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15화 (315/600)

#315화. 第六十三章 과거사(過去事) (5)

안휘성(安徽省) 박주(亳州)는 신의(神醫) 화타(華佗)가 태어난 곳이다. 조위(曹魏) 태조(太祖) 무황제(武皇帝) 조조(曹操)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박주 사람들은 조조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하지만 화타만은 매우 숭배한다. 화타를 모시는 사당도 있고, 동상도 만들어 놨다. 해마다 제사도 지낸다.

박주는 중원사대약도(中原四大藥都)로 불린다.

이천여 년 동안 약재의 재배, 조제, 상업을 말할 때면 늘 첫손 꼽히는 도읍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늘 서늘하며, 햇볕도 좋고 비가 많이 와서 약초 재배에 딱 좋다. 실제로 박주 인근 육만사천만 평이 모두 약초밭이다.

박주 사람은 구 할이 약초 재배와 판매에 종사하며 나머지 일 할은 명주 제조에 종사한다.

박주는 야천육방 관할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관할이란 야천 내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일반인에게는 ‘도끼 구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야천육방 육룡의 제자인 쌍부박천(雙斧拍天)이 박주를 꽉 잡고 있다. 육룡은 제자를 네 명 두었는데, 그 중 대제자에게 박주를 맡길 만큼 이곳을 중요하게 여겼다.

약초를 판매하는 시장이 십만 평 규모이고, 점포만 오천 개에 이르며, 약제 종류는 이천 종에 달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삼만 명에 이른다.

다른 것은 일체 제쳐 놓고 상인들을 보호하는 보호비만 해도 엄청나다.

쌍부박천은 도끼 두 개로 하늘을 쪼갠다고 말할 만큼 무공이 뛰어나다. 더욱이 쌍부박천은 매우 치열하게 싸운다. 웬만한 무림인도 쌍부박천과는 싸움을 피할 정도다.

시장은 매우 평온하다.

술 먹고 주정 부리는 것이 아니어서 탈 날 일이 거의 없다.

약재 시장은 새벽에 열려서 정오가 되기 전에 파장한다. 그러니 야천 일도 점심 무렵이면 끝난다. 그 후에는 술이나 먹고 놀면 그만이다. 그야말로 황금 노른자위 땅이다.

새벽이 지나가 날이 밝아올 무렵, 일단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사내들은 모두 사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관군이라는 것은 단번에 알겠다. 손에 방망이, 창, 승삭(繩索) 등을 들고 있다. 모두 관에서 사용되는 병장기다.

그들은 상인이나 약재에는 일절 눈길도 주지 않고 도로를 따라서 쭉 걸어갔다.

거리 중앙에 아무 현판도 없는 낡은 이층집이 있다.

약재 시장은 도끼 구역이지만 쌍부박천이 직접 관리하지는 않는다.

쌍부박천에는 ‘형제’라고 부르는 파락호가 십여 명 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수하 십여 명과 함께 늘 상주하며 관리한다. 하지만 말이 관리이지 술이나 먹고 여자나 희롱하다가 돌아가는 게 고작이다.

시장 사람들은 이곳을 ‘암소(暗沼)’라고 부른다. 이곳으로 끌려온 여자들은 어두운 늪에 빠진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거나 죽어서 나오기 때문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려던 사내들은 마침 밖으로 나오는 사내와 마주쳤다.

“뭐야?”

안에서 걸어 나온 파락호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순간, 파락호와 마주친 사내가 다짜고짜 방망이를 휘둘렀다.

쒜엑! 빠악!

파락호는 일격에 머리가 박살 났다.

머리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크으윽!”

파락호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쭈!”

방망이를 내리친 자는 일격에 날아 떨어지지 않은 게 화가 나는지 재차 일격을 가했다.

쒜엑! 빠악!

이번에는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번 일격에는 파락호도 견디지 못하고 쭉 뻗었다.

파락호는 사지가 빳빳하게 경직되면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 꼭 개구리를 땅바닥에 패대기쳤을 때 팔다리를 쭉 뻗으면서 떠는 모습과 똑같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자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형님!”

집안에서 희희낙락 잡담을 늘어놓던 사내 중 한 명이 사복 입은 사내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형님이 어쩐 일로…….”

“닥쳐.”

“네?”

사내가 어안이 벙벙해서 사복 사내를 쳐다봤다.

“닥치고 무릎 꿇어.”

“아니, 형님. 도대체…….”

사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몽둥이가 날아왔다.

“새끼! 닥치고 무릎 꿇으라니까!”

쎄엑! 빠악!

몽둥이가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상당히 세게 쳤는데, 머리가 깨지지는 않았다.

“아! 예예.”

사내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사복 사내가 허리춤에서 포승을 꺼내 사내의 손을 등 뒤로 묶었다.

“형님, 말이나 해 주쇼. 왜 이러는 거요?”

“아는 척하지 마, 새끼야. 나 안다고 하면 죽여 버린다.”

“아! 무슨 일인지 알고 나갑시다.”

“너 이 새끼야, 너희 새 됐어. 깡패 새끼들 일제 단속이다.”

“아이, 그런 게 떨어지면 통보나 해 주시지.”

“나도 오늘 아침에 알았어. 우리 절대 모르는 거다. 안다고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려.”

“형님도 참 저 입 무거운 거 알잖소. 그러나저러나 도끼 형님한테는 알려야 할 텐데.”

“이 새끼가 말을 뭐로 알아들어. 너희 새 됐다니까! 도끼한테도 이미 들이닥치고 있을 거다.”

그때다. 안쪽에서 사내 몇 명이 반송장이 되어서 질질 끌려 나왔다.

쌍부박천이 동생이라고 부르는 철권(鐵拳)과 아백사(二百死)다. 주먹이 쇠처럼 단단해서 철권이고, 생애 이백 명은 죽이겠다고 해서 이백사라고 불린다.

박주 야천에서는 쌍부박천 다음으로 무공이 강한 자들인데 완전히 초주검이 되어서 끌려 나왔다.

“뭐해? 그 새끼, 말 안 들어?”

“아니. 이 새끼는 순순하네.”

지금까지 말했던 사내가 파락호의 뒤통수를 딱 때렸다.

“일어나, 새끼야!”

“형님, 방법이 없는 거유?”

사내가 일어나면서 작게 속삭였다.

“없어, 임마.”

“형님. 나 좀 살려 주셔.”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가. 오늘은 어떻게 할 수 없어.”

박주 약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야천육방 무리가 일제히 끌려 나갔다.

상인들은 그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말리는 사람도 없다. 상인들은 관군을 응원하지도 않고, 야천을 응원하지도 않는다.

관군을 응원했다가 야천 무리가 다시 돌아오면 그 후과는 상당히 무섭다.

잠시 후, 약재 시장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활개를 띄었다.

* * *

빡! 빡! 빡! 빡!

다짜고짜 나타난 사내 다섯 명이 정문을 지키던 두 명을 무자비하게 타격했다.

정문을 지키던 자들도 싸움깨나 하는 자들이지만, 수적 열세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다섯 사내는 정말 싸움을 잘했다. 한 대도 맞지 않고 때리기만 했다.

와장창!

문이 부서졌다. 그리고 사내 스무 명가량이 우르르 안으로 달려들었다.

“모두 제 자리!”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대갈통을 부숴 버린다!”

“꼼짝하지 마!”

사내들이 각기 한 마디씩 일갈을 내지르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윽박질렀다.

사내들이 들이친 곳은 고급 도박장이다.

안에는 비단옷을 입은 사내 서른 명가량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도박꾼들은 낯선 사내들이 거칠게 들이닥쳤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런 일에 익숙한 것이고, 대처 방법도 알고 있다. 얼굴에 여유까지 넘친다.

안쪽에서 재빨리 한 사람이 달려 나와 넙죽 절했다.

“아이고! 나리. 제가 여기를 관리하는…….”

말이고 뭐고 필요 없다. 다짜고짜 몽둥이가 날아갔다.

쒜엑! 빠악!

말을 하던 사내는 뒷머리에 일격을 당하고는 바로 풀썩 꼬꾸라져 버렸다.

“지금부터 말하지 마라. 움직이지도 마. 경고다. 경고를 어기는 새끼는 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러는 사이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탁자 위에 놓인 판돈을 보자기에 쓸어 담았다.

도박꾼들은 일제 검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단속을 어디 한두 번 당하나. 야천이 곧 손을 쓸 것이다.

관군들은 판돈을 보자기 싸면서 일정 분량을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는다. 이것도 관례다. 서로 줄 만큼, 받을 만큼만 슬쩍 한다. 물론 이 돈은 야천에서 보상해 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판돈에 손대지 않아.’

도박꾼들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일이 단단히 꼬였다는 뜻이다.

사대들이 판돈을 모두 보자기에 싸서 한쪽에 모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자들은 포승줄을 가져와서 신분조차 묻지 않고 무조건 도박꾼들을 묶었다.

“이봐, 이봐. 말로 하자고. 내가 누군지 알아?”

“뒈지기 싫으면 입 닥쳐.”

도박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때, 안에서 검을 든 무인이 나타났다.

쌍부박천이 형님으로 모시는 사내다. 자칭 검광필사(劍光必死)라고 말한다.

“누가 책임자인가!”

검광필사가 다소 위압적인 말투로 말했다.

“나. 왜?”

사복 입은 사내 중 한 명이 나섰다.

검광필사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아무것도 아닌 듯 무심히 걸어 나오는 사내의 모습에서 거대한 폭력을 봤다.

‘고수!’

“못 보던 놈인데…….”

“너 검광필사라는 놈이지? 야! 이 새끼가 검광필사란다.”

“하하하!”

“킥킥!”

도박꾼을 묶던 사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비웃음이다.

“검 뽑아. 필사라는 검광 좀 보자.”

사내가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스릉!

검광필사는 묵묵히 검을 뽑았다.

상대는 웃고 있지만, 그는 웃지 못한다. 상대방의 몽둥이가 아주 무서운 대도처럼 여겨진다.

쒜엑!

검광필사는 상대가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번갯불처럼 검을 쳐 냈다.

한데 상대의 방망이 솜씨가 이상하다. 갑자기 묘하게 방향을 틀더니 다리를 후려친다. 검광을 토해 낸 검은 이미 빗나간 후, 즉시 검을 뽑아서 다리를 막으려는데…… 방망이가 어느새 위로 솟구쳤다.

빵!

방망이는 검광필사의 턱을 가격했다.

‘이! 이 수법은!’

안휘성 봉문(棒門) 오형봉문(五形棒門)의 무공이다.

무인, 무인이 이번 일에 가담했다. 안휘성 삼대 문파 중 하나인 오형봉문이…… 그리고 보니 이 자, 앞에 선 자…… 오형봉문 속가제자인 단봉상형(短棒祥刑)이라는 고수다. 오형봉문의 정수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자다.

검광필사는 단번에 사태를 알아챘다.

정말 몇 년에 한 번 있는 일, 중원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강력한 진압, 성검문이 중원 무림 문파에 통문을 돌릴 정도로 대대적인 진압이다.

이게 하필 왜 자신의 도박장에서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이곳은 쌍부박천의 수입원 중 약재상 다음으로 큰 곳이다. 전체 진압을 하더라도 정말 큰 곳은 피해 주는 법인데…… 검광필사는 오늘 수많은 형제가 잡힐 것을 깨달았다.

“저, 잠깐만!”

단봉상형이 두 다리를 낮게 숙이고 몽둥이를 고쳐 잡자, 검광필사는 급히 검을 버리며 말했다.

“제가 어찌 오형봉문의 무공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퉤!”

검광필사는 말을 하다가 침을 뱉었다.

방금 맞은 일격에 이빨이 떨어져 나갔다. 입안에 피가 고여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저 다 드릴 테니까, 저희는 그냥 좀 놓아주시면…….”

“안 돼.”

“못 본 척만 해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네놈들 대가리 수 다 꿰고 있어. 네 놈 안 잡아가면 내 목이 날아가. 검 집어. 무인이라는 놈이 최선을 다해야지.”

“죄송합니다.”

검광필사가 무릎을 꿇었다.

이런 자들에게는 안 된다. 쌍부박천이라면 단봉상형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은 안 된다. 오늘은 야천육방이 피박살 나는 날이다. 완전히 노리고 들이쳤는데 무슨 수로 당하나.

검광필사는 머리를 땅에 대고 팔을 등 뒤로 올렸다. 묶으라는 거다. 이래도 때리면 어쩔 수 없고.

검광필사는 밖으로 끌려 나오면서 사방을 훑어봤다.

‘이런!’

이자들, 정말 단단히 노리고 왔다. 사방에서 야천 형제들이 끌려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정도로 야천육방이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

몇몇 사람은 잡히겠지만 쌍부박천을 비롯해서 주요 인사들은 모두 빠져나간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만 피하지 못하고 잡힌 것뿐이다.

문제는 무림 문파가 이번 일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박장은 폐쇄될 것이고, 박주 약재상은 무림 문파 손에 들어갈 것이다.

노른자를 다 뺏기게 생겼다.

‘정말 오늘 재수 옴 붙었네.’

검광필사는 또 침을 뱉었다. 입안에 피가 자꾸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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