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第六十章 불문사도(不問死刀)(1)
“하! 이거…… 일이 이렇게 되면 인제 어떻게 되는 거야? 난 개똥 된 거야?”
야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방갓 무인은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물음에 눈 질끈 감고 아는 대로 말해 주었다.
거의 사실대로 다 말해 주었다.
사실, 야구는 야천에 대해서 많이 모른다. 세상이 아는 것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야구 같은 자가 흑화방을 알고, 흑후를 아는 것이 대단하다고 봐야 한다. 야구의 능력이 뛰어나서 흑후를 안다기보다는 흑후에게 선택받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흑후에 대해서도 모두 말했다.
방갓 무인은 다행스럽게도 목숨은 살려 주고 떠났다.
하지만 야구는 본능적으로 방갓 무인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방갓 무인은 계속 뒤를 따라붙을 것이다.
‘제길! 어쩐다? 우선 이놈들부터…….’
야구는 자신의 힘이 수하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수하를 아낀다. 매우 거칠게 부리는 듯하지만 치밀한 계산 하에 적절히 풀었다가 당기기를 거듭한다.
“너희는 숨어 있어. 사고들 치지 말고.”
“저 새끼, 잡을 겁니까?”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해! 저 새끼부터 잡는다. 저 새끼 잡고, 할망구 잡고, 계집들은 너희들 줄게. 그동안 얌전히 죽치고 있다가 튀어나오라고 하면 즉각 튀어나와.”
“네!”
살아남은 인간말짜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참 희한한 인간들이다.
그 정도로 당했으면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 텐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방갓 무인을 잡는다? 어림도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첨삭리를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적어도 이 땅에서 도첨삭리 이름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어둠 속에서만은.
지금은 다르다. 팔룡이 십리를 모두 이끌고 달려와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갓 무인은 허도기와 싸운 아걸의 친구다. 무공도 아걸 못지않다.
야천 본단에서 처리해야 할 자다.
그만한 자를 한낱 야구가 잡는다고 헛소리를 하는데도 믿는다.
허황한 감언이설에 속고 있다거나, 인간말짜들이 모자란 인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야구는 상수를 잡아 본 경험이 많다.
도저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상수에게도 겁 없이 달려든다.
실제로 야구는 아걸을 잡겠다고 달려들었다. 아걸이 혈도비자, 명부판관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격했다. 또, 야구의 공격은 제법 유효했다.
야구는 무공은 낮을지 몰라도, 수단은 매우 많다.
아니, 무공도 낮지 않다. 아걸이 판단하기로는 찰도나 석두각에 비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형편없게 보이는 것은 본인 스스로 허리를 낮추기 때문이다.
최대한 없는 척한다. 최대한 모자란 척한다. 하지만 공격을 시작하면 야비한 늑대가 된다.
아걸은 먼발치에서 야구를 쫓아갔다.
야구가 흑화방을 말해 주었지만, 흑화방의 위치는 그도 알지 못했다.
아걸도 흑화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세객은 야천보다도 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현재 취화원과 적랑대의 정보를 쓸 수 없으니 본인 스스로 흑화방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그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흑화방에 대한 소문은 오래전부터 번져 나왔지만, 정작 흑화방을 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흑화방은 한 곳에서 일 년 이상 머물지 않는다.
아무런 일이 없으면 일 년 정도는 머물고, 어떤 일을 맡아서 끝내면 그 즉시 떠난다.
필요하면 나타나고, 위험하다 싶으면 잠적한다.
‘흑화방이 실제로 존재했어? 그것참.’
아걸은 할배를 떠올렸다.
할배가 이 소식을 들으면 당장 호기심을 드러낼 것이다. 다른 문제는 진득하게 참는 분이지만, 이런 문제만큼은 어린애처럼 참지 못하고 달려든다.
야구는 흑후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수박 겉핥기다. 겉모습에서 한 치만 더 깊이 들어가면 새까만 절벽이다. 아무것도 모른다.
흑후는 어떤 마음에서 야구를 움직였을까? 야구 같은 자가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맞다. 그럴 수도 있다. 야구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세상도 무너트릴 자다.
사실, 오늘 팔 장로는 상당히 위험했다.
저벅! 저벅!
야구가 부지런히 걸어갔다.
아걸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야구를 뒤쫓았다.
야구가 자신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그만한 힘을 얻어야 할 것이다.
야천, 야구는 야천으로 가고 있다.
* * *
“음!”
팔 장로는 침음했다.
야구가 지독하게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순순히 물러날 위인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토록 지독한 줄은 몰랐다. 이건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아걸이 휘젓고 간 자리에서 상당량의 화약을 모았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화약을 다 모아 보니 일전통쯤은 단숨에 날려 버리고도 남을 만큼 많다.
야구는 오직 팔 장로와 십이살수를 박살 낼 생각으로 이것들을 마련했다.
“우리 아주 큰 일 날 뻔했네요.”
여살수가 말했다.
“이거 갔다가 은밀한 곳에 쌓아 놔. 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고.”
“우리도 화약을 쓰게요?”
“안 버려요?”
여살수 두 명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이게 돈이 얼만데 버려. 쌓아 놓으면 다 필요할 때가 있어. 아직은 일전통 여자 중에 저놈들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까, 숨길 때 특히 유의하고.”
“네.”
“그리고 시신도 수습해. 아무리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들개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건 사람 도리가 아니지. 묻은 후에는 지전도 몇 장 태워 주고.”
“네.”
‘상군!’
팔 장로는 아걸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아걸이 왜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지 알겠다. 이들을 공격하면서 방갓을 쓴 이유도 알았다. 특히, 그가 앉았던 자리에 남겨 놓은 은밀한 밀마는 정말 고맙다.
아걸은 십이살수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은밀하게 밀마를 남겨 놓았다.
오직 팔 장로에게만 전하는 소식이다.
옆으로 쓰러진 줄 네 개, 곧추세워진 검 한 자루! 그리고 팔(八) 자(字)!
줄과 검은 완승(完勝)을 뜻한다. 완벽하게 이겼다. 누가 ‘혹시?’라고 하며 여운을 남길 틈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 원하는 대로 얻은 승리다.
이 밀마가 팔 장로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팔 장로에게 일전통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이다.
아걸이 일전통을 왜 취하려고 했는지 이해했다. 일전통을 공격하기 전에 어쩌면 이 검이 허도기에게까지 쭉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야구만 몰아내고 일전통을 현 상황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여인들의 참상은 너무 지독했다.
일전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건…… 여인들은 얼기설기 나무로 얽어서 만든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아파서 일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어날 시간이 없었다. 손님이 많을 때는 한 시진에 스무 전도 벌었다.
여인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우리에 가둬 놓고 기르는 개돼지도 일전통 여인보다는 좋은 곳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중원에는 일전통 같은 곳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을 모두 구제할 수는 없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돈을 퍼 줘도 가난한 사람은 나온다.
팔 장로는 그런 생각에서 일전통을 건드린 것이 아니다. 딱 한 군데, 오직 일전통만 보고 건드렸다. 일전통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다. 여인들을 착취하는 놈들을 쓸어 내고, 매음을 중지시키겠다는 생각만 했다.
이런 곳은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일전통 여인들을 보살필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건드려서는 안 된다.
팔 장로는 그 후과(後果)를 받고 있다.
팔 장로가 아무리 애써도 일전통 여인들은 인간말짜들을 그리워한다. 그들과 내통해서 팔 장로를 몰아내려고 한다. 이미 이런 생활에 중독되어서 자신들이 비참한 줄도 모른다.
아걸은 팔 장로에게 이 싸움에서 완승하라고 격려했다.
‘상군. 노신의 뜻을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팔 장로는 아걸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눈인사를 보냈다.
아걸이 어떤 반향으로 움직일지 짐작된다.
몽설에게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 그것은 아걸의 뜻이 아니다. 하지만 안심하라는 말만은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안심하라고 하는 괴상한 말이 되겠지만, 몽설은 즉시 이해할 것이다.
“자, 빨리 움직이자. 경계 늦추지 말고. 저놈들, 또 올 거야. 어떻게 나오는지 이번에 봤지? 조심하지 않으면 매복에 걸린다는 점 명심하고!”
팔 장로가 활짝 웃으면서 명령했다.
* * *
저벅! 저벅! 저벅!
야구는 천천히 걸어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가 걸을 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뚜렷하게 들렸다. 돌로 된 바닥이어서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그가 들어선 골목은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이곳 주민들은 골목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양옆으로는 이 층 높이의 집들이 세워져 있다. 지붕 위에는 처마가 늘어져서 햇볕과 비를 차단한다.
누군가가 뒤따라온다면 발각될 수밖에 없다.
길이 좁은 데다가 위는 막혀서 지붕으로 쫓아오지도 못한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쫓아올 수는 있지만, 밑이 보이지 않는다. 또 바닥이 돌바닥이어서 소리가 크게 울린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쫓아온다는 것도 무리가 있다.
모든 집의 출입구가 골목으로 나 있다. 골목은 폐기된 곳이 아니다. 인근 주민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골목이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다.
‘후후! 당황스럽지?’
야구는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론 방갓 무인 정도 되면 발걸음 소리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따라붙는 사람은 없다. 가던 길을 멈추고 상당한 시간 동안 지켜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혹시 지붕 위로? 그래서 당연히 지붕 위도 주시했다.
없다. 아무도 없다. 그래도 야구는 안심하지 않았다.
방갓 무인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정도의 추격쯤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그래 따라와 봐. 네 놈이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보지.’
야구는 씩 웃었다.
이 길은 그가 추격자를 따돌릴 때 사용하곤 했다. 지금까지 딱 네 번 사용했는데, 네 번 모두 추격자를 찾아냈다. 세 놈은 즉시 죽였고, 한 놈은 자신보다 강한 놈이라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즉시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방갓 무인이 쫓아온다면 이번에도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 하지만 추격을 찾아냈다는 쾌감은 있다. 두 손은 빌고 있지만, 마음은 시원할 것이다.
야구는 골목길을 걷다가 석벽 옆에 있는 문을 밀치고 안으로 쏙 들어갔다.
“누구……?”
불청객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던 사람은 야구의 행색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만 있자.”
야구가 낮게 말했다.
“네.”
집주인은 이런 일이 종종 있는 듯 태연히 자신의 할 일을 했다.
맞다.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종종 겪는다. 이 골목은 야천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추격자를 확인하는 장소로.
이제 방갓 무인은 문을 열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 집이 야구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통로일 것이다. 그러니 급히 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면? 추격이 없거나, 아니면 여기서 추격을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다.
방갓 무인은 틀림없이 쫓아왔다. 그러니 선택을 바꿔야 한다. 추격을 포기하거나,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거나. 다른 선택권은 없다. 외통수다.
‘어디, 언제쯤 들어오나 볼까?“
야구는 문 옆에 태연히 앉아서 신발을 벗었다.
방갓 무인이 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냅다 신발을 던진 생각이다. 그런 장난이라도 쳐야지.
’어서 와.‘
야구는 문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