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第六十二章 암화(暗花)(1)
철구는 팔룡의 오른팔이다.
십리가 문파의 분타주 격이라면, 철구는 바로 옆에 두고 온갖 내밀한 일을 믿고 맡기는 최측근이다.
철구는 어떤 일도 맡길 수 있을 만큼 무공이 뛰어나다.
철구가 옆에 있으면 목숨 하나가 더 보장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칼이다.
그래서 팔룡은 어떤 자리든 철구를 데려간다.
그런 철구의 쇠갈고리가 먹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삼 장 안으로 파고든 사람이 없었는데, 방갓 무인은 단숨에 오장 거리를 뚫어 버렸다. 그리고 베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음!”
팔룡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려던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한다. 방갓 무인이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어. 누가 저놈을 말려. 저놈한테 덤비면 다 죽는다니까.’
야구는 속으로 고소해했다.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듣지 않더니. 말만 잘 들었어도 이렇게까지 당하지는 않았지.
“저놈이 원하는 게 뭐냐?”
야구에게 물은 말이다. 팔룡은 물음을 던지면서도 눈은 계속 앞을 보고 있다.
“저도 여러 번 물어봤습니다만…….”
“너도 당했다고?”
“일전통을 공격한 건 다른 년들입니다. 전 일전통을 되찾으려고 도첨삭리 님을 찾았다가…… 매복을 해 놓고 막 공격하려던 참에 저놈을 만났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지금처럼 도륙당했습죠. 그때하고 지금하고 아주 똑같습니다요.”
방갓 무인은 철구를 죽이고도 매우 빠른 속도로 산을 쳐 올라온다.
쉐에엑! 파앗! 악!
허공을 긋는 칼바람 소리가 비명으로 이어진다. 일도일사(一刀一死), 움직임 한 번에 한 사람이 죽는다.
“신호를 보내라.”
팔룡이 침중하게 말했다.
“네?”
“다 후퇴시켜.”
팔룡이 방갓 무인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말했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은…… 준비한 게 많습니다. 조금만 더 지켜보시면…….”
비표비리가 자신 있게 말했다.
금맥을 따라가려면 땅을 뚫는 데 능숙해야 한다. 그러자니 화약에도 눈을 떴다. 무공은 엄청난 놈이지만 화약을 매설해 놓은 곳으로 오면 꼼짝없이 뒈진다.
팔룡이 한심하다는 듯 비표비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눈에는 저 칼이 보이지 않지? 네 비표가 저 칼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즉시 후퇴시키겠습니다.”
비표비리는 즉시 품에서 화통을 꺼냈다.
딱 반 각만 더 기다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놈이 화약 매설 지역으로 들어선다. 화암산 한 귀퉁이를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많은 화약을 매설해 놓았다.
놈을 잡을 수 있는데…….
스읏! 파아아앗!
하늘에 붉은 줄 세 개가 그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펑펑펑! 소리를 울리면서 적색 화망이 넓게 퍼졌다.
* * *
“이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야.”
몽설이 중얼거렸다.
“에이, 상군이 팔룡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팔룡이 어떻게 상군을 죽여? 아! 지금 야천팔방 전체를 말하는 거야? 그래도 상군을 죽이기는 힘들걸? 그런데 상군이 왜 팔룡을 노릴까?”
취운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취운이 보기에도 아걸은 매우 이상한 싸움을 하고 있다.
팔 장로에게 일전통을 장악하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일전통을 이용해서 야천에 대한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다.
지금도 일전통을 이용할 수 있다. 팔 장로가 장악하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매음굴이 당분간 휴업에 들어갔다는 사실 외에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야구가 일전통을 빼앗겼지만, 사실 이 문제는 별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인간말짜들끼리 치고받고 싸움질을 해서 자리를 빼앗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야구는 운 좋게 목숨이라도 건졌지, 대부분은 어느 시궁창에서 결딴난 채로 발견된다.
그러니 일전통을 강력하게 통제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일전통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야천에 선을 대는 일쯤은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아걸이 일전통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팔 장로에게 소식을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아걸은 일전통을 내버려 두고 전혀 다른 싸움, 이해가 되지 않는 싸움을 한다. 분명히 이 싸움은 일전통과는 상관없다. 야구를 쓰고 있지만, 길 안내를 맡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걸이 야천팔방을 정면으로 들이받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다.
몽설이 말했다.
“아니, 야천팔방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허도기를 말하는 거지.”
“뭐?”
“오빠는 지금 허도기를 노리고 저들을 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오빠도 허도기도 물러설 수 없게 돼. 허도기하고 오빠, 둘 중 한 사람은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나.”
“두 사람, 원래 그런 관계였는데 뭘.”
취운이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는 서로 봐주고 어쩌고 하는 것도 없다는 거지. 눈에 띄기만 하면 무조건 죽일 거라는 거야.”
“상군이 야천 무인들을 공격했다고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무리잖아? 허도기는 이런 싸움은 관심도 없을걸? 사실, 상군이 살았다는 것도 모르고 있잖아.”
몽설은 침묵했다.
아걸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한달음에 달려와서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아걸의 당부를 생각하고 꾹 눌러 참았다.
그러다가 아걸이 야천 말단을 치고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걸이 왜 그들을 치고 있을까? 야천은 불량배, 파락호들의 조직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들을 왜? 그런 자들에게 칼을 들이댈 필요나 있나?
일홀도는 아래로 향하지 않는다. 일홀도는 언제나 위로 향한다. 더 강한 칼, 더 강한 무공을 향해서 달려간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향해서 쓰지 않는다.
그랬는데…… 지금 아걸은 자신보다 훨씬 약한 자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다.
아걸은 제일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취화원이 나서도 능히 처리할 수 있는 자들을 일홀도로 베고 있다.
천하제일인이 강호 뒷골목에 들어와서 어깨에 힘을 주고 껄렁대는 자들은 죽이고 있다.
이것은 일홀도 역대 삼십육 문주 중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아걸의 사형들인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도 이렇게까지 밑으로 내려와서 칼을 쓰지는 않았다.
사형들은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지만, 아래로도 내려가지 않았다.
아걸은 제일 밑바닥으로 내려와서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다.
아걸이 왜 이런 분란을 일으키는지 궁금했다.
야천팔방을 직접 타격한다고 해서 야천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저 커다란 덩어리에서 일부분만 훼손될 뿐이다. 야천팔방은 무너질지 모르지만, 야천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말이다.
야천 전체를 무너트리는 일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들을 쫓아서 북쪽 끝까지 달려간다고 해도 어느새 남쪽에서는 야천 일부가 다시 자란다.
중원 전역에서 동시에 무인들이 일어나 야천을 핍박하면? 야천은 사라진 듯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 틈만 주면 다시 일어선다. 언제 피해를 받았냐는 듯이.
이들은 영원히 뽑히지 않는 잡초다.
아걸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
몽설은 아걸이 왜 야천을 건드리는지 알고 있다. 아걸은 옛날 사건, 성검문 사건을 쫓고 있다. 원래는 허도기만 쫓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성검문 사건에 몰입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 일전통을 장악해 달라고 부탁할 때부터 마인을 쫓았다.
아걸은 마인들의 흔적을 야천 밑바닥에서부터 찾아가려고 한다.
이런 내용의 서신을 받았을 때, 몽설을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 성검문을 기습한 마인들은 무공이 하나같이 뛰어났다. 가히 절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무공이라면 야천을 이끌고도 남는다.
그런 자들이 야천과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지만, 관계가 있다면 아랫단이 아니라 윗단, 상층부에서 찾아야 한다. 야천 우두머리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거다.
야천팔방을 건드릴 것이 아니라 야천 자체를 건드린다. 팔룡의 수하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팔룡을 직접 겨냥한다. 그리고 지도자의 멱살을 움켜쥔다.
아걸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시간 낭비, 체력 낭비를 하는 것일까? 허도기의 주목만 끌뿐인데.
몽설은 아걸이 치고 올라가는 광경을 보고서야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다.
“자, 봤으니 가야지!”
몽설이 일어섰다.
“가려고?”
“가야죠. 다 봤잖아요.”
“보긴 뭘 봐? 쟤네 죽이는 거? 저건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아걸은 혈도비자가 되어서 무인들을 공격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이들 정도는 거의 간식거리다.
“오빠가 방갓을 벗을 때까지 우린 빠져줘야 해.”
“언니, 자꾸 이렇게 딴소리할 거야? 그러면 언니한테 제오곡을 못 맡기지.”
“어멋!”
취운이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
취운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아걸의 뜻을 읽었다. 몽설이 본 것을 그녀도 보았다.
야천에서는 허도기 같은 절대 강자가 탄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숨죽인다. 하지만 늘 싸움이 일어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야천 특성상 절대 강자가 탄생할 날은 멀지 않았다.
그때, 야천은 당장 일어선다.
아마도 그때는 무림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검을 들지도 모른다.
야천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아걸이 그런 곳을 건드리고 있다. 왜? 야천을 밑바닥에서부터 흔들어 버리고 있다. 뿌리를 캐내고 있다.
야천의 존재 자체를 무너트리는 중이다.
이 싸움은 아주 커진다. 지금 화암산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아주 작은 싸움이다. 곧 벌어질 싸움에 비하면 티끌만 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천은 허도기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
자고로 중원 무림을 지배한 절대자치고 야천을 이용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
무림에 다시 나온 허도기가 즉시 손을 댈 곳은 성검문과 야천이다.
그런데 아걸이 야천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면…… 계속 뿌리를 갉아 버리면…… 허도기는 매우 위급함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직접 야천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이 싸움, 천하 대란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다.
“원주님,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상군을 만나 보고 가는 게…….”
“아니. 내가 가면 괜히 오빠 마음만 어수선해져. 마음 편히 싸우게 내버려 둬야겠어.”
“그나저나 허도기는 살았을까? 동굴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몽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군도에서 있었던 대폭발 소식은 적랑대를 통해서 아주 상세히 전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흑화방 흑후가 화약을 매설해서 두 번째 폭발을 일으킨 것까지.
그 폭발에서 살아남을 만한 사람은 없다.
세상은 모두 그렇게 안다. 아걸도 허도기도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취화원, 적랑대, 전보영…… 사력을 다해서 아걸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아걸이 일전통 팔 장로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몽설은 아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금도 아걸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한다. 여전히 죽었다.
허도기 역시 마찬가지다.
모습은 찾지 못했지만…… 살아나왔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무엇보다도 성검문이 조용하다. 일체의 동요가 없다. 허도기가 죽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흔들렸을 텐데 그렇지 않다. 수많은 사람이 평소와 다름없이 들락거린다. 나직이 속삭이는 음성 속에서도 암울한 기운은 읽히지 않는다.
불안한 요소가 전혀 없다.
적어도 성검문 사람들은 허도기가 죽은 사실을 믿지 않는다. 아니면 살아있는 모습을 봤거나.
“제발 죽었으면 좋겠는데.”
취운이 말했다.
‘나도. 제발 죽었으면 좋겠어.’
몽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걸은 허도기와 두 번을 싸워서 두 번 다 패했다. 이번에는 같이 폭발 속에 묻혔다.
아걸이 폭발을 유도했다는 것은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싸움도 진 것이다. 세 번 싸워서 세 번 다 졌다.
한 사람에게 세 번이나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무공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아걸은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허도기 역시 발전한다. 아걸의 깨달음과 허도기의 깨달음은 차이가 크다. 아걸이 한 발 앞으로 나간다면, 허도기는 훌쩍 뛰어서 한 걸음 나아간다.
그만큼 무공이 강한 자의 깨달음은 더 큰 발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나도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어.”
몽설은 마음속 말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