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第六十章 불문사도(不問死刀)(2)
후욱! 후욱! 훅!
가는 숨소리가 들린다.
나무 문 너머에서 흘린 숨소리가 문밖에까지 흘러나온다.
야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무공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일절 기척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충분히 자신할 만하다.
확실히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본다.
자신이 아는 것 외에 또 다른 예도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아예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꼭 무공처럼.
아걸은 문기둥에 기대서서 조용히 숨소리를 가늠했다.
후! 후!
야구의 기다림은 꽤 길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세 번쯤 뛰쳐나왔을 시간을 숨죽이며 꾹 눌러 참았다.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쉣!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걸은 문가 석벽에서 등을 뗐다. 아니, 날다람쥐처럼 석벽을 타고 올라갔다.
“뭐야? 이거 정말 내가 잘못 알았나? 안 쫓아올 리가 없는데. 왜 안 쫓아왔지?”
야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골목길을 걸었다.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봤다.
반드시 아걸이 쫓아올 것이라고 확신한 듯하다.
후우! 후우! 후! 후! 후우웁! 후우웁!
아걸은 야구의 숨소리와 자신의 숨소리를 맞췄다. 파장을 맞춰서 서로 숨이 일치하게 유도했다.
야구의 숨이 빨라지면 그도 빨라진다. 야구가 급하게 움직인다는 신호다.
야구의 숨이 급격하게 느려지면, 뒤를 돌아보겠다는 거다. 벌써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있을지도 모른다.
야구의 뒤를 쫓기는 매우 쉽다.
본인은 매우 치밀하게 주위를 살핀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자신의 숨을 숨기지 못했다.
- 나 이제 걸어간다.
- 지금 뒤돌아볼게.
이런 말들을 뚜렷하게 해 주면서 걷고 있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이런 추격보다 더 쉬운 추격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야구는 골목길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신법은 펼치지 못하지만, 무척 빠르게 질주한다. 앞을 막는 사람이 있으면 힘으로 밀쳐 내 버렸다. 상대가 쓰러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아걸은 유유히 쫓아갔다.
야구는 사람 많은 길을 뛰고 있고, 아걸은 사람 없는 지붕 위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야구가 스무 걸음을 달릴 때 그는 네다섯 걸음만 걸으면 되었다.
“나, 나, 나요! 나!”
야구가 매우 큰 대저택 앞에서 급히 말했다.
“네가 웬일이야?”
“벌써 끝난 거야?”
정문을 지키던 수문 무인이 활짝 웃으면서 야구를 반겼다.
그들은 야구를 알고 있다. 주고받는 말을 미루어 보면 찰도와 석두각이 일전통에 간 것도 아는 듯하다.
“두, 두, 두 분! 두 분 다 절명하셔서! 빨리 도첨삭리님을, 좀 빨리!”
야구가 급하게 말했다.
언뜻 봐서는 야천 무리가 사는 곳이 아니라 고관대작의 저택쯤으로 보이는데.
‘도첨삭리.’
이곳이 야천 팔룡 십리 중 한 명인 도첨삭리가 사는 곳이다.
대문은 곧 열렸다. 그리고 야구가 낚아채듯이 거대한 자에게 멱살을 잡혀서 질질 끌려 들어 갔다.
아걸은 더 쫓지 않았다.
드디어 야천에 선을 댈 수 있는 단서를 잡았다. 여기서부터 야천을 들쑤셔 나가면 된다.
이제 더는 야구가 필요 없다. 야구의 용도는 딱 여기까지다.
야구는 중요한 말을 해 줬다.
원래 아걸은 야구에게 명령을 내린 자, 흑후라는 자가 야천의 일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세객이라고 한다. 흑화방 방주라고 말한다.
흑화방은 야천이 아니다.
정도도 아니고 사도도 아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다. 어떤 때는 낮으로, 어떤 때는 밤으로 오간다.
아걸은 야구의 말을 들었을 때, 추격이 두 방향으로 갈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쪽은 야천을 계속 파헤쳐 들어간다.
옛날 성검문 사건에 사마외도가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다. 누구의 요청으로 어떤 자들이, 어떤 경로로 투입되었는지 파악해 볼 생각이다.
또 하나는 옛날 그 일에 흑화방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아걸은 성검문 사건은 전혀 캐 볼 생각이 없었다.
사부를 죽인 자, 가문을 멸한 자…… 허도기만 꺾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허도기 주변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
군부에도 세력이 있고, 황궁도 상당 부분 장악했다. 토족 같은 자들도 준비시켜 놨다. 그리고 이제는 사마무리까지 한통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검문 하나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소축십검 무공이 상당했는데 그 정도만으로는 도저히 안 됐던 것일까? 무슨 놈의 사람 야망이 이렇게 큰가.
‘천천히. 여기서부터 뒤져 나가면 돼.’
아걸은 야구가 들어간 주택을 자세히 살폈다.
붉은 노을이 진다. 해가 떨어진다.
저택 안으로 들어간 야구는 나오지 않았다.
저벅! 저벅!
아걸은 큰 방갓을 쓰고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누구냐!”
정문을 지키던 무인 두 명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물었다. 순간,
쒜에엑! 쒝!
아걸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칼이 번쩍 빛났다.
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가슴을 베고, 뒤돌면서 내리찍은 칼로 머리를 갈라 버렸다.
“악!”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이 짧은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즉사, 절명이다. 땅에 쓰러진 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지만, 이미 영혼은 육신을 떠나 버렸다.
아걸은 대문을 발로 뻥! 내찼다.
대문은 거센 굉음과 함께 와지끈 부서졌다.
발에 진기를 실어서 내리찍었으니 당연히 부서질 수밖에 없다.
아걸은 저택 안으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지 스르륵 사라졌다.
정문 앞에는 누가 언제 나타나서 살인했냐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 이거 뭐야!”
저택 안에서 사람들이 분분히 뛰쳐나왔다.
그들은 칼에 베여서 쓰러진 무인들을 봤고, 황급히 상태를 살폈다.
죽었다. 이미 늦었다.
“누구야!”
“아무도 못 봤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대문까지 이렇게 부숴 놨는데 아무도 못 봤다는 게 말이 돼!”
“정말로 저희는……”
“찾아! 찾아서 놈을 끌고 와!”
무인들이 분분히 뛰쳐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살인자는 분명히 근처에 있을 것이다. 아직 멀리 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감히 도첨삭리 님 저택을 공격하다니!
‘그놈이다!’
야구는 즉시 방갓 무인을 떠올렸다.
방갓 무인이 아니면 이런 식으로 살인을 할 리가 없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놈이 분명히 쫓아올 줄 알았지. 햐! 귀신 같은 놈이네. 그렇게 조심했는데, 어떻게 쫓아왔지? 그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분명히 방갓 무인이 뒤를 밟아 왔다.
이 근방에서는 도첨삭리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 그들도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칼을 쓰지는 않는다. 다짜고짜 수문 무인을 죽이다니.
흉수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무조건 수문 무인을 죽였다.
야구가 흉수를 방갓 무인이라고 단정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잔인한 칼!
가차 없는 칼! 문답무용(問答無用)!
주고받는 말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너를 치기로 했으니 너는 죽어야 한다는 식이다.
놈은 무조건 칼을 휘두른다.
방갓 무인의 칼을 맞는 자는 그가 왜 자신을 죽이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아무 이유 없이 다짜고짜 칼을 뽑고 죽인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하지만 그는 무조건 살인만 하는 게 아니다.
‘크크! 이 수에 말려들면 결국 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내야 해. 큭큭!’
야구는 웃었다.
방갓 무인은 결국 알아낼 것은 다 알아낸다.
일전통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인간말짜 오십 명을 베었다. 정말 무조건 죽였다.
그 후에 그는 알고 싶은 걸 다 알아냈다.
모두 기가 질려서 병기를 놓게 되면 상황 끝이다. 그때는 묻는 말에 순순히 답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못 왔어. 그럼 이 자리를 피해야지?’
야구는 눈을 뒤룩뒤룩 굴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있어서 움직이기가 마땅치 않다.
‘제길! 어쩐다.’
야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요즘은 어떻게 된 게 날마다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방갓 무인이 도첨삭리의 저택을 노렸다면 이곳도 곧 피바다가 될 것이다.
‘아냐. 이건 기회야. 이번 기회에 놈의 무공을 자세히 봐 두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야구는 곧 생각을 바꿨다.
그는 신시정(申時正:오후 4시)에 저택을 방문했지만 마침 도첨삭리가 출타 중이라서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두 시진 이상을 땅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기다리는 중이다.
저택에 있는 무인들은 야구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희롱하며 즐긴다. 어디서 벌레 같은 놈이 나타나서 엎드려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이런 대접은 늘 받아 왔던 것이라 어색하지 않다.
다만 도첨삭리를 만나면 그를 어떻게 자극할까 하는 게 고민이었다. 찰도와 석두각의 죽음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데, 평범하게 사실만 고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런데 방갓 무인이 오히려 제 발로 찾아왔다. 자신이 싸움을 붙이지 않아도 싸움은 벌써 시작되었다.
‘이놈들아. 너희는 오늘 다 죽었어. 도첨삭리 님이 빨리 와야지 돼. 그게 너희들이 살길이야.’
야귀는 엎드린 자세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처음 생각 같아서는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만 떠올렸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방갓 무인과 도첨삭리의 결투를 봐야겠다. 누가 이기든 이 싸움은 구경해야겠다.
도첨삭리가 이기면 아주 개운해진다.
그때는 다시 엎드려 빌면 된다. 할망구를 상대하게 무인을 내달라고 간청하는 수밖에 없다.
방갓 무인이 이기면 이건 고민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이기더라도 그의 무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방갓 무인은 수문 무인 두 명만 죽인 후, 사라졌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기습이 아니라 정면 승부를 걸어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짜고짜 들이닥쳐서 칼을 휘두르면 기습이 된다.
지금은 저택 주인도 없으므로 그야말로 빈집을 터는 격이 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찰도와 석두각보다도 못하니 모두 개죽음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방갓 무인은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다.
너희를 죽이러 왔으니 준비해라. 모두 준비했으면 그때 다시 온다.
‘병신들, 나도 빤히 보이는 수를 어떻게 못 보지? 지금 밖으로 쏘다닐 때가 아니라니까.’
야구는 곁눈질로 무인들을 흘겨보면서 한숨을 토해 냈다.
흉수를 찾아서 골목골목 뒤질 필요가 없다. 그래봤자 찾지도 못하고 괜히 기운만 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마당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공을 취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다.
야구는 눈을 데룩데룩 굴리다가…… 문득, 하늘에 시선이 꽂혔다.
그는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한번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하늘을 뚫어지게 봤다.
지붕 위, 하늘에 맞닿은 곳…… 그곳에 점 하나가 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상반신을 거의 덮어 버릴 듯한 큰 방갓은 분명히 확인했다.
역시 방갓 무인은 도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게 누워서 이쪽 상황을 살피고 있다.
“저, 저기!”
야구는 지나가는 무인에게 말을 걸었다.
방갓 무인이 있는 곳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땅에서 찾지 말고 지붕 위에서 찾으라고. 저기 있는 저놈이 보이지 않냐고.
“시끄러워! 바빠서 죽겠는데 말 걸고 지랄이야!”
지나가던 무인이 야구를 노려보면서 신경질을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