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第六十三章 과거사(過去事) (4)
관군이 시장을 정리하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예전에도 종종 해 왔던 일이다.
시장은 삶의 터전이지만, 온갖 이권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통제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온갖 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폭력이 싹튼다.
그래서 가끔 단속을 나가서 좋지 않은 일을 바로잡는다.
하지만 이런 단속을 너무 자주 하면 시장이 위축된다. 약간은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너무 눈에 띄게 나빠질 때만 시행하는 편이다.
물론 탐관오리는 이런 권한을 빌미로 재산을 축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탐관오리에 국한되는 일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황으로 보기는 무리다.
관에서는 월에 한 번 정기적인 통제를 하고, 굵직한 사안이나 너무 좋지 않은 일이 퍼지면 특별 통제를 한다.
“이건 무리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원 전역에 대해서 일시에 점검을 나서면 당장 상소가 빗발칠 겁니다. 위험이 큽니다.”
삼부 부장이 모두 반대했다.
부장들은 일 점 사심 없이 반대했다.
어떤 이권이나 욕심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앞으로 벌어질 일만 생각했다.
“그렇지? 힘들겠지?”
전보영주 탁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건 재고해야 합니다.”
일부 부장이 강력하게 말했다.
“이건 야천을 꽉 밟겠다는 건데…… 아무래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생존이 걸린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부 부장은 다소 완곡하게 반대했다.
삼부 부장은 이 부탁이 아걸에서 나온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생쥐를 쫓을 때도 도주할 구멍을 터준 후에 쫓으라는 말이 있다. 중원 전역에서 시장을 일제히 통제하면 도주할 길이 없다.
이쪽에서 누르면 저쪽으로 도주하고, 저쪽에서 누르면 이쪽으로 도주를 해야 한다. 그래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목숨은 끊지 않으면서 강력하게 짓누르는 길이다. 물론 빠져나가는 길은 매우 좁게 만들어서 숨만 트이게 해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압박하면 통제하는 사람은 압박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반면에 압박받는 쪽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기들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한다.
야천 말살은 애당초에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나온 차선책이다.
그런데 아걸이 요청한 중원 전역에 걸친 압박은 완전 말살에 해당한다.
뿌리를 깡그리 캐내겠다는 거다.
야천은 움직일 사람들이 많다. 야천이라고 해서 반드시 파락호들만 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들은 돈줄을 쥐고 있다. 더러운 폭력도 함께 움직인다. 돈과 폭력을 함께 사용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을 움직인다. 돈으로 사고, 폭력으로 협박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강한 힘이 된다.
뇌물을 받은 사람도 움직인다.
저들은 주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한다. 정관계에 돈 먹은 사람들이 두루 널려 있다.
온갖 암투와 암계가 횡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암계는 곧바로 황궁을 통해서 전보영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야천이 동원할 힘은 무척 많다.
“그래서 대장군께 부탁해 둔 게 있어. 그게 도착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일단 준비는 해 둬.”
“그러면 성검문은 어떻게……?”
일부 부장이 물었다.
무림에 관계된 사항을 시행할 때, 관은 일이 시작하기 전에 성검문에 미리 언질을 주곤 했다. 그러면 성검문도 조언이나 필요한 부분을 말해 왔다.
성검문은 명색이 무림 제일 문파다. 성검문주 허도기는 무림 제일인자다. 더욱이 허도기는 황제에게 공부라는 칭호까지 받은 최대 권력자다.
그들의 안면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공부는 나라를 위해서 참 많은 일을 했다. 백만대군을 정예화시킨 공로가 있다.
공부를 봐서라도 성검문에 미리 통보를 해 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서로 안면을 붉혔다. 허도기가 직접 전보영을 공격했다. 전보영 삼부칠청 수장이 몰살당하고, 전부 교체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제 성검문 사정을 봐줄 단계는 지났다.
“성검문을 잡자고 벌이는 일일 텐데, 어떻게 하겠냐니? 성검문에 통보해 줄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낫지. 두고 보자고. 무림에 대한 성검문 입김이 어느 정도로 작용하는지.”
전보영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럼 각 문파에 넣을 통문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부 부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성검문도 무림 문파 중 하나일 뿐이다. 성검문에 대한 특별 대우는 없다.
야천을 압박하면서 무림 문파에 통문을 넣는 이유는 뒷수습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다.
야천을 압박하면 저들은 숨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장 그들이 하고 있던 일에 누수가 생긴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물건을 때려 부수는 취객을 달래 줄 무인도 필요하다.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 누수를 막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야천이 음지에서 하던 일을 양지로 끌어낼 뿐만 아니라 야천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한다. 즉, 하던 일을 뺏기게 된다.
무림 문파에는 좋은 먹잇감이 나오는 셈이다.
재산이 될 만한 것들, 세력을 넓힐 수 있는 것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무림 문파에 통문을 돌리는 것은 이런 것들을 가져가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성검문에 통문을 전하고, 성검문에서 각 문파에 통문을 다시 돌렸다. 이때, 성검문은 무림 문파의 충돌을 방지한다는 의미로 각 문파가 접수할 지역을 선정해 주었다.
일종의 먹이 분할이다.
성검문이 이런 역할을 하므로 무림은 성검문을 추종하지 않을 수 없다.
소축십검 상당수가 무너진 지금도 성검문이 건재한 이유다.
물론 성검문의 건재는 허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관군에서 밀어주는 부분도 상당하다.
이렇게 해서 무림 문파가 먹잇감을 차지하면 야천은 타협을 통해서 일거리를 되찾아와야 한다. 아니면 아주 더럽고 지저분한 싸움을 벌인다. 무림 문파가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라는 생각으로 물러서게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야천은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성검문도 무림 문파 중 하나일 뿐이다. 후후! 성검문이 꽤 자존심 상하겠는데요.”
삼부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존심 상하는 정도가 아니지. 이러면 이제 무림 제일 문파라고 할 수가 없잖아. 무림 문파가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 하! 영주님이 뭘 기다리시는지 모르겠는데, 제발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이번 일, 꼭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장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허도기가 거침없이 전보영을 치고 들어온 장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검문이 건재했을 때, 관에서는 무림 문파에 직접 통제하지 못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어떤 지시를 하달해도 성검문이 비틀면 보기 좋게 비틀어졌다.
저들은 무림의 힘을 똑똑히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관에서 직접 먹잇감을 던져 주면 말이 달라진다.
통문을 쫓지 않으면 야천이 놓아 버린 것들을 차지하지 못한다. 다른 문파에게 빼앗긴다. 이것은 사실 영역 싸움이고, 분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분명히 무인의 싸움은 아니다. 문파 간의 싸움이다.
하지만 명문정파라고 해도 놓치기가 아쉬워서 달려들 것으로 생각된다.
모두 줍는 게 임자라는 사실을 안다.
약한 문파가 강한 문파의 영역에 들어와서 야천의 먹잇감을 가로채도 당장 시비를 걸지는 못한다. 이 일을 주도한 곳이 관인 이상 당분간은 속앓이만 해야 한다.
“통문을 돌리면 얼마나 움직일까? 야천이 놓은 것이라고 해 봐야 지저분한 일들이어서.”
“아니지. 도강세(渡江稅) 같은 것은 날도둑질이지만 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이고. 주루나 기루를 보호하는 일은 속가제자에게 맡길 수 있고. 먹을 게 많지. 적어도 삼 할은 당장 움직일 거야.”
“아니, 부족해. 당장 움직일 전력을 육 할 이상으로 끌어올려.”
전보영주가 말했다.
“그런데 영주님, 기다리시는 것이 무엇인지…… 언질이라도 주실 수 없으실지?”
“언질이야 줄 수 있지. 황명.”
“화, 황명요!”
“야천에서 뇌물을 받는 자, 구족을 멸한다. 야천을 보호하는 자, 구족을 멸한다. 이런 거 몇 개 적어서 올렸어. 윤허해 주시기가 껄끄러우실 거야. 하도 독한 내용이 많아서.”
“……!”
삼부장은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전보영주는 야천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차단한 후,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영주님, 그런 말을 왜 이제…… 하! 괜히 걱정했습니다.”
“그러게요. 전 이거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습니다. 하하!”
삼부장이 비로소 마음을 놓은 듯 호쾌하게 웃었다.
* * *
허도기는 뒷짐을 지고 연못을 산책했다.
진공부에서 물러나 성검문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성검문이다.
기분 탓인가? 어쩐지 좁게 느껴진다.
장원 크기로 보면 진공부와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크다. 하지만 그래도 좁게 느껴진다.
성검문은 무림이다. 진공부는 천하다.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놈은?”
허도기가 무심히 말했다.
누가 다가온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허도기의 이목마저 속이지는 못했다.
그림자가 정원을 가로질러 꽃밭에 숨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림자가 말했다.
늘 듣던 대답이다.
“내가 살아났으면 그놈도 살아났다. 어딘가 있어. 두 눈 부릅뜨고 찾아.”
“네.”
“대답만 하지 말고 찾아봐.”
“네.”
대답은 늘 한결같다.
동굴이 무너질 때 허도기는 오랜만에 조명십해를 펼쳤다.
당금 무림에는 그에게 조명십해를 펼치게 할 만한 고수가 없었다. 그래서 펼치고 싶어도 펼칠 수 없었는데, 한낱 흙더미가 펼치게 했다.
선풍만검(旋風滿劍)!
소축십검은 손도 대지 못한 검공이다.
조명천검 중 비조복개를 지극히 잘게 쪼개서 펼친다. 적어도 백 회 이상 잘게 쪼갠다. 그러면 검이 맹렬하게 회전한다. 진기로 회전시키는 것은 손으로 회전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검이 맹렬히 휘돌면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휘저었다.
오랜만에 힘에 부친다는 것을 느꼈다.
흙더미가 너무 무겁고 난폭해서 빙빙 도는 검륜(劍輪)이 점점 약해진다. 손목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이 달린다.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쏟아 내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전력을 다했다.
허도기는 선풍만검에 이어서 축검 삼륜축첩공까지 펼쳤다.
삼륜축첩공을 펼치면 당분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차후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무너지는 흙더미에서 빠져나가는 게 선급했다.
위로! 위로! 위로!
폭발이 멈췄을 때 그는 거의 지표면까지 도달했다.
검 끝이 흙 밖으로. 삐져 나갔다. 검이 만든 공간을 통해서 맑은 하늘이 비쳤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선풍만검과 삼륜축첩공을 동시에 펼친다는 것은 자살에 가까운 무모한 행동이었다.
허도기는 전신 진기를 모두 소진했다. 탈진했다.
시간이 흐르자 정신이 들었다. 몸을 일으키자 흙이 우수수 떨어졌다. 크게 막히는 것이 없이 벌떡 일어설 수 있었다. 혼절 직전에 거의 지표면에 다다랐다.
흙은 더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아걸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 있어.’
느낌, 촉이라고 할까? 싸한 느낌이 일어난다. 불편한 느낌이 든다. 놈이 주는 불편함이다.
허도기는 고개를 내둘러 아걸에 관한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흑후는?”
“아직 야천에 있습니다.”
“언제까지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말미를 보름 준다고 전해. 보름 안에 야천 대답을 가져오라고.”
“네.”
“보름 후면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명확히 전하도록.”
“네.”
허도기는 발길을 옮겼다. 그의 발길은 옛날에 자신이 머물던 소축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과거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조카들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 사건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몇 번을 점검해도 꼭 실패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카들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을 속이는 것이 어렵다.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 후에는 좀처럼 힘든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애라고 생각되는 일은 있어도 자신이 실패한다는 느낌을 들지 않았다. 모두 발밑에 낀 때처럼 보였다.
보름까지…… 흑후가 답을 가져올 때까지만 놈을 찾는다. 그 후에도 없다면 정말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지금도 살았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그 후에는 가차 없이 장군부를 공격한다.
‘장군부를 공격하려면 꽤 강한 암살단이 있어야겠어.’
허도기는 장군부를 치는 선봉에 야천을 세울 생각이다. 성검문을 차지할 때처럼 마인들을 앞세워서 장군부와 전보영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그리고 마인들을 공격한다.
자신은 또 마인을 척살한 영웅으로 부상한다.
참 간단한 계획이지만 이것처럼 효과적인 계획은 없다.
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열광한다.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열광하지 않으면 죽는다.
“후후후!”
허도기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