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13화 (313/600)

#313화. 第六十三章 과거사(過去事) (3)

야천팔방 대회합은 장사부(長沙府) 대봉산(大峰山)에서 열린다.

대장장이의 밀마를 전해 들은 간자들이 대봉산으로 모여들었지만, 표시는 나지 않았다.

대봉산 산정으로 올라가는 길은 열 군데가 넘는다.

대봉산은 호북성 중심에 있는 관계로 등산로가 사방으로 분산된다. 더욱이 산을 타는 시간도 일정하지가 않아서 산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넓은 해변에 금가루를 한 줌을 뿌리는 것과 같다.

한군데에 소복이 쌓아 놓으면 대번에 눈에 띈다. 하지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금가루 한 알씩 사방에 흩어 놓으면 한 줌이 아니라 한 말을 뿌려도 모래에 묻히고 만다.

대봉산에 들어선 자들은 중턱까지 오른 후 걸음을 멈췄다.

어느 방향에서 오르든 마찬가지다. 힘이 남아돌아도 일단을 걸음을 멈췄다.

중턱에서 잠시 머물며 사방을 살폈다.

뒤쫓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 즉시 행낭을 풀고 준비해 온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검은색 무복이다. 얼굴에 복면도 썼다.

대회합에는 참석하지만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조처한다.

이것 역시 불문율이다.

간자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지극히 조심한다.

그래서 간자로는 몸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다거나, 아니면 말랐거나, 키가 너무 왜소하거나, 허리가 굽었거나 하는 자들은 선택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자들만 선발한다.

흑의 경장에 복면으로 갈아입은 후에는 재빨리 산을 올랐다.

산에 올라가는 도중에 다른 흑의 복면인과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서로 고개 숙여 가볍게 묵례한다. 복면을 쓰기 전에 만났다면 서로 피했을 테지만, 복면을 쓴 후에는 반갑게 인사한다.

그들은 서로 같은 동료인 것을 알고 있다.

저 사람은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누구 밑에서 어떤 일을 할까? 복면을 벗으면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서로 끝과 끝에서 온 탓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입을 열고 말하지 않았다.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언어와 행동이 금지된다. 그저 묵묵히 산길을 오를 뿐이다.

“분명히 여기로 갔는데.”

간자를 뒤쫓아 온 사람이 있다. 야천 무인이다.

대체로 뒤를 밟은 자는 인근에서 쫓아온 경우가 거의 없다. 며칠에 걸쳐서 꾸준히 뒤를 밟아왔다.

“하! 어디로 갔지? 방금까지 있었는데.”

무인이 산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수상쩍어서 뒤를 밟았는데, 산에 들어오자마자 놓쳤다.

“요게 요즘 수상하단 말이여. 분명히 뭔가 있는데.”

무인을 소리를 죽여 가면서 산길을 더듬어 올랐다. 이미 앞서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계곡 쪽으로 내려가서 쉬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경우를 다 고려해야 한다.

“평소 뭔가 수상쩍었어. 고향에 일이 생겼다는 놈이 산은 왜 와? 여기가 고향이야!”

무인은 매우 조심스럽게 산길을 올라갔다. 그때,

쉿!

느닷없이 산모기가 달려들어서 목을 깨물었다.

“앗! 따거!”

무인은 손을 들어 목을 만졌다. 한데,

“엇!”

무인은 다시 놀랐다. 산모기가 물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손에 딱딱하게 잡힌다.

무인은 손에 쥔 것을 잡아 뽑았다.

세침(細針), 아주 작은 침이다. 쇠털처럼 작고 가늘다고 해서 우모침(牛毛針)으로 불린다.

“앗! 암습!”

무인은 즉시 자세를 낮춰 경계하면서 검을 뽑았다.

이런 우모침은 손으로 날리지 못한다. 보통은 침통(針筒)에 넣고 기관으로 발사한다.

또 이런 우모침에는 독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작은 침으로는 살상할 수 없다. 경맥조차 잡지 못한다. 그래서 독을 묻힌다.

불행하게도 무인은 해약이나 피독단을 준비하지 못했다. 자신이 독침을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단히 수상쩍지만 아무것도 아닌 놈을 쫓는 중이었다.

독침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런데,

“흑!”

무인은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겼다. 멀쩡하다가 느닷없이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끄으으으윽!”

그는 너무 큰 고통에 거친 소리를 토해 냈다.

확실히 심장이 제 기능을 못 한다. 정상적으로 박동을 일으켜야 하는데 매우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헉! 헉!”

무인은 거칠게 호흡하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주위에 흑의를 입은 북면인 네 명이 늘어서 있다.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앞에 두 명이 있고 뒤에도 두 명이 지켜 서 있다.

꾸우욱!

무인은 검을 힘주어 잡았다.

하지만 네 명은 달려들지 않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뚝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했다.

저들은 전혀 싸울 생각이 없다. 싸울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서…… 가만히 내버려 둬도 무인은 죽는다. 독이 퍼질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 사, 살려…… 줘.”

무인은 검을 내리고 빌었다. 하지만 이미 입에서는 하얀 게거품이 물려 나왔다. 그리고 사지도 부르르 떨었다. 눈은 이미 위로 쳐 올려져 흰자위만 가득했다.

“큭!”

무인이 짧은 숨을 토하며 무너졌다.

그제야 흑의 복면인 중 한 명이 다가와서 무인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무인이 뽑은 우모침을 수거했다.

무인은 얼핏 보면 독사에 물려 죽은 모습과 비슷하다.

흑의 복면인들은 나타날 때처럼 은밀히 사라졌다. 멀리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변 어디엔가 숨어서 흑의 경장을 입지 않은 자, 혹은 복면을 쓰지 않은 자가 지나가는 것을 감시한다.

회합이 열리면 당연히 간자들이 만사 제쳐 놓고 달려온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뒤를 밟는 자들이 한두 명은 생긴다.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회합이 열리기 열흘 전부터 살수 훈련을 받은 적랑대 살수가 산에 진입해서 자리를 잡는다.

적랑대는 살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경험도 얻었다.

그 대가, 경험이 치밀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삼은 흑의를 입지 않았다. 복면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적랑대치고 아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모두 다 알고 있다. 전임 문주라서가 아니다. 아삼이 워낙 많이 돌아다녔던 탓이다.

산 정상으로 흑의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삼을 보자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포권지례를 취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침묵!

이 불문율은 전임 문주를 대할 때도 적용된다. 신분을 드러내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는 아삼의 가르침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면 아삼에게 크게 혼났을 것이다.

아산 곁에는 다른 흑의 복면인이 시립해 있었다. 그는 산정으로 올라서는 사람들을 헤아렸다.

이윽고 정오가 되었다.

산정에 모인 흑의인의 숫자는 모두 백일흔 세 명이다.

아삼 옆에 시립해 있던 복면인이 아삼을 향해 무릎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이것이 대회합을 진행한다는 신호다.

산정에 모인 흑의인 전원이 일제히 큰절을 올렸다.

야천팔방 간자 백일흔 세 명, 전원 집합이다.

“그토록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어지간히들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아삼이 흑의 복면인들을 훑어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복면인들은 조용했다.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그런 규칙이 아니더라도 아삼이 말하는 중에 장단 맞출 사람은 없다. 아삼은 복면인들에게는 하늘 같은 존재다.

“그동안 아걸, 그놈에게 뭘 전해 줬는지 알아야겠다. 시작해.”

그러자 흑이 복면인들이 일제히 품에서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 글을 썼다.

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문주에게 보고하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오직 아걸에게 전한 것들만 적는다. 자신이 직접 전한 것도 있고 제삼자를 통해서 전한 것도 있다. 어떤 내용이든 아걸에게 전해졌던 보고는 다 적는다.

그러는 동안 아삼 옆에 있던 복면인이 작은 모닥불을 지폈다. 큰불이 아니고 겨우 불씨만 살아있는 작은 모닥불이다.

이윽고 글을 다 적은 복면인이 종이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아삼은 건네진 종이를 읽은 후, 바로 모닥불에 던졌다.

아걸에게 전한 내용은 전한 자와 아삼밖에 모른다.

백일흔 세 명 중 아흔한 명이 사신을 건넸다. 정보를 주지 않은 사람은 여든두 명이다. 줄 만한 것이 없었거나, 아니면 적랑대 정보라서 외인에게는 주지 않은 것이다.

정보를 다 읽은 후, 아삼이 말했다.

“여기 모인 이유는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니 긴말은 필요 없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거수!”

복면인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목안으로 존재해야 한다. 거수.”

복면인 중 스무 명가량이 손을 들었다.

“이번 일에서 빠지고 싶다. 거수.”

스무 명 중 일곱 명이 손을 들었다.

아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하산해라. 추격자가 열두 명 있었다. 그놈들 시신은 산 중턱에 놔뒀으니까 가면서 얼굴 한 번 들여다봐. 혹시 아는 놈이 있거든, 뒤 밟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돌아가서 변명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변명거리도 만들어 놓고.”

그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떠나는 사람에게 눈총을 주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적랑대가 일하기 전에 반드시 행하는 의례다. 어떤 일이든 하고 싶지 않은 자는 빠져도 된다. 그 일로 인해서 나중에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일신의 안위를 지키면서 편안히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적랑대는 언제나 친구다. 궂은일, 기쁜 일을 함께한다.

백육십육 명이 남았다.

“이제 너희는 내가 직접 움직인다.”

복면인들의 눈빛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났다.

“절대 다수결에 의해서 행동방침은 ‘움직인다’로 정한다. 우리는 이제부터 적랑대가 아니야. 우리가 하는 일은 적랑대와 전혀 관계없다. 적랑대와 밀마를 끊고, 비상 밀마로 전환한다.”

아삼이 지시를 내렸다.

아삼이 개략적인 사항을 말한 후, 옆에 있던 복면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묵묵히 복면을 벗었다.

“음!”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복면인 중에서 일부가 나직한 탄성을 쏟아 냈다.

복면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꽤 많다.

“모두 복면을 벗는다. 서로 믿고 함께 일하자. 적랑대를 탈퇴한 이상 우린 우리 법을 만들어 간다. 아무래도 신분이 드러나는 게 께름칙하다 여기면 지금 가도 좋다. 다시 한번 생각하고 괜찮다는 사람만 남아라. ”

복면을 벗은 사내가 말했다.

한 명, 두 명 복면을 벗었다. 이제 서로를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옆에 있는 사람과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통성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엇! 당신은! 우리가 한 편이었네.”

이미 아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적랑대가 철저하게 신분을 비밀로 한 것은 잡혔을 때를 대비해서다. 고문을 당하면 마음과는 다르게 동료를 토설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예 서로 모르게 한 것이다.

지금 복면을 벗고 신분을 드러내게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걸 싸움은 단시일에 끝난다. 또한, 야천이나 허도기의 반격도 매우 빠를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니 드러난 사람은 매우 이른 시일 내에 죽는다.

또 아걸을 도우려면 매우 활기차게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임이 많다 보면 간자의 생명은 바로 끝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신분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게 낫다.

그런 의미에서 적랑대를 탈퇴하라고 한 것이다.

새로운 밀마를 전했다.

서로 연락을 취하는 방법에서부터 최우선으로 보고해야 할 내용을 정리했다.

이들은 산정에서 두 시진을 머물렀다.

두 시진 동안 행동해야 할 부분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대회합은 끝났다.

모두 돌아가고 아삼 곁에는 한 명만 남았다. 야천팔방 간자들을 움직인 간자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똑똑이 봤냐?”

아삼의 시중을 들던 사내는 침묵했다.

“네 놈 때문에 야천 간자 칠백여 명이 죽을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제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게 잘못인 거야, 이놈아! 죄 없는 사람 죽여 놓고 네놈 목숨 끊으면은 그게 대수냐! 네놈 목숨 따위가 얼마 나간다고. 지금 뒈지면 동전 한 닢 받을 수 있냐?”

“죄송합니다.”

“숨죽이고 있으라면 숨죽이고 있어야지. 네 놈 뜻에 동조해서 움직이자는 놈이 태반이니 네 탓만도 아니다만.”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그래야지! 이미 죽을 길에 들어섰으니 최선을 다해야지! 내려가! 내려가서 네 말대로 죽기 전에 최선을 다해 봐.”

“네.”

사내, 야천팔방 본방에서 요패림(謠佩琳)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신형을 쏘아 내려갔다.

“바보 같은 놈.”

아삼은 혀를 끌끌 찼다.

아걸을 돕기 위해서 이 많은 사람이 일어선 것이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도와주는 대가가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면 단연코 반대한다.

지금이 그렇다. 이들은 거의 다 죽는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움직이지 말라고 한 건데.

“바보 같은 놈들!”

아삼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야천구방에서 오는 길이다. 그곳에서는 백삼십이 명이 목숨을 내놓는다고 했다. 이제 야천칠방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할까.

“그래. 네놈들이 목숨을 내놓고 움직인다면 어디 한 번 제대로 움직여 보자. 네놈들이 죽더라도 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 줘야지. 내가 할 일은 이제 그것뿐인가. 아걸 이놈! 이 늙은이를 끝까지 편히 있지 못하게 만들어. 내 팔자도 참.”

아삼이 툴툴거리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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