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第五十九章 하단(下端)(3)
야구는 상수를 공격할 줄 안다. 무공이 강하다거나 명성이 높다고 해서 겁을 먹지 않는다. 상대도 인간인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면 반드시 쓰러질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하다. 쓰러지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런 마음가짐 하나만은 배울 만하다.
야구는 인간말짜들을 일곱 겹으로 포진시켰다. 인간으로 포위망을 만들었다.
야구는 매우 거친 사내지만 포위망을 만들 때는 무척 꼼꼼했다. 각 겹 간의 간격은 물론이고, 나란히 늘어선 사람들의 간격까지 일일이 점검했다.
머리를 쓸 줄 안다는 거다.
포위망을 갖춘 후에는 시험 삼아서 직접 화살을 날리기까지 했다.
일종의 예행연습인데…… 화살이 꽂힌 곳으로 가서 빠져나갈 곳은 없는지 살펴보기까지 했다.
물론 예행연습 때는 화살만 쐈다. 화약과 불화살은 사용하지 않았다. 화살이 꽂히는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연습한 것이지, 포진을 연습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인간말짜들은 이미 이런 싸움에 익숙하다.
일곱 겹으로 둘러싼 자들이 순서에 맞춰서 활을 쏘았다. 그러자 가히 수천 명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왔다.
제일 대가 쏘고, 바로 뒤를 이어서 제이 대가 쏜다. 제삼 대, 제사 대…… 제칠 대까지 순식간에 이어진다. 시간 차이를 느낄 틈도 주지 않고 쏘아 댄다.
제칠 대가 활을 쏘면 다시 제일가 이어받는다.
제일 대에서부터 제칠 대까지 전원이 활을 쏘는 시간은 매우 짧다. 겨우 화살을 쏘고 난 후,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 활에 재우는 시간이면 난사가 끝난다.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착착 화살을 쏜다.
야구는 가장 공격하기 좋은 지점을 선택했고 그 밑에 화약까지 매설했다.
여기에 폭시(爆矢)와 불화살까지 보탠다면 당할 재주가 없다. 취화원 살수에게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 해도 포위망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스읏!
아걸은 포위망 뒤로 잠입했다.
상대가 야구인 이상 그도 정면 승부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서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고 죽이는 싸움만 진행된다. 무공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생존 싸움이다.
상대가 보인다.
스으으읏!
아걸은 소리 내지 않고 다가섰다.
상대는 등 뒤에 사신이 다가왔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앞만 노려봤다.
야구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폭시를 쏘아야 한다. 화약을 매단 화살은 이미 활에 재웠고,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불을 붙일 수 있게끔 준비해 놨다.
아걸은 야구가 자신을 알아볼지 몰라서 햇볕을 가릴 때 사용하는 큰 방갓을 썼다. 야구는 자신을 공격한 적이 있으니 보기만 하면 알아볼 것이다.
반철도는 헝겊으로 둘둘 감아서 등에 멨다.
반철도는 당분간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말짜들을 상대하면서 반철도까지 사용할 생각은 없다. 또 이들 중에는 반철도를 상대할 만한 고수도 없다.
슷! 퍽!
아걸은 반철도 대신에 오른손 관수로 사내의 뒷머리를 격타했다. 쫙 펴진 손가락 네 개가 창이 되어서 머리를 뚫었다. 살을 찢고 머리뼈를 부쉈다.
상대방과 정면에서 싸우지 않고 뒤를 쳐 보기는 처음이다.
“컥!”
지극히 짧은 비명이 울렸다.
즉시, 옆에 있는 자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쒜에엑! 퍼억!
이번에는 대도가 피를 뿌렸다.
관수에 뒷머리를 가격당해서 죽은 자가 지녔던 병기다.
“뒤다!”
“기습이다!”
인간말짜들이 깜짝 놀라서 분분히 뛰쳐 일어났다.
아걸은 거침없이 대도를 휘둘렀다. 한 명, 두 명, 세 명…… 죽이고 또 죽인다.
대도는 반철도보다 가볍다. 반철도를 사용할 때보다는 무게감이 훨씬 떨어져서 마치 회초리를 휘두르는 느낌이다. 반면에 손잡이는 두 배나 길다. 또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달려서 여러 용도로 활용된다.
반철도보다는 확실히 손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말짜들을 공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아니, 차고 넘친다. 병기를 들지 않고 적수공권으로 싸워도 충분하다. 단지 죽여야 하는 자들이기에 빨리 죽일 생각으로 병기를 들었다.
“아악!”
“크아아악!”
인간말짜들이 펑펑 나가떨어졌다.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야구는 도첨삭리를 대하는 듯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부탁했다.
“저놈 뭐야?”
작두, 찰도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할망구가 방자를 데려온 모양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인데, 불쑥 나타났습니다.”
“방자? 확실히 몰랐던 놈이야?”
“네! 전혀 몰랐습니다.”
야구는 혀를 내밀어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번 공격으로 할망구를 비롯한 계집 열두 명을 싹 쓸어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괴상한 놈이 나타나서 수하들을 거침없이 베고 있다.
이미 일곱 겹 포위망은 흩어졌다.
여살수들이 매복자를 발견해 냈으니 함정 안으로 걸어 들어올 리 만무하다.
이번 공격은 완전 실패다.
여기서 불청객마저 막아 내지 못하면 상황이 훨씬 더 나빠진다. 수하들을 거의 잃고 야천 지원마저 끊어지면…… 옛날처럼 맨주먹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리에 작은 혹이 있어서 석두각이라고 불리는 자와 찰도가 방갓 무인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절대 귀찮을 수가 없다. 야구 무리를 거침없이 베어 내고 있는 자는 무공이 굉장하다. 너무 뛰어나서 쩍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닫히지 않는다.
“군더더기가 없지?”
“깔끔해. 감탄할 지경이야.”
두 사람의 말처럼 방갓 무인은 대도를 매우 쉽게 사용했다.
마치 목인(木人)을 세워 놓고 수련할 때처럼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을 베면서도 어떤 감정도 없이 태연하게 숨을 끊어 버렸다.
방갓 무인은 초식도 사용하지 않았다.
칼을 처음 잡는 자에게는 정교한 초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선 칼을 쓰는 용법부터 가르친다. 문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여덟 가지에서 열두 개 정도의 동작을 합쳐서 아주 간단한 도법을 배우게 한다.
직선으로 찌르고, 내리치고, 뒤돌아서 베는 등 어린아이도 배울 수 있는 기본 동작이다.
방갓 무인은 더는 간단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칼만 쓴다. 그런데도 인간말짜들은 빤히 보이는 칼을 피하지 못하고 펑펑 나가떨어진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매우 이상할 것이다.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저 칼은 피하지 못한다. 방갓 무인의 도초는 매우 간단한 것 같지만 매우 적절하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딱 유효타만 때린다.
무인의 움직임이 인간말짜보다 한 수 앞선다.
두 수, 세 수 앞서는 것도 아니다. 딱 한 수 앞선다. 하지만 그 한 수 앞선 것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칼을 만들어 낸다.
“저거 빠른 거야, 느린 거야?”
찰도가 말했다.
“칼은 평범한데, 한 놈을 베고 난 후에 다음 놈을 찾는 것은 무척 빨라. 거의 연타라고 해도 좋겠어.”
칼을 쓰는 모습은 환히 읽힌다. 한데 하나를 죽이고 다음 사내를 공격하기까지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마치 ‘이놈 죽이고 다음은 저놈’하고 생각해 두었던 것처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음 사내를 격살한다.
쓱쓱쓱쓱!
한순간 움직이면 서너 명이 쓰러진다.
매우 희한한 현상이다. 도초가 그렇게 빠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또 정말 빠르다.
“몸의 움직임은 정말 빨라.”
“이거 잘못하면 우리가 당하겠는데.”
찰도가 불안한 듯 말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나서는 건데. 야! 야구!”
“네!”
야구가 납작 엎드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가 당하면……’
찰도는 야구에게 뒷일을 부탁하려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다. 됐어.”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야구가 머리를 땅에 대고 조아렸다.
찰도는 석두각을 보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들이 방갓 무인에게 당할 때를 대비해서 한 마디 남겨 놓고 싶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도첨삭리 님은 절대 복수하지 말고 사내의 내력부터 뒤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야구란 인간. 그런 말을 전할 인간이 아니다.
만약 자신들이 당하면 오히려 자신들의 목을 떼어다가 바칠 것이다. 울분을 토하면서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고 도첨삭리 님을 부추길 게 뻔하다.
무조건 이기는 수밖에 없다.
이곳에 올 때는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괜히 야구란 인간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투정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목표로 한 할망구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인간과 싸우게 되었다. 그것도 찰도와 석두각이 연수까지 하는데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싸움, 전혀 하고 싶지 않다.
“가지.”
찰도가 칼을 뽑아 들고 방갓 무인에게 걸어갔다.
“저 사람 누구지?”
취화원 살수가 눈을 끔뻑이면서 말했다.
“어제 우리와 싸웠던 사람 같아. 방갓을 썼지만, 체형으로 봤을 때…… 확실해. 그런데 말 빠르네.”
찰도와 석두각이 놀랐듯이 취화원 살수도 방갓무인의 무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아걸을 알지 못했다.
아걸이 팔 장로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알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시종일관 냉랭해서 어떤 관계인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냐고 물어봐도 팔 장로께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방갓 무인은 취화원 여살수 중 한 명을 때려눕히기까지 했다.
그때 무공이 놀랍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실전을 보니 이건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정말 너무 깔끔해.”
“만약 우리가 저 칼을 상대한다면 어떨까? 감당할 수 있을까?”
개개인이 싸우면 절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열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을 때를 말한다.
“감당할 수 없지.”
묻는 즉시 답이 나왔다.
여살수 열두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도 저 칼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어제는 운이 좋았다.
팔 장로가 말리지 않았다면 즉시 공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말짜들이 당하듯이 형편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도법을 구사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저거 우리를 도와주는 건 맞지?”
“맞아. 까딱했으면 저 함정에 빠졌을 거야. 저 사람 덕분에 함정이 있는 걸 알았잖아.”
취화원 살수들은 인원이 많으면 만일에 대비해서 전조(前組)와 후조(後組)로 나눠서 움직인다. 지금처럼 네 명일 경우에는 두 명이 전조, 두 명이 후조다.
그러니 함정에 빠져도 네 명이 다 당하지는 않는다.
후조는 물러설 것이 뻔하지만…… 아마도 전조 두 명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다.
취화원 살수들은 화약이나 기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오직 활만 생각했다.
아걸이 저들의 대열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매복 형태가 드러났는데…… 무려 이백여 명이 동원되었고, 일곱 겹으로 둘러쳐진 대형 매복진이다.
그 속에 갇히면 정말로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다.
방갓 무인은 거의 쉰 명 가까이 쓰러뜨리고 있다.
“저건 양 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라고 할 수도 없어. 너무 상대가 안 돼. 뭐라고 말하지?”
“개미 죽이기.”
“뭐? 왜?”
“개미를 밟아 죽일 때 전혀 신경 쓰지 않잖아. 개미가 반격할 것을 생각하고 밟아 죽이는 사람이 있어? 개미를 죽이는데 무공 같은 게 필요해? 지금 저 모습은 딱 개미 죽이기야.”
“정말 그러네.”
취화원 살수들은 기가 질려서 싸움을 지켜봤다.
정말로 사람이 개미를 짓밟아 죽이듯이 아주 가볍게 죽이고 있다. 인간말짜들은 오늘 저승사자를 만난 셈이다.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아.”
살수 중 한 명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살수들은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는다. 사정을 담는 순간 자신이 죽는다. 그래서 가장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검을 쓴다. 그런 검만 골라서 사용한다.
당연히 사검에 관한 한 그녀들만큼 가장 깊이 파고든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방갓 무인의 칼은 너무 잔혹하다.
저 칼을 맞고는 살아날 방법이 없다.
그녀들은 엄폐물 뒤에 숨어서 눈만 끔뻑거렸다. 아무리 살펴봐도 저 싸움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