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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298화 (298/600)

#298화. 第六十章 불문사도(不問死刀)(3)

술시(戌時:오후 8시)가 되었다. 어둠이 짙게 깔렸다. 세상은 점점 깊은 밤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도첨삭리의 저택에는 밤이 찾아오지 않았다.

서너 걸음에 하나씩 관솔불이 밝혀졌다.

대저택이 잔치라도 벌이는 듯 대낮처럼 환했다.

무인들은 아직도 흉수를 찾지 못했다.

정문에서 죽은 무인의 시신은 치워졌지만 죽음이 준 여파는 여전히 저택을 조용히 흔들어 댔다.

“놈이 언제 올지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려!”

경계심을 높이는 고함이 수시로 울렸다.

굳이 누가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무인이 바싹 긴장했다. 저절로 경계심도 높아졌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와서 행패를 부린 자다. 그만큼 자신도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라고 하지 않았나.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온 자는 선하지 않다. 분명히 또 칼을 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흉수는 또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 둘만 죽였을까? 이거 사적인 원한 아냐? 나리를 노린 것이라면 그 둘만 죽이고 도주할 리 없잖아.”

“둘에게 원한이 있을 리는 없고, 내 생각은 이래. 둘 중 한 명에게 원한이 있는 거야. 그래서 죽이러 왔는데 옆에 또 한 명이 있는 거지.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어쩔 수 없이 둘을 죽였다?”

“그거 아니면 이해가 돼?”

“두 명을 일격에 죽일 정도면 상당한 고수인데, 그런 자가 왜 하필이면 여기서 사람을 죽여? 우리가 다 뛰쳐나가면 어쩌려고? 에이, 말이 안 돼.”

별별 말들이 다 속삭여졌다.

거의 확실시되는 추측 하나는 흉수가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두 명을 죽인 지 시간이 한참 지났다. 또 나타날 것 같았으면 벌써 나타났을 것이다. 그래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앞을 노려봤다.

쥐 새끼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경계를 선다.

두두두! 두두! 두두두두두!

멀리서 마차가 달려왔다.

출타했던 도첨삭리가 돌아오고 있다.

도첨삭리는 출타 시 언제나 마차를 이용한다. 팔룡의 부름을 받고 갈 때, 혹은 야천 대회합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늘 사두마차를 애용한다.

말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정반대로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말을 갈아 치운다.

그는 속도감을 즐긴다.

명마 네 마리가 작은 마차를 이끌기 때문에 속도가 나는 듯이 빠르다. 이 속도감에 푹 빠져서 별일이 없을 때는 무작정 마차를 타고 나가서 질주한다.

두두두두! 두두두!

마차가 달려와 정문 앞에 섰다.

휘이이익!

도첨삭리는 마차가 서기도 전에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애들이 죽었다고?”

“네.”

“찰도와 석두각도 죽었다고?”

“네.”

“그놈은?”

“마당에 있습니다.”

도첨삭리는 성큼성큼 걸어서 전정(前庭), 앞마당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야구가 납작 엎드린 채 엎어져 있었다.

그는 거의 네 시즌째, 반나절 가까이 땅에 이마를 붙인 채 엎드려 있었다.

다다다다!

도첨삭리는 야구를 보자마자 냅다 달려갔다. 그리고는 발을 들어서 옆구리를 거세게 걷어찼다.

퍼어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컥!”

옆구리를 격타당한 야구는 거의 사오 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거센 비명은 날아가는 도중에 튀어나왔다. 이번 일격은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에 야구 자신도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금방 일어나 다시 엎드렸다.

“꺼어억! 꺼억!”

야구는 옆구리를 움켜잡고 숨을 쉬지 못해서 쩔쩔맸다.

“찰도와 석두각이 죽었다고?”

“꺼억! 꺽!”

야구는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 대신에 비명만 흘러나왔다.

야구는 아직도 숨을 쉬지 못했다.

도첨삭리의 발길질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갈비뼈 서너 대가 부러진 것 같은 충격이 왔다. 아니다. 이런 고통이면…… 틀림없이 갈비뼈가 부러졌다.

‘빌어먹을 새끼!’

야구는 이를 악물면서 고통을 참았다.

“찰도와 석두각을 죽인 놈이 누구냐?”

도첨삭리가 싸늘하게 말했다.

“커! 커, 커!”

야구는 아직도 숨이 막혀서 대답하지 못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부를 찔러서 기절할 만큼 아팠다. 하지만 손을 들어서 멀리 있는 지붕을 가리켰다.

그것도 없는 힘까지 쥐어짜 내면서 간신히 한 행동이다.

“저, 저기. 저기……”

야구는 사력을 다해서 지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첨삭리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도첨삭리의 눈에서 파란 섬광이 튀어나왔다.

“저놈이냐?”

도첨삭리가 지붕 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네, 네.”

“네 놈이 데리고 온 거야?”

“아닙니다.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야구는 숨을 헐떡이면서 간신히 말했다.

“그러면 저놈이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제 뒤를. 뒤를 밟은 것 같습니다. 전 혹시 미행이 있을까 싶어서 미탐로(尾探路)까지 거쳐서 왔는데 뒤 밟히는 걸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야구가 쩔쩔매면서 말했다.

도첨삭리는 허리띠를 풀었다. 허리띠에는 평범한 대도가 매달려 있었다.

도첨삭리는 대도가 매달린 허리띠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칼 가져와라.”

“네!”

수하가 즉시 대답했다.

도첨삭리는 애용하는 칼이 따로 있다. 칼날이 톱니처럼 얽혀 있는 거치도(鋸齒刀)다. 살을 베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잘근잘근 썰어 낸다. 뼈까지 갈라낸다.

도첨삭리는 평소에는 거치도를 집에 놓고 다닌다.

밖에 출타할 때도 형식적으로 일반 대도를 차지만 사용한 적은 없다.

토평(土平)이라는 도읍은 칼을 집에 놓고 다닐 만큼 안전한 곳이다. 그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거치도를 사용할 일도 거의 없다.

“너 이 새끼!”

도첨삭리가 지붕 위를 보면서 이를 부득 갈았다.

아걸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사두마차가 거칠게 달려오는 것을 보고 도첨삭리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팔룡의 칼이라는 십리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아걸은 방갓을 쓰고 일어섰다. 하지만 도첨삭리를 향해서 걸어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쪽 지붕 위로 올라선 후, 태연히 기와를 밟으며 걸어갔다.

‘오늘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

사실, 도첨삭리는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

도첨삭리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그가 자신보다 아래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았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신법, 야구를 향해서 달려가는 모습, 발로 찬 일격, 요대를 풀어내는 모습까지…… 모든 움직임이 다 보였다. 환히 볼 수 있을 만큼 느렸다.

도첨삭리의 움직임은 멀리서 봤는데도 바로 눈앞에서 본 것처럼 뚜렷했다.

그가 최선을 다해서 칼을 떨친다고 해도 일홀도를 받아 내지 못한다. 일홀도는 고사하고 소축십검조차 상대하지 못한다. 은거 무인도 도첨삭리보다는 낫다.

도첨삭리와 싸운다는 것은 죽이겠다는 말인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은 죽이는 게 아니라 건드릴 때다.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건드려서 뱀을 놀라게 한다.

타초경사라는 말엔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있다.

하나는 풀을 조심해서 건드리라는 말이다. 무심코 풀을 건드리면 안에 숨어 있던 뱀이 놀라서 달려들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뜻이다. 괜히 찝쩍거렸다가 봉변을 당하는 수가 있다.

반대의 해석도 있다. 일부러 풀을 건드려서 잠자고 있던 뱀을 놀라게 한다. 뱀이 깜짝 놀라서 뛰쳐나오도록 만든다. 그런 후에 뱀을 잡는다.

아걸은 후자다.

스으읏!

아걸은 지붕과 두 발과 그리고 정신을 하나로 합쳤다. 지붕 위를 걷는 움직임에 모든 중신을 집중한다. 도신일체가 걷는 움직임에서 나타난다.

이런 방식은 그 어떤 신법보다도 빠르다.

스으으읏!

아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저……”

“저, 저, 저.!”

도첨삭리와 야구는 동시에 소리를 흘렸다.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할 말이 없다. 이건 또 뭐 하는 수작인가? 잔뜩 싸울 듯이 노려보더니 갑자기 도망가? 왜 도망가지? 이게 무슨 뜻이지?

한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첨삭리가 야구를 홱 돌아봤다.

“저도, 저도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야구가 납작 엎드리면서 말했다.

“저놈 뭐 하는 놈이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전통에 가서 매복을 마쳤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제 수하들을 거침없이 벴습니다. 그때 찰도 님과 석두각 님이 나섰는데……”

“이 새끼 빨리 말 안 해!”

“두 분 모두 일 초에.”

“뭐라고!”

도첨삭리가 와락 다가와서 발을 들어 야구의 머리를 밟았다.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몇 초?”

“일 초. 일 초였습니다.”

야구는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말했다.

칼과 칼이 부딪칠 때, 방갓 무인의 칼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방패마기를 잘라 내고 손가락을 떼어 냈다. 그 즉시 뒤돌아 쳐서 석두각을 죽인 다음, 칼을 내던져서 철도를 죽였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설명도 간단했다. 복잡하게 말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이게 전부였으니까.

도첨삭리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만한 무공을 지닌 놈이 왜 도주해?”

“글쎄, 저도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의아하기는 야구도 마찬가지다.

방갓 무인이 내려와서 도첨삭리의 집을 피로 물들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간뇌! 간뇌를 찾아와! 이 새끼는 딱 필요할 때 어디 가고 없는 거야! 이 새끼는 뇌옥에 처넣어!”

“나, 나리! 저는……”

“한마디만 더 하면 너 죽인다.”

“네, 네, 네.”

야구가 낮게 엎드렸다.

따악! 따악! 따악!

순라군이 딱딱이를 치면서 순라를 돌았다.

밤이 깊었다. 순라군이 도첨삭리의 저택 부근을 지나면 자정이 되었다는 소리다.

“이거 뒤숭숭해서.”

“근데 그놈은 도대체 뭐지? 왜 나타나서 그냥 갔을까?”

정문을 지키는 수문 무인 두 명이 말을 주고받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앞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시간이 매우 늦었다. 순라군 딱딱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정확히 자정이다.

이 늦은 밤에 밤길을 걸어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스읏!

드디어 한 사람이 관솔불 불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에 대도를 차고 큰 방갓을 썼다.

“저놈! 저놈은!”

“그놈 맞지?”

수문 무인들이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칼을 뽑아 들었다.

“맞아. 그놈. 그놈이다!”

수문 무인은 너무 놀라서 말을 더듬거리다가 끝내는 고함을 빽 질렀다.

순간, 멀리 떨어져 있던 방갓 무인이 어느새 코앞으로 쑥 다가왔다.

무인이 움직이자 십여 장이라는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신법을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움직임은 신법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방갓 무인은 두 사람 앞에서 머물지 않았다.

스으으으읏!

그는 두 무인을 지나쳐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커어억!”

“아악!”

뒤늦게 밤을 쭉 찢어 버리는 비명이 터지고 두 명이 쓰러졌다.

아걸은 두 명을 죽인 후, 다시 지붕 위로 몸을 솟구쳤다. 그리고 또 유유히 사라졌다.

계속 놀라게 한다. 계속 풀을 건드린다.

도첨삭리는 야천의 말자(末子)다. 야구 같은 자에게는 하늘처럼 보일지 몰라도 일홀문 눈에는 매우 약한 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를 죽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일이 팔룡의 귀에 들어가야 한다. 아니, 야천 전체를 떨쳐 올려야 한다. 야천의 눈길이 모두 이곳으로 쏟아질 때까지 계속 풀을 건드린다.

“이제는 나도 좀 자 볼까.”

아걸은 피곤함을 느꼈다.

자신은 잠자러 들어가지만, 도첨삭리는 이 밤을 꼬박 지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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