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第六十四章 의혈(蟻穴 : 개미집) (2)
다다닷! 다다다닷!
누군지 모를 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 들어왔다.
사내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관심 없다는 듯, 하는 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저, 저기…… 비표…… 비표…… 비표비리 님…… 전갈…….”
사내가 숨을 헐떡이면서 간신히 말했다.
장부를 적고 있던 자가 붓으로 벽을 가리켰다.
“저기서 쉬고 있으면 사람이 나올 거요.”
“아니! 급한 전갈…… 이라니까.”
사내는 다급히 말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붓으로 가리킨 곳에는 자신처럼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사내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었다.
너무 급하게 달려와서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사람, 숨을 쉴 수 없는지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있는 사람, 안방이나 되는 듯 큰 대 자로 축 늘어진 사람…… 사력을 다해서 달려온 파발마가 한 무더기나 앉아 있었다.
“너희만 당한 게 아니야. 지금 호북성 전역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저기 가서 숨 좀 돌리고 있어.”
사내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도 다른 파발마처럼 한쪽 구석에 가서 벽에 등을 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하! 하! 하아!”
긴장이 풀려서인가, 앉고 나니 더 숨이 가빠왔다.
“언뜻 들으니까 비표비리 님 말씀하시는 거 같던데?”
“그쪽은?”
“단구혈리 님.”
“아! 그럼 그쪽도?”
“우린 아예 박살 났다니까.”
“우리도 그런데. 하아!”
두 사람은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정(洞庭) 십육루(十六樓)가 당했습니다.”
혼사가 보고했다.
“어느 정도나?”
“당분간 영업을 재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기루를 관리하는 자들이 싹 끌려갔습니다.”
“전부다?”
“네.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서 피하지도 못하고.”
팔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호북성에는 중원 제일의 호수가 있다. 동정호다.
동정호의 풍경이야 말할 것이 없고, 물 위에 배를 띄워 넣고 풍류를 즐기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시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동정호는 시인 묵객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달라진다. 시를 쓰기 위해서 종이를 깔아 놨던 뱃전에 술상이 차려진다. 배에 붉고 푸른 등이 켜진다. 물 위에 또 있는 청루(靑樓), 홍루(紅樓)다.
이곳에서 여인의 살 냄새에 푹 파묻혀야 만족하는 사람들이 쾌락을 즐긴다.
야천은 동정호 열여섯 곳에 거점을 만들고 배와 기녀를 관리한다.
이곳이 동정 십육루다.
한데…… 동정 십육루의 주인은 야천 팔방이 아니다. 야천 대방이다. 동정호는 분명히 야천 팔방 영역 내에 있지만, 동정호만큼은 야천 대방에서 관리한다.
야천 이방은 양자강(揚子江) 남안에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형강분홍(荊江分洪:진장펑홍)이라는 유수지(遊水池)를 장악했다.
유수지 부근은 밀, 옥수수, 목화, 차, 유채, 저마(苧麻) 등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 유통에는 많은 이권이 따라붙는다. 당연히 먹잇감이다.
야천 삼방은 대야(大冶)와 의창(宜昌)에 깃발을 꽂았다.
대야에서는 철과 석탄을, 의창에서는 석고, 암염, 구리, 인(燐)을 산출한다.
야천 팔방은 풍족한 도읍인 호북성에 둥지를 틀었지만, 사실상 빈 껍데기만 차지한 셈이다. 아니, 야촌 대방이나 이방, 삼방의 사업을 암중으로 보호하라는 임무가 부여된 셈이다.
저들 사업장에서 일이 터지면 당장 야천 팔방부터 닦달하고 나서니까.
사실 북쪽 무당산(武當山)에는 무당파(武當派)가 있고, 조양(潮陽)에는 제갈세가(諸葛世家)가 있다. 무림 양대산맥 중 하나인 무당파와 중원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 있다.
차 떼고 포 떼고…… 야천 팔방은 먹을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동정 십육루가 다 털렸다. 기녀는 뿔뿔이 흩어졌고 십육루를 관리하던 자들은 모두 잡혀갔다.
굉장한 타격이다.
형옥으로 끌려간 자들이 최소 반년 이상 풀려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동정호 사업은 거의 접었다고 봐야 한다. 야천 팔방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놈들이 장사하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동정호를 들이친 사람 중엔 무인도 있다.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비호를 받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전면전을 생각하지 않는 한, 손대지 못한다.
“우리 쪽은 어때?”
“역시 당했습니다. 하지만…….”
팔룡이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뭐야?”
“다행스럽게도 크게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관군이 들이닥쳐서 부수기는 했는데, 껍데기만 부수고 갔습니다.”
“알맹이는 내버려 두고?”
“네. 저희는 보름이면 다시 사업을 돌릴 수 있습니다.”
팔룡은 눈을 감았다.
방갓 무인의 말이 맞았다. 그가 말한 대로 중원 전역에서 야천이 털리고 있다.
몇만 명, 몇십만 명인지도 모를 관군이 일제히 동원되었다. 전 무림이 오직 야천만을 노리고 공격했다. 공격 이유도 너무 확실하다. 이미 꼬리를 잡아서 변명할 수도 없다.
이런 일을 누가 저지를 수 있나?
“이번 단속 주체는 누구야?”
“전보영이라고 합니다.”
“전보영? 음.”
어지간해서는 놀랄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또 놀랐다.
전보영에서 손을 댄 일이라면 빼도 박도 못한다. 잡혀간 자들은 쉽게 풀려 나오지 못한다.
전보영에 끌려가면 십중팔구는 병신이 되어서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무서운 곳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야천에게는 그렇다. 전보영은 야천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전보영이 손대면 이것은…… 극강(極强)이야. 돌풍처럼 몰아쳐 오고 있어. 이건 이쪽을 완전 개박살 내겠다는 건데, 박살 나지 않으려면 역시 극강으로 마주쳐야 해. 전쟁이다!’
팔룡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야천 팔방이 야천 대방만 못한 것은 절정 무인이 없기 때문이다.
음산사마 같은 고수, 방갓 무인 같은 고수, 허도기 같은 자가 공격해 왔을 때, 마주 나갈만한 고수.
그런 고수가 없다.
물론 이기는 것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누가 공격해 오면 반격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방갓 무인이 공격해 오면 손 놓고 있다가 칼 맞아 죽나?
공격에 대응해서 마주쳐 나가야 하는데 야천 팔방에는 그럴 만한 무인이 한 명도 없다.
팔룡, 자신조차도 그러지 못한다. 팔룡의 휘하에 있는 수하들은 더욱 그렇지 못한다. 하지만 야천 대방이나 이방, 삼방에는 그런 자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대망, 상망인 것이다. 그 정도의 무인이 적어도 두 명 이상 있어야 상망 소리를 듣는다. 간신히 한 명이라도 있으면 중망, 전혀 없으면 하망이다.
야천에 그런 무인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야천 구룡의 구분은 방도 숫자라거나 사업 크기로 서열을 정한 것이 아니다. 절대 무인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 또 달리 말하면 각 방주의 무공 순위라고도 할 수 있다.
전보영이 이런 식으로 들이치면 야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암살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 즉시 사리에게 전달해.”
“네.”
“무명인(無名人)하고 철저하게 거리를 두라고 해.”
“붙는 게 아니고…… 거리를 둡니까?”
혼사가 의아해서 되물었다.
중원이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무명인, 방갓 무인은 대단한 자인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그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팔룡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무명인은 아주 뜨거운 불이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 그 불 곁에 가까이 가면 모두 타 죽는다. 다들 피하라 그래.”
“알겠습니다.”
“두 번째, 음산사마를 찾아라! 음산사마에 대한 거라면 발에 무좀이 생긴 것까지 찾아내라고 해. 다 찾아. 음산사마를 찾는 일에 우리 명줄이 달렸다.”
“네.”
“이 두 개, 아주 시급해. 지금 가장 빠른 놈을 시켜서 빨리 전달해. 오늘 중으로 사리에게 전달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혼사가 급히 나갔다.
이 싸움이 어떤 식으로 결말날지 모르겠다. 다만 방갓 무인이 뒤를 봐준 덕분에 야천 팔방은 타격이 다소 덜하다. 다른 야천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적절히 타격을 가했다.
사리가 건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팔룡의 사업체가 건재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수도 있다.
관군은 동정호와 형광분홍, 그리고 대하의 의창을 들이쳤다. 호북성에서 가장 이권이 많이 큰 곳을 들이쳤다. 그곳에 힘을 집중하느라고 다른 곳을 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야천팔방에도 대단히 큰 사업체, 금광이 있는데 전혀 손대지 않았다. 아직은 막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는 단계라서 봐줬을까?
어쨌든 소탕목록에서는 빠졌다.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팔룡은 안다. 이것은 방갓 무인이 봐준 것이다. 그러니 싸움이 진행되는 것과는 별개로 음산사마는 찾아야 한다.
음산사마가 성검문에 간 이유를 찾아내면 야천팔방은 무사할 것이다. 찾지 못하면 팔방은 다른 곳보다 더 잔인하게 털린다. 왜냐? 방갓 무인이 이미 야천팔방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까. 누굴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만약 방갓 무인이 관군과 함께 야천 팔방을 공격한다면 살아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정말로 명줄이 달린 문제다.
‘당신 누구요?’
팔룡은 방갓 무인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 * *
아삼은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서에 그야말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금방 한 무더기를 읽고 나면 또 한 무더기를 가져온다.
중원에서 하루에 벌어지는 일이 이렇게 많다. 생각하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도 벅차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서 손은 놓아 버리게 된다.
아삼은 이렇게까지 전서가 많이 쌓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토록 적랑대주를 오랫동안 맡았지만 이렇게 많은 전서는 처음이다.
“하! 그 뭐냐, 상황 판단 잘하는 놈들 있지? 세상 돌아가는 거 환히 꿰고 있는 놈. 그런 놈이 있을까? 좌우지간 그런 놈들 한 스무 놈만 추려 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신분 확인 없이 데려와야 하는데, 혹여 딴마음이라도 품으면…….”
“할 수 없지 뭐. 너희들이 잘 지켜봐야지. 이건 뭐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네.”
“네, 알겠습니다.”
적랑대원이 대답했다.
야천에 숨어든 간자가 아니다. 적랑대주 임지정이 보내온 정예 살수들이다.
살수 열 명이 아삼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호한다.
아삼 주위에는 열 명이 있지만, 모습을 드러낸 자는 한 명뿐이다. 다른 아홉 명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숨었다.
만약 누군가가 아삼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매우 벅찬 싸움이 될 거다. 야천에서 아끼는 칼일 것이다. 야천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허도기도 나온다. 허도기가 직접 아삼을 죽이러 올 일은 없겠지만, 그 정도까지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아삼을 지키는 이번 임무가 마지막 임무일 것이다.
그래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아삼을 지킨다.
“바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적랑대 살수가 읍을 취한 후, 밖으로 나갔다.
그는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상황 판단에 능한 자, 그런 자를 알지도 데려오지도 못한다. 누구를 죽이라는 명령은 쉽게 이행해도, 사람을 데려오라는 일은 하지 못하는 분야다.
그래서 팔룡에게 사람을 보낸다.
팔룡이 보내는 자들…… 믿을 수 있을까?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쩌랴.
팔룡이 사람을 보내 주었다.
대략 스무 명을 요청했는데, 열다섯 명이 왔다.
하나같이 간특해 보인다. 사기꾼? 입에 발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걸 보면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저희만 믿으십시오. 죽을 때까지 입을 봉하라고 명 받잡고 왔으니까, 염려 탁 놓으시고. 자! 어디 앉을까요? 어이! 뭐해! 어서 자리들 잡고 앉아.”
그들은 아삼이 시키기도 전에 전서를 살펴 나갔다.
“하! 요놈들…….”
아삼은 눈빛을 빛내며 팔룡이 보내온 자들을 봤다.
이들은 야천팔방 본단에서 왔다. 십리 수하는 없다. 팔룡이 직접 데리고 있던 자들이다.
이들은 각지에서 날아온 전서를 빠르게 분류해 냈다.
가장 중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무시해도 좋은 일을 찾아낸다.
무시해도 좋은 일은 야천 팔방이 당한 일이다. 누가 당했다. 어디가 털렸다. 이런 일은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풍문으로 들어도 충분하다. 이미 손 쓰기도 늦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금의 흐름이다.
위급 시, 야천은 자금을 안전한 곳으로 모은다. 관군에게 발각되지 않을 장소로 이동시킨다.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는 알아낼 수 있을까? 야천에 숨은 적랑대 간자들이 자금 이동을 계속 보고해 오고 있는데, 언제 소식이 끊어질지 불안 불안하다.
열다섯 명은 수많은 전서 중에서 그런 내용만 추려 냈다.
“이렇게 간추리니까 한결 편하네. 이놈들 이거 돈이 꽤 많네? 이렇게 많았어? 이거 이 정도만 성 하나는 사고도 남겠는데? 야. 이놈들…… 이건 한낮 파락호 무리가 아니잖아?”
아삼은 밀마를 보면서 너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야천이 움직이고 있는 돈은 엄청나게 많았다.
아삼이 평생 보아 온 돈을 모두 합쳐도 밀마에 적힌 것보다는 적을 듯했다.