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第六十一章 사루(砂樓)(5)
화암산은 매우 험한 산이다. 골이 깊고 산이 높아서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솔직히 이런 깊은 산에서 금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비표비리는 화암산에 있다.
단구혈리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확인해 주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저, 소식은 누구에게 들으시는지?”
“…….”
“이쪽 바닥은 제가 환히 꿰고 있는데, 저보다 더 정통하신 거 같아서 말씀입니다요.”
방갓 무인은 대답이 없다.
기분이 좋을 때는 이런 말 저런 말 많이 하는데, 대체로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혹시 이쪽에 뭐 숨겨진 부하 같은 거라도 있으신지? 아니, 뭐 저도 목숨 걸고 앞잡이 노릇을 하는데, 너무 숨기시는 것은 상도의가 아닌 것 같아서.”
“…….”
“그러니까 뭐냐, 저기, 부리시는 것은 마음껏 부리시되 알려 줄 건 좀 알려 줘 가면서…….”
“야구.”
“네? 네, 네, 말씀 주십시오.”
“네가 책임져야 할 여자들 말이야. 일전통. 그 여자들, 절반이 병들어서 죽는다던데.”
“뭐, 꼭 그렇지만도 않습죠. 맞아 죽는 년들도 많고…….”
“그럴 때 어떤 마음이야?”
“네?”
“그냥 돈벌이 하나 없어졌다, 이런 생각인가?”
꿀꺽!
야구는 마른 침을 삼켰다.
벌써 방갓 무인과 함께 이십여 일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방갓 무인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쯤은 알고도 남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쁜 짓을 싫어한다.
일전통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을 다 싫어한다.
방갓 무인은 자신 같은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경멸한다. 당장 검을 뽑아서 목을 칠 자가 있다면 바로 자신 같은 자들이다.
그런 자를 왜 앞잡이로 내세워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싫어하는 건 사실이다.
방갓 무인이 말했다.
“그 여자들 불쌍한 여자들 아닌가? 악밖에 남지 않은 것 같던데. 같이 어려움을 겪는 처지에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나 같으면 좀 잘해 줄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왜 안 들겠습니까요. 저희도 저희 애들 관리는 철저히 하고 있습죠.”
“관리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해야지.”
야구는 말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일전통에 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이 전부 다 자신의 여자는 아니다.
자신은 일전통이라는 구역 전체를 다스리는 것이지, 여자 개개인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 여자들이 어떻게 살고 죽느냐 하는 문제는 서방 몫이다.
방갓 무인이 걸어가며 말했다.
“앞으로 그런 거 하지 마. 그래야 오래 살아.”
“네, 네, 네.”
‘씨팔! 내가 배운 게 있냐, 가진 게 있냐! 네놈처럼 주먹질을 잘하냐! 그런 거 아니면 난 뭘 먹고 사냐!’
야구는 속에서 욕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죄책감이 들어서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요. 절대!”
두 사람은 화음산에 도착했다.
팔룡의 영역은 성(省) 하나에 해당할 만큼 넓다. 호북성(湖北省) 전체가 팔룡의 영역이다.
하지만 성을 열 개로 쪼개면 구역이 작아진다. 이쪽 구역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데 사나흘이면 충분하다. 어린애를 데리고 걸어가도 오륙일이면 넉넉히 건너간다.
“저, 제가 먼저 올라가서 만나 보고 오겠습니다.”
야구가 씩씩하게 말했다.
단구혈리가 야구 혼자 올라오라고 했다.
팔룡이 전신(傳信)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약속을 잡을 수 없다는 거다.
방갓 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이곳에서 야구가 다녀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인 것 같다.
“그럼 횅하니 다녀오겠습니다요!”
야구는 즉시 신법을 펼쳐서 화암산을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응?’
산을 오르던 야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산 곳곳에 무인들이 숨어 있다. 단순히 경계를 서는 게 아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싸우기 위해서 모인 자들이다.
‘이거 몇 명이 온 거야? 이거.’
야구는 기가 질렸다.
화암산에 모인 사람들은 팔룡 휘하 무인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다. 틀림없다. 이들은 하나같이 강하다. 이들 개개인이 도첨삭리의 수하였던 찰도나 석두참 정도는 된다.
‘하나같이 강한데? 정말 싸움 잘하는 놈들만 고르고 골랐어.’
그런 자들이 얼추 잡아서 거의 삼사백 명이 넘는다. 자세히 헤아리면 오백 명도 넘을 것 같다.
‘이건 한 판 싸우자고 온 거야.’
화암산을 올라가는 야구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자신도 죽고 죽이는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다. 일을 맡으면 어떻게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흑후가 아걸을 죽이라고 그를 찾아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화약과 불화살, 또는 간계로 사람을 죽이는 데는 자신만 한 사람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화암산에 매복한 무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 짐작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던질 수 있는 병기란 병기는 죄다 가지고 왔다.
독질려(毒疾藜), 벽력탄(霹靂彈), 비검(飛劍), 비황석(飛蝗石), 자모환(子母丸), 철련화(鐵蓮花)…… 연노(連弩)나 철궁(鐵弓)은 당연히 있고, 불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 독분(毒粉)도 사용할 생각인 것 같다.
물론 화약도 준비되어 있다.
곳곳에 돌무더기를 쌓아 놨는데, 그 뒤에 매복자가 불과 화약을 준비한 채 대기한다.
이거는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오는 자는 무조건 죽이겠다는 뜻이다.
‘이거 뭐가 어떻게 되는 거냐? 정말 싸우려는 거야?’
야구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목을 만졌다.
팔룡이 싸울 생각으로 왔다면 자신의 목숨은 떨어진다. 올라가자마자 당장 목을 베어서 방갓 무인에게 던져 버릴 것이다.
“아이씨! 돌아가고 싶네.”
야구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간신히 떼어 놓았다.
야구는 팔룡을 처음 보았다.
그는 머리가 새하얀 백발이다. 나이는 쉰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 머리는 정말 하얗다.
몸은 다소 뚱뚱한 편이다. 몸집이 있고, 얼굴도 살이 올라서 두툼하다.
키는 보통인데 몸이 많이 나서인지 다소 작아 보인다.
그가 팔룡이라는 것은 자신을 쥐락펴락하는 단구혈리가 그의 뒤에 공손히 시립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단구혈리는 야구가 나타났는데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쌍검운리도 시립해 있고, 허리에 비표를 잔뜩 꽂아놓은 자도 보인다. 물어보나 마나 비표비리일 것이다.
그들 외에 두 명이 더 있다.
살아남은 십리 중 다섯 명이 모두 이곳에 와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백발 중년인 뒤에 서 있다.
야구는 중년인에게 다가가서 그의 발밑에 털썩 엎드렸다.
“야, 야구라고 하옵니다. 조, 존안, 존안을 처음 뵙겠습니다.”
야구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자 이름이 뭐지?”
팔룡이 불쑥 물었다.
“소인도 아직…….”
“날 만나겠다고?”
“네.”
잘 나가다가…… 팔룡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평생 두 번 보기 힘든 광경이다. 잘 봐 둬라.”
“넷!”
오리가 일제히 대답했다.
순간, 야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싸, 싸우면 안 됩니다요. 싸, 싸우면은 모, 모두 죽습니다요.”
정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야구는 말을 하고 난 후에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고, 즉시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말은 입 밖으로 쏟아져 나간 후이다.
팔룡이 말했다.
“나와 만나겠다고 그랬다지?”
“네.”
“좋아. 만나지. 약속 장소는 여기다.”
“가,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할까? 야구는 이번에도 무심결에 감사하다는 말을 쏟아 내고 말았다.
“약속 시각은 그자가 올라오는 시간으로 하고.”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여기서 기다리겠다는 거다. 그자가 올라올 때까지. 자, 기다려 볼까?”
그러자 오리 외에 또 다른 자, 몸집이 단단한 사내가 의자를 가져와서 팔룡 뒤에 놓았다.
팔룡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앞을 바라봤다.
‘뭐야? 진짜 싸움을 하려는 거네? 방갓 무인보고 뚫고 올라오라는 거야!’
야구는 눈을 끔뻑거렸다.
‘아! 이거 어쩌냐. 내 목이 오늘 떨어지긴 떨어질 거 같은데. 누구에게 떨어질까? 휴우!’
야구는 한숨만 내쉬었다.
스릉!
아걸은 대도를 뽑았다.
야구가 날을 잘 갈아 놨다. 거의 이십여 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날을 간 덕에 대도 날이 매우 얇아져 있다. 강도하고 부딪히면 날이 단번에 나갈 것이다. 하지만 베는 데는 더없이 좋다. 면도날처럼 싹싹 그어 낼 것이다.
‘자, 시작해 볼까.’
아걸은 산정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야구는 내려오지 않는다. 화암산에 깔린 살기가 싸움을 말하고 있다.
수많은 병기가 화암산 전체에 퍼져 있다.
곳곳에서 나무가 타는 냄새도 난다. 불을 이용한 공격이 쉽게 예상된다.
쒜에에엑! 쒜엑! 쒜에엑!
몇 걸음 떼어 놓지도 않았는데 벌써 화살이 날아들었다.
아걸은 나무 뒤로 몸을 피했다.
타탁! 타타탁!
아걸이 숨은 나무 주위로 화살이 거침없이 날아와 틀어박혔다. 어떤 화살은 소나무를 관통하기도 했다. 철궁으로 쏜 철전이다. 맞으면 사람도 관통당한다.
‘후우!’
아걸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
칼로 화살을 쳐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쉽게 피할 방법이 있는데 일부러 힘을 쓸 필요가 없다. 오늘은 상당히 많이 움직여야 하니, 체력을 최대한 아낀다.
스으읏!
아걸이 다른 나무로 움직였다.
적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은폐물과 엄폐물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이동한다.
쒜에에엑! 파아앗! 꽈아앙! 꽈앙!
벌써 화약을 매단 화살이 날아왔다. 주변에서 화약이 거친 폭음을 울리면서 터졌다.
아걸은 몸을 낮게 숙여서 화약 폭발이 일으킨 파편을 피했다.
날아온 것은 화약만이 아니다. 코를 탁 쏘는 매캐한 냄새가 진한 화약 냄새에 섞여서 함께 풍겨 왔다.
‘독!’
아걸은 산 위를 주시했다. 몰안이 일어나며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게 해 주었다.
산 위에서 아래로 강한 바람이 분다. 독가루를 모아 놓고 매우 큰 부채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독풍(毒風)이다. 독분이 아래로 쓸려 온다.
아걸은 즉시 호흡을 멈추고 독풍이 흘러드는 방향을 살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바람은 자연 바람처럼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지 못한다.
스으읏!
그는 옆으로, 옆으로, 옆으로 이동했다.
쒝! 파아악! 으아악! 커억!
칼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비명이 어우러진다.
창창창 하는 소리, 깡 하는 소리,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는다.
“이 칼이었습니다.”
단구혈리가 말했다.
“음!”
팔룡이 눈쌀을 찌푸리더니 옆에 서 있던 단단한 몸을 가진 사내에게 말했다.
“철구(鐵鉤), 내가 가 봐.”
철구라고 불린 사내는 명을 받자마자 대답도 없이 뛰어 내려갔다.
철구는 쇠갈고리를 상당히 잘 쓴다. 오 장 밖에서 쇠갈고리를 날리기 때문에 방어하기도 힘들다. 더욱이 쇠갈고리를 엮은 줄에는 독 가시가 붙어 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쒜에엑! 쒜에엑! 쒜에엑!
철구가 쇠갈고리를 연신 휘둘렀다. 두 번, 세 번, 네 번…… 하지만 그는 뒤로 물러났다.
방갓 무인이 쇠갈고리를 피하면서 앞으로 달려 나왔다.
다섯 번째 쇠갈고리가 허공에 휘둘러졌을 때, 방갓 무인은 오 장 거리를 좁히고 코앞으로 다가섰다.
쒜엑!
칼이 허공을 그었다.
철구는 우뚝 멈춰 섰다. 더는 쇠갈고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로 쿵! 쓰러졌다. 서 있던 모습 그대로.
“엇!”
팔룡은 그제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