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第六十二章 암화(暗花)(3)
야구는 아주 곤란해졌다.
방갓 무인이 자신을 쳐다보면서 이 싸움이 끝난 다음에 이야기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실제로 방갓 무인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자신이 네 명하고 드잡이질을 벌이는 동안 방갓 무인은 쌍검운리를 죽이고, 팔룡을 무너트렸다. 나머지, 십리 중 네 명도 죽이고자 했다면 죽였을 것이다.
‘팔룡이!’
야천팔방 주인마저도 방갓 무인에게 패했다.
처절하게 싸우다가 패한 것도 아니다. 무기력하게 서 있다가 패했다.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주눅 들려서 멍청하게 서 있다가 검으로 툭 치니 털썩 주저앉았다.
이 놀라운 일은 야구에게도 경각심을 일으켰다.
방갓 무인이 자신에게 칼을 던져 주면서 벨 수 있는 사람은 베라고 했다. 베지 못하면 쓸모없다고 했다.
그 말은 절대명령이다.
배지 못하면 쓸모없어진다. 폐기 처분된다.
‘으! 미치겠네.’
야구는 이를 꽉 깨물었다.
솔직히 지금 이 산에 모인 사람들은 야천팔방에서 내놓으라 하는 싸움꾼들이다. 하나같이 어느 지역에선가 칼깨나 휘둘러 본 경험이 있다.
모두 고수라는 말이다.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네 명은…… 야구가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그래도 어떡하나. 이제는 싸울 수밖에 없다.
‘이판사판이라 이거지. 씨팔!’
“자! 찔러! 찔러!”
야구가 배를 내보이면서 탁탁 쳤다.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쓱!
검은 등 뒤에서 들어왔다.
“제길!”
야구는 어금니를 질끔 깨물었다. 칼이 몸을 쑤실 때의 아픔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아픔은 꼭 잊힐 만하면 또 생긴다.
푸욱!
검이 등을 쑤시면서 들어왔다.
너무 아프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프다. 칼에 많이 맞아 봤지만, 이런 아픔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 야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뒤로 휘둘렀다.
쒝! 퍽!
그의 몸에 검을 찔러 넣은 자는 순식간에 대도에 머리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머리뼈가 드러나고, 뇌수가 흘러내렸다.
“더럽게 아프네. 자! 또! 찔러! 찔러! 찔러 봐!”
야구가 몸을 확 내주면서 세 명에게 걸어갔다.
다른 세 명은 주춤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이거 미친놈 아니야?’ 하는 표정이 역력히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도 거친 바닥에서 놀던 자들이다. 어느새 뒤로 돌아간 한 명이 또 검을 찔러 왔다.
“이 새끼들은 꼭 뒤에서 찌르더라.”
야구는 즉시 뒤돌아서며 칼을 후려쳤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앞에 있던 두 명이 검을 찔러 왔다.
야구는 이를 악물었다.
검 세 개를 모두 맞을 수는 없다. 상대를 치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피해야 한다.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한, 결코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
까앙!
먼저, 뒤에서 쑤셔 온 검을 쳐 냈다.
그때, 등을 공격한 검 두 개가 살을 후벼 팠다. 정말 기절할 정도로 아프게 쑤신다.
야구는 이를 악물면서 대도를 뒤로 후려쳤다. 노리는 곳은 상대방의 칼이다. 몸을 쑤실 수는 있지만 검을 빼내 가지는 못한다. 검까지 회수하려면 손목을 내놓아야 한다.
휘이이익!
상대 두 명이 검을 놓고 물러섰다.
아걸은 즉시 쫓아갔다. 검도 없는 놈들을 베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놈들을 놓치면 자신이 죽는다.
쒜에에엑!
“헛!”
두 명 중 한 명이 사색이 되어서 팔을 들어 올렸다. 대도가 머리를 내리쳐 오자 엉겁결에 팔로 막은 것이다.
파앗! 퍽! 빠악!
팔을 싹둑 자르고, 머리를 찍었다. 대도가 딱딱한 머리뼈를 내리치는 감촉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털썩!
상대방이 쓰러졌다.
야구는 다른 한 놈을 쫓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등을 쑤셔 오는 검이 있다.
휙! 까앙!
즉시 뒤돌아서 검을 쳐 냈다.
그사이에 검을 놓친 다른 한 명은 멀찍이 물러섰다.
“큿큿. 넌 뒈졌어.”
야구가 대도를 들어서 검을 놓쳐 버린 무인을 가리켰다.
땅에 검이 있다. 쌍검운리가 사용하던 쌍검 중 한 자루가 주인을 잃은 채 떨어져 있다. 하지만 감히 줍지 못했다. 검을 주우려고 하면 방갓 무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야구 이놈이 길목을 차단하고 칼을 쳐올 것이다.
무인은 사리를 쳐다봤다.
사리가 검을 줄 수 있나? 없다. 저들은 방갓 무인에게 눌려서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자신이 살길은 오직 자신 스스로 뚫어야 한다.
“제길!”
그의 입에서 툴툴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뒈지려니까 섭섭해? 큭큭큭!”
야구가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야구는 이 대 일의 상황이지만 상당히 편해졌다. 검을 쥐고 있는 자는 한 명뿐이다. 한 명만 견제하면 된다.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다.
빈손인 무인이 검 든 무인에게 눈짓했다.
검을 주워야 하니 잠시 시간 좀 벌어 달라는 눈짓이다.
스읏!
검을 든 자가 검 끝을 움직였다. 지금 당장 공격하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비친다.
그러자 야구가 빈손 무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눈은 여전히 검든 무인을 노려본 채.
빈손 무인이 재빨리 옆으로 도주했다.
그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검이 필요한 모양이군. 승부는 정당하게 벌여야지.”
이상한 말과 함께 방갓 무인이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빈손 무인에게 던져 주었다.
휙! 척!
빈손 무인이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날아오는 검을 재빨리 받아 챙겼다.
“엇! 이……!”
야구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방갓 무인을 쳐다봤다.
하지만 방갓 무인은 태연하다. 여전히 딱딱한 모습으로 지켜볼 뿐, 야구에게 말을 붙이지 않는다. 이 싸움에서 야구가 죽어도 좋다는 듯이 보인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
야구는 아랫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분하고, 억울하고, 생각 같아서는 방갓 무인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당장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두 명을 베어야 한다. 이건 철칙이다.
“쌍!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야구가 칼을 축 늘어트렸다.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노골적으로 방갓 무인을 쳐다보면서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슷!
왼쪽에 있는 자가 검으로 야구를 건드렸다.
깊게 찔러 오지는 않고, 어떻게 반응하나 찔러 보기만 했다.
푹!
가볍게 던진 검에 야구가 찔렸다.
야구는 정말 싸울 의지가 없었다. 방갓 무인이 검을 건네준 것이 상당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씃!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는 자가 검을 찔렀다.
그도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 가볍게 견제만 했다. 좌우에서 서로 찔러 대다 보면 틈이 생긴다. 야구는 계속 상처를 입을 것이고, 결국은 쓰러진다.
푹!
야구가 견제용으로 던진 검에 찔렸다.
쓱! 푹! 씃! 푸욱!
야구는 계속해서 찔렸다. 정말로 어떤 검이 들어와도 반응하지 않았다.
“씨팔! 아직도 몰라! 죽이라고, 새꺄! 이렇게 목 빼놓고 있는데도 못 죽여! 뭐 이런 개 같은 새끼들이 다 있어! 죽여! 죽이라고 개병신 새끼들아!”
야구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흐흐!”
무인들이 가는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손 쓰지 않을 테니 죽여라’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든 살게 되어 있다.
슷! 푹! 쓰읏! 푹!
계속해서 좌우 협공을 시도했다.
야구는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죽은 사람에게서 튄 핏물이 아니라 자신이 흘린 피다.
“정말 병신 새끼들이네.”
철컹!
야구가 대도를 땅에 던져 버렸다.
“이래도 못 죽이면 너희는 정말 개호로썅놈의 새끼들이다. 불알은 왜 차고 다니냐, 병신들아.”
“흐흐!”
무인들이 웃었다. 아니, 그들은 웃음보다 더 빨리 달려들었다.
쒜에에엑!
이번에는 견제하는 검이 아니다. 목숨을 빼앗는 검이다.
순간, 야구가 발끝을 살짝 퉁겼다. 그러자 땅에 떨어졌던 대도가 허공으로 툭 솟구치더니 손에 잡혔다.
“걸렸어! 병신 새끼들!”
야구는 왼쪽에서 달려드는 자에게 심장을 내줬다. 그리고 대도를 후려쳤다.
퍽! 퍼어억!
무인의 검은 심장을 빗겨서 지나갔다. 갈비뼈를 베기는 했지만 심장을 찌르지는 못했다.
야구의 칼은 무인의 목덜미에 틀어박혔다.
털썩!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푸아악!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뚱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야구는 방금 공격한 자가 쏟아 낸 피로 흠뻑 젖었다. 야구가 아니라 혈귀다. 피로 범벅이 된 악마다.
“자! 빨리빨리 끝내자고. 와!”
야구가 남은 한 명에게 손짓했다.
“흐흐흐!”
야구는 괴소를 흘렸다.
상대방에게 일부러 옆구리를 내줬다.
팍! 검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순간, 야구는 상대방의 목을 푹 찔러 버렸다.
상대방이 쓰러졌다.
야구도 상대방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둘은 우리에 갇힌 맹견이다. 주인들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도주하면 즉시 죽인다.
무인도 야구와 똑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팔룡까지 꺾은 방갓 무인이 시킨 싸움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은 죽어야 끝난다. 피한다고 사는 길이 생기지 않는다. 상대를 죽여야만 산다.
두 사람은 정면 승부를 가렸고, 야구가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흐흐흐! 흐흐흐흐!”
승리자의 웃음.
야구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괴소를 숨기지 않고 쏟아 냈다.
피를 본 자,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야구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숨을 헐떡거렸다.
이들에게 맞은 상처가 절대 가볍지 않다. 아니, 매우 중하다. 급히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야구는 방갓 무인을 쳐다봤다.
“형편없군.”
방갓 무인이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야구는 죽은 야천 무인들에게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품을 뒤져서 금창약을 찾아냈다.
“끄으윽!”
야구는 신음을 흘리면서 몸에 꽂힌 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혼자서 꾸역꾸역 금창약을 발랐다.
누구도 그를 쳐다보지 않는다. 누구도 그를 돌봐 주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치료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는 사람이 없다.
“흐흐! 참 빌어먹을 신세네.”
야구가 쿡쿡 웃으면서 상처에 금창약을 발랐다. 덜덜 떨리는 손을 눌러 가면서,
“이제 대화할 기분이 좀 된 것 같은데.”
아걸이 팔룡을 보며 말했다.
“휴우!”
팔룡은 한숨만 내쉬었다.
방갓 무인 같은 인간들이 더러 있다. 이런 자들은 모든 상황을 무력으로 해결한다. 한데, 이게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공격은 어떻게 당해 낼 수가 없다.
“너희는 물러가라.”
팔룡이 말했다. 그러자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리가 조용히 물러섰다.
그들도 강한 무인들이다.
팔룡이 어떻게 해서 졌는지 알고 있다.
팔룡을 약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방갓 무인의 무공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왜 이런 무인이 야천을 건드릴까? 야천에 할 말이 있다면 야천대방을 만나서 해결해도 될 텐데.
팔룡이 물러가라고 한 것은 단둘만 얘기할 수 있게 자리를 비키라는 말이다.
그들은 두 사람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곳까지 멀찍이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