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第五十九章 하단(下端)(4)
슈우우웃!
아걸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경풍을 느꼈다.
‘왔군.’
싸움을 시작하기 전부터 예상했던 공격이다. 그러니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사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 파공음이 범상치 않지만 토족 전사들과 비교해도 한 수 쳐진다.
쒜에에엑!
병기를 느끼기 전에 살기가 먼저 감지된다.
병기가 다가오기 전에 살기가 먼저 전신을 훑는다. 죽이겠다는 마음은 온전히 검에 담겼다.
살병(殺兵), 살인을 많이 한 병기다.
이들의 무공은 활검문 십검 보다도 떨어진다. 하지만 병기에 살기를 담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십검보다 강할 수 있다. 살기는 사람을 악귀로 만든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예상이 딱딱 맞아떨어지는지. 생각의 폭을 좀 넓혀야지, 이 사람들아.’
아걸은 피식 웃으면서 날아오는 경풍을 향해 대도를 휘둘렀다.
쒜에에엑!
대도가 대도를 겨눴다.
찰도는 칼을 중도에서 멈춘 적이 없다. 칼을 쓰면 늘 신체 일부분을 잘라 냈다. 몸통을 치면 몸을 반으로 갈라냈다. 팔을 치면 팔을 떨궜고, 다리를 치면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별호가 작두다.
당연히 그가 쳐 내는 대도에는 막강한 진기가 스며 있다.
키는 작지만, 선천적으로 아주 강한 완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거기에 오직 강도(剛刀)만 수련했다.
쒜에에엑!
찰도의 대도가 벼락같이 떨어졌다. 온 힘으로, 전력으로 칼을 내리쳤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전혀 다른 칼을 본다.
갑자기 찰도의 칼이 십여 자루로 확 늘어났다.
십도납장술(十刀拉長術)!
일종의 사술이다. 사파인들 사이에서 절대삼도(絶對三刀)라고 불리는 세 가지 도법이 있다. 그중 하나다. 칼에 환각 분을 묻혀서 시야를 어지럽힌다.
말만 들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칼에 환각 분을 묻히기는 쉽지만, 오직 상대에게만 환각 작용을 일으키려면 고도의 수련이 필요하다. 딱 필요한 순간에만 환각을 일으키기는 더 어렵다.
사술도 급이 있는데, 십도납장술은 최고 난도를 지닌 최고급 사술이다.
‘별거를 다 쓰네.’
아걸을 칼을 축 늘어뜨렸다.
이런 자들을 베면서 몰안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으켜야 한다. 십도납장술을 뚫고 진짜 칼을 확인하려면 극도의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파파파팟! 쒝!
허상이 지워지고 실상이 나타났다.
예리하게 밝혀진 안광이 십도납장술을 뚫고 들어가서 진짜 칼을 찾아냈다.
스읏!
아걸은 손목을 움직였다. 그러자 대도의 방향이 살짝 비틀렸다.
몸의 중심을 묶어 두면 칼은 저절로 밖으로 퉁겨 나간다. 원심력이다. 중심을 강하게 묶어 둘수록 원심력도 상승한다. 팔은 단순한 줄이다. 오직 칼의 무게로 쳐 낸다.
자연도는 초식이 없다.
그저 칼이 아래에서 위로 쳐올려진다.
쒜에에엑!
아걸은 무념 상태에서 싸움의 결과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칼을 쳐 냈다.
흐흐흐!
상대가 웃는 듯이 보였다.
상대방이 흘리는 웃음 속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지금 흘린 웃음은 승리를 확신하는 웃음이다. 곧 죽을 상대를 향해서 터트리는 비아냥이다.
웃음의 근원지는 아걸의 등 뒤에 있다.
찰도의 대도가 뚝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아무도 없었는데, 귀신처럼 불쑥 솟구쳤다.
‘미류환종보(彌留幻從步).’
미류환종보 역시 십도납장술처럼 사파 절기 중 하나다.
굳이 순위를 정하자면 사파십대절기 중 하나이지만 상대는 수련도가 떨어진다. 미류환종보를 절정으로 수련하면 환상만 보일 정도로 빨라진다.
상대는 등 뒤에서 신형을 드러 냈다.
절정과는 거리가 멀다. 겨우 육성이나 칠성쯤에서 멈춘 것 같다. 십이 성으로 펼쳤다면 선공한 자의 웃음이 이해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
아걸은 뒤에 나타난 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쉿! 쉿!
대도와 대도가 부딪치려고 한다. 순간, 촌경이 일어났다.
아걸의 칼이 찰도와 부딪치지 않았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칼날을 훑으면서 쭉 내려갔다. 그리고 고동(古銅: 방패마기)을 탄력 있게 후려쳤다.
타악! 쩍!
손잡이 위에 달린 방패마기가 싹둑 잘렸다. 손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잘려 나갔다.
칼은 더 나아갔고, 찰도의 오른손 손가락 네 개를 싹둑 잘라내 버렸다.
“아악!”
찰도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걸은 찰도의 비명이 신호라도 되는 듯 즉시 뒤돌아섰다. 대도는 손을 떠나 석두각에게 향했다.
패애애앵!
회전하는 대도가 마치 풍차처럼 돌아간다.
삼십오대 문주의 회륜도는 절정 무인만을 상대한다. 그러니 석두각은 감사해야 한다.
까앙! 빡빡! 빠아아아! 퍼억!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회륜도는 석두각이 휘두르던 철퇴를 반으로 잘라 버렸다. 동시에 석두각의 머리도 둥실 떠올랐다.
아걸이 휘두르는 대도는 인간말짜가 사용하던 것이다. 결코, 명도가 아니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철도다. 그런 철도가 석두각의 사십 근 철퇴를 잘라 버리고 머리까지 떼어 냈다.
“웃!”
찰도는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손을 움켜쥔 채 사색이 되어 아걸을 쳐다봤다.
설마하니 자신들이 일초지적도 안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막연히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 당신 누구야!”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더 나눌 말도 없다는 듯 대도를 획 던져 버렸다.
패애앵! 팽!
공기가 잔뜩 압축됐다가 탁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사대문주의 탄궁도는 한 걸음 더 발전했다.
탄궁도에 촌경을 싣자, 예전의 탄궁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탄력이 일어났다.
마치 대도에 미류환종보를 섞은 것 같은 현상이다. 칼을 던지면 중간은 보이지 않는다. 허공을 날아오는 모습이 생략된다. 격중된 모습만 보인다.
“커어어억!”
칼에 가슴이 꿰뚫린 찰도는 뒤로 사오 장이나 나가떨어졌다.
“어! 저! 저! 저! 저!”
야구는 너무 깜짝 놀라서 말도 하지 못했다.
찰도와 석두각은 야구가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아니다.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야천을 주름잡는 고수다. 이는 모든 무인이 인증한다.
고수가 구름처럼 많은 야천에서도 찰도와 석두각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유명하다. 또 유명한 만큼 많은 적을 거꾸러트렸다.
저들은 야천 전체로 따져도 족히 천 명 안에 손꼽힌다.
천 명? 겨우 천 명 안에? 그 정도로 고수라고 할 수 있나?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꼽혀야 하는 거 아냐? 겨우 천 명 안에 들면서 무슨 고수라고.
모르는 소리다. 야천은 중원 십팔만 리 어둠을 지배한다.
거기서 천 명인 것이다. 수십억 중원인을 짓누르고 있는 천 명 중의 한 명이다.
솔직히 말하면 저들 두 명 중 한 명만 일전통을 들이쳐도 당장 박살이 난다. 야구가 화약과 불, 그리고 함정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당적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죽었다.
정체불명의 무인이 찰도와 석두각을, 그것도 두 명이 합공했는데도 너무 간단히 해치웠다.
야구는 입을 쩍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이 텅 비면서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스읏!
방갓 무인이 땅에 떨어진 대도를 주워 들었다.
찰도의 가슴에 꽂힌 대도는 버리는 것 같다. 굳이 아낄 이유도 없다. 땅에서 다른 자가 떨군 대도를 집어 들고 가볍게 허공에 휘둘러 무게를 살펴본다.
저 칼, 저 칼…… 이제 또 자신들을 향할 것이다.
“으……!”
찰도와 석두각의 죽음은 인간말짜들에게도 공포심을 안겨 주었다.
야구처럼 대다수 인간말짜는 죽은 두 사람이 누군지 안다. 모를 수 없다. 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거마(巨魔)들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두 사람을 철석같이 믿었다.
찰도와 석두각은 일전통을 장악하고 있는 할망구를 상대하기 위해서 초빙했다. 야구가 오체투지까지 하고, 월 사백 냥의 상납까지 약속하면서 모셔 왔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낯선 자에게 이렇게 간단히 죽다니.
“저, 저, 저, 저……!”
야구는 말도 하지 못하고 더듬거리기만 했다.
그도 무인이니 조금 전에 벌어진 싸움을 분석할 수 있다.
방갓 무인이 떨쳐 낸 무공은 무척 쉬워 보인다.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았다. ‘아!’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절초를 선보인 것도 아니다.
방갓 무인과 찰도는 서로 대도를 뻗어 냈다. 그 칼들이 부딪치지 않고 엇갈렸다. 일부러 격도(擊刀)를 피한 것은 아니고 아주 운 좋게 엇갈렸다.
여기서 방갓 무인의 운이 더 좋았다.
어떤 병기도 막아 주는 방패마기가 힘없이 잘렸다.
방갓 무인이 잘라 냈다기보다는 방패마기에 금이 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른 곳에서 싸우다가 금이 간 것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당한 것이다.
방패마기가 잘린 이상,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방갓 무인은 찰도가 무너진 즉시 뒤돌아섰다. 그제야 등 뒤에 나타난 석두각을 알아챈 듯했다. 그래서 칼도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런데 그 칼에, 거의 본능적으로 휘두른 칼에 철퇴가 잘리고 머리까지 내놓았다.
방갓 무인이 휘두른 칼이 천하에 다시 없는 보도(寶刀)였나? 쇠를 무처럼 잘라 내는 명도였나? 아니면 이번에도 철퇴에 금 같은 것이 생겼었나?
방갓 무인의 무공을 돌이켜 보면 전혀 대수롭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따위 칼질에 찰도와 석두각이 쓰러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확실히 죽었다.
이건 분명하다. 하나는 머리가 베였고, 하나는 대도가 가슴을 뚫고 등 뒤까지 삐져나왔다.
인간말짜들은 대략 백오십여 명 정도가 남았다. 그들 모두 활과 화약을 들고 있다. 언제든 불화살을 솔 준비가 갖춰져 있다. 그런데도 감히 대들지 못하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화약, 화약을 쓸까요?”
곁에 있던 수하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입 닥치고 있어!”
야구가 일갈을 내질렀다.
지금 방갓 무인은 코앞에 있다. 화약이 준비되어 있지만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화약에 불을 붙이는 동안, 새로 집어 든 칼이 몇 명이나 죽일까?
‘전멸!’
야구는 확신했다.
찰도와 석두각이 단칼에 떨어져 나갔다면 인간말짜들이 대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두 죽을 것이다. 화약을 쓰기도 전에, 도주할 틈도 없을 것이고.
털썩!
야구는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쇼!”
야구가 방갓 무인을 향해 진심이 섞인 듯한 음성으로 호소했다.
그러자 다른 인간말짜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그들 입에서도 야구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일전통을 장악하면 일전통 위에 있는 상위 문파가 어딘지 알 수 있게 된다. 일전통을 장악할 때만 싸우면 되고, 이후부터는 조용히 위를 살펴 나가면 된다.
가장 밑바닥 하단에부터 위로 치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계단씩 살펴 나가다 보면 결국은 허도기가 장악한 사마외도 세력을 전부 파악하게 된다.
과거, 성검문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일전통이 변형되면 안 된다. 지금처럼 전혀 다른 일전통이 되면 굳이 장악한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처럼 변형되면 온 사방이 적이다.
일전통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만 된다.
아걸 자신도 일전통 위에 있는 문파를 알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올라가야 한다.
아걸은 야구를 살려 주었다.
“이 사람들, 어디서 데려왔어?”
“야, 야천에서 모셔 왔습니다.”
야구가 순순히 대답했다.
아걸에게 기가 죽어서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야구는 말을 하면서도 눈을 데룩데룩 굴린다.
잘하면 아걸과 야천을 이간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강자가 싸우다 보면 어부지리로 일전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 것이다.
아걸이 물었다.
“야천은 넓잖아. 야천 어디?”
“팔룡 휘하에서 칼 잘 쓰기로 유명한 도첨삭리라는 분의 수족입니다. 저분은 찰도, 저분은 석두각……”
야구는 묻는 즉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