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第六十三章 과거사(過去事) (2)
- 하망(下網) 실거연계(失去聯系)
전서 내용은 간단했다.
삼천과 연락이 끊겼다는 내용인데, 삼천이 어디인지는 전서를 받는 사람만 안다.
서로 약조된 밀마다.
적랑대주 임지정은 툇마루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당으로 내려가 산책하듯 거닐었다.
문득, 빨랫줄에 빠짝 마른빨래들이 보였다.
그는 무심히 움직여서 빨래를 걷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전서 내용으로 가득했다.
하망은 야천구방 중 하삼방, 야천구방과 팔방, 그리고 칠방을 말한다. 야천사방, 오방, 육방은 중망으로 명칭하고, 야천이방과 일방은 상망이라고 한다.
야천대방은 대망이라고 따로 분류한다.
하망 실거연계는 하삼방, 하망에 숨겨 놓은 간자들이 일제히 연락 두절되었다는 소리다.
그들의 정체가 발견되었다는 징조는 없다.
그들은 야천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그러니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그들의 신상에 어떤 변고가 생겼다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연락을 차단했다는 편이 맞다.
하망 간자들이 적랑대와 인연을 끊었다.
하망이 스스로 살아서 움직인다.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적랑대 간섭 없이 생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위험한 길을 가고 있구나.’
빨래를 걷는 임지정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려졌다.
하망 간자들은 야천 팔방을 휘젓고 있는 아걸에게 자극을 받은 게 틀림없다.
솔직히 적랑대 간자로 살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것도 야천에 잠입한 간자들은 지극히 비참하다. 야천 자체가 거의 하류 인생이기 때문에 간자들의 삶을 매우 거칠고 피폐하다.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수없이 벌어진다.
야천에 잠입한 간자들은 야천 생활에 녹아 있다.
그런 생활을 정해진 기간만 하라면 버틸 수도 있다.
간자 생활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어쩌면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적랑대는 결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그런 점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충성을 하기는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혹독한 삶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그들이 아걸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아걸의 어떤 행동이 그들을 자극한 게 틀림없다.
자신들이 움직였을 경우, 결국은 죽게 된다. 그런 사실을 그들도 안다. 그래서 적랑대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본인들 스스로 연락을 차단한 것이다.
“하아!”
빨래를 걷는 임지정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죽는다. 몰라서 움직인 것은 아닐 테고, 한두 명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떤 게 간자들을 흔들었지?
임지정은 하망 간자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것은 하망 간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확실히 적랑대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살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도대체 언제 일어선단 말인가! 허도기가 무서워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아무리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이게 무슨 꼴인가! 생쥐도 죽을 때는 찍소리를 내면서 죽는데, 적랑대는 숨도 쉬지 못하고 빌빌 짜고 있으니.
살수 수련을 받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직 초살(初殺)조차 해보지 않은 살수가 태반이다. 평생 청부살인 한 번 하지 않고 죽는다면 이게 무슨 살수 집단인가.
이건 살인 늑대, 적랑이 아니다. 들개도 안 되고, 강아지 새끼 축에도 끼지 못한다.
적랑대 살수 중에도 강경파는 있다.
몰락을 피해서 잠적을 택할 때부터 볼멘소리는 터져 나왔다.
모르는 소리다.
적랑대는 암암리에 움직인다. 적랑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많은 자금이 그 고요한 움직임에서 나온다.
강경파는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 것이다.
야천만 해도 그렇다. 야천에는 많은 간자들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염탐한 것을 적랑대에 보고한다. 하지만 그 보고가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놈은 정말 나쁜 놈이어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어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나쁜 놈은 더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차라리 보고하지 않고 자신이 죽이는 것만 못한다.
간자들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보기만 하라는 것인가.
본단 살수는 그래도 움직일 때가 있으니 소외자라는 느낌이 덜하다. 하지만 중원 곳곳에 숨어서 보고만 하는 간자에게는 야속한 기다림의 나날일 것이다.
그럴 때, 아걸이 야천팔방을 치고 들어왔다. 야천 간자들은 방갓 무인의 정체가 아걸이라는 걸 안다. 아걸의 목표가 허도기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적랑대는 허도기 때문에 숨죽여 산다.
아걸이나 적랑대나 공통의 적을 상대하고 있다. 허도기!
야천팔방 간자들이 전력을 다해서 아걸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움직임은 들불처럼 번져서 하망 전체로 옮겨갔다.
야천팔방뿐만이 아니라 칠방과 구방이 동조했다. 그래서 하망 전체가 연락 끊긴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는 몰살이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야천에 숨어 있었으면서 야천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는가! 허도기가 진심으로 검을 뽑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이나 하는 것인가!
임지정은 빨래를 걷어서 툇마루로 돌아왔다.
후두둑!
빨래를 툇마루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툇마루에 앉아 맑은 하늘을 쳐다봤다.
“문주님께 도움을 청해야겠다.”
임지정이 말했다.
적랑대 문주가 문주라고 말하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전임 문주 아삼이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지붕 위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문주님께 야천으로 가주십사 말씀드려.”
“네.”
“형제 중에는 문주님께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문주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지.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
대답은 없었다.
“열 명쯤 추려 봐.”
“적랑대 파문까지 고려합니까?”
“무슨 잘못이 있다고 파문인가. 거기까지 가면 내가 너무 못나 보이잖아. 우리도 감수할 부분은 감수해야지. 은퇴 정도로 하지. 취화원 팔장로 인원까지 합치면 대략 스무 명. 문주님께서 급하게 쓰실 인원은 될 거야.”
“알겠습니다.”
“문주님 곁으로 가면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구 할 이상. 이 부분은 꼭 말해 주고.”
“말해도 갈 겁니다.”
“그래도 말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전임문주 아삼은 아걸 일이라면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에도 뛰어들 분이다.
이번 일,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보실 것이다.
또 기왕 하망 간자들이 죽음을 택했다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움직이다가 죽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들의 죽음이 한결 더 가치가 있다.
죽으면 그만인데 무슨 가치를 따지냐고 하겠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죽을 때는 한결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아삼의 마음도 풀어 주고, 하망 간자들의 소원도 들어준다.
“하망에도 기별을 넣어. 문주님을 모셨다고. 형제들이 꽤나 기뻐하겠군.”
“네. 전임 문주님이 직접 가신다면 대단히 놀랄 겁니다. 한데 문주님이 가실지…….”
“가실 거야.”
임지정은 확신했다.
조금 서운하게 말하면…… 자신이 청하면 오지 않아도, 아걸에게 일이 생기면 먼저 달려간다.
아삼에게 아걸은 친아들이자, 친손자다.
“야천에 피가 많이 흐르겠네.”
임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임지정은 진한 피 냄새를 맡았다.
정말 많은 사람이 죽는다.
적랑대 간자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흔히 간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 목안(木眼), 나무에 눈이 생겼다. 석이(石耳), 바위에 귀가 생겼다. 벽정(壁盯), 담벼락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이런 말들의 특징은 모두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 붙어 보고, 듣고, 알아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간자다. 간자는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면 당장 발각된다. 죽는다.
하망이 움직이지 않아도 아걸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는 것인데, 지체되는 시간도 반년에서 일 년 안짝이다.
그 시간을 아껴 주자고 이 많은 사람이 죽는가.
“저희는 움직이지 않습니까?”
지붕 위에 있는 자가 물어 왔다.
임지정은 대답하지 않고 툇마루에 놓아뒀던 빨래를 집어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아삼은 인상부터 찡그렸다.
“이놈들이! 대가리에 똥만 찼나. 내 가르침은 어디다 팔아먹고 이 지랄들이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놈아!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가야지! 모두 개죽음당할 판인데, 한두 놈이라도 살려야 할 거 아냐!”
아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가신다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문주라는 놈은 도대체가! 내가 은거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말이 많아! 그놈한테 가서 전해. 이걸로 정말 끝이라고.”
“알겠습니다.”
“이번에 내가 목숨 붙어 오거든 큰 상 하나 차리라고 해.”
“네.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사자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적랑대는 워낙 밀마가 횡행한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이 둘만 아는 단어가 아주 많다. 그래서 말을 전할 때는 글자 하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겠거니 하고 비슷하게 말뜻만 전하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쯧! 가 봐.”
아삼이 혀를 차며 말했다.
* * *
호북성에는 십삼 부(府)가 있다. 성(城)은 서른여덟 개다.
십리가 십 개 부 어둠을 장악하고 있고, 팔룡 직속이 삼 개 부 야천을 움직인다.
낮에는 부사니 성주니 하는 관원이 통치하지만, 밤이 되면 야천팔방의 세계가 된다. 대낮에는 사람 눈길이 닿지 않은 음지에서는 야천이 움직인다.
저잣거리에 있는 작은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호미를 만들고 있다.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한 번 세게 내리치고, 세 번 잘게 끊어진다. 이렇게 삼 회를 반복하고 쇠를 다시 화로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빨갛게 달궈진 다른 쇳덩이를 끄집어내서 똑같이 내리친다.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세 번 반복해서 내리치고 다시 화로에 집어넣는다. 또 다른 쇠를 꺼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호미는 이런 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빨갛게 달궈진 쇠를 몇 번 내리치다 말고 다시 화로에 넣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런 일도 반복하는 동안 점점 호미 윤곽이 잡혀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 이렇게 일정하게 쇠를 두들기면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밑져야 쇠하나 버리는 것, 한 번 만들어 보려고.”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대장장이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십삼 개 부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장장이 열세 명이 같은 작업을 했다.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이들이 함께 모여서 호미를 만들었다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지켜봤을 것이다.
이들은 각기 수백 리 거리를 두고 작업을 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상하게 쇠를 두들기고 있지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다.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주시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하루가 지나가 똑같은 방식으로 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서른여덟 곳으로 늘었다.
같은 일이 많은 곳에서 벌어졌다.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타앙! 탕탕탕!
‘회합이다!’
일부 몇몇 사람만이 대장장이의 마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약정된 밀마가 터졌다. 야천팔방 대회합이 열린다. 야천팔방에 있는 모든 간자들을 소집하고 있다.
대회합은 지난 이십 년 동안 열린 적이 없다.
대회합 밀마는 잠깐 외웠다가 잊어버리는 밀마인 줄 알았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줄은 몰랐다. 이런 밀마를 생전에 듣게 된다니.
‘좋아!’
망치질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눈에 기강이 번뜩였다.
생생한 활기가 넘쳐 흐르는 눈빛이다.
대회합이 열린다는 것은 간자가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무심히 지나쳤다. 단지 몇 사람만 눈빛을 반짝반짝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