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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02화 (302/600)

#302화. 第六十一章 사루(砂樓)(2)

‘흐흐! 역시!’

야구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길목마다 야천 무인들이 보인다. 힘깨나 쓰는 놈들이 민초인 척하면서 숨어 있다.

야천이 모든 골목을 통제하고 있다.

상점에도 알게 모르게 무인들이 자리 잡았다. 한눈에 야천 놈이라고 느껴지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놈도 있다.

야구는 야천 무인들을 척 보면 안다.

야천 무인들한테서는, 뭐라고 할까? 어둠의 냄새가 확 풍긴다. 정상적인 무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칼 냄새보다는 싸움꾼 냄새가 더 강하게 풍긴다.

‘킥킥! 많이들 모였군.’

야구는 속으로 기뻐했다.

방갓 무인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받고 있지만, 이놈을 따라다니면 제 명에 못 죽는다. 확실하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이놈을 떨어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중 가장 뒤탈 없는 방법이 바로 팔룡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팔룡이 이놈을 죽여 주는 거다.

한데 무궁으로는 이놈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주변에 야천 무인들이 쫙 깔려 있지만, 왠지 저들 전체를 합쳐도 이 방갓 쓴 놈 한 놈을 당해 낼 수 없을 것 같다.

‘미치겠네. 이놈을 잡을 놈이 그렇게 없나.’

“다 왔습니다. 여기가 낭아만리가 있는 송포(松浦)입니다.”

야구가 말했다.

낭아만리는 포구를 관리한다. 포구에 관계된 모든 이권에 입김을 불어 넣고 있다.

“뭐해? 가지 않고.”

“지금 바로…… 말입니까?”

“가.”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갚죠.”

야구가 앞장섰다.

방갓 무인의 수법은 늘 한결같다.

네 번을 보아 왔지만 네 번 모두 같은 방식으로 공격한다. 주변 외곽부터 정리한다.

곧바로 낭아만리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다. 일단 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그다음에 막을 테면 막아 보라 하고, 서너 명쯤 더 건드려 주고, 그런 후에야 본격적으로 치고 들어가서 모든 사람을 다 물리친다.

낭아만리는 제일 마지막에 친다.

찝쩍찝쩍 건드리는 거 같지만 사실은 피 말리는 수법이다.

살인은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 끝나는 법이 없다. 셋째 날 혹은 넷째 날까지도 이어진다.

그동안 낭아만리를 방갓 무인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쓴다. 당연하지 않나. 수하가 죽었는데, 침입자를 찾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된다. 즉시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못 찾는다. 야구도 방갓 무인이 자신의 곁을 떠나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서 무인들을 죽이고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도저히 찾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게 애간장을 녹인 후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모두 쳐 죽이기 시작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제는 낭아만리도 방갓 무인의 수법을 알고 있을 테니 다소 여유 있게 기다릴 것이다. 충분히 준비하고, 방갓 무인이 나타날 때까지.

‘하지만 준비하면 뭐 해. 무공에서 확! 터져 버리는데. 대웅도리까지 당한 마당에. 나, 이거야 원…… 에이!’

야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 낭아만리 혼자만 있다면 볼 것도 없이 당한다. 십리 중 한두 명쯤은 더 와 있어야 간신히 칼이나마 맞대 볼 수 있다. 그것도 합공을 해야만 이놈을 죽인다.

그렇지 않으면 함정을 파야 하는데 이놈은 또 함정을 알아내는 데는 귀신이다.

이놈은 화약 냄새를 개처럼 잘 맡는다. 매복도 칼처럼 찾아낸다.

‘에이! 안돼, 안돼. 뭐로도 안 돼.’

야구는 고개를 내둘렀다.

“저깁니다.”

야구가 낭아만리의 거처를 가리켰다.

저벅! 저벅!

방갓 무인은 마치 제집으로 가는 듯 거침없이 걸어갔다.

“아휴! 또 애꿎은 놈들 벼락 맞겠네.”

야구는 정문을 지키고 있는 무인 두 명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오늘,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놈이 바로 낭아만리의 저택을 지키고 있는 무인 두 명이다. 하고많은 날, 하고많은 시간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오늘 순번인가.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은 방갓 무인이 걸어오자 즉시 반응했다.

차앙! 차앙!

저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았다.

무인들은 이미 방갓 무인이 온다는 정보를 얻어 들었다.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오히려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은 방갓 무인을 보자마자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놈이다!”

“살인자가 왔다!”

무인들은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칼은 뽑았지만,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다.

조금만 버티면 동료들이 달려올 것이다.

“그래. 조금만 더 버텨라.”

야구는 낭아만리의 수하들을 응원했다.

그런데…… 방갓 무인이 칼 든 무인들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다.

“아!”

아구는 탄식했다.

방갓 무인의 수법을 몇 번 보아서인지, 이제는 이 정도 칼은 환히 보인다.

칼이 뽑혔다. 대도가 앞에 있는 무인의 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그리고 쳐들린 칼을 다시 내리쳤다. 옆에 있는 무인의 옆머리를 가격했다.

쳐들리고 내리치고……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살인이다.

방갓 무인은 일 검에 두 명을 죽였다.

휘릭! 촤악!

방갓 무인은 칼을 허공에 휘둘러서 피를 털어 냈다.

철컥!

야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칼이 칼집에 꽂히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야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방갓 무인을 살폈다. 걸어가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팟!

방갓 무인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쳇! 또 놓쳤어. 저런 신법을 쓰는데 무슨 수로 잡아. 저게 도대체 무슨 신법이지? 어떻게 몇 번을 봐도 못 잡냐? 아주 눈앞에서 팍 사라져 버리네. 아휴! 저건 못 잡아.”

야구는 혀를 내둘렀다.

야구는 급히 약속 장소로 들어왔다.

방갓 무인은 야구를 놓아주지 않는다. 안내견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서 자잘한 심부름까지 몽땅 시킨다. 밥을 짓게 하고, 노지에 잠잘 곳을 마련하는 것까지 모두 야구 몫이다.

‘제길!’

야구는 툴툴거리면서도 약속 장소인 야산으로 왔다.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주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방갓 무인의 손아귀를 벗어날 자신이 없다. 어디로 도주하든 쫓아올 것 같다.

관군에게 쫓겨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방갓 무인이 주는 압박감은 차원이 다르다.

야구는 급히 땔감을 주워 와서 불을 지폈다. 그리고 작은 솥을 올려놓고 물을 끓였다.

저벅! 저벅!

방금 무인 두 명의 목숨을 빼앗은 방갓 무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걸어왔다.

“여기 물 끓여 놨습니다.”

야구가 공손하게 말했다.

휘익!

방갓 무인은 대도를 그에게 던졌다.

야구는 즉시 공손하게 날아오는 대도를 받았다. 칼을 씻으라는 뜻이다.

야구는 당연하다는 듯 한쪽 구석에 앉아서 대도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일단 칼에 묻은 피를 물로 닦아 낸다. 칼날에 묻은 피는 허공에 흩뿌리면 거의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간혹 손잡이에 튀는 핏방울이 있다.

정성을 들여서 깨끗이 씻어 냈다.

그런 후, 숫돌을 꺼내서 날을 간다.

슥슥슥슥!

칼날은 거의 매일 갈기 때문에 오래 갈 필요가 없다. 뼈를 가를 정도로 심하게 베는 날이 아니면 굳이 날을 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방갓 무인이 갈으라 하니까 꼼짝없이 갈았다.

칼을 간 후에는 기름칠을 한다. 칼날이 반질반질해져서 동경처럼 얼굴이 비쳐야 한다.

칼도 좋은 칼이면 모르겠다. 도첨삭리를 벨 때, 그놈의 수하가 쓰던 칼을 주워서 사용했다. 아무 대장간에서나 농기구처럼 파는 싸디싼 대도다.

그런 대도를 천하에 다시 없는 보물처럼 닦아야 한다.

‘내가 내 병기를 이렇게 닦았다면 벌써 대장군이 됐겠다.’

야구는 칼을 칼집에 넣어서 공손히 바쳤다.

“다 닦았습죠.”

그동안 방갓 무인은 그가 끓여 놓은 물로 손을 씻었다. 어떤 때는 발도 씻었다. 그리고 방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두 팔을 베고 편안하게 드러누웠다.

정말 더럽게 편해 보인다.

방갓 무인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칼을 옆에 놓으면 된다.

‘이걸 그냥 확 목을 쳐 버려!’

칼은 야구가 들고 있다. 방갓 무인은 맨손이다. 더욱이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다. 몰래 침입해서 잠들어 있는 자를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쉬워 보인다.

꿀꺽!

야구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칼을 곱게 내려놓았다.

당장 목을 쳐 버릴까 하는 생각이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지만, 항상 포기하게 된다. 어떤 칼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이자를 당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디서 이런 귀신이 나타나서는. 하! 이런 놈이 아걸의 친구라면…… 내가 미쳤지. 아걸 친구라면 적어도 허도기 급은 된다는 건데. 어휴! 천하제일검하고 맞서는 칼이라. 아! 안 되는데. 이런 칼은 못 당해.’

“언제쯤 될까?”

방갓 무인이 누운 채 물었다.

저녁 식사를 말하는 것이다.

“곧, 곧 마련하겠습죠. 잠시만 기다리시면…….”

야구는 칼을 들고 산으로 뛰어들었다. 저녁거리를 준비하려면 빨리 토끼라도 한 마리 잡아야 한다.

‘천하의 야구가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게.’

야구는 아무도 듣지 않는 소리를 연신 중얼거렸다.

칼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번에 방갓 무인이 선택한 방식은 일도필살(一刀必殺)이다.

한 사람을 향해서 칼을 두 번 쓰지 않는다. 병기와 병기의 부딪침도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병기는 흘려버리고, 그 사이로 칼질을 한 번 한다.

쒝! 아악!

움직임 한 번에 한 명이 죽는다.

퍽! 쿵!

서른 번째인지 마흔 번째인지 모를 죽음이 일어났다.

낭아만리 저택 주변은 이미 핏물이 흥건하다. 죽은 자가 흘린 피가 작은 내를 이루어 흐른다.

방갓 무인이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상대방이 워낙 많아서다.

보통 십리는 백 명에서 이백 명 정도 수하를 거느린다. 직접 명령을 내리는 직속 수하다.

사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수다. 야구 처지에서 보면 칼을 십 년 이상 수련한 고수들이다.

포구를 장악했다는 말은 포구 주변 백 리를 거머쥐었다는 소리다.

사방 백 리를 칼로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정예 무인 백여 명이 움직인다.

방갓 무인에게 걸리면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지지만, 이들을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이 두 명만 나서도 시끄러운 문제가 당장 해결된다.

이들이 약한 게 아니라 방갓 무인이 비정상이다.

한데 이번에는 야졸들이 거의 삼사백 명이나 몰려 있다. 낭아만리의 대저택이 비좁아 보일 정도로,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무인들이 들어차 있다.

단신으로 이 많은 사람 앞에 뛰어든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삶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 아니면 결코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통 무인들도 상대해 봤다.

소림사 승려, 무당파, 청성파의 도인들…… 소위 정의를 내세우는 검들을 많이 상대했다.

처음에는 무공에 밀리지만 결국은 밀어낸다.

어떤 무인도 떼로 달려드는 데는 당하지 못한다. 더욱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면 그야말로 지옥도에 빠진 듯한 기분까지 들게 된다.

한두 달까지 싸운 자도 있지만 결국은 손을 털고 물러났다.

야천은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왔다.

그런데…… 방갓 무인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방갓 무인이 뛰어들자 이건 마치 닭장 속에 뛰어든 호랑이 같다. 앞발질 한 번에 닭 한 마리씩 죽어 나간다.

쒝! 퍼어어억!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매섭게 달려들던 무인이 창과 함께 두 동강이 났다.

저들은 방갓 무인이 휘두르는 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방갓 무인이 휘두르는 칼은 상식과는 동떨어진 방향에서 흘러든다.

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으면 당연히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칼이어야 한다.

한데, 느닷없이 밑에서 불쑥 치솟는다.

검은 칼을 막기 위해 위로 쳐들렸는데, 텅 빈 아래쪽에서 칼이 들어온다.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칼을 보지 못하면 치는 족족 당하는 수밖에 없다.

“으으으으!”

무인들이 주춤거리면서 물러섰다.

방갓 무인이 한 걸음 다가서면 저들은 주춤거리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무인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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