내면서 치달렸다. 화살 공격이 매우 사납지만, 여살수들의 걸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타앗!”
한쪽에서 날카로운 일성이 터졌다.
“크윽!”
도주하던 두 명 중 한 명이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무너졌다.
여살수의 검이 정강이 뒤쪽을 갈랐다.
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휘돌려진 검이 쓰러지는 자의 목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쓰러지는 자는 머리가 분리된 채 무너졌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는 허공에 둥실 떠올렸다가 사내의 등으로 떨어졌다.
쒜에에엑! 퍼억!
다시 이어진 검이 다른 사내의 옆구리를 쑤셨다.
검이 왼쪽 옆구리를 파고 들어가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삐져나왔다.
“아아악!”
사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여살수는 즉시 검을 빼냈다. 아니, 검이 스르륵 빠졌다.
사내가 아래로 쓰러지면서 자신 스스로 검에서 몸을 빼낸 격이 되고 말았다.
이때, 여살수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서 취화원 살수들만의 특징이 나온다.
첫 번째 죽은 자는 아무런 특징도 드러내지 않는다. 머리가 잘리는 죽음에는 어떤 특징도 남겨 놓을 필요가 없다.
두 번째 죽은 자는 몸이 관통당했다.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치명적인 상처지만, 혹여…… 정말로 하늘이 돌봐서 살아날 수도 있다.
그래서 검을 빼낼 때 진경(眞驚)을 일으킨다. 그러면 검이 바로 뽑히지 않고 약간 틀어져서 뽑힌다. 검을 빼내는 동작에서 뼈를 가르는 수법이 튀어나온다.
두 번째 죽은 사내는 척추가 갈렸다.
하늘이 정말로 살펴서 목숨만은 구해 준다고 해도 머리 아래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취화원이 진경을 택한 것은 청부 살인의 특성상 살인에 실패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검을 되도록 많이 쓰지 않으면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나왔다.
지금 같은 경우, 진경까지 일으켜서 검을 회수하면 즉사다. 죽었나 살았나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살수는 검을 회수하자마자 즉시 다른 세 명과 합류했다.
쒜에에엑! 쒜엑! 쒝!
화살은 더욱더 거세게 쏟아졌다.
앞서서 달리던 두 명이 화살을 쳐 냈다. 그 순간 뒤따르던 두 명이 여섯 명의 꼬리를 낚아챘다.
쒝! 퍼억!
검이 도망치던 자의 오른쪽 등을 쑤셨다.
“큭!”
사내는 짧은 비명을 토해 냈다.
검에 찔리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나. 비명을 쏟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다. 아니, 살고 싶으면 더 빠르게 도주해야 한다.
사내는 사력을 다해서 도주하려고 했다.
그때, 검이 쑥! 빠져나갔다. 그리고,
“크아악!”
사내는 검이 쑤실 때보다 더 큰 비명을 쏟아 냈다.
비명이 너무 처절해서 검을 맞지 않은 자들까지 부르르 몸서리쳐질 정도였다.
역시 진경이다. 검을 빼내면서 진력을 아래로 그어 내렸다. 당연히 검은 등에서 넓적다리뼈 쪽으로 그어 내려진다. 뼈가 갈리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일어난다.
스읏! 퍽!
다시 달려든 검이 사내를 옆구리부터 가슴까지 훑었다.
사내가 맞은 검은 두 개다. 하지만 정작 검이 쓰인 것인 네 번이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검초보다 안에서 움직이는 숨은 검, 속검이 더 강렬하다.
취화원 살수들은 이런 진경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진경을 사용하느니 검초를 한 번 더 쓰는 게 빠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진경에 능숙해지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진경은 공격도 동시에 일어난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일단 습관이 되면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쒝! 쒝! 쒝! 쒜에에엑!
하늘에서 또다시 파공음이 들렸다.
이번에 쏘아진 화살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아직도 도주하고 있는 사내가 다섯 명이나 있는데도 거침없이 화살을 날린다. 함께 죽으라는 소리다.
“아악!”
“커어억!”
앞만 보고 도주하던 사내 다섯 명은 자기 쪽에서 날아온 화살에 꼬치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까앙! 깡!
여살수들은 급히 화살을 쳐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아니다. 물러선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분명히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는데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는다.
쒜에에엑! 쒜에에에엑!
또다시 화살 한 무더기가 날았다.
이번 화살은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주변을 향해서 광범위하게 쏘아졌다.
여살수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화살을 쏟아 낸 것이다.
어느 곳에라도 숨어 있으면 자기가 튀어나오겠지, 안 나오고 배겨? 천천히 사냥을 즐기면 되는 거야. 다급하면 튀어나올 테니까 신경 바짝 쓰면서 쏴.
저들은 급하지 않았다.
취화원에서 살수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엄폐다. 은폐가 아니다. 엄폐부터 가리킨다. 몸을 숨기되 눈속임만 하지 말라는 거다. 진짜로 몸을 가릴 수 있는 물체 뒤로 숨는다.
벽 뒤, 바위 뒤, 나무 뒤, 구덩이 속…… 어디든 몸을 막아 줄 곳을 찾아서 숨는다.
인간말짜들이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대고 있지만 여살수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이미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찾아냈다. 어쩌면 벌써 엄폐물을 벗어나 공격 진원지를 향해 기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이미 상황은 야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벌써 야구의 싸움이 시작됐다.
일차로 야구는 일전통에서 여살수 네 명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아걸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야구는 곧 기름 항아리를 쏟아 낼 것이다. 그리고 불화살을 날린다. 어떤 무인, 어떤 무공도 무용화시키는 공격이 시작된다.
싸움 방식은 야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화약, 불, 인간의 목숨이 모두 무기로 변질된 개싸움이다.
쓰읏!
아걸은 일어섰다.
이미 보고자 하는 것을 모두 보았다. 야구가 어떤 식으로 싸움을 준비하는지 낱낱이 봤다.
여기서 더 방치하면 여살수들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