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第六十一章 사루(砂樓)(3)
저벅! 저벅!
방갓 무인은 남의 집을 마치 제집처럼 편안하게 걸어 들어갔다.
“웬 놈이냐?”
낭아봉을 든 자가 말했다.
“…….”
아걸은 낭아만리가 한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차분히 주위를 쓸어 봤다.
낭아만리 옆에 장검 두 자루를 들고 있는 자가 두 눈을 번뜩인다. 쌍검운리(雙劍澐螭)라는 자다.
또 그 옆에는 단구창(單勾槍)을 든 자도 있었다. 단구혈리(單勾血螭)라는 자로 성격이 매우 포악하다. 단구창은 날이 삼각형 형태라서 꿰뚫는 데 매우 용이하다. 단구혈리는 단구창으로 사람을 십여 번 이상 찔러 죽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십리 중 세 명이 있다. 낭아만리를 돕기 위해서 두 명이나 달려왔다. 낭아만리 다음이 자신들 차례이기 때문에 힘을 합치자는 의도가 강했을 것이다.
역시 이들은 자신이 어디로 움직일지 짐작했다.
야구가 추측하기 쉽게 일직선으로 행로를 그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낭아만리가 낭아봉을 슬슬 휘두르며 말했다.
“우리도 이름께나 있는데, 이름 몇 자 알려 줄 수 있잖아? 네놈 칼을 보니 무명도 아닌 것 같은데. 너, 누구냐?”
“겁먹었군.”
“뭐야!”
“네놈 수하를 무차별적으로 죽였는데 한가하게 이름이나 묻고. 당장 때려죽이겠다고 달려들어야지.”
“후후후! 우릴 아예 땅강아지 취급하네. 이 새끼, 말이 맞아. 말 섞을 이유 없지.”
휘잉! 휘잉!
단구혈리가 창을 휘두르며 움직였다.
스읏!
아걸이 칼을 들어 올렸다.
순간, 십리 세 명이 바짝 긴장한 채 병기를 곽 움켜잡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싸움에 능숙한 자일수록 상대방을 더 잘 읽는다.
무심한 모습, 담담히 들어 올리는 칼, 살기는커녕 칼 특유의 날카로움까지 완전히 감춰 버린 평범함.
들어 올린 것은 대도인데 마치 막대기를 들고 있는 느낌이다.
상대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일도필살의 도법을 구사하는 살인마인데도 어쩐지 자신만은 베지 않고 지나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느낌이야말로 매우 위험하다.
살기를 안으로 감출 수도 하는 능력, 이미 칼을 다룰 수 있을 만큼 다뤄 봤다는 뜻이다.
“제길! 이거 오늘 잘못하면 저승길 걷겠는데.”
휘릭! 휘리릭!
쌍검운리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자! 죽여 보자고!”
낭아만리가 낭아봉을 휘두르면서 서서히 움직였다.
그들은 은근히 움직여서 삼 방을 점했다. 아걸을 중심에 놓고 삼재진(三才陣)을 형성했다.
아걸은 세 사람이 자신을 포위할 때까지 묵묵히 칼을 든 채 서 있기만 했다. 저들이 살짝살짝 움직여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데도 전혀 보지 못한 표정이다.
스스슷! 스스스슷!
세 명이 천천히 움직였다. 움직이면서 아걸의 허점을 찾는다.
단구혈리가 제일 먼저 공격해 왔다. 단구창은 장병이다. 멀리 떨어져서 툭 견제해 볼 수 있다. 단병처럼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만약 아걸이 단구창에 반응하면 즉시 낭아만리와 쌍검운리가 달려들 것이다.
딱!
거센소리가 울렸다.
아걸이 대도를 들어서 단구창 창날을 후려쳤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다. 장난처럼…… 창을 찔러 오니까 귀찮게 굴지 말라고 옆으로 밀어낸 것과 같다.
그런데 단구혈리가 휘청이면서 옆으로 밀려났다. 대도가 창날을 미는 힘에 떠밀려서 신형까지 휘청거렸다.
진력 대 진력, 아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단구혈리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며 단구창을 고쳐 잡았다.
순간, 아걸은 땅바닥에 주저앉듯이 허리를 낮게 숙였다. 아니, 실제로 궁둥이를 붙이지 않은 채로 앉았다. 아니, 앉는 모습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릎을 굽혔다 싶은 순간, 두 발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낭아만리를 향해 쏘아 갔다.
두 다리를 쪼그리고 앉는 모습은 다리에 탄력을 얻기 위해서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는 신법은 남만 무공에서 볼 수 있다. 다리의 탄력을 이용해서 서너 배는 빠르게 공격할 수 있다. 또 예측을 불허한 공격이어서 막기도 어렵다.
추력탄보(推力彈步)라고 부른다.
타앙!
아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손에 든 대도가 낭아만리의 가슴을 가리킨다.
“어딜!”
낭아만리가 낭아봉을 후려쳐서 대도를 막았다.
아걸은 대도와 낭아봉이 부딪치는 탄력을 빌어서 다시 한번 신형을 솟구쳤다.
그 순간, 아걸은 묘한 도법을 펼쳤다.
마치 궁수가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활을 잡아당기듯이…… 대도 도첨을 왼손으로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오른손으로 앞으로 쭉 뻗고, 도첨을 활처럼 굽힌다.
타악!
도첨을 놓자, 대도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튀어 나갔다.
퍼억!
칼날은 정확하게 낭아만리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낭아만리가 급히 낭아봉을 휘둘렀지만, 속도 면에서 너무 차이가 크게 난다. 이미 칼이 얼굴에 꽂힌 후에야 낭아봉이 대도를 막겠다고 쳐들렸다.
이건 말이 안 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아걸이 사용한 도법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고수의 싸움에서 이런 도법을 전개한다는 것이 너무 대담하다. 이런 수법은 까마득한 하수와 싸울 때나 사용하는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이런 도법이 있나?
이런 칼에 낭아만리가 당했다는 건 더 믿기 어렵다. 하지만 이미 당했다.
낭아만리의 얼굴은 꽈리 터지듯이 확 터졌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얼굴이 반이나 갈린 걸 보면 즉사다.
휘릭! 촤악!
아걸은 칼에 은 피를 털어 냈다.
“으!”
단구혈리가 신음을 흘리면서 꿈틀거렸다.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 어떻게든 공격한다. 한데 어디를 공격하지? 공격할 곳이 없다. 창을 꽂을 곳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공격으로 허점을 유도해 내야 한다. 하지만 공격하면 낭아만리처럼 당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창만 꿈쩍거렸다.
스읏!
아걸이 단구혈리를 향해 칼을 겨눴다.
“너희 둘은 아직 순서가 아니다. 가도 좋아.”
“뭐라고!”
“가는 건 막지 않는다. 공격하겠다면 그것도 막지 않는다. 물러서든 공격하든 뭐든 해도 좋다. 하지만 셋을 셀 때까지 이 자리에 계속 있으면 내가 벤다.”
“뭐야!”
단구혈리와 쌍검운리가 분노를 터트렸다. 하지만 즉시 달려들지는 못했다.
“하나.”
아걸이 수를 헤아렸다.
단구혈리와 쌍검운리는 이미 승부가 기울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방갓 무인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다. 낭아만리를 단숨에 잠재운 솜씨를 봤지 않나. 저 칼이 자신들을 향하면 절초를 펼치기 전에 절명하고 만다.
“둘!”
“이익!”
“셋!”
“다음에 보자!”
단구혈리가 먼저 신형을 쏟아 냈다. 쌍검운리도 아걸을 노려본 후, 황급히 사라졌다.
방갓 무인이 주변을 쓸어 봤다.
그는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무인들을 쳐다본다. 마치 덤빌 사람은 덤벼, 하고 말하는 거 같다.
단구혈리와 쌍검운리를 쫓아왔던 무인들은 이미 떠났다.
낭아만리 수하들은 잠시 주춤하는 듯하더니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주택을 빠져나갔다.
저택은 텅 비었다.
저벅! 저벅!
아걸은 뒤돌아서서 걸었다.
차근차근 공포심을 심는다. 누구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만든다.
* * *
아걸은 약속장소인 야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휘적휘적 걷다가 길옆에 있는 허름한 다루로 들어섰다.
“어서 옵쇼!”
점소이가 얼굴도 보기 전에 소리부터 질렀다.
“어떤 차로 드릴 갑쇼?”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주문을 받았다.
점소이는 방갓 쓴 사내가 조금 전에 낭아만리를 벤 바로 그 사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민초는 야천 싸움에 관심 두지 않는다. 괜히 싸움 구경을 한다고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워낙 거칠게 싸우는 족속들이라서 아예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또 이놈들이 싸우면 늘 죽는 자가 나온다. 그러면 죽은 쪽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누가 죽였는지 불어라, 네놈은 왜 가만히 있었냐 등등 온갖 시비를 다 붙인다.
야천 놈들 싸움은 정말 안 보는 게 낫다.
“무슨 차가 좋을까?”
“보이차 좋은 게 있습니다만.”
보이차는 비싸다. 싼 것도 있지만 점소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면 비싼 것이다. 아닌가? 아걸의 행색이 차 한 잔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초라해 보였기 때문인가?
“그거 줘.”
“저, 두 냥인뎁쇼.”
“다루는 원래 후불 아냐?”
“저흰 선불인뎁쇼.”
아걸은 묵묵히 두 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점순이가 낚아채듯 두 냥을 집어 들고 쪼르르 사라졌다.
“전부 다 베실 겁니까?”
등 뒤에 앉아 있던 사내가 불쑥 말했다.
“내가 야차도 아니고 다 벨 리 있습니까. 적당히 하고 말아야죠.”
“우리 식구는 전부 다 빠졌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베셔도 된다는 말씀드립니다.”
톡톡!
아걸은 알았다는 뜻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팔룡은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가 아닙니다. 십리를 다 죽이고, 팔룡이 데리고 온 자를 싹 베셔도 팔룡의 힘은 삼 할밖에 삭감되지 않습니다.”
“삼 할? 이건 너무한데. 뿌리가 깊군요.”
“야천은 이미 중원 통일을 이룬 지 오래됐습니다. 비록 아홉 조각으로 나뉘어 있지만, 결속력은 대단합니다. 어쩌면 허도기보다 더 힘든 것을 건드신 건지도 모릅니다.”
톡톡!
아걸은 탁자를 두들겼다.
“다음은 비표비리(飛鏢秘螭)를 공격하실 것으로 예상하는데.”
톡톡!
“비표비리를 공격하시려면 화암산(華庵山)으로 가셔야 합니다. 요즘 화암산에서 금이 나오기 시작해서, 비표비리가 아예 산에 눌러앉아 있습니다.”
톡톡!
아걸은 말없이 탁자만 두들겼다.
자신의 행동이 정확하게 읽히고 있다. 읽으라고 일부러 단순하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못 읽는 게 바보일 것이다.
“낭아만리의 죽음은 이미 팔룡에게 보고되었고, 어떤 연락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연락 내용을 파악하는 대로 바로 자세한 내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괜히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겁화에서 몸이나 잘 살리세요.”
“알겠습니다.”
등진 사내가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헤헤!”
점소이는 가져온 주전자를 탁자에 있는 화로에 올렸다.
“제가 온도를 맞춰 드릴까요?”
“됐다. 내가 맞춰서 따라 먹지.”
“팔팔 끓이면…….”
“알았다.”
“네.”
점소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럼 저도 이만.”
등 뒤 사내가 조용히 일어섰다.
“적랑대는 얼마 남지 않은 거로 아는데. 여기까지 스며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의외로 상당히 넓게 박혀 있군요.”
“저희는 살수가 아닙니다. 단지 숨어서 소식만 전할 뿐.”
“……낭아만리를 베는 것을 봤습니다. 존경한다고 말씀 올리고, 제 말이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몸조심하십시오.”
“아니, 우습다니요. 고맙습니다. 몸조심하겠습니다.”
아걸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적랑대원이 재차 인사하고 사라졌다.
솔직히 아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천 무리 속에도 적랑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은 매우 컸다.
방금 떠난 사내 말대로 살수는 아니고 고정 간자 정도 되는 자들이다.
아걸이 놀란 것은 저들이 아직도 적랑대를 등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믿고 따르면서 소식을 건네준다. 발각되면 처참하게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아걸이 적랑대 뿌리가 깊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