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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04화 (304/600)

#304화. 第六十一章 사루(砂樓)(4)

“내가 그랬잖아. 저놈은 칼 귀신이라니까. 대적하면 죽어. 이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하! 참 이거. 왜 날 내버려 두지 않는 거야! 신경질 나게.”

야구가 물을 팔팔 끓이다가 화를 벌컥 냈다.

야구는 야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방갓 무인이 제아무리 강해도. 결국은 야천에 나가떨어진다.

야천하고는 적당히 힘겨룸하다가 멈춰야지 끝까지 가려고 하면 누구든 잡아 먹히고 만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무작정 베는 것일까? 보아하니 원하는 것도 없고, 야천에 원수진 자도 없는 것 같은데. 아니, 원수가 있다고 해도 방갓 무인 정도 되면 바로 찾아갈 일이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죽이고 있나.

아걸하고 관계가 있나? 그 부분도 생각해 봤는데, 없다. 아걸이 죽은 것은 흑후하고 관계가 있지, 야천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데 방갓 무인은 아걸의 죽음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무조건 십리만 두들겨 패고 있다.

“뭐? 너희 둘은 아직 순서가 아니다. 가도 좋다! 에라이!”

야구가 아걸의 말투를 흉내 냈다. 그러나 곧 벌떡 일어나며 공손해졌다.

“오셨습니까!”

저벅! 저벅!

방갓 무인이 걸어왔다.

야구는 인사를 하자마자 즉시 팔팔 끓는 물에 찬물을 넣어 미지근하게 맞췄다.

“손 씻을 물…….”

방갓 무인은 야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도를 던졌다.

야구가 얼른 대도를 받았다.

“다음은?”

방갓 무인이 손을 씻으면서 물었다.

“비표비리. 비표비리입니다! 비표비리는 기루를 다섯 개나 가지고 있는데…….”

“화암산으로 간다.”

“네? 비표비리는 화암산에 있지 않고…….”

“…….”

아걸은 대답 없이 손만 씻었다.

야구는 금광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일반적인 정보는 꿰고 있지만, 고급 정보는 전혀 모른다.

“알겠습니다. 화암산으로 안내합죠.”

방갓 무인이 말을 하지 않자, 야구가 즉시 고쳐서 말했다.

“팔룡하고 만나야겠어. 주선 좀 해.”

“네? 제, 제가요?”

“여기 누구 또 있어?”

“없죠. 그런데 제가 무슨 수로……? 나리께서 절 너무 높게 보신 모양인데, 전 십리한테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놈인데, 하물며 팔룡님을 어떻게……?”

스읏!

방갓 무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아! 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야구가 급히 대답했다.

야구는 깊게 고민했다.

방갓 무인이 팔룡을 만나겠다는 말은 이제 죽이는 일은 그만하고 팔룡과 뭔가 타협을 하겠다는 소리다.

이제 양쪽이 만나서 적당히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으면서 정리 수순으로 들어간다. 팔룡이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아마도 협상 우선권은 방갓 무인이 쥘 것이다.

계속 이대로 죽인다면?

야천이 전력을 모아서 공격한다면?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긴다. 의견이 서로 팽팽하면 협상이 결렬될 것이고, 어느 한쪽이 불리하다 싶으면 고개를 숙일 것이다.

협상이 마무리되면…… 그동안 십리에게 길을 인도했던 자신은?

-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야구 저놈만은 죽여야겠다.

- 후후! 뜻대로.

아마도 최종적으로 이런 말이 오가지 않을까?

방갓 무인은 얻을 것 다 얻었을 텐데, 뭐가 아쉽다고 한낱 일전통 대가리를 살려 줄까. 야구라는 인간을 살리겠다고 협상을 깨는 일은 꿈에서도 기대하지 못한다.

“제길! 그럼 내 모가지 떨어지는 거야? 기껏 심부름 다 시켜 먹고 이제는 죽여? 에라이, 후레자식아. 이거 완전 상놈이네. 내가 네놈 뜻대로…….”

야구는 도주를 생각했다. 절대로 팔룡과 방갓 무인을 만나게 하면 안 된다. 그날이 바로 자신이 죽는 날이다. 팔룡 손에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나중에 방갓 무인에게 잡혀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도주하고 본다.

그런데…… 야구의 눈이 퉁방울만 하게 커졌다.

나무 위에 방갓 무인이 있다.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귀기 어린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방갓 무인이 물었다.

“누구에게 욕하는 거야?”

“네? 아니, 나리는 모르십니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나서.”

“저녁은?”

“다, 다 됐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쇼!”

‘안돼. 이놈은 못 벗어나. 차라리 팔룡에게 애걸복걸하는 게 훨씬 나아. 그쪽에서 방법을 찾아야 해.’

야구는 빠르게 포기했다.

야구는 팔룡을 만나지 못한다. 팔룡을 만날 만한 급이 아니다. 팔룡을 만나려면 다른 자를 통해야 한다.

“야구라고 합니다.”

“뭐야!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정말로 긴한 말씀을 드릴 게 있어서. 이놈 목숨 내놓고 왔으니까 단구혈리 님을 뵙게 해 주십쇼!”

야구는 정문에서부터 납작 엎드렸다.

단구혈리는 방갓 무인을 만나봤으니 누구보다도 그자의 무공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비표비리를 거쳐서 자신에게 오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팔룡이 비표비리를 돕기 위해서 무인을 파견하겠지만 과연 그들이 비표비리를 지킬 수 있을까?

단구혈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단구혈리만의 생각이 아니라 방갓 무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다른 생각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싸움은 다른 측면에서 시작해야 한다.

함정으로 유인하거나, 독살하거나 아니면 인질로 협박하는 아주 더러운 싸움을 해야 한다. 방갓 무인이 마음껏 활개를 치게끔 해 놓고 서로 격돌하면 이쪽이 깨진다.

문제는 방갓 무인이 누구라는 것조차 모른다는 거다.

누군지 알아야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족은 있는지, 인질이 될 만한 사람은 누군지 판단할 거 아닌가. 그가 누군지 알아야 정중하게 초대해서 음식에 독이라도 탈 거 아닌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다.

특히 그는 죽이기 위해서 집으로 찾아온다. 산이나 들에서 싸운다면 함정을 파고 매복도 시키고 화약도 쓰겠는데, 집으로 찾아오니 할 것이 없다.

인해전술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어떻게 하나? 십리에게는 방갓 무인이 죽음의 칼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단구혈리는 야구를 냉대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방갓 무인이 누군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방갓 쓴 놈. 그놈이 심부름하라고 해서.”

야구는 도첨삭리에게 했듯이 마당에 납작 엎드렸다. 완전한 오체투지다.

“야구. 네가 언제부터 심부름이나 하고 다녔지?”

단구혈리가 냉랭하게 말했다.

“사실 저도 피해자입니다.”

“읊어봐.”

“저희 일전통도 놈 때문에 박살 났습니다. 제 수하 이백이 놈한테 죽었고요. 도첨삭리 님께서 일전통을 찾으라고 보내 주신 찰도 님과 석두각 님도 놈에게 죽었습니다. 그런 놈이 저를 붙잡고 협박하는데, 제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야구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말했다. 하지만 단구혈리의 말투는 냉랭하기만 했다.

“개새끼, 그렇다고 그놈을 우리에게 안내해? 네놈 배때기에는 칼이 안 들어갈 것 같지?”

“오해! 오해가!”

야구는 더욱 깊이 몸을 숙였다. 그야말로 황송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듯이 바싹 엎드렸다. 그리고 일부러 덜덜 떨리는 음성을 내어서 말했다.

“아, 저도 개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하고 칼을 물었습죠. 그런데 그놈이…… 아, 글쌔 제 수하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데 어떡합니까?”

“큭! 큭큭!”

단구혈리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야!”

“네?”

“이 새끼야. 거짓말을 하려면 좀 적당히 꾸며서라도 하든가, 영 성의가 없네? 네놈이 언제 수하들 목숨을 챙겼다고 지랄이야? 그런 말을 하면 낯 간지럽지 않아?”

야구는 단구혈리의 눈치를 살짝 봤다. 그리고 이쯤에서 용건을 꺼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방갓 그 새끼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단구혈리가 중간에서 야구의 말을 끊었다.

“개새끼, 심부름이고 뭐고 우선 멱부터 따 보고. 용건은 조금 있다가 말해. 들어줄 테니까.”

단구혈리가 단구창을 야구의 목에 들이밀었다.

야구는 인상을 찡그렸다.

단구혈리는 방갓 무인이 어떤 심부름을 시켰는지 매우 궁금해한다. 그러면서도 당장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용건을 듣기 전에 자신의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 자를 생각이다.

돌아가는 눈치가 딱 그렇다.

‘내가 멀쩡한 사지육신을 네놈 따위에게 줄 순 없지.’

야구는 납작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허리도 쭉 폈다. 그리고 목을 휘돌려 목뼈를 풀었다.

“아이 씨팔, 못 해 먹겠네.”

느닷없이 불쑥 내뱉은 말이다.

“뭐?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야, 너 죽으려고 환장했지?”

“너나 나나 씨팔! 그놈이 오면 다 돼질 놈들이 뭐 성질내고 지랄이야.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아이씨,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누군 이 짓거리 하고 싶어서 해!”

야구가 웃통을 확 벗었다.

야구 몸에는 화약이 수북이 매달려 있었다.

단구혈리의 눈살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여유를 무너트리지는 않았다.

솔직히 화약에 불을 댕기는 것보다 단구혈리 창질이 훨씬 빠르다.

몸에 두른 화약은 의지 표명용이지 협박이나 자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아구는 모른 척하고 계속 소리 질렀다.

“불 댕겨? 해봐? 씨팔!”

야구가 단구혈리를 노려봤다.

“내가 여기 온 거, 내 뜻대로 온 거 같아? 내가 좋아서 온 거 같아? 그 새끼가 시키니까 온 거 아냐! 칼은 그놈이 썼는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

“이 새끼가 죽으려고 아주 환장했구나.”

“그래! 환장했다! 어쩔래!”

“킥킥! 이거 미친놈이네. 어디, 용건이나 들어보자. 그 새끼가 뭐라면서 심부름을 보내든?”

“팔룡 님을 만나게 해 달란다.”

야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말했다.

‘휴우! 됐어.’

야구는 한숨 놓았다. 용건을 말하면 산다. 단구혈리도 방갓 무인과 싸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야구가 계속 말했다.

“나보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 한번 마련해.’ 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마련해. 내가 팔룡 님을 만날 수나 있고? 어떻게 할래? 자리를 마련할래, 아니면 나 여기서 확 뒈져.”

“그놈이 어르신을 뵙자고 하는 목적이 뭐냐?”

“그걸 낸들 어떻게 알아. 씨. 난 뭐 알고 하는 줄 알아? 내가 뭘 알고 하면 억울하지나 않아. 이 새끼가 죽인다고 칼 들이대고, 저 새끼가 죽인다고 칼 들이대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야구가 약간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물론 거짓이다. 이쯤에서 이렇게 약간 울먹이는 게 효과가 아주 좋다. 울먹인다는 것은 나약하다는 표시인데, 그러면 어떤가.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

“어르신께 한번 말씀드려 보지.”

단구혈리가 말했다.

‘됐어!’

방갓 무인이 시킨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면 이제는 팔룡에게 목숨을 비빌 언덕을 마련해야 한다.

야구가 즉시 말했다.

“그 새끼 이제 곧 비표비리 님한테 갈 거요.”

단구혈리에 대한 말투도 슬쩍 올리기 시작했다.

“짐작하고 있어.”

“그런데 그놈이 묘한 말을 합디다. 화암산으로 가자고 하던데요? 화암산에 뭐가 있다고.”

“뭐라고!”

단구혈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화암산으로 가자고 했어?”

“네. 분명히 화암산으로 가자고.”

“뭐라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해?”

“비표비리 님을 찾는다고 하면서 화암산으로 가자는 말을 하더라니까요. 정확히 말해면 ‘다음 누구야?’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데 있는 십리 님을 찾는 건데, 그분이 비표비리 님이시다 그러니까 바로 화암산으로 가자고…….”

“음!”

단구혈리가 침음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단구혈리가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데, 어떤 생각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단구혈리가 단구창을 거두며 말했다.

“화암산에 도착하면 네가 먼저 올라와라. 네 목을 떼어서 보내든지 답을 주든지. 네 목숨이 어떤지 그때 걸어 보자고. 큭큭! 그놈 잘 모시고 와.”

단구혈리가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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